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307
307화. 수양 대군과 항생제 (4)
[자가께서 이곳에 부임하시고 난 후 소인은 그리운 고국에 돌아가도 될는지요.]물음이었지만 실은 통보인 이 마지막 문장을 읽었을 때,
마포 나루에 내리자마자 마주한 일련의 일들,
어여삐 여긴 부인이 아들에게 몹쓸 것을 먹였다는 혐의에서부터 자신의 뜻을 저버린 아들의 혼사, 그리고 고생만 하고 그 공을 인정받지 못할 위험이 다분한 총독 임명까지,
이어진 흉사에도 필사적으로 유지해온 평온한 낯빛이 쩍 갈라졌다.
‘사쓰마까지 찾아와 천명이 내게 있다며 먼저 부추긴 것은 한명회였다!’
그리 들쑤시기에 과거에도 급제하지 못해 팔도를 굴러다니는 것을 거둬주었더니, 무어라!
분노하는 수양 대군의 귀에 일찍이 경고했던 중전의 목소리가 조롱하듯 울렸다.
“곁에 있는 자를 조심하십시오. 그자가 바로 맥베스 이야기 속 무녀와 같은 자이옵니다.”
왕이 될 것이란 예언으로 저 먼 서역의 왕족 맥베스를 부추겨 끝내 파멸에 이르게 한 무녀, 그 무녀와 같은 자!
“으아아아앜!”
열과 분노에 들떠 신음하며 수양 대군은 다짐하였다.
네놈!
부추기러 올 때는 마음대로 왔을지 모르나, 빠져나가는 것은 마음대로 가지 못한다.
내가 놓아줄 때까지, 네놈의 그 알량한 재주가 다할 때까지.
내게 더 이상의 효용가치가 없어질 때까지!
“현동아.”
“예, 아버님!”
“지필묵을 가져와 부르는 대로 쓰거라.”
“어머나, 자가. 소첩이. 소첩도 정음은 유려하게 쓸 수 있습니다.”
“부인이 관여할 영역이 아니오.”
염증에 시달리느라 실핏줄이 터진 눈으로 수양 대군이 부인을 노려보았다.
그 모습이 꼭 피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섬뜩하여, 윤씨는 흠칫하며 몸을 뒤로 물렸다.
“아버님, 준비되었습니다.”
“북풍에 몸을 기대어도 고삐 쥔 님의 손길은 떨치지 못하니. 고향에 대한 그리움보다 주인에 대한 충정이 더 깊기 때문이네.”
수수께끼 같은 문장을 받아 적으며, 도원군은 이것이 중국 양나라 때 소명태자가 엮은 시 구절을 변형한 것임을 눈치챘다.
“호마의북풍(胡馬依北風), 월조소남지(越鳥巢南枝), ‘호마는 북풍에 기대고 월조는 남쪽 가지에 깃든다’란 시를 응용한 문장이 참으로 좋습니다, 아버님.”
“···그래. 그것을 여송의 한명회에게 보내거라.”
“이 한 문장만, 말씀입니까?”
“그래. 그걸로 충분하다. 그리고 부인.”
“예, 자가.”
분노인지 열기인지 뜨거운 숨을 내뿜는 남편의 모습이 낯설어 윤씨가 조심스레 다가와 공손히 경청의 자세를 취했다.
“한명회의 부인도 여송으로 이주할 준비를 하고 있소?”
“그이는 면포 공장을 운영하는지라 아니 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인이 직접 가서 이주를 준비하라 이르시오.”
“예. ···예? 그걸 제가, ···어떻게.”
“부인!”
“예! 제가 가서 그리 이르겠습니다. ‘한 공이 남방에서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이리 태평하게 독수공방 과부 노릇을 하고 있느냐’, ‘한 공이 우리 자가를 섬기니 부인인 당신도 나를 섬겨 말을 들어라.’ 하고 타이르겠습니다!”
“좋소! 그리고 또, 한명회가 남방에서 보낸 물품을 받아 판매하는 자가 어느 상단이오?”
“그, 그것까진 모르옵니다.”
“알아내시오. 알아내서, 데려오시오!”
수양 대군은 이제 알 것 같았다.
사냥한 토끼 고기를 함께 구워 먹으며 남방에는 무수하게 섬이 많고 그 섬마다 제각기 다른 세력이 터를 잡고 죽어라 서로 싸워들 대는지라 무기 팔아 막대한 재산을 일구기 좋다고 넌지시 말했을 때.
형제 중 가장 깊게 마음을 통해온 임영 대군이 단호히 말했었다.
“형님 전하 강녕하시고 영특하신 세자 저하와 더불어 영민한 대군 아기씨가 둘이나 더 계십니다, 형님. 무엇보다 중전께서 저리 강력하게 세자 뒤에 계시지 않습니까?”
형님께서 암암리에 세제 대접을 받으며 세력을 모색하던 시기는 영영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니 정신 차리라는 말이었다.
정말로,
한명회 같은 자가 감히 덤빌 정도로 자신의 처지가 곤궁해졌음을, 수양 대군은 비로소 깨달았다.
그리고 이 좌절의 분노와 고통을 때마침 자신을 배신하려 한 한명회를 응징함으로써 풀어내기로 다시 한번 생의 의지를 다졌다.
*
*
*
“이 말간 것이 항생 성분을 정제해낸 약이란 말이더냐?”
“예, 하오나 약효 지속 시간이 이 각 정도로 너무 짧아 부득이하게 대군 자가를 이곳 혜민국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수양 대군이 등창으로 병상에 누워 지낸 지 열흘 후.
푸른곰팡이 추출물을 정제해 얻은 항생제가 혜민국에서 투여되었다.
쥐 실험을 통해 효능은 입증하였지만 배양을 통해 얻어내는 항생제의 양이 워낙 소량인지라 전순의와 내의원 의원들은 배양과 추출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혜민국으로 수양 대군을 실어와 약물 정제와 투여를 동시에 진행하였다.
투약 이틀째 되는 날.
세종께서 소헌 대비와 윤서, 광평 대군과 함께 혜민국으로 문병을 나오셨다.
“붓기가 조금 내린 것 같구나. 유야,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소헌 대비는 벌겋게 부어올랐던 등창의 크기가 약간 줄어든 것에 큰 기쁨을 표하시며 수양 대군의 손을 잡고 윤씨와 함께 병상을 지키셨고,
많이 수척해졌지만 죽지는 않을 것 같은 상태를 확인한 세종은 아들보다 항생 약물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셨다.
곰팡이 키우기가 상당히 까다롭고 정제도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전순의의 설명을 들으신 세종이 윤서에게만 들리게 물으셨다.
“이 정도 배양하는 데 드는 인력과 노력이라면 왕족이나 대단한 사람들이나 겨우 치료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너희 시대엔 너무 흔해서 오히려 내성이 생겼다면서, 대체 어찌 만들고 있는 것이야?”
“가루로 만들어 복용하거나 몸에 직접 주입하는 주사제로 만들어 처방하는데, 어찌 만드는지는 저도······. 그나마 흔한 누룩 찌꺼기에서도 배양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낸 것만도 내의원의 큰 공입니다.”
내의원의 연구원들은 최근 푸른곰팡이가 술을 빚고 난 누룩 찌꺼기에서도 채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에 고무되어 푸른색 곰팡이가 나는 모든 물질을 찾기 시작했다.
“이 항생제로 붓고 고름이 나는 종류의 질병은 거의 다 치료할 수 있다고?”
“예, 그리고 감기 등 세균성 질병의 치료도 가능합니다. 실제 전쟁에서 적의 무기에 죽는 이들보다 상처 감염으로 죽는 병사의 수가 훨씬 더 많지 않습니까?”
윤서는 항생제로 치료할 수 있는 다양한 질병을 세종께 고하였다.
상왕 전하의 눈빛이 점점 더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노인들이 기침이 심해져서 열이 나고 숨을 잘 못 쉬는 것이 폐렴인데, 그것도 고친다고? 황 정승이 요새 기침이 심해 위중하지 않느냐? 여봐라, 전 첨정.”
“예, 전하.”
“황 정승도 이리 오라고 해서 함께 치료받을 수 있게 하거라.”
“···예, 전하.”
“왜 대답이 그리 어눌하누?”
“아닙니다, 전하. 지금 당장 황 대감 댁으로 사람을 보내 모셔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전순의의 대답이 한 박자 느렸던 것은 정제해내는 항생제의 양이 워낙 소량이어서였다.
이를 눈치챈 세종께서 광평 대군을 부르셨다.
“광평! 지금부터 전 첨정과 또 의원과 함께 곰팡이를 대량 배양할 수 있으려면 어떤 환경을 갖추어야 하는지 알아내고, 또 추출해서 정제한 약물을 가루로 만들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알아내거라. 소금을 만들 듯 말려야 할 터인데 말리고도 약효가 유지되는지, 말리는 것은 어찌해야 하는지 체계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예, 아바마마.”
“곰팡이가 자꾸 죽는다는데, 내 생각에는 귀하게 키운다고 자꾸 꽁꽁 싸매고 키워서가 아닌가 싶다. 생물이 살아가려면 산소란 것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더냐? 곰팡이도 생물이니 산소가 필요할 것이니 공기가 잘 통해야 할 것이야.”
세종께서 내리신 어명대로 폐렴으로 고생하는 황희 정승도 혜민국에 실려 와 항생 약물을 복용하게 되었다.
효과는 아주 좋았다.
쉴 새 없는 기침과 고열로 거의 빈사 상태에 있던 황희 대감은 닷새 후 일상의 운신이 가능한 정도로 회복되었고, 보름 후에는 이전처럼 마차를 타고 의정부에 등청하게 되었다.
수양 대군은 보름 후 종근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사흘 더 혜민국에 입원해 있다가 완전히 회복되어 명례궁으로 무사히 돌아갔다.
젊은 수양 대군이야 그렇다 치지만 이번에는 틀림없이 죽게 될 것이라고, 그래서 다들 공석이 된 영의정 자리는 누가 차지하게 될지, 그렇게 한 자리씩 공석이 생기면 자신의 관직은 어디까지 올라갈지 지대한 관심으로 황희 대감의 용태를 살피던 한양의 벼슬아치들 모두 ‘항생제’의 효능에 눈을 떴다.
갑자기 의학과 제약 분야가 중요한 관심사로 떠올랐다.
전순의를 비롯한 내의원 어의들에게 그 기적의 약물인 ‘항생제’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소량이라도 얻을 수 있는지 문의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 결과에 고무되신 세종께서는 전순의를 비롯하여 항생제 연구에 참여한 의원들에게 은자 백 냥씩을 상금으로 하사하시고, 또 성균관 남쪽에 와 함께 을 정식으로 설립하여 광평 대군을 책임자로 앉혔다.
이렇게 여름 내내 한양이 때 아닌 항생제와 의학 열풍에 휩싸여 있을 때.
윤서는 박 상궁과 노산대에게 명례궁과 한명회 사이가 미묘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한명회의 부인이 면포 공장을 정리하였다고요? 여송에 가기 위해서?”
“예, 하온데 민씨가 공장을 남겨두고 가려는 것을 명례궁에서 사람이 나와 정리하라 여러 번 윽박질렀다 하옵니다. 그래서 급하게 정리해야 했는데 그 큰 공장을 한꺼번에 현금으로 지불하여 사들일 수 있는 자가 어디 그리 흔합니까?”
한명회의 부인 민씨가 내놓은 공장 가격이 면포 이만 필, 은자로 일만 냥이었다.
이 소식을 전하며 박 상궁 마마님 입꼬리가 자꾸 올라갔다.
“마마님?”
윤서가 묻자, 문가에 엎드려 있던 노산대가 고개를 들고 대신 고하였다.
“한명회의 부인 민씨가 면포 공장을 차릴 때 중전마마 명으로 박 상궁 마마님께서 큰 도움을 주지 않으셨습니까? 그 인연으로 박 상궁 마마님이 칠천 냥에 인수하셨습니다.”
“하핫, 맞습니다. 제가 인수하였지요. 거기 공장 면포 가공 기술이 좋아서 천이 참 부들부들해요. 그래서 우리 조선에서는 물론 일본에서 온 상인들도 서로 못 사 안달입니다.”
박 상궁은 중전마마 덕분에 이리 싸게 좋은 공장을 인수하였으니, 절반의 지분을 금동이에게 주겠다고 하였다.
“아니 왜 또 금동이입니까?”
“어허! 그거야 우리 금동 아기씨가 저를 워낙 좋아하시는 데다가 또 그 상재가 어디 보통입니까? 단언하건데 우리 아기씬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거부가 되실 것이에요. 그런 분을 위해서 미리미리 공장 운영 경험을 시켜드리려는 건데 뭘 그렇게. 중전마마! 이게 다 우리 조선을 위해서입니다. 자자, 이런 거 말고 정말 중요한 이야기로 넘어가야 합니다. 노 차인, 보고드리게.”
왜 상의도 없이 자꾸 애한테 그렇게 거금을 턱턱 넘기냐고 눈을 치켜뜬 윤서의 눈치를 살피며 박 상궁 마마님이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그간 한명회가 수양 대군의 위세를 등에 업고 복건과 영파, 또 일본의 구주 지역 상단과의 중계 무역을 독점하다시피 했습니다. 우리 상단뿐 아니라 다른 상단에서도 여송 일대의 향신료 중계 무역에 뛰어들고자 그리 애를 써도 교묘하게 저희만 독점했지요. 심지어 여송 일대에서 조선으로 향신료를 들여오는 것조차 한명회에게 뇌물을 바쳐야 가능하지 않았습니까?”
노산대가 눈을 번뜩였다.
진작부터 한명회 주변에 심어놓은 자들로부터 한명회가 여송에서 얼마나 위세를 부려대는지 상세히 보고 받는 노산대는 조선의 무역 규모가 더 선진적으로 커지려면 수양 대군과 한명회의 결탁을 끊어내야 한다고 여러 번 말을 하였었다.
“그런데 이번에 명례궁에서 여송으로 이주하면서 새로 개척할 섬을 함께 개간할 자들을 새로이 모집한다고 합니다. 상단을 통해 말이 돌고 있습니다, 중전마마.”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