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309
309화. 아버지와 아들 (2)
“어떻게 결정을 내리셨든 전 늘 자가 편이에요.”
누마루도 없이 소박하게 지어진 사랑채에서 도원군의 사모를 받아들며 연화가 말하였다.
대문에 들어설 때 보니 도원군의 눈가가 붉었다.
중전마마를 뵈온 자리에서 여송으로 시아버님 수양 대군을 따라가 보필하기로 결정을 내렸지만 여러 가지 착잡한 마음에 눈물을 떨구고 오신 것이겠지.
혼인 후 수염발이 잡히고 한층 깊어진 목소리로 늘 다정하게 구는 어린 신랑의 눈물은 연화의 마음에 커다란 연민과 보호 본능을 불러왔다.
그래서 내심 여송에 가게 되면 물 한 잔도 마음 놓고 마시기가 쉽지 않으리라 걱정하면서도 연화는 의연하게 도원군의 결정을 지지하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다.
“명례궁에 들어가게 될 것에 대비해 짐을 꾸렸는데요. 풀어서 새로”
“자식의 의무는 부모보다 오래 사는 것이라 말씀하셨어요.”
“으응? 그게······?”
“중전마마께서 자식의 의무는 부모보다 오래 사는 것이니 가지 말라 하셨어요.”
가지 말라고 하시며 중전께서 덧붙이셨다.
“아버님을 가까이서 모시고 싶은 마음은 기특하나, 그것은 작은 효니라. 자식의 의무는 부모보다 하루라도 오래 사는 것이야. 그것이 가장 큰 효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도원군은 왈칵 터지는 울음을 더는 참지 못했다.
누군가가 이렇게 불효자란 죄책감을 없애주었으면, 아버님에 대한 강렬한 연민과 불쑥 치솟는 원망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괴로움을 알아주었으면 내심 바라왔던 마음이 설움과 고마움으로 치밀어올랐다.
“빼어난 의원과 또 의녀, 항생제와 여러 신약과 기존의 탕약을 조제하고 만들 약사도 함께 갈 것이니 종기가 재발하더라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도원군이 어깨까지 들썩이며 울자 중전마마께서 안심하라고 해주신 말씀이었다.
도원군은 까치발을 들고 아직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부인의 어깨를 껴안으며 속삭였다.
“그래서, 연화! 난, 난, 열심히 학문을 배우고 몸을 단련할 거야. 아버님께서 지난번 고비를 넘기신 후 많이 달라지셨어요. 지금은 총독이란 한정된 임기를 받아 부임하시지만 새 개척지를 성공적으로 운영하시면 전하께서도 달리 생각하실 거예요. 아니, 그대로 임기를 마치고 돌아오시더라도 다른 중임을 맡으시겠지요. 어느 경우든 나는 열심히 학문과 몸을 닦아 아버님을 건강하게 보필할 것입니다!”
“좋아요, 낭군님. 저는 그럼 곁에서 힘껏 낭군님을 도울게요.”
연화는 도원군의 이마에 지지와 위로의 마음이 담긴 입술을 살포시 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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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벌들이 벌집 틈을 메우는 데 쓰는 봉교(蜂膠)로, 항생제 대신 쓸 수 있을 만큼 살균 능력이 빼어나고 등창과 종기, 잇몸의 통증에도 아주 효험이 빼어나다고 합니다. 구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아 일단 한 근만 구하였지만 소자가 덕적골 소나무 숲에서 벌을 치기 시작했으니 계속 보내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명례궁에 문안을 든 도원군이 십장생을 곱게 수놓은 붉은 비단 꾸러미를 두 손으로 공손히 수양 대군에게 올렸다.
봉교는 야생 벌집 하나당 구할 수 있는 양이 일 년에 고작 두 돈 (7.5g) 남짓인지라 도원군은 아버지를 위해 벌을 치는 비법을 가진 자를 수배해 직접 양봉에 나선 참이었다.
“···네가 직접 벌을 친다고?”
“예, 학당에서 배운 지식 중에 여왕벌을 잡아 키우면 자연스럽게 벌의 무리가 생겨나 꿀을 채취하기 쉽게 된다는 내용이 있어서, 꿀을 채취해 진상했던 자들에게 벌집을 모아 여왕벌 여러 마리를 부화해 인위적으로 벌집을 짓게 하였습니다.”
“오라버니께서 벌에 물려 퉁퉁 붓는데도 인부들과 함께 직접 여왕벌을 옮겼습니다. 지금 짚으로 지은 벌집이 백 개가 넘습니다, 아버님.”
예분 향주도 옆에서 도원군이 수양 대군을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고하였다.
아들의 얼굴과 목엔 아직도 벌에 쏘인 상처가 여럿 남아 있어 딸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였다.
“···네 마음과 정성이, 고맙구나.”
고귀한 왕가의 후예가 피부병이 잦은 아버지를 위해 몸소 벌까지 치는 효심은 아무나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끝내 함께 가겠다고 나서지 않는 아들이 야속했던 수양 대군의 엉킨 마음이 스르르 풀어졌다.
그때였다.
“자가, 벌은 남방에서도 칠 수 있지 않습니까? 거긴 사시사철 따스해 꽃이 더 만발할 것이니 벌도 더 쉽게 칠 수 있고 또 채취할 수 있는 봉교의 양도 많겠지요. 도원군은 이제 성균관에 들어가 학문을 익히랴 또 군무도 배우랴 많이 분주할 것인데 혹독한 겨울이 있는 이곳에서 벌까지 치는 것은 너무 고생입니다. 자가. 저 얼굴을 좀 보세요. 벌에 쏘여 저리 붓다니, 소첩 마음이 너무 아프옵니다.”
윤씨가 눈물을 글썽이며 도원군 얼굴의 상처를 가리켜 보였다.
얼핏 들으면 도원군의 효심을 칭찬하는 말이었지만 앞으로 지극한 효심을 보일 기회를 막아버리는 말이었다.
또한 벌치기 따위는 남방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그깟 벌치는 일로 아버님을 모시지 않는 불효를 절대 벌충할 수 없다는 암시이기도 하였다.
“···음, 그렇구나. 부인, 부인이 덕적골에 사람을 보내 벌 치는 법을 상세히 배우게 하시오. 꿀은 물론 벌의 유충까지 모두 귀한 약재니 약도 변변히 없는 곳에서 아주 유용할 것이오. 현동이 너는 얼굴이 울긋불긋해지도록 고생할 필요 없다.”
과연 그 암시는 의도대로 잘 먹혀들었다.
수양 대군의 어조가 방금 전과 달리 싸늘하게 식었다.
하아.
저리 부자지간을 이간질하지 못해 안달 나 있는 여인이 뱀처럼 또아리를 틀 곳에 가라고.
왜 아버님은 저 여우 같은 말의 음험한 이면을 알아채지 못하시는가.
연화는 분해서 치맛자락을 꽉 움켜쥐고, 예분이는 벌써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예분아. 벌써부터 그렇게 마음 아프게 울 것 없어. 내가 거기 상황 빨리 정리한 후 사람을 보낼 것이니 오라버니 내외와 함께 아버님 뵈러 종종 오면 될 것을.”
윤씨가 세 치 혀로 예분 향주까지 단숨에 불효녀로 만들었다.
보다 못한 연화가 나섰다.
“아버님, 꿀과 봉교는 벌 무리가 어떤 꽃과 나무를 먹고 자라느냐에 따라 성분이 상당히 달라진다고 배웠습니다.”
탐탁하지 않은 며느리란 사실을 알아서 그간 문안을 올릴 때 다소곳이 앉아 없는 듯 존재를 드러내지 않던 며느리가 자신을 직시하며 또박또박 고하자, 수양 대군이 불쾌한 듯 연화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연화는 시누이 경혜 공주가 해준 조언 “타고난 왕족을 상대할 땐 오히려 차분하게 전문적인 근거를 들이대면 돼. 벌벌 떨며 어려워하면 타당한 말도 우습게 들리거든.”을 상기하며 가여운 낭군과 시누이를 위해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 자가께서 깊은 산골짜기 덕적골을 양봉지로 정한 것은 그곳이 유난히 아름드리 큰 소나무가 무성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소나무의 송진에서 채취해 만든 고약이 초기 종기 치료제로 아주 효과가 좋게 쓰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소나무의 송화를 따 만드는 꿀과 봉교야말로 종기와 등창에 아주 효능이 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자칫 호랑이가 나와 인명을 죽일 수도 있는 깊은 골에 개를 서른 마리나 풀어놓아 지켜가며 아버님을 위해 양봉지를 만들었으니, 부디 자가께서 채취해 보내드리는 꿀과 봉교를 약재로 써주옵소서.”
“호랑이가 나온다고? 현동아! 네 어찌!”
“벌이 시끄럽게 윙윙대어 호랑이가 쉬이 가까이 오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만약을 위해 개로 경비를 세우고, 또 임영 숙부께서 소리가 아주 요란한 폭약과 소총을 주셨으니 심려하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아버님.”
“···그래.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 그곳에서도 내 벌을 키울 터이니 절대로 무리해서는 아니 된다!”
수양 대군은 아들이 자신의 건강을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정확히 알게 한 며느리를 새삼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근거를 내세우며 또박또박 할 말 다 하는 것이 꼭 나인 시절의 중전 같아서 대견하면서도 불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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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를 가루로 만드는 것은 아직 어려워서 직접 곰팡이를 길러 정제할 수 있는 내의원 소속 의원과 혜민국 소속 의녀를 일 차로 스무 명을 파견할 것입니다. 의학 대학에서 공부를 마친 의원도 남방의 풍토병을 연구하고 그곳 식물과 광물에서 새로운 약제를 추출하기 위해 파견할 것이니, 형님께서 정착지를 무사히 확장하시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봉교 말입니다, 형님.”
경복궁의 강녕전,
세종과 이향, 그리고 세종의 모든 아들과 손주가 모여 수양 대군의 환송회를 열고 있다.
이번에 총독으로 부임하면 첫 임기 오 년은 돌아올 수 없기에 수양 대군의 동복, 이복 형제들은 비장함마저 감도는 표정으로 정성껏 준비한 선물 목록을 읊었다.
의학 대학을 책임진 광평 대군이 파견할 의료 인력을 말한 다음 서쪽 편 상왕 전하의 손주들이 앉은 곳에서 영양위 정종과 무어라 속삭이고 있는 도원군을 힐끗 보고 말을 이었다.
“봉교의 효능이 놀라울 정도로 빼어납니다. 술을 증류해 만든 높은 도수의 주정으로 봉교를 추출해 실험해 보니 곰팡이 추출 항생제만큼 다방면에 효능이 탁월했습니다. 파견하는 의원들이 그 적용 방법을 숙지하고 있으니 유용하게 잘 이용하세요, 형님.”
“···그렇게 우리 현동이 편을 들어주지 않아도 된다. 우리 조선이 날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니 여기서 새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맞지. 일본의 유력 가문들도 모두 자제를 보내고 싶어 소원하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면서도 수양 대군은 내심 기분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아까 임영 대군도 와서 사거리가 대폭 향상된 화포를 배 한 쪽에 다섯 문씩 열 문을 장착했으니 한 방만 방포해도 그 폭발력에 놀라 다들 꽁무니가 빠지게 달아날 것이라고,
그리고 섬 사이를 항해해야 하는 작은 선박용으로는 크기는 줄였으나 폭발력과 사거리는 줄지 않은 작은 화포를 만들어 유응부 편에 보낸다고 말한 후 목소리를 낮춰 말했었다.
“형님, 덕적골은 우리도 사냥 가길 꺼리는 곳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현동이가 거기 소나무 둥치가 유난히 크고 실하고 봄이면 송화 가루가 안개가 낀 듯 날린다고 하여 부러 골랐습니다. 참으로 대견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안평 대군도 “하, 군으로 봉작된 귀한 신분이 되어 온몸에 벌을 쏘여가며, 하, 전 그런 거 절대 못 합니다.” 하고 말하고,
또 나중에 한명회가 하던 일을 감독할 목적으로 합류하기로 은밀히 약조한 계양군마저 “형님, 도원군이 자꾸 배앓이를 하니 다 고친 후 오는 것이 좋지요. 물만 바꿔 마셔도 탈이 날 수 있지 않습니까?” 하고 말하니.
꽃노래도 한두 번이다.
도원군이 대단한 효를 행하는 것은 맞지만 자꾸 들으니 자신이 아들에게마저 외면당하여 다들 저리 위로하는 것이라고 몹시 기분이 나빠지고 말았다.
다른 마음을 품은 한명회로 인해 촉발된 자격지심이었다.
그러나 수양 대군은 평온한 낯빛을 유지했다.
‘총독’이란 임기제의 자리를 위해서였다.
아까 아바마마께서 공표하셨다.
“총독은 국왕이 자질이 빼어난 왕족을 뽑아 임명하는 자리로, 오 년의 임기를 가진다. 크게 무리가 없으면 한 번 더 연임하게 해 추진하는 일의 연속성을 보장할 생각이다. 수양 대군 이유는 해외 개척의 첫 초석을 놓는 중차대한 임무를 맡았으니, 우리 조선을 위해서도 또 후대에 부임할 총독을 위해서도 매사 최선을 다해 임해야 할 것이다. 주상께서 적절한 인재를 파견해 수양을 돕게 할 것이니, 너희 형제들도 모두 수양의 성공을 위해 힘써주기 바란다.”
상왕 전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형제들의 눈 속에서 ‘총독’직을 향한 열망이 번쩍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수양 대군은 놓치지 않았다.
왕가의 자손으로 태어나 한 번쯤 아바마마와 형님께서 앉아계신 저 용상 위에 앉아보는 상상을 단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자가 어디 있으랴.
등창에 걸렸을 때 보여준 헌신에 다시 애정을 독차지하게 된 부인도 도원군이 어서 여송으로 왔으면 좋겠다는 말끝에 속살거렸다.
“자가께서 온 힘을 다해 개척하는 곳인데, 그 공을 왜 남에게 넘겨야 합니까? 그곳은 자가의 아들이 그리고 자가의 손주가 대대로 물려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때 수양 대군은 뱀처럼 단단히 얽힌 부인의 몸을 밀쳐내며 큰 소리로 화를 냈었다.
“그 무슨 불충한 말이오? 어디서든 지엄한 어명에 따르는 것이 신하 된 본분이거늘. 다시는 이런 말을 입에 담지 마시오!”
그러나 더운 입김과 함께 귀를 간질였던 부인의 말은 귀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기라도 한 양 시시때때로 마음을 흔들었다.
지금 같은 순간에!
그 흔들림은 아비 속도 모르고 천한 것들처럼 벌이나 키우는 게 효도라고 저리 태평하게 세자와 영양위와 어울려 웃고 있는 아들에 대한 노여움으로 깊어졌다.
“유야!”
그 마음을 읽으시기라도 한 듯, 쉴 새 없이 재롱을 부리는 영응 대군의 말에 빙긋빙긋 웃고 계시던 상왕 전하께서 수양 대군을 부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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