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311
311화. 조선 건설 왕국 (1)
“너는 늘 네가 할바마마를 닮았다고 자랑한다만, 네가 할바마마와 확연히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아느냐?”
이번이 이 아이에게 주는 마지막 충고이자, 마지막 기회다.
네놈이 역사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느냐 다 까발리고 싶은 분노와, 기회고 뭐고 양녕처럼 제주에 죽을 때까지 위리안치 시키고 싶은 징벌 욕구와, 어쩌다가 내 아들이 그리 흉악한 패륜을 저질렀을꼬 땅을 치며 탄식하고 싶은 심정 사이에서,
윤서의 역사에선 저질렀으나 이 세계에서 저지르지 않은 죄를 미리 징치하지 않겠다는 큰아들의 확고한 의지와,
자식 하나라도 권력 다툼에서 상하면 더는 세상을 살아갈 의지를 내지 않겠다는 듯 슬프게 새겨진 대비의 얼굴 주름을 떠올리며,
세종은 온화한 아비의 얼굴로 둘째 아들에게 다시 물었다.
“무엇이 같고, 또 무엇이 다르냐?”
“세간의 평이 그러하였습니다, 아바마마.”
오랜만에 들어보는 부왕의 따스한 음성이 감격스러워, 수양 대군은 부러 절제를 풀고 홀로 꿈꿔온 바를 고했다.
“두려움을 모르는 빼어난 무예, 일에 임해 과단하게 나서는 결단력, 무리를 휘어잡아 이끄는 강력한 통솔력이 할바마마를 꼭 빼닮았다 평합니다. 다른 점은 제가 대군이기에 저의 장점을 크게 펼칠 기회가 아직 없었다는 점이 아니겠습니까?”
“기회가, 없었다?!”
“예, 아바마마. 하지만 이제 조선의 새 영토를 해외에 개척하는 대업을 맡았으니 할바마마를 닮은 저의 장점을 발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기회가, 없었다?!’ 되물으시는 음성에 깃들었던 서릿발 같은 한기를 눈치채지 못하고 수양 대군이 미래의 각오를 성실하게 다졌다.
“중전이 즐겨 쓰는 표현 중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야 보이는 것’이란 말이 있다.”
여기서 중전이 왜 나오는가.
“거인의 어깨라니, 무슨 뜻이옵니까, 아바마마.”
수양 대군은 반사적으로 치미는 불쾌감을 누르고 공손히 여쭈었다.
“시대의 지식과 높은 직위가 주는 통찰의 덕을 본다는 뜻이다. 태종께선 고려 왕조가 그 쓰임을 다했다는 시대의 요구를 볼 줄 아셨고, 창업 군주에게 무엇이 요구되는지 정확하게 읽어내신 분이시다. 나의 치적은 모두 다 태종의 어깨에 서서야 가능했다는 뜻이다.”
세종은 스스로 엄숙해졌다.
이것은 역사의 죄인인 아들에게 주는 마지막 가르침이자 또한 그 죄인이 생겨나게 한 자신의 과오를 되짚은 고백이기도 하였다.
“창업 초기 불안정한 왕권과 그로 인해 흔들리는 국가의 역량을 반석 위에 올려놔야 한다는 시대의 요구를 이행하기 위해 아바마마께선 혈족의 피와 공신의 피를 흘리길 주저하지 않으셨다. 조선을 반석에 올리기 위해서라면 그토록 사랑하신 장자의 목숨줄까지 내어놓으신 것, 그 헌신과 결단이 태종께서 지니셨던 가장 위대하신 점이다.”
“!”
수양 대군은 감히 아무런 말도 내어놓지 못했다.
양녕 대군의 목숨까지 내어놓으며 셋째를 왕위에 올리신 결단에 비해, 장자를 해하려 한 부인 하나도 내놓지 못하는 너 따위가 어찌 감히 할바마마를 닮았다는 말을 입에 담느냐!
부왕께서 질타하고 계셨다.
“너는 내심 적통으로 내려오지 않은 왕위 승계에서 왜 형님은 확고히 세자이고 국왕이어야 하는지 그 정당성을 물어왔겠지. 어떠냐? 아까 보이지 않더냐? 이제 다른 형제들이 네가 둘째란 이유로 초대 총독이 되어야 하는지 내심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저는 이미 제 역량을 증명하였습니다. 형님 전하께서 대명 정책과 북방 경영에 성공하실 수 있도록 저는 거친 바다를 떠돌며 초석을 구해오고, 여송 일대 여러 섬나라와의 무역 길을 뚫었습니다!”
수양 대군이 항변하였다.
“증명할 기회를 가진 것조차 주상이 네게 내린 엄청난 특혜이자 배려이다. 안평이라고, 임영이라고 너만큼 못하였을까!”
“······.”
“내 말이 억울하고 야속하더냐? 그럼 증명하거라. 우리 조선의 백성이 누대에 걸쳐 살아갈 새로운 터전의 개척을 이끌 능력이 네게 있음을, 증명하거라!”
“예,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조선의 왕권을 반석 위에 올려 아바마마의 성군의 치를 가능하게 하셨던 태종 대왕처럼 저도 해외 개척지 총독의 역량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좋다! 그것만이 너의 그 흉악한 과오를 속죄하는 유일한 길일 것이니!”
아바마마께서 서안을 탕 내리치며 일갈하셨다.
“올라서야 보이는 것이 있다. 왕위가 그러하고 무리를 이끄는 것이 그러하다. 네가 그토록 남몰래 갈망하는 왕위가 실은 수명을 갈아 넣을 정도로 고단하고 두렵고 고독한 자리라는 것은 고작 오십을 조금 넘기시고 승하하신 태종 대왕과, 양녕이나 효령 형님에 비해 벌써 죽음에 한 발 딛고 선 나를 봐도 알 것이다. 너 또한 이제 그곳에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모여드는 이들을 이끌며 보호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곧 실감하게 될 것이니.”
“···명심하여 최고의 성과를 내겠습니다, 아바마마.”
첫 부인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것, 새 부인의 죄를 모른 척한 것이 속죄까지 해야 할 과오는 아니라고 믿으며 수양 대군은 패기만만하게 다짐을 올렸다.
직감이 속삭이고 있었다.
이것이 아바마마께서 내리시는 마지막 격려이자 경고라는 것을.
*
*
*
“어머, 저기 좀 봐. 지난 봄만 해도 곧 무너질 것 같은 움막 몇 채만 있던 야산이었던 것 같은데, 집이 엄청나게 들어서고 있네.”
“어디, 어디요, 누님? 우아! 흙과 시멘트를 섞어서 벽을 바른 거 같아요. 그럼 벽 뼈대는 무엇으로 세웠을까요?”
“지붕이 낮잖아, 새벽아. 저런 서민용 집은 기둥과 서까래만으로 하중을 다 받을 수 있어. 그래서 벽은 대나무나 수수깡이 같은 걸 엮어서 흙 반죽이 떨어지지 않는 정도로만 해.”
“그럼 철근 골조는 관청 건물에 쓰겠네요? 의정부에 삼 층 건물 터 닦고 있잖아요.”
“응, 맞아. 바닥에 온돌을 깔지 못하니까 겨울에 난로를 둘 것부터 해서 세세한 설계가 아주 중요하다더라. 먼저 일 층부터 단단히 세우고, 다시 철 골조를 세워 시멘트를 부어 굳힌 다음 이 층 천정을 올리는 식이야. 궁금하면 누나랑 같이 구경 가볼까?”
“좋아요, 히히. 모레 학당이 쉬는 날이니까 그때 같이 가요, 누님! 금동 형님도 같이!”
마포 나루로 향하는 마차 안.
희아와 새벽이는 사각으로 낸 창으로 만리재 너머 야산 기슭에 지어지고 있는 서민용 가옥의 건축 방법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가을 들어 왕실 학당에 입학하게 되면서 전처럼 누나를 자주 볼 수 없었던 새벽이는 희아 곁에 딱 붙어 앉아 쉴 새 없이 궁금한 것을 묻고,
희아는 그런 동생이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으며 묻는 질문마다 성심껏 세세히 답을 해주고 있다.
9월 20일.
수양 대군이 여송을 향해 출항하는 날이었다.
이주에 필요한 짐과 사람을 실은 배는 호위 군선과 함께 이미 여러 차례 여송을 향해 떠났다.
이날 출항하는 배는 수양 대군과 그의 부인 윤씨, 조정 신료 이개와 강희안, 이계전 등과 그의 식솔을 태울 배 두 척, 그리고 유응부가 이끄는 군선이 한 척이었다.
광화문에서부터 마포 나루에 이르는 길은 왕실 행차를 구경하러 나온 백성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 날로 화려하게 격식을 갖춰가는 왕실 행차를 보고 즐기기 위해서였다.
행렬을 이끄는 취악대의 연주는 듣고 있으면 가슴이 둥둥 울리며 함께 발맞춰 걷고 싶도록 장엄하게 신이 나는 행진곡이고,
상왕 전하부터 어린 꼬마 대군에 이르기까지 왕실의 주요 인사와 조정의 대신들을 두 겹으로 감싸 호위하는 근위군은 음악에 맞춰 절도 있는 걸음으로 행진한다.
날로 발전하는 인쇄술 덕에 세우 작가와 다른 작가들의 소설이 불티나게 팔리고, 청계전 수표교 아래 쪽으로 등이 화려한 노래와 함께 공연되는 극장이 밤마다 문전성시를 이룬다지만,
뭐니 뭐니 해도 온갖 화려한 깃발이 하늘을 찌를 듯 위용을 내보이고, 붉은색과 금색으로 위엄을 내보이는 왕실 마차가 줄을 이어 달리는 왕실 행차는 대단한 볼거리였다.
이날 상왕 전하는 어차를 타고 가시고, 이향은 융복을 입고 말을 타고 간다.
홍위도 아청색 융복을 멋지게 입고, 공작 깃이 화려한 전립을 머리에 쓰고 이향 뒤에서 말을 타고 갔다.
금동이도 안평 대군과 광평 대군 등과 더불어 종친 무리에서 말을 타고 행진을 하기에,
윤서가 탄 마차에는 희아와 새벽이, 그리고 처음으로 궐 밖에 따라 나오게 되어 치장을 받느라 고단해서 잠든 소아가 타고 있었다.
소헌 대비는 다시 볼 기약 없는 이별에 며칠 전부터 기력이 떨어지셔서 함께 오지 못하셨다.
길게 늘어선 행렬은 천천히 나아갔다.
호종하는 인원도 많고 구경나온 인파가 빽빽하게 늘어선 채 함께 마포 나루로 향하고 있는 이유도 있지만,
장엄하고 화려한 행렬로 나날이 발전하는 국력을 인상 깊게 과시하여 빠른 변화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일각의 불만을 미리 잠재우고 무마하려는 의도도 다분히 있었다.
윤서는 옆 요람 속에 손가락을 빨며 잠든 소아를 쓰다듬으며 창밖을 유심히 살폈다.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구나.”
처음 조선에 왔을 땐 좁은 거리가 온통 오물투성이에 사람들 입은 옷도 허름하고 낡은 경우가 많았다.
시전을 제외하고 변변한 시장이 없어 새우젓 등 젓갈과 푸성귀를 머리에 인 아낙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물건을 팔았는데, 물건값으로 쌀을 받는 경우가 많아 겨우 광주리 하나 정도의 짐만 이고 다닐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인분과 오물은 모두 왕십리 너머에 조성한 거름 밭으로 모이고,
동화와 철전이 유통되면서 여러 물건을 이고 지고 싣고 도성을 누비는 장사치가 셀 수 없이 많아졌다.
또 장사치와 더불어 이른 아침부터 학당에 가는 아이들도 많아지면서 운송용, 승객용 마차가 다니느라 도성 구석구석 길이 넓어지고, 주요 도로에는 자잘한 돌과 모래를 깔아 비가 와도 진창이 되지 않는다.
‘육이오 전쟁 이후 재건될 때의 서울이 이런 속도였을까?’
동기만 주어지면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급속도로 변화를 일궈내고야 마는 한국인 특유의 활력이 이미 조선 초에도 내재해 있었던 것일까.
세종께서 현대의 지식을 무리 없이 소화하시고 나아가 더 나은 성찰까지 보이시는 것을 보면, 또 이향이나 희아가 현대의 수학과 과학, 공학 지식을 익혀 여러 과학 문물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
박 상궁 마마님과 금동이가 현대 자본주의적인 사고를 놀랍도록 빨리 익힌 것을 보면.
인간의 기본 역량은 시대를 불문하고 비슷한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어머니, 정종이 그러는데요.”
희아가 윤서의 생각을 깨웠다.
마포 나루가 가까워올수록 점점 느려지는 행렬 속도에 일찍부터 일어나 홍위와 금동이와 한바탕 말을 달리고 온 새벽이는 눈꺼풀을 내리깔고 졸고 있었다.
“으응, 정종이 뭐라고 그랬는데?”
윤서는 빙긋 웃으며 희아에게 눈을 맞췄다.
처음에 정종에게 머리를 빗기라 명할 정도로 거리낌 없이 가까이 지내던 희아는 요새 정종과 내외 아닌 내외를 했다.
‘정종’을 입에 담을 때는 얼굴을 붉힐 때도 많았다.
먼저 혼인을 하고 열다섯 살이 넘어야 동침을 하는 지금의 혼인 관례상, 저 어린 부부 둘은 이제야 사춘기 성(性에 눈을 떴다.
그래서 새삼 서로 머리를 벗겨주는 행위가 얼마나 내밀한 가까움을, 그래서 얼마나 뜨거운 욕망을 일으키는 행위인지 이제야 알게 된 참이었다.
매사 새침하고 덤덤했던 희아와, 처음부터 정중하게 다정했던 정종은 이제 보이지 않을 땐 서로를 애타게 찾으면서도 막상 가까이 있으면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시선을 빗기는 것이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또 보는 이의 마음까지 얼마나 설레게 하는지.
윤서는 그래서 요새 희아가 정종을 입에 담을 때마다 저절로 웃음이 났다.
“영양위가 뭐라고 했는데?”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