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313
313화. 소헌 대비와 윤서 (1)
“부인! 윤서야! 내 목소리가 들리느냐?”
“어머니! 한 모금만, 이 탕약 한 모금만 넘겨보셔요.”
여송으로 떠나는 수양 대군 일행의 환송식이 성대하고 화려하게 치러진 후.
협경당에 돌아온 그날 밤부터 윤서는 호되게 앓았다.
수양 대군이 일 차 총독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올 오 년 후 홍위 나이가 열여섯 살이 된다.
그 즈음이면 무슨 일이 어떻게 생기든 우리 홍위가 위험할 일은 없다!
깊은 안도감이 권가 나인의 몸을 빌어 조선에 온 후 무의식에서조차 완전히 경계를 늦춰본 적 없는 윤서의 심신을 완전히 풀어지게 하였다.
그 결과는 의식을 잃을 정도로 지독한 열 몸살이었다.
궐 안이 온통 소란스러워졌다.
금동이부터 소아까지 세 아이를 낳는 동안 사나흘이면 털고 일어나 일상의 일을 차츰 시작할 정도로 건강하던 윤서가 하룻밤 사이 의식을 잃을 정도로 고열에 시달리자 특히 세종과 이향은 깊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 가락지, 어디에 있느냐?”
대조전 옆 연생전에서 침수 드셨던 세종은 윤서가 쓰러졌단 소식을 듣자마자 협경당으로 달려와 이향에게 금가락지 행방부터 물었다.
“가락지부터 치우거라. 아니, 내게로 가져오너라. 혹여 윤서가 신열에 들떠서 몽유병 환자처럼 가락지를 끼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니!”
세종도 윤서와 비슷한 생각을 한 것이다.
수양 대군이 여송으로 떠나 오 년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니 홍위에게 위협이 사라졌고, 그래서 홍위를 지킬 임무를 가지고 이 세계로 온 윤서의 영혼이 혹여 다시 떠나온 세계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그것이 아니라면 평소 황소처럼 튼튼하던 아이가 하필 수양이 떠난 날 쓰러질 이유가 있다더냐. 그러니 오게 된 매개체인 현덕 빈의 유품인 금가락지부터 치워야 한다!
이향은 윤서가 평소 그 금가락지를 자개함에 넣어 침전 반닫이 장의 맨 밑바닥에 놓아두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아이를 셋이나 낳은 윤서가 그럴 수 있다고 하여도 제 세계로 돌아갈 선택을 하지 않으리라고 확고히 믿고 있었다.
하지만 아주 가끔 윤서가 잠결에 “엄마, 아빠, 보고 싶어. 보고 싶어요.” 흐느끼는 것을 들어온 이향은 아바마마의 염려를 아주 무시할 수 없었다.
찾아뵐 묘소조차 없는 이 세계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설움이 절절히 스며 있는 흐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이향이 자개함을 가지고 다시 협경당 윤서의 서재에 들었을 때 소식을 듣고 희아도 홍위도 달려와 있었다.
이향은 자개함을 부왕께 드리며 피병을 권하였다.
“내의들이 진단하길 전염병은 아닌 듯하다지만 혹여 모르니 아바마마께선 잠시 동별궁으로 피병하심이 좋겠습니다.”
책장과 책상에서 윤서가 써놓은 종이 뭉치를 들춰보고 계셨던 세종은 함을 받아 소매 깊숙이 넣으시고, 비로소 안도한 표정을 지으셨다.
“가락지만 끼지 않으면 영혼이 가질 않을 것이다. 아이들을 제 몸보다 더 사랑하는 윤서가 아니더냐? 아 참, 아이들도 격리해야 한다. 특히 소아는 아직 두창 침도 맞지 않았는데.”
“제가 동생들 데리고 가서 돌보겠습니다. 제가 돌봐야 어머니께서도 마음 놓고 몸조리하실 수 있을 것이에요.”
홍위 손등을 토닥이고 있던 희아가 나섰다.
“주상도 옮겨야 하지 않겠는가? 창덕궁으로 잠시 이어해서 정무를 보면 될 듯한데.”
“아닙니다, 아바마마. 여의 순덕이 전염병이 아닌 듯하다고 확언을 하였으니 소자는 부인 곁에 있겠습니다.”
이향은 하던 대로 낮에는 정무를 돌보고 밤에는 협경당에 머물겠다고 선언하였다.
홍위도 금동이와 새벽이, 소아만 누님 궁으로 보내고 자신은 협경당에 계속 머물러 있겠다고 고집하였다.
“가장 두려웠던 위협이 멀리 떨어지게 된 안도감에서 저리 앓게 되신 것이라면, 어머니께서는 그간 저의 안위를 얼마나 간절하게 걱정해오신 것입니까? 소자가 어머니 곁을 지키는 것이 마땅한 도리입니다.”
“홍위 말이 옳아요, 할바마마. 어머니는, ···혹여 떠나온 세계로 돌아가시려고 하다가도 붙잡는 홍위 목소리를 들으시면 차마 못 떠나실 것이에요.”
“···그래. 그럼 홍위 네가 낮 동안 어머니 곁을 지키거라. 밤에는 이 아비가 있을 것이니.”
이향은 빠르게 결론을 내리고 부왕부터 대비마마와 함께 창덕궁으로 옮겨가시게 조처하였다.
희아는 잠들어 있는 소아를 안고 먼저 궁으로 돌아가고, 홍위는 금동이와 새벽이가 깨어나길 기다렸다.
평소와 같은 시간에 깨 이 일을 알게 된 금동이는 안가겠다고 통곡을 하였다.
“새벽이는 어리지만, 저는 다 컸다고요. 형님이랑 같이, 어머니 곁에 있을 거야. 안 가요, 안 가!”
“아프실 땐 조용해야 하는데, 이렇게 시끄럽게 울면! 저랑 같이 누님 궁에 갔다가 자주 와서 어머님 봬요. 응? 그만 울고. 아이, 참! 형님, 뚝! 뚝!”
새벽이가 오히려 의젓하게 금동이를 달랬다.
홍위도 금동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함께 달랬다.
“형아가 자선이 자주 보내서 어머님 용태가 어떠신지 전할 테니까, 그만 울고 어서 가. 응, 금동아. 조 상궁, 무엇 하는가? 어서 대군들 모시고 누님 궁으로 가게.”
홍위는 누님 궁으로 두 동생을 보내고 어머님께서 잠들어 계신 침전으로 들어갔다.
*
*
*
윤서는 꼬박 사흘째 거의 의식을 잃고 있었다.
내쉬는 숨결까지 뜨겁게 느껴질 정도로 열이 들끓고 손끝과 발끝까지 바늘로 찌르듯 통증이 일었다. 입 안이 온통 헤져 탕약은 물론 타락죽 한 모금을 넘기기도 쉽지 않았다.
명의라 추앙받게 된 어의 전순의는 물론 노비로 여자 의원이 되어 여인 질병 치료에 발군의 실력을 보이는 순덕조차 기력이 온통 쇠하셨다뿐 달리 원인을 찾기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열이 떨어지시면 곧 회복하실 것입니다. 워낙 강건하신 옥체이시니 열만 떨어지시면 바로 털고 일어나실 것입니다.”
침전의 곁방에서 밤낮으로 머물며 치료를 전담하고 있는 순덕이 진료 때마다 주문처럼 아뢰었다.
윤서가 잠깐씩 깨어나 곁에 있는 이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이내 다시 열에 들떠 의식을 놓자 이향은 박 상궁과 매금이도 불러 협경당에 머물게 했다.
윤서가 사랑하는 이들, 윤서를 사랑하는 이들이 곁을 지키면 윤서가 힘을 내 빨리 회복하리라 생각해서였다.
박 상궁 마마님은 순덕이 열만 떨어지면 괜찮아지실 것이라고 말할 때마다 맹렬하게 화를 냈다.
“열이 안 떨어지니 문제지! 그러게 너무 무리하신다고 했어! 세상에 우리 중전께서 아무리 무쇠처럼 튼실하시다고 해도 원 일이 응? 적당히 많아야지. 세상에 상왕 전하는 밤낮으로 불러 뭘 그렇게 물으시지. 내수사에서 군비 마련하는 것도 우리 마마 손을 거쳐야지. 요새는 새 주거지 조성하는데 의견 내야 한다고 사대문 밖 여기저기 땅 보러 다니셨지. 세상에, 무수리도 우리 중전마마처럼 일은 안 하네!”
“맞아! 우리 중전마마, 일 겁나 많아! 끝이 안 나!”
혹여 마마 신이나 저승사자가 오면 이 손으로 때려 내쫓겠다고 눈을 부라리고 방 구석구석을 훑고 있던 매금이도 옆에서 소리쳤다.
윤서의 이마에 물수건을 갈아 올려주던 홍위가 조용히 타일렀다.
“박 상궁과 매금이는 잠시 순덕의 방에 건너가 마음을 가라앉히게. 어머니께선 평소 조용한 것을 즐기시는데, 그대들 목소리가 너무 커.”
나직한 목소리에는 감히 거역할 엄두를 내지 못할 위엄이 실려 있다.
“예, 저하. 곧 다시 오겠습니다. 매금아!”
박 상궁은 속이 미어지듯 아팠지만, 안 나가려고 버팅기는 매금이 손을 끌고 옆의 곁방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이틀이 흘렀다.
중전께서 열병이 나 도통 정신을 차리지 못하신다는 소식은 슬금슬금 담장을 넘어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우리 향이가 처복 없다는 말을 또 듣게 할 순 없다!”
수양 대군이 떠나게 된 상심에 임영 대군의 궁에서 계속 기력 없이 앓고 계셨던지라 닷새가 지나서야 윤서 소식을 듣게 되신 소헌 대비는 제안 부부인 최씨의 부축을 받아 협경당으로 오셨다.
소헌 대비는 홍위까지 물리고 홀로 앉으셔서 윤서의 얼굴과 목을 물수건으로 닦으면서 속삭이셨다.
“윤서야, 애들 생각해야지. 애들 다섯 사람 구실 할 때까지 살아야 하는 것이 어미의 의무이고 도리니라. 그러니 툭툭 털고 일어나야지. 온천에 함께 가기로 했으면서 이리 누워 있으면 어쩌누. 시어미랑 온천 가기 싫어서 꾀병이면, 안 가도 된다.”
“······.”
“···윤서야. 내가 올해를 못 넘길 것 같아. 느낌이 그래. 그러니 정신 차려야지. 유 저리 떠나게 되어서 내 내심 너를 좀 원망했다만, 그렇다고 네가 이리 아프길 바랐겠느냐?”
“······.”
“너, 안 일어나면 일어날 때까지 내가 부처님께 절을 올릴 것이야. 늙은 시어미 절 올리다가 죽게 하고 싶으면 계속 이렇게 누워 있거라.”
이 말씀을 끝으로 소헌 대비는 정말로 감천사로 불공을 드리러 올라가셨다.
혜빈 양씨가 대비마마를 따라갔다.
“그간 중전께서 무리를 하셨지요.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저리 앓지 않으면 아마 상왕 전하와 함께 밤낮없이 지금도 무엇을 하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대비마마, 절은 소첩이 올릴 터이니 방에 들어가셔서 쉬시어요.”
양씨는 대비마마를 이어 부처께 절을 올리며 중전의 쾌유를 간절히 기원했다.
궐에 또 비극이 없길 바라는 마음과 더불어 자신이 만든 중전이 계속 건강하게 살아야 한남군과 자식들도 모두 평안하기 때문이다.
평소 중전을 못마땅해했던 여러 세력에서는 예리하게 촉각을 곤두세웠다.
중전이 장악하고 있는 많은 부분에 많은 권력과 이권이 걸려 있기에, 정말로 중전이 승하하기라도 한다면 엄청난 후폭풍이 올 것이다.
왕실에는 크나큰 비극이겠지만 자신들에게는 큰 기회가 될 수 있을 폭풍이 몰아칠 것이기에, 특히 자산을 많이 가지고 있다가 노비 속량과 택지 조성으로 타격을 받은 한확이나 박종우, 윤사로 등의 측에서는 온갖 연줄을 동원하여 중전의 병세를 시시각각 보고 받았다.
궐의 내명부는 입장에 따라 마음이 다채로웠다.
여송에 학당이 정식으로 설립되면 왕실 여 학당의 책임자로 오 년간 파견될 것 같단 말을 들었던 정 소용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렇게 괄시를 받고 살 바에야 여송으로 가서 학당의 책임자가 되는 것도 반드시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지만 진심을 그러하지 않았다.
중전만 없으면 괄시받을 일도 없고, 그러면 구태여 아직 기반이 잡히지 않은 곳에 가 고생할 일도 없으리란 생각에, 그리고 어쩌면 가문이 어엿한 자신에게 큰 기회가 오리란 기대에 가슴이 은밀하게 들떴다.
문 숙의는 출궁하여 종이모님이자 금아 옹주의 친모인 망아 스님을 찾았다.
중전이 중하게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망아 스님은 눈을 감고 염주 알을 굴리다가 불쑥 조카에게 물었다.
“중전이 되고 싶은 게야?”
“···잘 모르겠어요. 중전이 되는 것이 좋은가요?”
“마음에 마구니가 꼈군.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생각을 좀 해 보게.”
“어떤 자리인데요?”
“사사건건 비교당하다가 비쩍 곯아 죽을 자리. 자네, 중전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할 자신이 있어?”
“!”
문 숙의는 그간 중전이 해온 일들을 손가락으로 꼽아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전 상왕 전하께서 천추전으로 부르시면 기절부터 할 것 같은데요.”
그러자 지난날의 홍 승휘가 엄숙하게 깨달음을 설파하였다.
“노느니 염불한다고 내가 시간이 하도 많아서 여러 공부를 하지 않는가? 그랬더니 어느 날 머리가 환하게 밝아지더군. ‘해탈의 비법은 긍정에 있도다’ 하는 깨달음 말일세. 우리 금아가 못난 어미 탓에 늦되어서 늘 가슴이 찢어졌는데, 깨달은 후 다시 보니 올 때마다 재잘재잘 하는 말마다 표현이 어찌나 예쁘고 신기한지. 궁에 있을 땐 전하가 다른 후궁 찾을 때마다 몸과 마음이 지옥 불에 튀겨지는 것처럼 아팠는데 여기선 생전 그럴 일이 없지.”
“오, 이모님. 그건 진짜 그러시겠어요.”
불같이 질투하여 온갖 못된 짓은 다 하던 과거의 이모님을 떠올린 문 숙의가 킥킥 웃으며 눈을 흘겼다.
“그래, 그러니 자네도 쓸데없이 중전 같은 거 꿈꾸지 말고, 마음 편히 그 좋아하는 음식 만들고 돈 구애받지 않고 화려하게 궁 단장할 수 있는 현실을 긍정하시게. 긍정(肯定). 정해진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긍정 말일세. 그리고 나랑 같이 절하고 내려가. 중전이 어서 일어나야지, 그 밝은 눈으로 우리 금아 좋은 배필 찾아줄 거 아닌가 말일세.”
“하, 정해진 것은 모두 긍정하신다더니, 우리 금아가 누굴 만나든 다 긍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종알거리면서도 문 숙의는 망아 스님과 함께 그날 삼천 배를 올리고 기다시피 간신히 궐에 돌아왔다.
유 소용은 처음 소식을 들은 날부터 하루 세 번 목욕재계하고 기도 중이었다.
“금아야. 너 살게 된 것도, 어미가 이렇게 대단한 작가가 된 것도 모두 다 중전의 은혜이시다. 우리의 과거와, 장차 올 미래까지도 중전마마의 덕분인 것이야. 그러니 기도하자. 부처님께, 천지신명께, 세상의 모든 신께, 기도하자.”
“기도는 우리 망아 스님이 잘해요. 중전마마께서 잘하는 것만 잘해도 충분히 훌륭한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금아는 유 소용과 함께 목욕하고 전각 구석방에 모신 불단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렸다.
그렇게 다시 이틀이 흐른 후.
잠깐 들어온 금동이가 방바닥을 치며 통곡하고, 늘 침착하던 새벽이까지 “으헝, 어머니! 소자 마음이 너무 아파서, 숨이 안 쉬어져요. 어머니이!” 한참 울다가 돌아간 오후.
홍위가 뼈마디가 툭툭 불거지게 야윈 윤서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어마마마! 하늘에 계신 어마마마! 절 살리기 위해 권가를 이곳으로 보내신 어마마마!”
홍위의 음성이 비통한 울음에 젖었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