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314
314화. 소헌 대비와 윤서 (2)
“권가를, 저의 새어머니를 이곳으로 인도하소서! 아바마마께서 밤마다 등롱 불빛 환히 밝히고 기다리시는 이곳으로, 이제 겨우 한 돌 넘긴 소아에게로, 어마마마! 시간의 차원에서 헤매고 계실 어머니를 인도하소서!”
홍위가 울부짖는 것처럼 이향은 밤마다 협경당의 처마 끝에 촘촘하게 등롱을 달게 하고 윤서 곁을 지켰다.
좀처럼 차도를 보이지 않는 어머니를 지켜보다 지친 홍위는 사흘째 되던 날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정무를 처리하고 돌아온 아바마마께 고함을 질렀다.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죄수를 방면하든, 명산에 제관을 보내 제를 올리든, 국사당에서 굿을 하든, 뭐든! 어째서 아바마마는 그렇게 침착하신 것입니까? 겨우 밝히는 저 등롱 따위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냉정하게 보일 정도로 침착하게 국사를 이끌고 계신 부왕이 원망스러워 소리쳤을 때, 아바마마께서 홍위를 당겨 품에 안으시고 등을 쓰다듬으며 속삭이셨다.
“네 어머니가 늘 말씀하셨다. 이 우주는 아주 광대하고 넓은 다중의 세계로 중첩되어 있어서 어머니가 떠나온 세상, 어머니가 오면서 새로이 시작된 우리의 세상, 어머니가 오기 이전대로 진행되는 조선, 어머니가 와서 변한 미래가 나란히 각자의 궤적으로 흐를 것이라고. 네 어머니의 영혼은 지금 그 많은 갈래의 세상 속에서 바로 이곳으로 돌아올 길을 찾느라 시간이 걸리는 것일 뿐이다.”
더 정확히 윤서는 이리 말했었다.
이만주 일족을 토벌하여 새로 영토를 넓히고 두 달 만에 귀환하였던 날, 성대하고 복잡한 환영 행사를 모두 끝낸 후 겨우 가지게 된 두 사람만의 시간에서였다.
당신 없이 지내는 시간은 너무 느리게만 흘러 시간 속도의 상대성을 절절히 느꼈다는 말의 끝에서 윤서가 아주 낯설고도 매혹적인 과학 이론을 들려 주었다.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이란 최신 과학 이론이 있는데 아무리 이해해 보려고 새해 초마다 책을 사고 공부했지만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어요. 그래도 대충 이해한 것 하나가 다중 우주 이론이에요.”
관찰자의 속도에 따라 시간이 느려지기도 한다는 마술 같은 이야기와, 그래서 다른 차원의 세계로 간 인간이 일으키는 시간의 분기점마다 새로이 생겨나는 무수한 차원의 세계를 이야기하다 윤서는 이향의 목을 끌어안으며 갑자기 울먹였다.
“우리가 이렇게 행복한데 다른 차원에서 여전히 당신은 지금쯤 등창으로 고생하고, 우리 홍위는 위태롭게 세자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파요.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갈래의 세계를 돌아다니며 당신을 만나고 홍위를 키우고, 그리고 우리 희아와 금동이 새벽이, 소아를 만나고 싶어요.”
만다라의 형상처럼 만남마다 분기되는 모든 차원의 세계를 다녀서라도 자신을 만나고 홍위를 키우고 싶다던 윤서가 그리 쉽게 인연의 끈을 놓지 못 하리라, 지금은 그저 오랫동안 독처럼 쌓인 긴장과 피로를 열과 잠으로 풀어내느라 저리 쓰러져 있는 것이라고 이향은 굳게 믿었다.
그래서 자신이 할 일은 쌀을 끓인 물에 소금과 꿀을 녹여 조금씩 윤서에게 먹이게 하면서 (윤서가 현대 병원에서 수액으로 영양을 공급하는 방법을 말한 것에서 착안한 방법이었다) 일상을 단단히 이끌고,
십오 세기 밤의 어둠은 압도적으로 어두워 때로 실체를 가지고 내리누르는 듯한 위압감을 느낀다는 윤서를 위해 환히 등롱의 불빛을 밝히는 것이었다.
처마 끝마다 매달린 무수히 많은 등롱의 불빛이 대낮의 햇살처럼 흘러들어오는 방 안에서 이향은 윤서의 열 오른 몸을 물수건으로 닦아주며 속삭였다.
“피로가 풀린 것 같으면 돌아오오. 유가 떠났다고는 하나 홍위에겐,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겐 어머니가 필요해. 돌아오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좋아. 그저 어머니로, 부인으로 내 곁에 있으면 되니.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고. 홍위가, 아이들이 불안해하고 있으니. 윤서야. 저 밝은 불빛을 따라 내게 오너라.”
홍위는 아바마마와 어머니 사이에 오간 다차원의 우주라든가 하는 낯선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늘 밤늦게까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시는 두 분이시니, 아바마마께서 그리 믿으시며 매일의 일상과 조정의 업무를 굳게 꾸려가실 근거가 충분히 있다고 믿었다.
새벽이가 와서 통곡하기 전까지는.
금동이는 기쁨도 슬픔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동생이라 그러려니 하지만 날 때부터 어른처럼 과묵하고 어쩌다 하는 말이 자못 의미심장한 새벽이마저 마침내 울음을 터트리자.
불안 속에서도 의연하게 버티던 홍위의 가슴도 함께 무너졌다.
“어머니! 돌아오소서! 이제 그만 헤매시고 우리가 기다리는 이곳으로, 어머니!”
그 때 윤서의 영혼은 여러 곳을 흘러 다니고 있었다.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니어서 이 차원에도 저 차원에도 단단히 속하지 못해 안개처럼 부유하는 의식 속에서,
어느 순간은 이십일 세기에 살았던 모든 삶이, 엄마 아빠와 함께 하던 낯익은 과거가 행복하게 펼쳐졌고,
다른 순간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한국의 풍광이 자신의 존재로 인해 바뀐 역사가 제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하였고,
또 어떤 순간에는 열대엿 살의 홍위가 처음 보았을 때처럼 새초롬히 처연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희아의 손을 잡은 채 겁에 질려 있는 것을 보며 가슴을 쥐어뜯었고,
그리고 또 어느 순간에는 낯선 땅에서 수양 대군이 한명회가 건달처럼 보이는 무리와 호탕하게 웃으면서 무엇을 획책하는 것을 보며 ‘저것들이 여전히 저 지랄이네’ 분개하다가,
장성한 금동이가 복면의 무리에게 팔을 잡힌 채 “어머니, 형님! 저는 괜찮으니 성문을 열지 마세요! 절대, 열지 마세요!” 외치다가 뒷머리를 맞아 쓰러지는 것을 보며 함께 쓰러졌다.
과거와 현재와 모든 다층의 세계가 논리도 두서도 없이 불쑥불쑥 나타났다 사라지는 혼돈의 어둠에 지친 윤서는 엄마 배 속의 아기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이제 그만 이향이 기다리고 있을 곳으로, 이제 뒤뚱거리며 곧잘 걷는 소아가 기다릴 곳으로, 홍위와 희아와 금동이와 새벽이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온몸을 짓누르는 이 뜨겁고 무거운 어둠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발버둥을 칠 때였다.
“어머니! 돌아오소서! 이제 그만 헤매시고 우리가 기다리는 이곳으로, 어머니!”
울음 섞인 목소리가 어둠을 뒤흔들었다.
“어머니! 돌아오소서! 이제 그만 헤매시고 우리가 기다리는 이곳으로, 어머니!”
“소아를 저처럼 가여운 아기로 크게 하지 마시고, 어머니!”
비통한 울부짖음이 어둠을 찢고 들어와 윤서의 몸을 움켜쥐고 무서운 힘으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돌아오소서! 어머니! 어머니가 돌아오실 수 있다면, 소자 어머니께서 주신 미래의 수명을,”
안 돼!
이치에 어긋나는 말을 입에 담아서는!
윤서는 뒤에 이어질 두려운 말을 막고자 아이를 낳을 때처럼 온 힘을 다해 굳어진 입을 벌려 소리쳤다.
“생명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이지,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법은 없다!”
“어, 어머니!”
“농으로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마, 홍위야.”
“어머니! 어의! 어의! 중전마마 깨어나셨다!”
흐린 시야 속에 눈물을 흘리는 홍위와, 옆에 난 방문을 열고 엎어질 듯 달려오는 순덕과, 박 상궁 마마님을 확인하고 윤서는 다시 눈을 감았다.
눈꺼풀 아래 다시 어둠이 펼쳐졌다.
그러나 이번의 어둠은 그리 진하지도, 그리 무겁지도 않은 익숙한 종류였다.
*
*
*
쓰러진 지 칠 일 만에 정신이 들었지만 회복은 더디게 진행되었다.
기력을 완전히 되찾을 때까지 바깥일은 절대 신경 쓰지 말라고 엄명을 내린 이향 덕분에 윤서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바로 데려온 소아를 곁에 두고 느긋한 잠과 휴식을 즐겼다.
협경당에 들 때마다 서럽게 통곡했던 금동이는 깨어난 윤서를 보자 언제 울었냐는 듯 다시 신이 나서 학당을 마친 후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다가 호종하는 내관의 재촉을 받고서야 마지못해 누이의 궁으로 향하고,
아직 학당에 다니지 않는 새벽이는 윤서 곁에서 소아와 놀아주고, 밤에도 누이 궁으로 가기를 거부했다.
“분리불안이 생겼어요, 어먼니. 애착이 다시 안정될 때까지 어먼니 곁에 있어야 해요.”
을 읽으며 소아 심리에 대해 깨우친 새벽이가 스스로 내린 진단이었다.
희아는 소아도 봐줄 겸 또 중전으로서 윤서가 부득이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을 도울 겸 낮에는 주로 협경당에 있다가 윤서가 저녁을 먹는 것까지 보고 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홍위는 더욱 어른스러워졌다.
자신의 안위 때문에 윤서가 그토록 긴장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홍위는 매사 세자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애쓰기 시작했다.
“경연에서 주로 경청만 하였는데, 요새 새로운 법률 제정을 위해 각 부서에서 자료를 가져오는데 말이오.”
이향이 해준 이야기였다.
토지와 양인 남성을 기준으로 거두던 세금 체계를 날로 발전하는 상업과 공업과 해외 무역을 포함하여 수취 제도를 다시 세우고, 위반하는 자에 대한 처벌을 규정하는 법령에 대해 논의할 때였다고 한다.
호조 판서를 맡게 된 박종우가,
“토지는 날씨의 풍흉에 따라 소출량이 달라지는 한이 있어도 토지 차제는 사라지지 않는 반면 상업은 경기에 따라 부침이 심하고 때로 그 업태가 사라지기까지 합니다. 일찍이 공자께선 ‘법령으로 통제하고 형벌로 다스리기만 힘쓰면 백성은 법망을 뚫고 요행히 형을 면하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니 먼저 도덕으로 상법의 도리를 교화하는 것에 힘쓸 일이지, 세세히 법률을 정해 처벌하기부터 힘쓰는 것은 인정에 미안한 일이 아닐까 소신은 생각합니다.”
발언하며 상공업에 대해 촘촘하게 세금 조항을 법률로 정하는 것에 반대를 표하였다.
그러자 홍위가 이어 발언하였다.
“경의 말씀은 얼핏 들으면 고상하고 아름다우나 실질적인 세금 수취의 현장에서 힘을 발휘하기가 어렵습니다. 교화가 어느 정도 되었는지 무엇으로 가늠할 수 있겠습니까? 대저 수취할 항목을 상세히 정하고 그에 따라 엄히 법률을 세워 풍족하게 거둔 재정으로, 마음은 있으나 도덕을 실현할 여력이 없는 백성을 구제하는 것이 옳은 순서이겠습니다.”
이향은 이 일을 전하며 말하였다.
“부인이 무리할 일이 없도록 조선을 이끌 준비가 충분히 되었다는 것을 하루라도 빨리 보여주고 싶은 것 같아. 그를 위해 애쓰는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또 애잔하기도 하오.”
그래서 윤서는 저녁 문안을 온 홍위 손을 붙잡고 부탁하였다.
“네가 불러준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어. 짙은 어둠 속에서 너는 이미 나를 지킬 정도로 든든한 의지처가 되어 있었는 걸. 너무 애쓰면 쉽게 지친다, 홍위야. 천천히, 꾸준하게 두 분 전하께서 만드신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너만의 길을 내며 걸어갈 수 있을 거야.”
그렇게 평안히 회복하는 과정에서도 윤서는 앓던 중에 보았던 몇 개의 장면을 곱씹고 있었다.
수양 대군이 여전히 야심을 버리지 않고 저 먼 곳에서 한명회와 함께 모략을 꾸미던 장면과, 죽음을 각오한 표정으로 성문을 닫으라 외치던 장성한 금동이의 모습은 열이 만들어 낸 환상일까, 아니면 실제 있었고, 앞으로 있을 시공간의 편린일까.
무엇이 되었든 우리는 서로를 아끼고 서로를 연민하는 뜨거운 애정의 현재 속에서 더 강인하게 미래를 준비할 것이다.
그렇게 다짐하며 몸을 회복한 시월의 하순.
스스로 예감하셨던 것처럼 소헌 대비께서 기력을 잃으셨다.
특정한 질환 없이 늦가을 나무가 잎을 떨구듯 나날이 식욕을 잃고 주무시는 시간이 점점 늘어가던 날.
“···윤서야, 약조, 약조, 해다오.”
소헌 대비께서 윤서의 손을 잡고 가는 숨결 속에 자꾸만 끊기는 목소리로 간곡히 말씀하셨다.
“지키지 않을 약조로, 거짓 위안을 드릴 순 없습니다, 대비마마.”
늘 공손하게 대비마마의 뜻을 받들어왔던 윤서가 부드러우나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