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315
315화. 소헌 대비와 윤서 (3)
“지키지 않을 약조로, 거짓 위안을 드릴 순 없습니다, 대비마마.”
늘 공손하게 대비마마의 뜻을 받들어왔던 윤서가 부드러우나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왕업은 국가와 백성의 안위와 맞물려 있어 개인의 운명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엄중한 것입니다. 무슨 약조를 어떻게 드린다고 해도 왕업과 관련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지켜야 할 이는 우리 세자, 홍위뿐입니다.”
“···윤서, 야!”
“···대비마마!”
수양 대군을 지켜달라고 남기려던 유조를 먼저 거절하자 움푹 팬 소헌 대비의 눈꺼풀에선 벌써 눈물이 흥건히 흐르기 시작했다.
윤서는 부드러운 수건으로 눈가 주름을 따라 흐르는 눈물을 닦아드리며 고하였다.
“어의 순덕이 말하길 대비마마께서 날로 기력이 쇠하시는 것은 오랫동안 소선(素膳)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소선(素膳)은 고기나 생선이 들어 있지 않은 음식을 먹는 것이다.
소헌 대비께서는 수양 대군의 출항 이전부터 감천사에서 기도하시며 소선을 해오고 계셨다.
“···냄새가, 역해······.”
“대비마마, 왜 음식 냄새가 역하게 느껴지시는지, 짐작이 가십니까?”
“······!?”
불교가 성했던 고려의 풍속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어서 불공을 드리는 동안 육식을 삼가는 경향이 강했다.
그렇다고 해도 콩물이나 두부, 타락(우유)까지 몸이 거부하시는 것에는 심리적인 이유가 크다는 것이 윤서가 도달한 결론이었다.
“과거의 고통이나 두려움을 잊기 위해 우리 몸과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대비마마께서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계시지요.”
친정에 몰아닥쳤던 비극이 의식 표면에 떠오르려 할 때마다 과호흡으로 기절 지경에 이르거나, 몸과 정신이 얼어붙는 공포 증상을 가지고 계셨던 대비마마께선 눈동자를 움직여 그 일은 이미 지나간 일임을 인지하시게 되었다. 그리고 불안과 공포가 다시 엄습해올 때마다 숨을 천천히 깊게 들이마시고 잠시 멈췄다 내쉬는 심호흡으로 헝클어진 교감, 부교감 신경계의 흐름을 원활하게 되돌리는 훈련을 해오셨다.
이의 원리를 다시 말씀드리며 윤서는 우리의 무의식이 어떻게 의식과 육체에 영향을 미치는지 상세히 설명드리기 시작했다.
과거의 두려운 기억과 상처를 떠올리지 않기 위해 인간은 여러 가지 방어기제를 사용한다.
때로 신체 증상과 질병도 회피적 방어기제 중 하나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까지 말씀드렸을 때.
“···내가, 아버님과 숙부님을 지키지 못한 것이 너무도 고통스러웠기에, 소중한 이를, ···지키지 못하는 고통을, 또 겪을까 두려워서······.”
윤서에게서 여러 번 심리 상담을 받으시며 마음이 어떻게 육체에 작용하는지와, 왕비의 가면 속에 오랫동안 눌러둔 상처가 무엇이었는지 이미 알고 계신 소헌 대비께서 천천히 자신의 마음 상태를 들여다보기 시작하셨다.
“···그래서 차마 그 참상을 또 보기 전에, 내가 차라리, ···차라리, 굶어 죽고자 한다는, 것이로구나. ···그래서 육고기며, 물고기며 다 ···역겹기만 한 것이야.”
대단한 통찰이셨다.
이향과 대군들의 빼어난 두뇌가 세종께만 물려받은 것이 아님을 윤서는 실감했다.
그리고 이렇듯 강단 있는 통찰력을 지니신 분이 끝까지 두려움 속에서, 왕업에 희생당한 가문이라는 피해 서사만을 지닌 채 돌아가시게 하고 싶지 않았다.
현재의 삶을 위해 과거의 상처와 고통은 능동적으로 다시 규정될 필요가 있다.
이는 윤서 자신을 위해서도, 그리고 앞으로 왕실 바깥에서 왕실 안으로 들어올 여인들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대비마마, 국구께선 이미 신원되셨고, 이제 심씨 가문은 조선 정치의 한복판에 다시 발을 딛기 시작하였습니다. 국구의 죽음이 무척 고통스러우셨겠지만, 건국 초기 왕권의 강화에 어쩔 수 없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음을 대비마마께서도 아셨기에 의연하게 왕실을 이끌어오셨습니다. 그 고통의 기반 위에서, 보세요, 대비마마. 상왕 전하께서 얼마나 대단한 성군의 치를 이뤄내셨고, 대비마마를 통해 국구 어르신의 빼어남을 물려받은 금상 전하와 대군 자가들께서 얼마나 대단한 자질로 조선을 이끌고 있는지, 보세요, 대비마마.”
“···아버님의 빼어남을, ···우리 향이가······?”
그런 생각은 해 본 적도 없다는 듯 멍하니 되뇌이시는 대비마마의 손을 윤서는 힘주어 잡았다.
“예, 대비마마. 무엇보다 대비마마께선 그 참담한 일을 겪고도 사사로운 원한으로 되갚는 대신 만고의 칭송을 받을 국모의 자질을 펼치셨습니다.”
“···내, 내가?”
“예! 상왕 전하의 소생 대부분이 다 무사히 장성하지 않으셨습니까? 대비마마께서 후궁과 서자들까지 너그러이 살피셔서 가능하신,”
“···그건, 아니다. 윤서야. 그때의 나는, ···투기할 기력이, 없었다. 매사가, ···벅찼으니까.”
비극을 딛고 왕비 노릇을 제대로 하기만도 벅차 후궁이며 서자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는 뜻이셨다.
그러나 윤서는 반드시 그러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안다.
인간은 얼마나 집요하게, 음습하게 복수심을 품을 수 있는 존재인가.
고려 때부터 대단한 명문가였고, 조선 초 핵심 군권을 장악하고 있던 자신의 가문을 무참히 멸문 지경에 이르게 한 태종과 세종의 처사에 복수심을 가졌더라면 소헌 대비는 후궁, 특히 세종의 지극한 사랑을 받은 신빈이나 그의 소생을 은밀하게 해칠 수도 있었다.
왕비가 그 정도의 힘쯤은 가지고 있음을, 왕비인 윤서는 안다.
“······.”
“······.”
과거의 고통이 재현될까 두려워 무의식적으로 생의 의지를 놓고자 하였던 자의 병실에 깨달음의 침묵이 내렸다.
윤서는 말없이 대비마마의 몸을 부드럽게 일으켜 솜 방석에 기대앉으시게 한 후, 꿀과 소금이 든 미음 물을 떠 입에 대어드렸다.
“우리 뇌가 생각을 잘하려면, 이런 영양분이 필요합니다. ···대비마마.”
대비께서 푸석한 눈꺼풀을 들어 올려, 윤서의 눈을 바라보셨다.
윤서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이며, 숟가락을 더욱 가까이 입술에 대었다.
시선을 마주하신 채 대비께서 천천히 입을 벌리셨다.
멀건 미음 죽을 다섯 번 목에 넘기신 후.
“···지키고 싶으면, 살아서, ···직접, 내가, 내 손으로, 지키란 말이구나.”
소헌 대비께서 마침내 윤서가 약조를 거절한 의미를 스스로 말씀하셨다.
“예. 그릇된 야망에서 수양 대군 자가를 지킬 수 있는 분은 대비마마뿐이십니다.”
“···그릇된, 야망이라······.”
“그때의 고통이 떠오른다고 해서 수양 대군이 국구 어르신은 아닙니다, 대비마마. 그리고 대비마마께는 수양 대군 외에도 우리 전하도, 또 안평 대군과, 금성 대군도, 무엇보다 우리 홍위가 있습니다.”
“···우리 홍위가, 있지······.”
“예, 대비마마, 백성들이 모두 대비마마를 지극히 존경하고 앙모합니다. 지금 빠르게 변화하는 조선에서 상왕 전하와 대비마마께서 민심과 여론을 모으는 중심이 되어 주셔야 합니다. 상왕 전하를 빛나게 하신 것처럼 우리 전하도, 우리 홍위도, 찬란하게 빛나게 해주세요, 대비마마.”
“······.”
소리 내어 답하지는 않으셨지만, 적어도 수양 대군 같은 자 때문에 (그렇지만 윤서는 이 모정을 절절하게 이해한다. 고열 속에서 금동이와 관련된 환상을 본 직후, 윤서는 매금이부터 불러 부탁했다. 금동이의 호신술을 매금이 자신의 수준으로 키워 내라고. 물론 다른 필요한 것들도 계획하고 있다.) 시들어 가지는 않으실 마음을 먹으신 듯하였다.
하지만 훌륭한 왕비로 살기 위해 일생을 초인적으로 노력해오신 분께 완벽한 대비마마로만 더 사셔 달라고 부탁드리는 것은 또한 가혹한 일이다.
“대비마마, 세우 작가 작품 무대에 올린 연극 좋아하시지요?”
“···으응?”
갑자기 무슨 연극이냐는 듯 되물으시지만 푹 꺼졌던 눈빛이 반짝거리며 벌써 활기가 도신다.
“기력 차리시면 세우 작가의 작품을 멋지게 연극 무대에 올리도록 명하겠습니다. 안평 대군이 길러낸 가희 노비들이 양인으로 속량 되면서 극장 배우로 본격 나섰다고 합니다.”
“연극을!? 세우 작가, 작품으로!?”
“예! 원래 문화 예술은 다 왕실에서 후원하고 키우는 것입니다. 대비마마께서 그 역할을 맡으셔야지요. 저는 아이들 키우고 또 내수사 일 하느라 짬이 없습니다.”
“그, 그렇지. 우리 중전이, 많이 바쁘지.”
“예! 저 어제도 왕십리 너머 뚝섬에 이르는 내수사 땅에 택지 조성을 앞두고 하수구 공사부터 해야 해서, 현장 확인하러 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달려 다녀왔습니다. 마차로는 시간이 너무 걸려서요.”
“···그래서 한겨울인데도, 땀 냄새랑 말 털 냄새가 진동을 했구나.”
“아, 아니! 그건 대비마마 환후가 너무 근심이어서 씻지도 못하고 달려와서······.”
“농이다, 농.”
이날 소헌 대비는 타락죽 한 그릇을 모두 비우셨다.
대비마마를 위해 유 소용은 자신의 소설을 극본으로 개작하는 한편, 더 애절하고 간절한 사랑 이야기로 낙랑 공주와 호동 왕자를 차용한 를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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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태조께서 승하하신 후 점차 줄고 있던 북방 여진족의 입조가 이향 즉위 후 점차 늘다가, 이번 해엔 폭발적으로 늘었다.
교류가 거의 없던 요동 북쪽 해서 여진 중 일부 무리까지 입조하게 된 것은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조선에서 새해 다시 대대적으로 두창 예방 침을 접종한다는 소문.
오 년 전 조선이 처음으로 말의 두창에서 농포를 채취해 인간에게 접종하는 종두법을 실시하였을 때,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의 건주 여인과 야인 여진의 몇몇 여진 부락이 함께 예방 침을 맡은 바 있다.
이들 부락에서 천연두 발병이 획기적으로 줄어든 사실을 전해 들은 다른 여진 부족은 이번 기회에 자신들도 두창 침 비법을 배워 접종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다른 하나는 조선이 이만주와 동창 일당을 제거하면서 실제로 점거하게 된 파저강 이남의 환인 지역과, 홍무(洪武) 21년에 명의 태조로부터 조선의 영토로 인정받았으나 작은 진만 설치했을 뿐 실제로 지배하고 있지 못하던 공험진 이남 두만강에 이르는 지역을 적극 경영하기로 나섰기 때문이다.
특히 두만강 북쪽 수빈강에서 소하강 지류로 흘러 공험진, 선춘령을 지나 거양성에 이르는 지역의 개발이 본격 시작되었다.
이들 지역의 황무지는 특히나 노비 속량의 대가로 조선인에게 불하하기로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비를 많이 가지고 있던 조선의 세도가는 벌써 이곳에 집안의 차인과 재산 관리인을 파견하여 농업지로 개간할 땅을 조사하면서, 수렵과 어업으로 반정착 생활을 하고 있던 현지 여진족과 접촉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함길도를 기반으로 압록강 이북과 두만강 이북까지 영향력을 가졌던 태조를 따르던 여진의 부족장들은 태종과 세종기 거듭되는 정벌 전쟁으로 조선에게 많은 반감을 가졌다.
그러나 조선의 새 국왕께서 공표하신 바를 접하게 된 이들은 종전과 다른 눈으로 조선을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 조선이 새 영토를 경영하는 원칙은 조선의 백성으로 현지에 진출한 이들이나 현지에 대대로 터를 잡고 사는 이들 모두 동등하게 우리의 조선 신민으로 대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개척지에 우리 조선의 문물과 지식을 전파할 학당을 세워 배움을 나눌 것이며, 농업, 광업, 공업을 발달시키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환인 이남과 공험진까지 이르는 유역의 여진족에게도 한문과 조선 문자로 전달된 이 교서는 이들에게 조선의 학당에 자신들의 자손도 입학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는 사실, 그리고 조선이 개발한 시비법, 파종법 등 신전 농업 기술과 광물 개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도 함께 열렸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하였다.
마음을 열고 더욱 신뢰를 가지게 된 것은 조선의 어린 세자가 왕실 학당에서 함께 공부한 여진족 친우들에게 보여준 태도였다.
“조선의 세자 저하는 그 옛날 태상왕 태조께옵서 보여주셨던 우의와 정성을 우리 여진에게 가지고 계시다!”
고조부 태조 대왕의 기상과 기백을 빼닮은 세자가 이들에게 조선에 세력을 기탁하게 되는 강력한 유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로 세종과 이향이 중요시하는 입조 손님은 일본국 구주 지역의 대내전이 보낸 사절단이었다.
백제 임성 태자의 후손이라 스스로 칭하며 조선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친조선 정책을 펼쳤던 대내전의 다다량교홍은 현재 한남군과 함께 조선의 무역소를 설치해 대일 무역의 교두보를 제공하고 있다.
다다량교홍의 동생과 함께 귀국한 한남군이 세종과 이향에게 은밀하게 고하였다.
“영주께 청해 얻은 영내 역사 기록을 검토한 결과 약 백오십 년 전에 대내전의 선대 영주가 이와미에서 은을 발견했었다는 기록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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