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317
317화. 금성 대군과 한남군과 은광 (2)
“일곱 살짜리 꼬맹이가 어딜 간다고!”
“꼬, 꼬맹이라니요, 형님! 제가 요새 매금이한테 무예를 배우며 얼마나 키가 컸는데!”
홍위가 어려서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하자 금동이가 눈을 크게 뜨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금동이는 윤서의 체형을 닮아 또래에 비해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었다.
그러나 그간은 수복이가 남몰래 “뚱땡이 왕자”라고 놀릴 정도로 눈이 살에 파묻혀 있었다. 누구에게나 덥석덥석 안기는 극강의 친화력으로 궐 내 어른들은 물론 상궁과 나인들까지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온갖 주전부리를 얻어먹고 다녀서였다.
그러다가 윤서의 명으로 매금이에게 매일 이른 아침 호된 무예 수련을 받기 시작한 후 볼살이 쏙 빠지면서 이향에게 물려받은 수려한 이목구비와, 진지한 표정을 지을 때 서늘한 미를 풍기는 윤서의 분위기까지 그대로 빼다 박은 모습을 드러냈다.
게다가 키도 쑥쑥 크기 시작해 벌써 두세 살 위 형들과 비슷한 키로 자라는 중이다.
“그리고 저 다섯 살 때 박 상궁 마마님이랑 서산 지곡에 있는 은 광산에 갔었잖아요. 거기서 은이 많이 든 연광석은 강도가 단단하다는 것도 알아냈고요.”
박 상궁 마마님과 금동이가 함께 소유하고 있는 (더 정확히 말하면 새로 사들인 토지에서 발견된 은광의 지분을 박 상궁 마마님이 금동이에게 절반 넘긴 것이지만) 은광에 가 직접 혀로 맛을 보고 망치로 뚜드려도 보면서 금동이는 납이 들어 있는 연광석이 단단할수록 은도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우쭐거렸다.
“그러니까, 어헝, 아바마마마! 어마마마! 공주 누님! 세자 형님! 으허어엉!”
금동이가 옆에 앉아 있는 홍위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우는 척을 하며 제발 금성 숙부를 따라가게 해달라고 애원하였다.
오랜만에 협경당에 모두 모여 저녁을 먹는 자리였다.
북방 여진족 사절과 일본의 여러 영주가 보낸 사절에게 순차적으로 매일 연회를 베푸느라 보름 넘게 협경당에서 저녁을 들지 못했던 이향이 경혜 공주 희아와 정종부터 이제 세 살이 된 소아까지 모두 불러 모은 자리였다.
무릎에 앉힌 소아의 입에 숭어 살을 발라 넣어주던 이향이 고개를 흔들었다.
“열 살은 넘어야지, 금동아.”
“아바마마! 삼국사기를 보니 신라의 진흥왕은 일곱 살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제 나이에 벌써 고구려를 물리친 분도 계시는데 한나절 배 타면 갈 곳을 어려서 못 간다는 것이, 소자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삼국사기, 원문으로 읽었더냐?”
“······!”
다정하나 엄격한 목소리로 이향이 묻자 금동이는 입술을 꾹 다물고 구원을 청하듯 윤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 일에 대해서 윤서도 이향과 같은 의견이었다.
“경서를 읽고 대충 뜻을 짐작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일본, 저 안남까지 외교든 무역이든 한자를 사용해 소통하지 않느냐? 게다가 금동이 너는 조선의 왕자니 가는 곳마다 그 지역 식자(識者)들이 교류를 청하며 한자로 시를 짓고 풍류를 나누려 할 것인데, 까막눈처럼 있는 것은 큰 외교 결례이기도 하다.”
윤서마저 평소 한자와 경서 공부에 너무 소홀한 것을 꾸짖자, 금동이는 입을 쑥 내밀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러자 희아가 슬그머니 동생 편을 들었다.
“금동이가 아직 차운(次韻)을 하여 시를 지을 정도까지는 못 하지만 뜻이 통하게 작문은 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 금동이는 숫자 해석에 탁월해 복잡한 장부를 아주 일목요연하게 항목별로 정리를 잘한다 들었습니다.”
“맞아요. 금동 헝님은 이론 산학엔 약하지만 실용 산학은 아주 잘해요. 시전에 나가 물건 흥정할 때 아무리 많은 수량이라도 철전 푼 단위까지 순식간에 딱딱 계산해요.”
새벽이도 누님 말을 슬쩍 거들어 금동이 편을 들어주었다.
그러자 금동이가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닦고 다시 꿋꿋하게 고하였다.
“그럼 소자가 논어 달달 외우고 빼어난 한시 백 편도 달달 외워서, 그걸로 차운할 수 있을 때 금성 숙부 은광 개발하는 곳에 보내주세요. 시 짓는 건 영 흥미가 안 생겨서, 그냥 외운 시로 대신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아바마마, 어머니. 어머니께서 늘 잘할 수 있는 것을 더 잘하는 것이 좋다고 하시듯이 우리 금동이는 온통 재물을 발굴하는 것을 좋아하고 잘합니다.”
드디어 홍위도 금동이 편을 들고 나섰다.
“저번에 할바마마께서 전국에 묻힌 광물들 말씀 끝에 ‘울산 지역 산 하나에 철이 온통 깔려 있는데 제련 방법에 따라 무쇠(水鐵)가 되기도 하고 시우쇠(正鐵)이 되기도 하는데, 또 이끼가 낀 불그스름한 덩어리는 제련하면 구리가 된다.’ 지나가듯 언급하셨는데, 금동이는 그 말씀을 모두 기억했다가 야금장에 가서 직접 원석의 색깔과 재질을 다 확인하고 맛까지 보았습니다.”
“맞아요. 벼루 만드는 녹반석은 무미, 무맛인데 웅황은 톡 쏘는 맛이 났어요. 장인들이 말하길 할바마마께서 웅황이 있는 곳에는 자황도 난다고 가르쳐주셨대요. 할바마마는 정말로, 어떻게! 와! 천재신가 봐요!”
세자 형님이 편을 들어주자 금동이가 신이 나서 소리쳤다.
홍위는 동생을 위해 한 발 더 나아갔다.
“상왕 전하 북방 순행에 금동이도 데려가고 싶습니다. 백성들의 생활 여건을 살피고 여진족을 위무하는 것과 더불어 여러 광물의 광산 현황을 직접 점검하시기 위해서이시니, 금동이에게 딱 알맞은 경험입니다. 제가 짬짬이 논어와 시 암송을 하는지 점검하겠습니다, 아바마마, 어머니!”
“와, 정말! 형님! 와! 아바마마, 어마마마! 저 할바마마랑 형님 따라갈래요! 제발, 제발, 허락해 주세요.”
홍위와 매일 하시는 보행 격구에 식단을 함께 조절하시면서 놀랍도록 건강이 좋아지신 세종께서는 직접 북방을 순시할 계획을 세우셨다.
당신의 통치 시기에 개척한 사군 육진 지역까지 순시하시며 새로 실효 지배하게 된 압록강, 두만강 이북으로 이주하는 백성들을 격려하시고, 또 여진족의 여러 추장을 접견하시는 동시에 본격 개발을 시작한 석탄, 철광석 등의 광산지 등을 돌아보신 후 귀환 길에 개성의 궁을 둘러보시는 일정으로 봄에 출발하셔서 가을에 돌아오시는 일정이다.
병조판서 김종서가 전하의 안위를 책임지고 호종하면서, 종친 중에서는 함평군, 광평 대군, 영응 대군, 세자 홍위, 영양위 정종, 오산군, 도원군, 의춘군 등이 따라갈 예정이었다.
이례적으로 아직 어린 세자와 그 또래가 상왕 전하를 호종하게 된 이유는 여진족의 위무였다.
조선의 국경을 어지럽히는 여진족을 토벌하고 국경선을 새로 긋는 대업을 이룬 상왕과 금상에 대해 여진족들은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의 세자는 왕실 학당 최초의 여진 유학생 동송로가무 등을 시작으로, 한양에 유학 온 여진족과 북방 토호 가문의 자제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살피고 때로 사촌 왕족들과 함께 이들과 사냥과 수영 등을 하면서 유대를 닦아왔다.
이런 연유로 이전 태조 대왕을 따르던 여진족과 함길도의 토호들이 어린 세자 저하가 태상왕 전하의 현신이라고 말하며 과거의 유대가 세자를 통해 미래에도 지속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이향은 세자와 그 또래 왕족을 순행에 딸려 보내면서 젊은 세대간의 통합으로 넓어진 영토를 평화롭게 발전시키려는 계획이었다
“아바마마, 어머니! 정말, 정말, 말썽 안 피우고, 열심히 공부도 하겠습니다! 천지신명께 제 휘(諱) 이윤(李潤)을 걸고 맹세해요!”
금동이는 거듭거듭 제 이름까지 걸고 보내달라고 졸랐다.
“부인?”
자신은 찬성하는데 윤서는 어찌 생각하는지, 이향이 물었다.
윤서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어정쩡한 웃음을 지었다.
“어머니!”
홍위가 부드럽게 재촉했다.
“어머니! 제발! 네!?”
금동이는 기도하듯 두 손을 모은 채 간청을 올렸다.
“···새벽아, 너도 갈래?”
마침내 윤서가 묻자 금동이는 “이얏호! 형님, 형님! 제가 형님 엄청 사랑해요, 진짜. 나중에 세상의 금은보화 몽땅 모아다가 형님께 바치겠습니다!” 호들갑을 떨고, 홍위는 “정말 논어 다 외워야 해!” 다짐을 받았다.
새벽이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도리도리 흔들었다.
“저, 분리불안이 아직 안 나았어요. 아버지 어머니랑 소아랑, 누님이랑 같이 있을래요.”
새벽이는 윤서가 아팠을 때 느꼈던 불안이 다시 떠올랐는지 슬그머니 윤서 옆으로 다가앉았다.
저녁 식사 후 아이들은 모두 경복궁 북쪽에 지어진 동물원으로 구경을 갔다.
여진족 중 몽골과 인접한 곳에 터를 잡고 사는 해서 여진의 오도리 족이 처음으로 신년 하례를 드리기 위해 입조하면서 선물로 여러 특산물과 함께 눈표범 한 쌍과 여우 한 쌍을 바쳤다.
복슬복슬한 흰 털에 점점 무늬가 아주 화려한 눈표범과 얼굴이 뾰족한 조선 여우와 달리 얼굴 털이 할아버지처럼 사각으로 난 여우가 신기한 아이들은 야행성인 이들 동물을 보러 요새 밤마다 등롱을 들고 구경을 갔다.
홍위와 영양위 정종, 금동이, 새벽이, 그리고 유모 품에 안겨 소아까지 다 구경을 간 후.
윤서는 희아와 둘이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해가 바뀌며 열다섯 살이 된 정종은 정월 초닷새 날 관례를 치르고 드디어 성인이 되었다.
선물로 이향은 혈통이 좋은 군마 한 필과 안장을 주었고, 윤서는 담비 털로 안감을 댄 도포를 선물하였다.
홍위는 매형에게 남방에서 가져온 흑옥으로 만든 벼루와 매화 향을 내는 먹을 선물하였고, 금동이는 녹옥 관자와 백옥 동곳, 산호와 옥과 금을 매단 노리개를 선물로 주었다.
관례를 치르고 한 공간에서 생활을 함께 하게 된 어린 부부는 서로 수줍게 시선을 빗기는 대신 저녁 수라 내내 다정하게 눈을 맞추고 자꾸 방긋거리며 웃었다.
방금 전 눈표범 구경을 가는데 왁자지껄 서둘러 나가는 홍위나 금동이와 새벽이와 달리,
정종은 희아 귀에 “잠시 다녀올 터이니, 어마마마와 함께 차 마시고 있어요.” 하고 다정하게 속삭이고, 삐져나온 한 올 머리카락을 귀 뒤에 넘겨주고서도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듯 머뭇거리다가,
“아이! 매형! 불빛을 받으면 눈이 번쩍거린다니까요!”
금동이의 재촉을 듣고서야 마지못해 밖으로 나갔다.
“따라갈까 봐요.”
세종의 순행을 정종도 호종하게 되었으니, 봄부터 여름까지 두 계절을 떨어져 있게 된다.
희아는 아까 홍위가 금동이를 데려가기 위해 화제에 올렸던 순행 때문에 곧 다가올 이별을 상기하고 한숨을 쉬며 윤서에게 말했다.
그 표정이 너무 애틋해서 윤서는 저도 모르게 물었다.
“빼어 주길, 바라니?”
“아니에요. 정종은 빼어난 무관이 되고 싶어 하는데 그럴 순 없지요. 참, 어머니. 여 학당과 기숙사가 언제쯤 완공되어요?”
공사 사의 구분이 엄격한 희아는 아무리 그립다고 해도 공무에서 정종을 배제할 마음은 없어, 서둘러 학당 모집에 관한 화제로 주의를 돌렸다.
윤서는 왕실과 한양 세도가의 혼맥이 지나치게 한양의 특정 몇몇 가문으로만 통혼이 이루어지는 것에 경각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지방 유력 가문의 여식이 한양에서 지식을 습득하면서 동시에 중앙 세도가의 일원으로 통합될 기회를 제공하고자 왕실 산하 중등 여 학당을 설립할 목적으로 사직단 북쪽에 학당과 기숙사를 짓고 있었다.
“내년은 되어야 해. 선발 인원은 학당을 대상으로 올 여름 미리 공문을 보낼 것이고.”
“그럼 학당 책임자는 계속 양 소용이 맡게 되나요?”
“아니야. 대비마마께서. 대비마마께서 요새 기력을 회복하시면서 아주 의욕적이시잖니.”
삶의 의지를 되찾으신 소헌 대비는 요새 최 상궁을 통해 연극, 춤과 노래를 공연하는 단체들을 후원하시는 한편, 세습 기생, 노비 등의 천역에서 놓여나는 대가로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된 이들을 위해 다양한 지원 활동을 펴고 계셨다.
“중등 여 학당은 한양에 올라와 기숙사에 머물면서 삼 년 과정을 거치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권위가 있어야 해. 대비마마께서 맡으시는 것이 좋아.”
“아, 엊그제 선아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희아가 왕실 학당에서 작문을 가르치기 시작한 경숙 옹주 선아와 기초 산학을 가르치고 있는 도원군의 부인 연화와 새 학기에 대해 논의를 하다가 나눈 이야기를 전하였다.
“선아가 올해 열세 살이 되었잖아요. 혼인이 너무 이른 것이 여인의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여 요새 열다섯 살 넘어서 혼인하는 것이 보통인데, 선아는 제가 일찍 혼인한 것이 부러운가 봐요.”
“똑똑한 사내랑 혼인하고 싶다고 하던데. 혹시 마음에 둔 소년이 있는 것인가? 양 소용은 별말이 없던데.”
“있어요, 어머니. 있더라고요.”
희아가 싱긋 웃었다.
그렇지만 선아가 아직 말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다면서 끝까지 어느 가문의 영식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언니인지라 희아는 넌지시 사람을 시켜 선아가 마음에 두었다는 소년을 알아본 모양이었다.
“똑똑은 해요. 다정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희아가 내린 총평이었다.
“그런데 어머니, 오산군이 한확의 막내딸과 혼인 말이 오간다고요?”
“응. 오산군도 혼인할 시기가 되었으니까. 신년 연회 때 제안 부부인이 와서 대비마마께 의논을 드렸어.”
“어머니 생각은 어떠신데요? 새해에 북경의 공신 부인에게서도 서신을 받으셨다면서요.”
북경의 상황은 많이 정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달단에 포로로 잡혔던 황제는 돌아와 유폐되었고, 대신 황제 자리에 오른 이가 불안한 통치를 이어가고 있다.
윤서는 북경에 나가 있는 상단을 통해 공신 부인에게 필요한 물품을 아끼지 않고 지원하고 있었다. 차기 황제를 공신 부인이 돌보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공신 부인은 어려운 시기 변함없이 관심과 지원을 해주는 조선의 왕비께 깊게 감사드린다는 서신을 한확을 통해 바쳤다.
“그 혼인에 반대할 이유는 없지. 한확의 여식을 오산군이 마음에 들어한다고도 하고. 그리고, 공신 부인 정도의 존재로 우리 왕실이 영향을 받기에는 글쎄. 우리 조선은 이미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걸.”
한 가지 걸리는 것은 한명회가 한확의 일족이란 점이지만, 북경에서 이미 빼어난 군재(軍才)를 선보인 금성 대군이 대내전에 건너가 해외 경영의 경험을 착실히 쌓아가면서 미래를 대비할 것이니 염려는 없었다.
···그렇지만.
“희아야. 날 위해서 권총을 만들어 줘. 허리나 가슴에 숨겨 차고 다니다가 누구에게 잡혔을 때 꺼내 쏠 수 있는 권총. 그런 소총이 필요해.”
“!”
윤서의 부탁에 희아가 눈을 반짝 빛냈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