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325
325화. 증기기관
증기기관 개발 공장은 군기시 분원 산하 다른 공장과 달리 경복궁의 북문 밖에 외따로 서 있었다.
처음에는 다른 공장들과 함께 경복궁 내 서북쪽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개발 과정에서 한번 큰 폭발이 있어 옮겨지게 되었다.
콘크리트로 단단히 지어진 실험실에 모여 있는 이들은 구경 온 세자 홍위와 그 사촌 무리, 그리고 개발 과정을 함께 한 경혜 공주 희아와 윤서, 세종이었다.
희아에게 현대 기계의 겉모습을 알려주어 탈곡기와 목화 씨앗 제거기, 수동 물펌개를 발명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에 그쳤던 윤서가 증기기관의 개발에 깊숙이 관여하게 된 것은 장영실의 아들 장탄복에게서 가능성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조선에 인간이나 짐승의 노동력 없이 움직이는 기계 장치는 장영실이 책임 개발한 물시계 자격루, 그리고 이향이 만든 괘종시계, 요즘 한창 보급중인 수차 정도였다.
자격루와 수차는 떨어지는 물의 힘으로, 이젠 조선을 대표하는 과학 기물로 해외에서도 주문이 쇄도하는 괘종시계는 추의 힘으로 동력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추는 시계를 넘어서 그 이상으로 확대되기 어려운 기술적 한계가 있다. 추로 만들 수 있는 동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증기기관은!
“솔직히 지금의 기술 수준으로 증기기관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지 않았어요. 그런데 장영실의 아들이라면! 장탄복이라면 수천 년 동안 근원적인 변화 없이 완만하게 발전하던 과학 문명을 혁명적으로 바꾼 기관의 발명이 가능할 것 같아요. 인류가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서기 시작한 그 위대한 시발점이!”
실험실에 온 다음 날, 희아가 만든 물펌개를 뜯어보고 바로 개선점을 찾아내는 것을 목격한 윤서가 바로 편전을 찾아 이향에게 속삭인 말이었다.
희아가 만든 물펌개의 가장 큰 한계는 고무가 없어서 물을 들어 올리는 부분을 쇠로 만들었고, 그래서 지나치게 빡빡하게 맞물려 있어서 힘 좋은 장정이나 겨우 물을 풀 수 있다는 점이었다.
장탄복은 그 동그란 쇠를 무른 철로 만들면서 구조도 훨씬 더 단순하게 바꿔서 여인도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 궐 곳곳 우물 옆에 물펌개가 설치되고 있다.
어릴 적부터 장영실 밑에서 심부름하며 어깨 너머로 여러 기물의 제작 과정을 배우면서 기물의 작동 방법에 대해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윤서는 희아와 함께 장탄복에게 증기기관을 이용해 움직이는 여러 물체를 그려주었다.
“수증기를 통해 움직임이 가능하다면 말이나 소가 끄는 힘이 없이도 달리는 이런 차가 가능할 것 같아. 물론 먼저 철도를 깔아서 그 위로만 달리게 하거나, 일반 도로에서는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운전대도 만들어야 하겠지만.”
이러면서 슬쩍 영화에서 보았던 초기 자동차나 증기 기관차를 그려 보여주었다.
그럼 희아도 옆에서 윤서에게 들었던 배의 스크류를 그려 보이며 거들었다.
“배도 가능하겠어요, 어마마마. 여기 이 꽁무니에 바람개비 같은 것을 달아서 돌아가게 하면 이것이 물을 밀어내면서 앞으로 가게 하는 추진력을 낼 거예요. 그럼 바람의 힘을 이용하는 돛이 없어도 앞으로 나갈 수 있고, 또 노를 젓지 않아도 해류를 거슬러서 항해할 수 있지요.”
“와, 그엄 우리 금동 헝님이 이 증기선을 타고 보물을 찾으러 가는 것이네요!”
윤서와 희아가 있는 곳이면 늘 따라다니는 새벽이가 벌써 증기선을 보기라도 한 듯 눈빛을 빛내었다.
이럴 때 장탄복은 멀찌감치 서서 고개를 숙이고 의아해했다.
‘이 나라의 지존들께서 왜 이런 천하고 거친 일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나서시는가.’
그러면서도 중전마마와 공주 자가, 대군 자가께서 나누시는 말씀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세 분 돌아가신 후 그림과 그 밑에 적힌 글을 읽으며, 이렇게 움직이려면 바퀴나 이 바람개비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그 움직임을 수증기로 만들려면 빵빵 끓어오른 수증기를 어떻게 빼내고 다시 잡아채야 할지 밤을 새워가며 고민하고 괘종시계를 다시 분해하여 톱니바퀴의 연결을 보고, 탈곡기 발 받침과 위의 통의 연결을 참고하고, 또 선친께서 만드셨던 기물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장탄복, 일단 한 바퀴만 돌리면 된다. 물을 끓여 생긴 수증기가 이 받침을 밀어 올리면서 여기 연결된 바퀴를 반 바퀴를 돌렸지 않으냐? 이 받침을 내릴 수 있으면 된다. 그렇게 온전히 한 바퀴만 돌리면 그 다음부턴 쉬울 것인데, 그 처음이 어려운 게지. 초조해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시도하거라. 물을 끓일 때 들썩이는 이 주전자 뚜껑을 보면서 말이다.”
종종 아버님을 찾으셨던 상왕 전하처럼 금상께서도 저녁마다 실험실에 들러 격려하시고 무쇠로 만든 주전자를 하사하셨다.
그러던 초여름 어느 날, 수증기를 위에 연결된 통으로 보내는 부위의 개폐 장치를 만들어 붙였다가 밑에서 물을 끓이는 밀폐 솥이 폭발하는 사고도 있었다.
다행히 장탄복도, 늘 함께 일하는 철야장 김돌석도 멀찍이 떨어져 있던 때에 일어난 일이라 팔과 얼굴에 뜨거운 물방울이 튀는 정도로만 다쳤지만, 금상 전하는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궐 밖에 콘크리트로 벽을 세운 널찍한 실험실을 새로 지어 하사하셨다.
그렇게 고난의 세월을 지내던 어느 날 밤.
순행에서 돌아오신 상왕 전하께서 몸소 행차하시어 실험실을 둘러보신 후 장탄복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셨다.
“대호군이 나를 위해 아주 편안한 마차를 만들어주고 싶어 했느니라. 연을 타도, 마차를 타도 걸음마다 출렁거리고 돌부리에 덜컹거려 먼 길 갈 때 고생하는 나를 위해서 길이 험해 바퀴가 덜컹거려도 그 충격을 흡수할 축을 만들고 싶어 했어. 그런데 그게 잘 안되어서 바퀴와 바퀴를 연결한 축이 부서지게 되었던 것이다. 장 팔십 대의 벌을 받았다고 하나 면포로 대신 내고 몇 달 근신하다 돌아오면 되었을 것을, 네 아비는 실패를 못 견뎠다. 두려웠던 게지. 다시 천인 신분으로 떨어질까 봐 늘 두려웠던 게야. 이제 우리 조선에 천인은 없으니 너는 실패를 두려워 말고 꾸준히 정진하거라.”
격려하신 상왕 전하께서 어주 한 잔을 내려주신 날 밤이었다.
‘하아, 어찌 일 길이 안 보이는 것이냐! 어째서!’
금상 전하는 물론 상왕 전하까지 관심을 보이시는데 영 성과가 안나 입에 대지도 않던 술을 말술로 퍼마시고 쓰러져 잠들었을 때였다.
“이눔이! 천한 종놈 주제에 두 분 전하의 용안을 뵙는 광영을 누리고도 자빠져 잠이 오느냐, 이눔! 주전자의 뚜껑이 하나라고 해서 수증기 빼는 구멍이 하나여야 할 이유가 무엇이더냐, 이 종놈아!”
꿈에 아비가 나와 등짝을 후려 때렸다.
하필 종년에게서 아들을 보았으니 참으로 복도 없다고 이름도 탄복(嘆福, 복이 없음을 한탄함)이라 지었으면서 그나마도 안 부르고 늘 ‘종놈’이라고 부른 아비의 말에 장탄복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그늠의 종놈이란 말씀 좀, 고만하쇼! 이제 이 조선에 노비는 없단 말이우다!”
버럭 소리치며 일어나 주전자를 들어 물을 벌컥벌컥 마시던 장탄복이, 문득 소리쳤다.
“구, 구멍을 두 개 뚫으면!”
밑에서 올라오는 수증기가 동그란 판을 밀어 올렸을 때 위의 수증기가 빠져나갈 구멍과, 밑에 생긴 공백으로 수증기가 들어올 수 있는 구멍을 아래에 뚫고, 그리고 그 전체를 다시 한번 통으로 감싸면!
“으아아아, 돌석 어르신! 야장 어르신!”
장탄복은 실험실에 딸린 전각에서 숙직 중인 김돌석을 소리쳐 깨웠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날부터 다시 기관을 설계하여 실패를 거듭한 끝에 드디어 그 한 바퀴를 돌리게 된 것이다.
상왕 전하께서 순행에서 돌아오신 후 종종 들렀던 왕손들까지 바글바글 모여든 이 날 오후.
여러 번 뵈었어도 여전히 어렵기만 한 왕족들 앞에서 장탄복은 떨리는 마음으로 결과물을 내어 보였다.
“무, 물이 끓으면 이 관을 토토, (꿀꺽 침을 삼키고 다시 떨며) 토, 통해서 여기 이 하, 항아리처럼 생긴 통 안으로 수, 수증기가 들어갑니다. 이 통 안에는 긴 관이 연결되어 있고, 구, 구멍이 두 개 뚫려서,”
“일단, 보자! 바퀴가 돌아가는 것을 보고 나서, 설명을 듣자!”
너무 긴장해서 말을 더듬는 장탄복에게 상왕 전하께서 말씀하셨다.
“예, 예! 전하!”
장탄복이 붉게 달아오른 석탄 위에 물 끓이는 장치를 올렸다.
하단부 솥이 드디어 투둑투둑 내며 온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물이 끓기 시작합니다, 할바마마!”
아바마마와 어마마마께 이 발명품이 가져올 거대한 변화를 거듭 들었던 홍위가 소리쳤다.
홍위에게서도 그 변화를 전해들었던 소년들도 모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머니!”
윤서는 희아의 손을 꽉 쥐고, 희아는 새벽이의 손을 꽉 쥐었다.
통에서 나온 쇠막대기에 연결된 바퀴가 덜컥 소리를 내며 반 바퀴를 돌았다.
“제발!”
금동이에게 증기선을 지어줄 수 있게!
군수 물자 수송을 쉽게 할 수 있게!
굶주리는 백성들에게 구휼미를 빠르게 운반해 줄 수 있게!
거리의 제약을 넘어설 수 있게!
공장의 물품을 쉽게 대량 생산할 수 있게!
천한 종놈이라고 아들로 인정하지 않은 야속하고도 그래서 더 그리운 아비에게 보란 듯 보여줄 수 있게!
각자의 바람을 담은 간절한 시선 속에 바퀴가 끼익 소리를 내며 나머지 반 바퀴를 마저 돌았다!
이날 조선왕조실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상왕 세조(세종께서 승하하신 후, 이향은 부왕의 묘호를 세종(世宗, 태평성대의 기반을 마련하였다는 뜻의 묘호)이 아니라 세조(世祖, 국가의 체계를 완성한 제왕에게 올리는 묘호)라 정하였다)께서는 세자와 여러 왕손이 배석한 가운데 증기기관의 시연을 참관하셨다.사람의 힘도 짐승의 힘도 아닌 끓인 물의 힘으로 동력을 내는 온갖 과학 기물의 시작이 이날 시연에서 비롯되었다.
전하께서는 이 기관을 만든 장탄복과 김돌쇠에게 종7품 군기시 직장 벼슬을 내리시고 은자 일백 냥을 하사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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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저녁.
이향은 상왕 전하와 함께 증기기관 개발에 참여한 장탄복을 비롯, 군기시의 야장과 직공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윤서는 희아와 정종, 홍위와 금동이, 새벽이, 소아와 함께 협경당에서 보글보글 전골을 함께 끓여 먹었다.
“어머님, 누님, 좀 서운하지 않으세요? 처음 생각은 어머님이랑 누님이 내셨는데 역사에는 장탄복과 김돌쇠 이름이 올라가게 되었는데.”
홍위가 물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나도 빌려온 생각이지. 원리도 모르고 대충 외운 지식을 실체로 구현하는 첫 단계를 시작한 우리 희아가 대단한 거야.”
노란 병아리가 앙증맞게 수 놓인 턱받이를 두르고 맹렬하게 고깃국을 퍼먹는 소아에게 고기를 잘게 찢어주던 윤서가 무심히 대꾸하였다.
그러자 정종이 발라준 갈비를 맛있게 오물거린 희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야 뭐 어머님이 말씀하신 거 대충 흉내만 내었던 걸. 그리고 증기기관은 이제 시작이야. 겨우 대여섯 바퀴 돌아간 후 수증기 압력으로 통이 터질 것 같다고 석탄 뺐잖니. 갈 길이 아주 멀다.”
“그래도 부인이 반 바퀴 돌려서 나머지 반 바퀴가 가능했던 거요. 다섯 바퀴를 돌렸으니 곧 오십 바퀴, 오백 바퀴, 그리고 결국 쉼 없이 돌아가는 바퀴가 가능할 것이고요.”
정종이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희아에게 속삭였다.
“아우, 매형! 우이 매형은 섯탕 같으시네. 섯탕!”
새벽이가 눈을 가리며 흉을 보고, ‘설탕’이란 말을 알아들은 소아는 옆에 앉은 언니에게 “아탕! 아탕, 두데요오!” 두 손을 모아 쏙 내밀었다.
“아, 송선 소저!”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금동이가 문득 소리쳤다.
“형님, 송선 소저가 마음에 들었어요?”
“무슨! 오늘 처음 보았거늘 마음에 들고 말고가 어디 있느냐?”
“근데 큰 헝님 귀는 왜 빠개지지? 귀가 빠개지는 건 피가 쏘여서인데, 왜 피가 쏘일까아?”
새벽이가 싱글싱글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금동이도 히힛 웃으면서 산적을 한 입 가득 넣었다.
“송선이라면, 금아 동무를 말하는 거니? 대방부부인 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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