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327
327화. 고등 여 학당 건립 (2)
“한미한 가문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윤서는 조용히 물었다.
“개국 공신의 가문이 아니고, 또 우리 왕실에서 공주나 옹주나 현주를 며느리로 맞이하지 못했거나, 여식을 후궁으로 넣지 못한 것이 한미함의 기준입니까? 아니면 관직에 등용된 가족이 없다는 것이 기준입니까? 관직에 등용된 가족을 기준으로 한다면, 그 가족이 몇 촌 내의 친인척이어야 합니까?”
대개의 경우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진지하게 경청한 후 의견을 수용하는 편이었던 중전의 눈에 한기가 내렸다.
다실의 분위기가 밖의 겨울 공기처럼 차갑게 내려앉았다.
“왕실 여 학당이 생긴 지 벌써 5년입니다. 그동안 공주 자가는 학생들에게 직접 산학을 가르쳐왔고, 양 소용은 학당 운영을 책임져왔지요. 강산이 반쯤 변하는 그 시기 동안, 여기 우리 희아 공주와 선아 옹주, 그리고 군부인 연화가 학생에서 선생으로 변화하는 그 시기 동안, 왕실 어른이자 선생으로 두 분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실현해 오셨습니까?”
“···나는.”
“저는! 호칭을 바로 하시지요, 공주 자가!”
중전의 목소리가 매서워졌다. 무품의 공주라 하나 중전 위에 설 수 없다는 서늘한 경고였다.
“!”
“!”
정의 공주와 양 소용은 등받이 의자에 느슨하게 기대앉았던 몸을 바로 세웠다.
‘중전이 차갑게 분노하면!’
평소 권위는 까맣게 잊은 듯 격의 없이 느슨하게 풀어진 중전의 눈매가 서늘해지면,
그러면 태풍이 휘몰아치고 누구 하나는 반드시 횡액을 당한다.
그 예가 지난 초여름에도 있었다.
*
*
*
본격적으로 더위가 시작되던 시기였다.
도성 밖 서민 주택 단지를 세우는 일과 조선 전역에 두창 예방 침을 접종하는 일로 분주하여 사적인 접견을 모두 미루던 중전이 갑자기 국중 거부 윤사로의 부인 정현 옹주를 교태전 집무실로 불러들였다.
중전은 상궁을 물리고 손수 달콤한 향이 나는 이방의 차를 내려주었다.
“드셔보세요. 여송의 우리 상단에서 보내온 차인데, 회회국 말로는 야스민, 천축국 말로는 말리까라고 부르고 중국에서는 모리화라 하지요. 향이 하도 향기로워 차로 마셔도 좋고, 압착 해 기름을 내어 화장품과 비누에 넣어도 아주 좋습니다.”
“오호, 이거 정말 고급 향수로도 좋겠습니다.”
정현 옹주가 잔을 코앞에 대고 향을 음미하며 여유롭게 말했다.
자신은 상왕 전하의 딸로 무 품의 옹주에 재물을 쌓을 곳이 부족할 정도의 국중 거부이니 중전에 비해서도 꿀릴 것이 없다는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느른하게 차를 홀짝이는 옹주를 바라보는 윤서의 눈매가 차갑게 굳었다.
윤서가 이날 눈매를 굳힌 것은 속량 노비에게 기초적인 의술을 가르친 후 해외에 비싸게 팔려 하는 무리가 정현 옹주의 남편 윤사로와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묵은 분노도 있었다.
윤서는 요새 금아의 절친 송선을 마주할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지나치게 조심스러워 처연해 보였던 첫인상과 달리 금아와 있을 때 따스하고 활달하게 웃는 송선을 자주 만나게 되니,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단종 비 정순왕후 송씨와 관련된 일화가 몇 개 떠올랐다.
‘사육신의 난 후 부마 윤사로는 정순왕후의 여동생들을 노비로 달라고 세조에게 청했다지. 정순왕후는 물론 그 여동생들 미모가 아주 빼어났기 때문이다.’
단종의 국구이자 친우이던 송현수의 딸을 노비로 달라고 한 그 저열함과, 면포며 곡식을 쌓아둘 데가 부족할 정도로 부를 탐한 그 탐욕은 실록에도 똑똑히 기록되어 있다고 아빠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옹주께서 아주 훌륭한 일을 계획하고 계시다 하여 치하를 드리기 위해 옹주 자가를 모셨습니다.”
시선은 여전히 차가우나 아주 살가운 음성으로 윤서는 말했다.
“제가, 무엇을요? 저번 홍수에 구휼미 삼십 석이나 내어놓은 것을 말씀하시는지요? 그거야 뭐, 다들 같이 내어놓은 것을요.”
다른 공주와 옹주들은 오십 석 넘게 내어놓았건만, 삼십 석도 몇 년 쌓아만 두어 썩기 시작한 잡곡으로 내어놓았던 정현 옹주가 짐짓 손사래를 쳤다.
“그것도 감사한 일이었습니다만. 그것에 더해 또 속량 노비들에게도 살길을 마련해주기 위해 애쓰고 계신다 들었습니다.”
“!”
등줄기가 먼저 서늘해지는 옹주의 눈에 이제야 중전의 눈매가 싸늘하게 굳어진 것이 들어왔다.
정현 옹주는 등받이 의자에 기대었던 등을 세우고,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으고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두 분 전하께옵서 먼저 왕실과 내수사에 속한 공노비를 다 속량하시며 월봉 노동자나 농토 소작인으로 호구지책을 마련하셨으니, 옹주와 부마가 되어 어찌 그 숭고한 뜻을 받들지 않으오리까?”
“그러니까요. 그래서 외모가 정갈하고 머리가 영민한 아이로만 골라 기초 의술과 안마술 등을 배우도록 선생까지 초빙하신 것이 아닙니까? 참, 감동적입니다. 미인박명이라고, 생업을 꾸릴 기반이 없이 외모만 갖춘 소년 소녀들이 흔히들 어떤 운명을 맞이하는지 잘 아시는 옹주께서 그 가여운 아이들의 비극을 줄여주기 위해 이리 세심하게 마음을 쓰시다니요.”
중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벌겋게 달아오른 바늘처럼 정현 옹주를 사정없이 찔러대었다.
어디서 새어나간 것일까.
남방에서 아리따운 소년 소녀들이 금덩이처럼 비싼 값에 팔린다고도 하고, 종기와 이질, 감기 등의 흔한 질병에 조선의 약이 큰 효험을 보여 조선 의술에 관심이 나날이 커진다고도 하여 자신처럼 노비를 많이 거느린 대부호 부인들과 농담 속에 뼈를 담아 은밀히 논하는 계획을.
그리고 그 계획을 염두에 두고 외모가 빼어나고 똘똘한 종들만 골라 이제 막 기초 의술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을.
중전이 어찌 알고 남방의 차를 내어주고, 칭찬을 가장한 경고를 해!
‘수습해야 한다!’
실행하지 않았기에 증거가 없는 지금 수습해야 한다.
상왕 전하를 닮아 두뇌 회전이 빠른 정현 옹주는 바로 결단을 내렸다.
“겨우 오십여 명밖에 되지 않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베푼 것을요. 중전마마께옵서 전국 각지에 보육원을 세워 고아를 돌보고 가르치시는 것에 비하면 너무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칭찬을 하여 주시니, 그에 걸맞게 저도 더 내놓아야겠지요. 저의 궁에서 속량한 노비 오십 구를 더,”
“아! 그것 참 감동입니다. 오십 명에게 가르치셨는데 오십 명을 더 가르치신다니.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어, 어떻게, 말씀입니까?”
되묻는 정현 옹주의 음성이 파르르 떨렸다.
조롱하듯 경고하듯 번쩍이는 중전의 눈빛이 큰 것이 오고 있음을, 그 큰 것을 거부할 힘 따윈 자신에게 없음을 직감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속량 노비를 위한 의학 전문 학당을 세우시지요. 백 명을 다 가르치시려면 어차피 의원 몇을 불러 꾸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정릉 쪽에 왕립 의학 대학이 있다고는 하나 가르칠 수 있는 숫자가 너무 적어요. 이럴 때 옹주께서 사립 전문 의학당을 세우시면 옹주와 내심 숭고한 뜻을 교감했던 분들도 발 벗고 돕지 않겠습니까? 중전인 저도 적극 돕겠습니다.”
너와 또 너와 함께 노비를 해외에 팔 궁리를 한 자들은 재산을 내어 전문 의학당을 세우라는 말이었다.
결국 이날 정현 옹주는 공주로 봉작될 때 받은 토지 이백 결 중 오십 결과 필요 경비를 조달해 사립 전문 의학당을 세울 것을 약조하고서야 교태전을 나올 수 있었다.
파주 쪽 공주 궁가 땅에 시멘트와 흙벽을 발라 임시 교실을 짓고 노비 출신으로 의학에 매진할 의욕과 두뇌를 가진 소년, 소녀들을 각각 백 명씩 모집할 것이란 공고가 한여름에 나왔을 때.
민간에서는 상왕 전하의 애민 정신이 옹주에게도 이어지고 있다는 칭송이 자자하였지만, 왕실 친인척과 세도가 사이에서는 ‘하아, 옹주도 중전에게 코가 꿰었군.’ 하는 탄식이 퍼져나갔다.
남방이나 일본, 명나라 남부 등에서 하듯 속량한 노비를 꼬드겨 해외 노예 상인에게 팔아볼까 궁리하던 이들은 그 계획을 머릿속에서 까맣게 지워야 했다.
*
*
*
“시간을 주세요, 중전마마. 궁가에 돌아가 학당에서 가르친 지난 시간을 차분히 짚어보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고등 여 학당이 어떤 역할을 해야할지, 그 역할을 위해 학생 선발은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할지, 가르칠 내용은 어떠해야 할지 성찰하겠습니다, 중전마마.”
정의 공주는 일단 시간을 청했다.
서늘해진 중전 앞에서 제대로 된 답변을 내어놓지 못할 때 닥쳐올 후환이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저도 그리하겠습니다, 중전마마!”
양 소용도 옆에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두 분 생각에 도움이 될 자료를 드려야겠군요, 조 상궁!”
윤서는 굳었던 표정을 풀고 다실 밖에 시립해 있는 조 상궁을 불렀다.
“예, 중전마마.”
조 상궁은 붉은색 비단으로 쌓인 사각의 뭉치를 든 나인 넷과 함께 들어왔다.
“공주 자가와 소용께, 그리고 공주와 옹주, 부부인께 보여드리시게.”
“예. 귀빈들 보시기 편하게 다탁 위에 놓거라.”
“···이것이, 무엇입니까?”
“원래 성균관에서 대사성이나 다른 분들이 고등 여 학당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여하고자 하실 때 보여드릴 자료였습니다. 두 분께 보여드려도 좋을 것 같군요.”
비단 보자기 안에 들어 있던 것은 금속 활자로 찍어낸 자료 모음집이었다.
첫 자료의 제목은 이었다.
“이각주는 제가 소유한 궁방의 책임자로서, 지난 칠 년간 궁방 운영에 대해 항목별로 꼼꼼하게 정리했습니다. 그는 궁방에 소속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저의 노비였고 이 년 전 속량 된 양민입니다.”
노비였으니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을 리 없는 이각주는 그러나 항목별로 한눈에 들어올 수 있게 표로 먼저 핵심 내용을 제시하였다.
첫해 일 년에서 삼 년 된 야생 삼 새싹을 옮겨 심었을 때 :
그늘 토지에 계분 비료를 준 땅 / 그늘 토지에 생선 삭힌 비료를 준 땅
생장 크기
이런 식으로 가로와 세로 항목이 연도별, 비료별로 작년까지 꼼꼼하게 기록되었다.
그리고 닭을 칠 때 무엇을 먹이는 것이 빠른 생장을 돕는지, 먹이별 닭살의 냄새와 식감, 닭의 수명과 달걀 생산량 등에 대해서도 도표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다.
“육 년 전 전국 백육십 개 현에서 올라왔던 유력 가문의 여인들을 기억하십니까? 다음 자료는 그 여인들 중 이각주와 꾸준히 왕래하며 신농법을 실험해 온 여인들의 기록입니다.”
홍위가 다섯 살이던 해 시월, 윤서는 살곶이 너머에 조성된 거대한 퇴비밭 앞에 전국에서 올라온 여인들을 모아놓고 퇴비의 중요성을 설파했었다.
“퇴비를 쓰면 지력이 약해지지 않아 다양한 작물을 쉼 없이 심을 수 있습니다. 가문을 이끄는 수장이면서 동시에 각 현의 이웃을 이끄시는 우리 여성 여러분들은 특히, 더! 식량과 재산을 만들어낼 방법을 적극적으로 익히실 필요가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이렇게 퇴비의 중요성을 교육받고 새로운 농법이 담긴 을 받아갔던 여인들 중 삼십여 인은 지금까지도 김포 농장의 이각주와 꾸준히 왕래하면서 새로운 농법과 환금성 작물을 실험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여인 중 한 명의 딸은 지방 학당에서 배운 후 흥미로운 실험을 하였다.
충청도 홍주에 사는 박씨 가문의 외손녀(외가에서 자라고 있는) 최영묘의 기록이었다.
정음으로 쓰인 이 기록은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했다.
“지방 학당에서 배운 것이 전부인 최영묘가 쓴 글을 보면, 고등 여 학당에서 어떤 인재를 뽑아야 할지 감이 올 것입니다. 고등 여 학당은 관직에 나아갈 수 없어도, 철야장이나 건축사로 직접 일을 할 수 없어도, 배운 바의 지식을 현실에서 통찰하고 개개인의 삶에서 구현할 이들을 길러내는 곳이어야 합니다!”
웅변하는 윤서를 보며 희아가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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