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328
328화. 세종과 성삼문과 논문 (1)
“어머니는 때로 성난 황소 같으세요. 콧김을 흥흥 내뿜으며 앞만 보고 돌진하시죠.”
최영묘가 쓴 기록을 무릎 위에 놓고 보던 희아가 문득 말했다.
성균관 근처 차담에서 얼굴이 차갑게 굳은 정의 공주와 생각이 많아 보이는 양 소용에게 다시 비단 보자기에 잘 싼 자료 보따리를 넘겨주고 사흘 후 다시 논의하기로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제 한 달 있으면 새해.
한겨울 맹렬한 추위는 토끼털로 안벽을 촘촘하게 댄 마차 안에도 냉기를 부려놓는다.
윤서는 조 상궁이 준비해 둔 뜨거운 물주머니를 희아의 무릎에 올려주며 물었다.
“비범한 추진력을 가졌다는 칭찬 같기도 하고, 무모하다는 염려 같기도 하네?”
“둘 다예요. 어머니께서 이렇게 강하게 끌고 가셔야 이런 독특한 성찰이 나오고, 또 새로 개척한 섬에 갈 농부들도 빨리 적합한 재배 작물과 농법을 찾아 정착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어머니.”
희아는 물주머니를 다시 윤서의 무릎 위에 올려주며 단언했다.
“정의 고모님이 가만히 계시지 않을 거예요. 그분은 어릴 적부터 공주로 사셨잖아요.”
정의 공주는 아까 윤서가 보인 자료 내용에 감탄하면서도 실력 위주의 선발을 강하게 주장하는 윤서의 태도에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반발이 있더라도 제대로 시작해야 해. 그래야 한양에 사는 한 줌 공신가와 왕족 사이 견고한 혼맥도, 그를 바탕으로 고위직을 독점하는 권세의 치우침도 희석될 것이고. 또 무엇보다 지금 왕실에서 고등 여 학당을 세우면 앞으로 오백 년 이상 최고의 왕실 국립 대학으로 이어질 것인데, 그럼 그 시작부터 제대로여야 국제적으로 명성을 쌓아갈 수 있다.”
윤서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자 희아가 말없이 윤서를 바라보았다.
물끄러미 바라만 보는 눈가가 점점 붉어진다.
평소 냉철한 희아가 보이는 눈물이 윤서는 당황스러웠다. 그 정도로 걱정이 되는 것인가.
“괜찮아. 기껏해야 대비마마께 불려가는 일일 터인데. 취지를 말씀드리면 납득을,”
“고모님도 우리 홍위 편을 안 들었던 것이군요.”
“···으응?!”
“그거 아세요? 어머님은 미묘하게 사람을 가리세요. 가문이 한미하고 빈한한 유 첨사(유응부)의 두 딸을 왕실 학당에 기어이 입학하게 하셨잖아요. 연회 때 성삼문이나 박팽년, 이개 등의 부인과 딸에겐 격의 없이 대하셔서 집현전 학사 출신 가족이라 그러한가 했는데, 최항의 가족에겐 굉장히 위엄을 보이시더라고요. 그리고 정의 고모님께는 늘 거리를 두시고요.”
“······.”
표시가 났었던가.
홍위를 위해 목숨을 다한 이들의 가족에게 마음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유응부의 집이 하도 가난해서 그의 부인에게 면포 염색 공장을 운영하게 도와주고, 이번에 여송에 따라갈 땐 노산대에게 부인을 대신해서 공장을 운영할 이를 찾아봐 주라고도 했다.
그리고 정의 공주.
한낱 공주에게 이미 기운 판을 뒤집을 힘은 없었으리라고 수긍하면서도 변절자이자 당대의 실세인 정인지와 겹사돈을 맺으며 여전히 영화를 누렸던 공주의 삶에 반감이 아니 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윤서는 희아에게 미안했다.
“오지 않을 과거의 그림자를 아직도 벗지 못해서, 미안해. 이 세계의 공주는 다를 거야. 전하께서 건재하시고 세계가 급변하고 있으니.”
그러나 윤서의 바람과 달리, 정의 공주가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
*
*
“하아. 따로 있는 자리에서 자료를 보여주며 설득해도 될 것을.”
교육의 효과를 무시하는 것도 아닌데 조카와 조카며느리도 있는 자리에서 그렇게 뺨을 내려치듯 편협한 시야를 가지고 있다고 일갈해야 하나.
공주로 살아온 삼십여 년의 세월 동안 이리 노골적인 비판을 받아본 적 없는 정의 공주는 한참 나이 어린 중전이 보인 무례가 너무 불쾌하였다.
자존심이 상해 남편에게 중전이 무시해 기분이 상했다는 말도 못 하고 끙끙 앓다가 일어난 아침.
정의 공주는 어제 중전에게 받아온 꾸러미를 시녀에게 들려 입궐하였다.
“천한 이들이 이러한 실험과 기록을 체계화한 것은 장한 일이오나, 그것이 중전이 독단적으로 입학의 기준을 정할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으음, 이각주란 자는 중전의 궁방이 있는 곳의 촌창이로구나. 몇 년 전에 만났을 때 벌써 이빨이 서너 개 빠진 늙은이였는데 이렇게 체계적으로 농법을 시험하다니.”
“아바마마! 고등 여 학당은 어마마마께옵서 학장을 맡으실 것이온데, 어마마마께는 상의도 없이 중전 홀로 시험으로 선발해야 한다고 주장하다니요.”
“최영묘란 자는 십 대 중반의 처녀라고? 소유권을 가진 자가 제일 큰 생산 의욕을 가진다라. 으흠.”
북방을 순행하면서 재화를 향한 탐욕이 화약 폭발에 의해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게 한 현장을 많이 접했던 세종은 특히 최영묘의 라는 긴 제목의 보고서를 흥미롭게 읽었다.
홍주 일대 대지주의 여식이라는 최영묘는 아비의 허락을 얻어 네 종류 농토의 산출량을 이 년간 비교하여 분석하였다.
첫 번째는 집에 거하는 솔거 노비에게 열 마지기의 논에 벼를 심어 가꾸게 하고, 소출은 모두 주인이 갖는 것으로 하였다.
두 번째는 솔거 노비 다섯에게 각각 한 마지기씩 논을 할당하고 소출의 절반을 주인에게 바치게 하였다.
세 번째는 외거 노비로 주인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소출의 일 할만 신공으로 바치는 논 열 마지기의 생산량을 조사하였다.
네 번째는 홍주목 예산현이 현의 운영비를 충당하기 위해 공노비를 시켜 농사를 짓는 논의 소출을 조사하였다.
“아바마마. 고등 여 학당의 한 해 정원이 고작 사십 명인데, 한양의 권문세족의 여식도 다 포용하지 못할 적은 수인지라,”
“알았다, 알았어! 여봐라! 집현전의 직제학을 들라 하라.”
세종은 정의 공주의 말을 대충 흘려들으며 밖을 향해 소리쳤다.
‘집현전에서 새로운 사법 체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성삼문을 부르셨다는 것은 왕실 내외명부에서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한 여학당 입학 기준을 아예 법제화하시려는 것이다.’
이렇게 어심을 추측한 정의 공주는 재빨리 아뢰었다.
“아바마마. 고등 학당 선발 기준도 과거에서 하듯 가문과 조부, 부모까지 조상의 신원을 포함하도록 법제화해야겠지요?”
“그건 대비와 중전과 내명부와 논하여 정하거라. 여 학당을 졸업한다고 공직에 임용하는 것도 아닌데 어찌 법제화까지 가겠느냐?”
“···아니, 그럼, 왜 성삼문을······?”
“다른 일이니라. 이만 가 보거라.”
정의 공주를 내보낸 세종께서는 다시 내관 조창의를 불러들였다.
“김포 농장의 이각주를 불러오너라. 내 확인할 것이 있다.”
조 내관이 명을 받아 나간 후, 세종은 뒤 책 무더기 속에 모습을 갖추고 있는 천 상궁을 불러 최영묘가 쓴 보고서를 읽게 하였다.
“이거, 아무래도 중전의 손길이 많이 들어간 것 같지 않느냐? 아무리 총명하다고 해도 저 먼 지방의 소녀가 이렇게 체계적인 실증론을 전개하는 것이 가당키나 하냔 말이다.”
오랜 세월 세종을 보필하면서 깊은 지식을 쌓은 천 상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그 논문이란 것인가 보다. 하, 지방에 사는 소녀와 합작으로 이런 실증 연구를 할 여유까지 부리는데 왜 주상과 세자는 자꾸 중전이 무리한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주택 건설과 은행 설립에도 참여 중이시옵니다.]“그거야 어디 중전 혼자 하나. 엄자치가 내수사 장무 내관과 함께 중전을 돕고 있는데.”
[······.]“이 ‘말 없음’ 점점은 세우 작가가 쓰는 책에 많이 나오던데. 천가 너도 그 연애 놀음 책을 읽는 게야?”
[전하도 읽으셨습니까?]“나야, 내가 만든 글자가 어찌 아름답게 구현되나 확인하려고 보는 것이지. 세우 작가가 잘 다듬어 책으로 펴낸 덕에 정음이 온 백성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느냐? 그러지 않았다면 아직도 한자만이 진서라며 정음을 무시했을 것이다.”
[그렇게 근시안적이고 편협한 지식인들이 있으려고요.]“하아, 네가 문자 권력과 인간 심리를 모르는구나. 한문으로 적힌 경서로 과거 시험을 치니 오랫동안 경서를 익힐 여력이 되는 자들만 관료로 등용되지 않느냐? 정음을 여인이나 쓰는 천한 글자라고 무시하며 나라의 공식 문서에 쓰지 못하게 하면 그만큼 과거 시험의 경쟁자가 줄어드는 것이야. 서양에서는 어쨌게? 불교의 불경에 해당하는 성경이란 것을 한자에 해당하는 라틴어로만 펴낼 수 있게 했다더구나. 그래서 라틴어를 아는 사제들이 돈을 받고 면죄부란 것을 라틴어로 써주며 지옥에 가지 않게 해준다고 사기를 쳤다더구나. 제 나라 쉬운 말로 성서를 읽게 하는 자들을 이단이라고 하면서 불태웠다지? 그런 것이 다 문자를 한정하여 제 권력을 유지하려는 농간이다.”
[이런 지식도 다 중전마마께서 전하신 것이 아니옵니까? 그러니 무리를 하시는 것입니다!]“······.”
세종은 오랜 세월 입 안의 혀처럼 자신을 빈틈없이 보필해 온 벙어리 상궁을 바라보았다.
천 상궁은 입을 벌려 웃으며 두 손을 배꼽에 대고 송구한 듯 고개를 조아렸다.
“하! 뒷방 늙은이로 물러나니 상궁도 무시하는구나. 천가야, 커피나 내리거라. 세 잔 내려서, 삼문이 오면 주고 너도 한 잔 마시거라.”
성삼문이 천추전에 들었을 때 세종께선 정의 공주가 가져온 종이 뭉치와 함께 커피 한 잔을 내리셨다.
성삼문은 여름부터 ‘두창 예방 접종과 호적 조사’를 감독하는 팔도 체찰사를 맡아 조선 팔도를 돌아보고 집현전에 복귀한 지 보름이 된 참이었다.
두창 예방 침의 접종과 호적 조사에는 그간 지방에 뿌리내린 학당의 졸업생의 참여가 큰 도움이 되었다.
백성이 기본 지식을 가질 때 사회가 얼마나 바람직하게 발전할 수 있는지 현장에서 확인한 성삼문은 이각주와 전국 팔도 부농의 안주인들이 실제 농사를 지며 실험한 내용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전하, 이 내용을 저희 집현전에서 책으로 펴내 전국에 배포하겠습니다. 하던 대로 그냥 씨를 뿌리고 거두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농법을 고민하며 여러 실험을 거듭할 때 이렇게 작물 생산이 높아진다는 것을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 행해진 일인지, 아니면 의도가 있어서 이름만 빌어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인지 확인은 필요하다. 여기 홍주의 안씨 부인, 나주의 홍씨 부인, 산청의 권씨 부인, 청주의 박씨 부인 등이 모두 김포 농장의 이각주에게 시시때때로 사람을 보내 시비법과 신농법을 익혔다고 쓰지 않았느냐?”
그래서 일단 이각주를 불러들였다고 세종은 말씀하셨다.
“그보단 여기 최영묘란 아이의 기록을 보거라. 이것은 ‘논문’이란 것으로 조사하고 증명하고 싶은 목표를 정한 후 그 목표에 부합하는 집단을 표본으로 확정하고, 실제 대조 조사를 통해 목표를 실증하는 것이다.”
“이 내용만 보면 정말로 노동의 결과가 자신만의 이익으로 돌아올 때 가장 생산성이 높습니다, 전하. 그러니까 ‘인간의 생산 의욕을 고취하는 가장 큰 동인은 소유권의 보장이다.’란 결론을 조사 내용이 착실하게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거, 저희 집현전에서도 배워야 할 조사 방법입니다, 전하.”
성삼문은 점점 복잡해지는 직업의 분화와 경제 활동에 맞춰 조선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통치할 법 제정을 집현전에서 이끌고 있었다.
중국의 법전을 참고해 제정한 기존의 법 체계로는 백성의 삶을 위태롭게 하는 새로운 종류의 범죄를 처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각 분야에서 벌어지는 해로운 행위를 조사하고 그를 막기 위해 어떤 법이 세워져야 하는지 실증하는 데 유용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정말 이런 조사 방법론을 가르치는 과목도 성균관과 학당에 생겨야 할 것입니다.”
“그래, 맞다. 그런 통찰을 얻으라고 내 너를 부른 것이다. 하지만 또 모든 조사는 의도에 따라 왜곡될 수도 있지. 그걸 통계의 왜곡이라고 누가 그러더구나. 그래서 내 묻겠다. 삼문 네가 어릴 적 홍주 외가에서 자랐다고 했지?”
“예, 전하.”
“홍주에 최씨 성을 가진 대지주가 있느냐?”
세종은 이 기특한 논문이 ‘한미한 가문의 여식이 지식을 가질 때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실증하기 위해,
그래서 지방의 한미한 가문의 여식에게도 고등 여 학당의 문호를 열어야 한다고 설득하기 위해,
중전이 꾸며낸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었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