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329
329화. 세종과 성삼문과 논문 (2)
“홍주에 최씨 성을 가진 대지주가 있느냐?”
상왕 전하께서 하문하셨을 때, 성삼문은 저도 모르게 빙긋 웃었다.
상왕 전하께서 온천행을 가실 때 성삼문, 신숙주, 최항, 이개, 유성원 등 집현전의 젊은 학사들을 대동하시고는 즐겨 여러 질문을 하문하시었다.
때로는 학문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점검하는 질문으로 더 깊은 정진을 요구하기도 하셨지만, 때로는 여염의 풍속을 점검하여 당신의 치세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점검하기 위해 세간에 떠도는 소문을 확인하기도 하신 일이 떠올라서였다.
“있습니다, 전하. 제가 자랄 때 가까이 알고 지냈던 가문은 아니었으나 이태 전 중전마마께서 같은 질문을 하신 적이 있어 외가를 통해 확인한 적 있습니다.”
“···중전이?”
“예, 전하. 중전마마께선 제가 홍주에서 자란 것을 아시고 부르셔서, ‘홍주에 사는 최갑서의 부인과 여식이 김포의 농장에서 여러 농법을 배워가고 있는데, 최갑수와 그 부인 홍이자, 딸 최영묘에 대해 아는 바가 있는가.’ 하고 하문하셨습니다.”
성삼문은 최갑서와 그 부인 홍이자의 부친 홍석중이 전조 고려 시절에 홍주 일대의 유력 호족이었고, 조선 건국 후에는 중앙에 진출하지 못하고 홍주목 관아의 향리 직에 있는 자들로 홍주 일대와 그 아래 금산까지 많은 토지를 소유한 대지주라고 고하였다.
“이번에 두창 예방 접종과 호적 지문 날인 팔도 체찰사를 맡아 홍주 목에 들렀을 때 최갑서를 만났는데, 부인 홍씨가 김포 농장에서 인삼 재배법을 배워 와 금산에 큰 인삼밭을 마련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럼 이 최영묘란 아이가 진짜로 있는 것이겠구나.”
“예, 전하. 여식 이름까지는 모르나 최갑서가 제게 ‘여식 하나가 황공하옵께도 중전마마의 친필 서신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집안의 가보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고 자랑하였습니다.”
“······.”
세종은 말없이 잔을 들어 이제 식어 쓴맛이 더 강해진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최영묘란 아이가 작성한 논문의 결론 부분을 다시 훑었다.
안평 대군이 쓴 필체를 바탕으로 자음과 모음으로 나눠 낱개 조각을 만들고, 그 금속 조각을 틀에 조합해 인쇄하는 장탄복 인쇄 기법이 상용화되면서 한양 내엔 각종 인쇄물이 활발히 제작되고 있다.
그 수려한 필체로 인쇄된 논문은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인간의 생산 의욕을 고취하는 가장 큰 동인은 소유권의 보장이다. 대 토지를 소유한 지주나 나라의 공전(公田)을 경영하는 관아는 소작인의 생산 의욕을 최고로 고취할 적절 지점을 찾아야 자신의 의욕을 극대화할 수 있다.그러므로 소작인에게 토지 사용의 재량권을 대폭 허락하는 것은 지주와 관아의 자비가 아니라 이익을 위한 이기적인 전략이며, 이를 통해 지주와 관아, 소작인은 모두 함께 최적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
“···하아. 이것이 지식의 힘이로구나. 내가 만든 문자로, 중전의 지도를 통해 지방 향리의 여식이 만들 수 있는, 지식의 힘.”
세종의 옥음에 촉촉한 물기가 젖어 들기 시작했다.
“삼문, 보았느냐? 이것이 연구이고, 이것이 논문이니라. 주상과 중전이 환인과 공험진으로부터 이제 머잖아 생겨날 저 남쪽 호주의 서에 이르기까지 넓어진 조선의 강역을 이끌 때, 새 조선의 법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렇게 실증적으로 고민해 결과를 내어놓거라.”
“예, 전하. 그럼 이것을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아니다. 중전에게 가서 달라고 하거라. 그리고 이 논문이 어떻게 작성되었는지 묻고, 또 몽테스키외의 이 무엇인지 상세히 묻거라. 그것이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인지, 실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상세히 묻고, 너는 학사들과 함께 그 이념이 우리 조선의 현실에 어떻게 적용될지, 앞으로는 어떻게 발전해야 할지 이런 논문의 형태로 만들어 주상께 드려야 한다.”
“···몽의,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아!”
처음 들어보는 낯선 어휘에 당황하는 성삼문의 말을 듣고서야 세종은 자신이 무심코 권윤서가 전했던 많은 미래 지식을 누설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감동이 너무 커서였다.
집현전을 통해 많은 지식 인재를 키워냈으나, 그 지식의 역량이 하찮은 향리의 여식에게서도 발현될 수 있을 가능성을 상상해 본 적 없다.
설사 중전이 서신으로 저 결론을 유도했다고 해도 중앙 권력에서 먼 가문의 여식이 저 대담한 생각을 붓을 놀려 종이 위에 적을 담대함을 가질 수 있을 가능성을 떠올려 본 적 없는 늙은 왕은 감동에 젖어 천재적인 기억력의 고삐를 늦추고 말았다.
“젊어서 수집한 이방의 서적 중에 본 내용이었는데, 중전에게 말했더니 스스로 깊게 연구하여 대단한 성찰을 이뤄냈더구나. 몽테스키외란 자가 지은 이다. 가서 물어보면 중전이 잘 설명할 것이다.”
“예, 전하. 중전마마께서 대단한 통찰을 하셨다니, 우리 집현전도 분발해야겠습니다.”
성삼문이 깊게 허리를 굽히고 나갔다.
‘대학이란 곳이 이렇게 연구를 하는 곳이로구나. 고등 여 학당도, 장차 성균관도, 또 세워질 많은 과학 대학도 지식을 첩첩이 쌓아 더 깊은 진리를 실증해내는.’
세종은 오랫동안 조선의 고등 교육 기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그 방향에서 자신과 중전 권윤서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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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그 산청의 권씨 부인과 주고받은 서신 원본도 챙기거라. 그 왜, 그거, 아이고, 갑자기 임금님이 부르시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중전의 궁방전이 있는 김포 농장의 촌장 이각주는 정신이 혼미했다.
궐에서 갑자기 내관이 와서 상왕 전하께서 부르신다는 어명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 궐에 들어가 중전마마를 뵙고 인삼 재배 현황, 닭과 돼지, 소의 사육 현황, 계분 등 비료를 넣었을 때의 작황 현황, 인근 황무지를 개간해 농지로 만드는 일의 진척 등을 보고하고 또 오육 년 전 한양에 초빙되어 중전을 뵙고 신진 농업을 고심하기 시작한 부인들과 서신을 주고받는 현황을 보고하는 등의 일을 해왔지만.
‘금상 전하도 아니시고 상왕 전하께서 촌의 늙은이에 불과한 나를 부르실 땐 뭔가 큰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큰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이각주는 그간 중전마마의 지도 하에 작성한 모든 기록과 전국의 부인들과 주고받은 주요 서신을 챙겨야 한다고 직감하였다.
“권씨 부인 서신이면 그 계분 비료랑 어(魚) 삭힌 비료 청한 것 말씀이시죠? 아이고, 아부지! 뭘 그리 떠신대요?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중전마마 말씀 따라 그저 열심히 농사 짓고 짐승 키우고 비료 연구해서 나눈 것밖에 더 있어요?”
“할아버지! 제가 세자 저하께 받은 서신도 가져올까요? 스무 통도 넘는데, 다는 그렇고. 아! 열심히 지식을 익혀서 넓은 세계로 나가라고 한, 그 격려 서신 챙길까요?”
이각주의 딸은 재게 손을 놀려 산청 권씨 부인, 홍주의 홍씨 부인과 그의 딸 최영묘 아기씨의 서신 등 주요 서신을 정리하고,
외손주 만이는 외할아버지가 너무 긴장하시니 이 농장 일대가 중전마마는 물론 세자 저하까지 각별하게 아끼시는 곳임을 증명할 서신을 생각해 냈다.
“그래, 그 서신도 챙기고, 만이 너도 함께 가자. 상왕 전하께서 여기 오셨을 때 네 고작 다섯 살 때라 그 귀하신 용안을 뵌 기억도 안 나지 않느냐?”
“주책이유, 영감. 임금님이 그냥 손주 뵈어주구 싶다고 막 뵈어줄 수 있는 분이시유?”
“아, 그렇지. 아이고 내가 막, 심장이 벌렁벌렁 해가지고.”
“전 세자 저하 뵐게요. 재작년에도 여기 둘째 왕자님과 그 친우 분과 오셔서 같이 바다 낚시도 하셨잖아요. 내년에 무관학교 갈 건데, 미리 인사도 드릴 겸.”
“그런데 중전마마는 아시나? 상왕 전하께서 나를 부르셨다는 것을?”
“영감은 참, 별 걱정을 다 하시네. 이렇게 먼 김포에 연통이 올 동안 바로 붙어 있는 중전마마께 연통이 안 갔을라구유?”
“그, 그렇겠지? 우리 중전마마는 매사 척척 다 아시는데 괜한 걱정을 했네. 아, 그, 저기 가장 실한 닭도 열댓 마리 묶고, 또 그 홍삼 만든 거, 그것도 제일 좋은 걸로 다섯 단지 챙기고. 엊그제 엿 고았지, 그것도.”
“아버지. 벌써 다 챙기고 있어요. 마을 사람들도 궐에서 사람 왔다니께 중전마마와 왕자님 공주님 드린다고 별스런 거 다 챙기고 있고요.”
“잉, 그려. 다 챙겨서 마차에 실어라.”
이 촌장은 상왕 전하께 보여드릴 자료 뭉치와, 자신과 동네 사람들이 마련한 온갖 물품을 마차 세 대에 그득 싣고 아들, 사위, 친손주와 외손주, 마을 장정들과 함께 한양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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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문이 알현을 청했을 때.
윤서는 협경단의 집무실에서 여성 최초 의원에서 어의로 승진한 순덕에게 해외 동향을 보고받고 있었다.
순덕이 수장으로 있는 비밀 조직 의지(意志)는 의녀와 여 의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대개의 경우 조직원의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
이를테면 지난 초여름 윤사로를 비롯한 몇몇 거부와 그들의 부인이 반반한 노비에게 기초 의술을 가르친 후 해외에 비싼 값을 받고 노예로 파는 수출 계획을 윤서에게 알린 이도 순덕이었다. 그런데 이는 중전의 첩보 조직장으로 행한 것이면서 동시에 의지의 대표로 무분별하게 생산되는 의녀를 막아 취재를 통해 뽑힌 정식 수련 의녀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해외에 파견된 의지의 조직원은 우리 조선인의 건강을 돌보고 질병을 치료하는 의료인이지만 그중 몇은 머리카락 사이에 意(의)를 새긴 비밀 첩보원이다.
이들은 북경 인근 천진항에서 인천으로 오가는 상단 배편,, 그리고 여송에서 유구를 거쳐 인천으로 오는 상단 배편, 일본 대내전에서 인천으로 오는 상단 배편으로 한 달에 한 번 이라 적힌 서신을 순덕에게 보낸다.
현재 해외에 나가 있는 의녀, 의원 첩보원은 여섯으로 분희란 이름의 의녀는 북경의 공신 부인 곁에, 임아송이란 이름의 의녀는 한남군의 처 부부인 권씨 곁에, 그리고 정식 의원 자격을 얻을 만큼 제대로 된 의학 지식을 갖춘 네 명의 의원 최복남, 안종말, 한이서, 구효이는 모두 여송에 세워진 병원에 나가 있다.
이들은 낯선 풍토의 여송에서 질환에 시달리는 이들의 건강을 돌보며 동시에 귀부인들의 현지 적응을 돕고 향수병과 우울감을 치료하는 심리 요법도 병행한다.
별일이 없을 때 서신은
[스승님 존체 무탈하시옵니까?]하는 문장으로 시작하여 파견지의 일상과 동향을 보고한다.
별일이 있을 때 서신은
등으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 의원직에 대한 고충, 날씨를 주제로 시작하게 되어 있다.
이럴 때 보고 해야 할 본 내용은 사전에 약속된 물건 속에 따로 계산서처럼 숫자로 동봉되어 온다.
가로세로 열 칸의 숫자판에 자음과 모음이 만나 글자 이루는 것을 숫자로 표기한 일종의 기초 암호문으로, 희아가 한글의 자모와 숫자를 연결지어 고안한 것이었다.
이날 제일 먼저 올라온 것은 북경 공신 부인의 의녀로 가 있는 분희에게서 온 암호문이었다.
순덕이 한글로 해독해 올린 내용을 단숨에 읽은 윤서가 고개를 들자 순덕이 물었다.
“새해 동지사가 돌아올 때 이 제안을 받아오지 않겠습니까?”
“우리 왕실 위상이 많이 높아지긴 하였네.”
윤서가 피식 웃으며 종이를 확 구겼을 때.
밖에서 시녀 상궁이 고하였다.
“중전마마, 직제학 성삼문이 알현을 청하옵니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