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336
336화. 홍위의 시대 (2)
“아바마마께서는 늘 소자에게 예기(禮記)의 ‘악자 천지지화야 (樂者 天地之和也), 예자 천지지서야 (禮者 天地之序也)’의 가르침을 강조하셨습니다.”
사상과 윤리까지 달라지는 홍위의 시대를 금상은 용인할 것인가.
엄중하게 물으시는 상왕 전하의 시선을 받으며 이향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악(樂, 음악)은 천지의 조화로움이고 예는 천지의 질서이니, 예로서 민심을 규제하고 악(樂)으로 백성의 성정을 조화롭게 만들어 바른 정치를 세우는 한편 형벌로 바르지 못함을 예방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아바마마께서는 그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시어 예악이 정제된 오늘의 조선을 제게 물려주셨습니다.”
세종은 실로 그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일생의 노력을 다해왔고, 그로 인해 후대에서 만고의 성군이란 칭송을 받는다는 것을 권윤서에게 들어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행한 치도(治道)가 어긋난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냐. 아니, 그보다는.”
엄격하게 빛나던 세종의 눈에 비탄이 스며들었다.
“내가 세웠던 그 번듯한 예악의 질서가 우리 홍위를 지키는 데 하등의 도움이 아니 되었다는 뜻이겠지.”
“할바마마!”
“아바마마, 홍위를 지키지 못한 것은 저의 책임이지 아바마마의 불찰이 아닙니다. 또한 아바마마께서 세우신 예악의 질서가 그르다는 뜻도 아닙니다!”
이향의 어조가 강경해졌다.
정말이지, 깊은 지식의 탐구 끝에 믿는 바를 최선을 다해 행하신 부왕의 업적과 삶을 폄훼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다만 여러 제후가 쟁패를 다퉈 백성의 삶의 곤궁한 시대의 어지러움을 치유하기 위해 제자백가와 공자의 가르침이 나왔고 국초 통치 질서가 미흡한 아바바마의 재위 시기에 의례가 갖춰지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처럼 정치, 경제가 급변하는 지금에는 홍위의 주장이 그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향은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부인이 절대로 입에 담지 않아 오히려 더 그 참혹함을 짐작하는 아비의 회한이 순간 거세게 터져 나왔다.
그러나 이향은 이미 다른 길에 들어선 역사에 연연하는 필부가 아니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고 바다를 건너 새 영토를 개척하게 하는 확장의 군주이자, 그 넓어진 영토를 안정되게 할 차기 군주를 키워내야 하는 왕이니.
“···지금 우리 조선은 궁방전과 공신전의 수조권을 회수하는 문제, 내년부터 왕실 은행에서 대부업을 시작하는 문제, 새로이 복속된 지역의 여진족의 통합, 노비에서 양민으로 속량된 백성의 과세 등으로 겉으로는 평온하나 속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한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습니다. 모두 숨을 죽이고 눈치를 살피는 이 시기에 우리 홍위는 이미 처신으로 웅변하였습니다.”
아비의 굳건한 시선이 건장하게 성장하고 있는 소년의 얼굴을 훑었다.
“고귀한 세자조차 자신의 여흥에 책임을 지는 세상이 온다는 것을, 귀하다 칭해지는 이들 모두 마땅히 법과 규범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홍위를 통해 그 시대를 미리 엿본 백성들은 당장의 혼란을 감수할 용기를 가지고 기꺼이 저의 편에, 그리고 홍위의 편에 설 것입니다.“
“감당할 수 있겠느냐?”
임금과 왕실의 권위가 약해지면 지배층과 백성 모두 제 이익을 위해 거리낌 없이 불만과 욕망을 표출할 것이다.
기득권을 누렸던 층은 은밀하게 관리들과 백성을 움직여 너의 정책을 무위로 돌리려 할 것이고.
배움이 짧고 잃을 것이 많지 않아 쉽게 과격해지는 무리들은 거칠게 자신들의 욕망을 표출할 것이다.
위아래 모두 제 목소리를 높이며 기존의 질서를 무시할 그 혼돈을, 너는 감당할 수 있겠느냐.
“감당해낼 것입니다. 새로운 통치 질서를 세울 것입니다. 아바마마께서 하신 것처럼 저만의 질서가 조화로운 조선을 세자에게 넘겨줄 것입니다!”
그것이 아비의 의무이자 국왕의 의무입니다.
이향이 상왕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송 내관에게 홍위의 일을 저잣거리에 퍼뜨리라 명하였습니다. 지금 한참 불만을 품은 세력도, 신년 하례를 올리기 위해 입조하고 있는 여진과 왜인 사절도 모두 곧 알게 될 것입니다.”
“!”
숨기기는커녕 도리어 소문을 퍼트린다라!
“···거름망으로 쓰겠다는 것이로구나.”
홍위의 사건을 듣고 어떻게 나오는지를 기준으로 국왕의 새 질서에 순응하려는 자와 맞서려는 자를 가려내겠다는 뜻이로구나.
맞서는 자들 다수가 왕실의 친인척이거나 공신 가문의 인사들일 것이니.
하아.
“한바탕 숙청의 피바람이 불겠구나······.”
세종은 탄평온하였던 자신의 치세를 찬찬히 되짚어보았다.
의례가 정교해지고 음률이 가다듬어지면서 국토가 넓어지고 세상이 화평하였던 세월. 왕족은 고귀한 특권을 누리고 학문이 빼어난 학자 출신 관료가 제 실력을 발휘하던 태평성대의 시절.
그러나 겉으로 평온하였던 그 시절에 후대의 모순의 씨앗은 그 뿌리를 깊게 내려 결국 죽음 이후 삼사 년이 지나지 않아 소중한 인재의 절반이 역도의 철퇴에 맞아 죽고 급기야 가여운 내 손주 홍위가······.
“······.”
형용할 수 없이 복잡한 회한으로 흐려지는 눈동자가 이제 곧 열두 살, 지켜줄 이 하나 없이 고아로 보위에 올랐던 손주를 눈에 담았다.
“할바마마!”
그 시선의 의미를 모르지 않는 홍위는 그러나 찬란하게 웃었다.
이제 막 청년기에 들어서기 시작한 소년의 패기가 옥처럼 맑은 얼굴에 선명하게 빛을 내었다.
“저는 저의 즐거움에 책임지는 인간이자, 통치의 엄중함을 잊지 않는 세자가 될 것입니다! 오래오래, 할바마마보다도 오래 살아 효를 다할 것입니다!”
“하아!”
손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종은 눈을 질끈 감았다.
왕권의 강화에 저해가 되는 인간은 누구든 죽이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던 철혈의 군주 부왕 태종께선 의외로 신하를 붙들고 펑펑 눈물을 떨구는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보였다.
그러나 세종은 신하들 앞에서도 자식들 앞에서도 좀처럼 눈물을 보인 적이 드물었다. 극단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중용을 강조한 성현의 가르침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세종도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는 눈물을 절제하지 못하였다.
이제야 세종은 권윤서가 왜 시시때때로 붉게 물드는 눈가로 이를 악무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울먹이는 모습부터 저리 찬란하게 웃는 모습까지,
모든 모습이 문득문득 저 아이가 겪었을 그 가여운 운명을 떠올리게 하면서 가슴을 미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할바마마.”
회한에 떠는 상왕을 홍위가 부드럽게 위로하였다.
제가 이리 굳건하게 크고 있습니다.
소손 어떤 일이 닥친다 한들 기필코 강한 왕으로서의 일생을 살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눈물을 거두소서.
홍위의 부름이 늙은 왕의 완고함을 뒤흔들었다.
세종은 얼굴을 가렸던 손을 내리고, 차분한 눈으로 주상과 세자에게 선언하였다.
“좋소! 주상의 새 질서를, 그리하여 세자의 새 세상을 내 진심으로 지지하겠소!”
그것이 설사 다른 자식의 희생을 불러오는 일일지라도!
세종은 드디어 자신의 눈앞에서 피바람이 몰아치는 것을 감수하겠다고 결심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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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 전하와 국본의 결심도 모르고 세상은 속절없이 들끓었다.
‘세자가 노비 아이들을 이끌고 참외 서리를 하다 잡혀 볼기를 맞았다더라’는 소문은 누가 퍼트리느냐에 따라 그 함의가 천차만별이었다.
“반상의 법도가 문란해지니 천한 것들조차 세자 저하의 품행을 함부로 그 주둥이에 담는 것입니다. 엄히 처벌하여 왕실의 존엄함과 국법의 지엄함을 만천하에 보여야 합니다!”
“국본을 능멸하는 강상죄를 저지른 인간들이 선진 농법서를 펴내는 참담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도덕을 경시하고 이익만 위하는 세태, 본분을 잊고 지식만 앞세우는 부도덕한 무리를 엄히 징치해야 합니다.”
이는 주로 지금의 변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지배층 무리에서 터져 나온 비판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다수의 청년 무리들은 반응이 사뭇 달랐다.
“세자 저하께서 고리타분한 도덕군자이신 줄만 알았는데 과감하고 호쾌하시네.”
“저하께서 놀기 좋아하시니 젊은이들을 위한 놀이도 많이 생기겠어. 탑돌이며 석전이며 여러 세시 풍속이 자꾸 문란하고 부도덕하다고 비판받는 것이 안타까웠는데.”
“활도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잘 쏘신다는데 저리 활달하시면 태조 대왕처럼 직접 군사를 이끌고 출정하실 수도 있을 것이야. 출세하려면 무관이 되어야겠어!”
“어머나, 벌써부터 저리 늠름하신 세자 저하의 짝은 누가 되실까. 곧 금혼령이 내리고 빈을 뽑지 않을까? 그럼 나도 사주 단자를 넣어야지!”
젊은이들은 대체로 열광적으로 반응하였다.
그러나 정말로 세자의 입지와 평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들은 은밀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상왕 전하께서는 어떠하신지요? 벌써 불호령이 내렸어야 하는데 어째서 궐이 이리 조용한 것이오?”
“곧 새해가 되어 북방의 여러 여진족과 일본의 여러 번, 유구에서 사절이 많이 들어와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들이 알게 되는 것이 민망하셔서 두 분 전하께서 침묵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면 새해 첫날 해외 사절단을 접견하고 연회를 베풀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되겠군요. 그런데 왜 그 김포 농장엔 별 탈이 없는 것입니까? 지금쯤 의금부에 끌려가 혹독하게 고신을 당하고 있어야 할 놈들이 여느 때처럼 육수 낼 닭과 꿩을 대량으로 판매하고 있다는데요.”
“한양 도성에서 판매되는 꿩과 닭의 이 할이 거기 농장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지금 같은 시기에 문제가 생기면 차례를 어떻게 지냅니까?”
“그럼 먼저 사간원과 사헌부를 움직입시다. 강상죄로 시끄럽게 떠들어서 새해 원단 행사가 마무리되자마자 일이 시작되게 말이지요. 공신전을 소유한 가문의 인사들을 부추기면 될 것입니다.”
“마침 새해 안부를 여쭙기 위해 상왕 전하 내외를 알현할 것이지 않습니까? 모두 입을 모아 이 일로 세간의 민심이 우리 왕족을 얼마나 쉽게 능멸하게 되었는지 지속적으로 하소연해야 합니다. 상왕 전하께서는 특히 왕족의 권위에 아주 민감하셨으니 크게 노하실 것입니다!”
이런 부추김에 의해 드디어 상소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세자 저하께옵서 행하신 바를 불경하게 입에 담은 자들에게 관용을 베푸는 선례를 만들지 마옵소서.]하고 온건하게 시작된 상소는 점점 더 어조가 강경해져서 마침내 세자의 교육을 담당한 성균관의 스승 성삼문, 유득공, 윤상, 신숙주 등까지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마침내, 침묵으로 일관하는 금상 전하의 태도에 기세를 입어 더욱 강경한 비판 상소가 올라왔다.
[세자 저하의 교육에서 성현의 가르침이 소홀히 되며 나타난 결과입니다.아침저녁으로 마땅히 행해져야 할 서연이 실행되지 않은 지 오래라 듣고 신 등은 참담함을 금하지 못하였습니다.
여염에서도 뜻이 충만한 젊은이들은 매일 몸을 가지런히 하고 성현의 가르침을 읽고 암송하며 군자의 도를 익히고 또 익힙니다. 하물며 이 나라 조선의 국본은 어떠하셔야겠습니까.
게다가 여염에서도 장성한 자식은 사랑에 멀리 따로 머물며 배움에 힘쓰는데, 어찌하여 왕가에서 세 칸짜리 서민의 가정에서나 하듯 아침저녁으로 격의 없이 지내며 서로 예의와 절제를 하지 않는 것입니까.
오늘 세자 저하께서 보이시는 지나친 관대함은 엄격하지 않은 궐의 생활에서도 기인되는 바, 이에 대하여 깊은 우려와 통탄을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종류의 상소가 사헌부와 사간원 등에서 올라와 쌓이기 시작하였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