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337
337화. 그물망 속 불온한 움직임 (1)
국본의 교육과 왕실의 내밀한 가정생활까지 거론하는 상소가 올라오는데도 이향은 묵묵무답으로 일관하며 정무에 몰두하였다.
“임지에 도착하면 현지 갑사 부대와 협력하여 치안을 유지하는 것에 각별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최근 도로가 발달하고 상업이 활발해지니 산적이 많아져 백성들이 불안해한다는 장계가 많이 올라오고 있다. 또한 노비 속량의 대가로 황무지 개간권을 행사하는 이들이 원활하게 제 권리를 행사하도록 돕고, 또한 더 비옥한 토지를 놓고 지주들이 서로 갈등하지 않도록 질서를 엄중히 세워야 할 것이다. 필요하면 중앙에 법률 박사의 파견을 요청하라.”
지방 각지에 임관되는 신임 현령을 친견하며 민생을 잘 돌볼 것을 당부하고.
“호조 산하에 조세부를 따로 신설하고 각 분야별 조세의 책정 및 부과를 전문으로 하는 관원을 선발한 일, 또 각 현까지 조세 수취만 전문으로 하는 관원을 파견하는 일 모두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처음의 주춧돌이 바르게 놓여야 그 위의 기둥도, 지붕도 튼실히 올릴 수 있는 법. 너희는 조선 조세 제도의 시금석을 놓는다는 각오로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호조에서 기본 경서 시험과 고급 산학 시험, 조세에 관련된 법률 조항을 묻는 시험을 통해 선발한 종6품 조세관 주부 일백 인을 불러 어주를 내리고 위로는 현감, 아래로는 지방의 향리 등과 긴밀히 협력하며 종합적인 조세 행정의 기초를 다지라 당부하였다.
그리고 또 외방과 해외에 나가 있던 관원을 친견하는 일도 이어졌다.
건주 여진의 이만주를 죽이고 조선의 영토로 복속한 환인 지역에 우리 조선군이 주둔할 성을 축조하는 일을 감독하기 위해 북방에 나가 있던 공조판서 정분이 귀경하여 고하였다.
“오녀산 위에 고구려 졸본성으로 추정되는 산성의 잔해가 남아 있었습니다. 이를 기초로 구운 벽돌로 촘촘하게 성곽을 쌓고 동서남북 사방에 높게 망루를 세우고 화포를 거치할 성가퀴까지 든든하게 세웠습니다. 오녀산성은 우리 조선의 서북쪽 최전선을 지키는 든든한 요새가 될 것입니다, 전하.”
“추운 북방의 국경에서 노고가 참으로 많으셨습니다, 정 대감. 지난 봄 상왕 전하를 모시고 의주에 순행을 나갔을 때 위화도까지 연결하는 다리가 한창 건설 중이었습니다. 의주에서 그 북쪽 환인으로 통하는 압록강의 다리는 완성되었습니까?”
12월 성균관이 방학에 들어간 이후 전하 곁에서 국정 운영을 배우고 있는 세자 홍위가 물었다.
그러자 정분이 눈까지 깊은 주름이 패도록 활짝 웃으면서 고하였다.
“예, 저하. 장마철 폭우로 수량이 늘 때에도 상판 위로 흙탕물이 범람하지 않도록 기둥을 높이 세워 건설하였습니다. 세자 저하께서 그 다리를 건너 새로 우리 조선의 현이 명실상부하게 설치될 환인 지역에 행차하시어 우리 조선의 정착민과 또 여진의 복속민을 격려하시면 참으로 의미가 깊을 것입니다.”
정분이 세자 저하를 향해 이리 흐뭇하게 웃는 이유는 환인 지역에 머무는 내내 축성술을 배우기 위해 참관을 왔던 여진의 추장들이 세자 저하 칭송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또한 한양에 돌아오자마자 세자의 소문을 듣고 ‘여덟 살 어리신 연치에도 백성을 관대히 품을 줄 아시는 성품이시니 여진의 여러 부족도 세자 저하라면 든든하게 믿고 신뢰할만하다 환호하는 게지.’ 하고 뿌듯하게 수긍했기 때문이다.
“세자가 그 다리 이름을 짓고 현판을 써서 내리는 것은 어떠하냐?”
“전하, 소자의 글씨는 아직 전하의 유려한 필체에 미치지 못합니다. 전하께서 내리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니다. 아까 병조판서도 와서 고하길 여진의 여러 부족장이 이구동성 네가 북방을 순행하면서 보여준 모습이 마치 태조께옵서 살아 돌아오신 듯하다고 말한다니, 그 의미를 잘 살려 이름을 짓고 현판을 써 보내거라.”
“소신도 전하께 동의합니다, 세자 저하.”
이렇게 전하께서 여전히 정무를 처리하시기에만 전념하시고.
중전도 별다른 내색 없이 새해 궁중 연회, 고등 여 학당의 개원, 은행의 대부 업무 운영안 등에만 몰두하였다.
논란의 중심에 선 세자도 성균관과 학당의 방학을 맞이하여 전하의 곁에서 정무를 배우고, 또 짬짬이 유난히 잦은 폭설 속에서 사촌과 동생, 호위군과 함께 사냥을 호쾌하게 즐겼다.
상왕 전하 내외분은 겨울 추위를 구실로 공주와 옹주, 여러 대군의 알현 요청을 거부하시고 경복궁 후원에 마련된 온천 욕탕에서 온천욕과 찜질을 즐기셨다.
왕실이 세자를 둘러싼 논란에 전혀 대응을 하지 않자 세간에서는 점차 침묵을 둘러싸고 해석이 분분해졌다.
“두 분 전하와 세자 저하께서 과오를 인정하시는 것입니까? 세자 저하께서 서연을 재개하지는 않으셨지만 주상 전하의 곁을 지키며 정무를 참관하시는 것 자체가 지난날 제대로 된 배움이 부족했음을 자인하신다는 뜻인지요, 직제학 영감.”
개국 공신 김사형의 증손으로 집현전 학사이자 병조 좌랑을 겸직하고 있는 김질이 집현전의 직제학이자 세자의 스승이었던 성삼문에게 넌지시 물었다.
전국에 파견될 현감과 조세관에게 나눠줄 새 법률서의 최종 검수와 출간에 집현전의 지박령이 된 성삼문이 퀭한 눈으로 되물었다.
“세자 저하께서 무슨 과오를 저지르셨다고 이런 질문을 하시는가? 윤 참봉이란 자가 세자 저하인 줄 모르고 저지른 일에, 또 우리 저하께선 또래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하신 것을.”
“직제학의 말씀이 옳으이. 나는 비록 저하께 해외의 외교 관련 지식을 일 년 남짓밖에 가르쳐드리지 못했지만, 이번 일을 들으니 우리 저하께선 백성의 마음을 보듬는 법에 아주 탁월하시네. 시대가 달라졌으니 위엄을 보이는 법도 달라질 밖에.”
옆에 있는 신숙주도 퀭한 눈 속에 세자 저하의 스승이었다는 뿌듯함을 가득 담고 성삼문의 말을 거들었다.
“그럼 직제학과 부제학께서는 두 분 전하께서 오히려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시어 침묵하신다고 생각하시는 것이군요?”
“어허, 자네! 글재주 좀 있어 전하께서 법률 조항을 다듬으라 여기 집현전에 보내셨건만 어째서 일에 집중하지 않고 바깥일에만 신경을 쓰는 것이야! 지금 온갖 군데로 나눠진 조세권을 조세부 한 곳으로 일원화하는 것, 또 관원과 왕족에게 나눠주었던 수조권을 환수하는 것 등을 담은 법률 조항을 만들고 다듬느라 여기 범옹(신숙주), 정보(최항) 모두 올빼미처럼 눈을 부릅뜨고 있는 거 아니 보이는가? 이리 흥덩거리며 방해를 놓을 바엔 나가시게! 가서 병조 좌랑 일이나 보시게!”
병조 좌랑 김질이 이렇게 집요하게 두 분 전하의 어심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장인 정창손 때문이었다.
세종이 추구하는 새로운 외교, 무역 정책에 대해
“우리 조선은 지금 중화 질서 내에서 특별한 인정을 받는 동방의 소중화이고, 상국 또한 황제의 명으로 해안을 닫아걸었는데, 왜 우리 조선은 굳이 거대한 배를 지어 사시사철 덥기만 하다는 그 미개한 검은 오랑캐의 나라까지 수고롭게 가야 합니까?”
“전하, 지금 나날이 가뭄이 심하고 때때로 요성(妖星)이 출몰하여 때아닌 바람이 불고 하는 것이 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백성을 수고롭게 하면 하늘이 재이(災異)를 내리는 것입니다.”
하고 핏대를 세우며 비판하다가 의금부에 갇힌 후 파직당한 정찬손은 그 이후 빼어난 학식을 내세워 사설 학당을 세웠다.
이 학당에서 가르치는 것은 유학 경전만이었는데, 중앙 관료를 뽑는 과거 시험에 여전히 유학 경전의 내용이 들어가는지라 문하의 학생이 아주 많았다.
하지만 아무리 전국의 명문가 자제를 학생으로 거느리고 있다고 해도 전하의 총애를 받으며 조정에서 활약하던 시기가 그립지 않을 수 없고, 그리하여 정창손은 다시 관직에 돌아가길 간절히 원하였으나 상왕 전하도 금상 전하도 부르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정치의 무대에서 잊혀지는 상실감에 몸부림치던 차에 마침 세자의 볼기 사건 건이 터졌다.
‘보아라!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천한 것들에게 문자를 쥐어 주고 출처가 확실치 않은 지식을 전수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함부로 양인으로 만든 결과가 무엇인지를!’
정창손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제자들 앞에서는 왕실의 권위가 이리 능멸당하는 것에 분노하고 한탄하였다.
그러던 차에 상왕 전하의 따님 정현 옹주의 남편 영천위 윤사로가 찾아왔다.
평소라면 아무리 신분이 귀한 부마라도 근천스럽게 부를 탐하는 영천위를 상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윤사로의 말이 뜻밖이었다.
“우리 옹주께서 장모님을 통해 파악하니 상왕 전하께옵서는 이번 일에 아주 상심이 크시다고 하오. 왕실의 권위와 신분의 정교한 위계질서를 엄중히 세우고자 상왕 전하께옵서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셨는지는 집현전에서 전하를 오랫동안 보필한 정 공이 가장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 말을 들은 정찬손의 귀가 활짝 열렸다.
정말로 상왕 전하께옵서는 중국에서 사신이 왔을 때 몇 걸음을 걸어 꽃을 건네고, 또 몇 걸음을 뒤로 걸어 나와 읍해야 하는지까지 의례를 정교하게 세우시고자 하셨다.
“경의 말씀은 그러니까, 상왕 전하께서 깊게 상심하셨으나 상왕으로 물러나 계신지라 그 상심하심을 표현하지 못하신다는 뜻이외까?”
“역시! 충신은 다르시군요. 상왕 전하께 그리 아낌을 받았으면서도 권력이 무엇인지 다른 집현전 출신 신료들은 금상 전하의 어심을 흩뜨려 기괴한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온데 재야에 물러나 후학을 키워내며 여전히 성현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계신 정 공의 충심은 이리 변함이 없습니다. 사위가 되어서 얼마나 마음에 감동이 이는지. 하아, 정 공뿐입니다!”
이렇게 정창손을 붕붕 띄운 윤사로는 슬그머니 목적을 내어놓았다.
“저리 고립되시어 상심이 크신 상왕 전하를 위해 제가 왕실의 위신이 실추되게 된 이 일의 처음이 노비제를 급하게 폐지하면서 신분 질서가 흐트러진 것부터 시작해 여러 급진적인 시책이 겹치고 겹쳐 일어난 일임을 학문적인 근거를 대어 고하고 싶지만, 저는 돈을 버는 일에나 재주가 빼어날 뿐입니다. 하아, 정말로 부끄럽고 안타까워 죽고만 싶은 심정입니다.”
“······.”
정창손은 윤사로의 말을 다 믿을 만큼 순진하게 멍청하지 않았다.
윤사로가 이리 와 자신을 부추기는 것은 윤사로가 재물을 벌어들이는 주요 수단인 고리대가 왕실 은행에서 저리로 대부업을 공식 시작하면 위기에 처할 것이기에 그를 막고자 하거나, 최소한 고리의 고리대업을 금지하지 않도록 여론을 조성하기 위함임을 잘 알았다.
그래서 자신처럼 학식이 깊은 유자(儒者)를 움직여 새 시책을 비판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지방의 유학자 대부분이 노비를 많이 거느렸던 지주임을 이용해 동조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서라는 것도 한눈에 파악했다.
하지만 이것이 잊혀진 채 학생이나 가르치고 있는 자신의 존재를 두 분 전하께 다시 상기시킬 절호의 기회임도 모르지 않았다.
정말로 이렇게 중앙 정치에서 소외된 채 살기에는 남은 세월이 너무 길었다!
“···정말로 상왕 전하께서 상심하시었단 말씀이오?”
“그러합니다. 질녀께서 궐 안에 계시니 확인해보시지요.”
질녀란 금상 전하의 후궁 정 소용을 말한다.
정창손은 그래서 궐에 사람을 보내 정말로 상왕 전하께서 상심해 계시는지를 물었다.
숙부처럼 한때 귀인으로 궐의 대소사를 쥐고 흔들다가 소용으로 추락해 왕실 여학당에서 유학 경전이나 가르치는 신세가 된 정 소용은 상궁을 보내 상왕 전하의 동태를 엿보았다.
그리고 붓을 들어 숙부에게 답신을 썼다.
[상왕 전하와 대비마마께옵서는 혜빈과 신빈 등 여러 후궁과 함께 온천욕과 찜질을 하실 뿐 외부와 소통을 하지 않으십니다.세자 저하와 여러 대군 아기씨, 공주 아기씨의 재롱이나 보실 뿐 정의 공주의 알현 요청마저 추위가 심해 감기가 들었으니 신년 하례 때나 보자시며 거절하셨다 하옵니다.]
답신을 받은 정창손은 확신하였다.
‘정말로 상왕 전하께옵서 상심하셨도다! 내게 자식을 맡긴 지방의 유자들에게 연통을 돌려야 한다! 왕실의 위엄이 추락한 것을 애통해하시는 상왕 전하를 위해 전국의 유자들이 떨쳐 일어나야 한다!’
그럴듯한 명분과 함께 노비제 폐지를, 어지러운 신분 질서의 혼돈을 비판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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