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344
344화. 홍위의 첫사랑 (1)
“옹주 자가, 이휴, 숨차라. 자가, 저건 코알라가 아니고 캥거루예요.”
종종걸음으로 따라온 한가 나인이 숨을 헐떡이며 금아에게 일러주었다.
그 사이 세자 홍위와 구성군 계동, 그리고 아홉 살 생일을 맞이하여 ‘넓게 세상을 내려보는 봉우리’란 뜻의 ‘광헌(廣巘) 대군’으로 정식 봉작된 금동이, 금동이의 단짝으로 함께 영순군으로 봉작된 수복이, 그리고 남이(몽아)가 금아 곁에 다가왔다.
“코알라가 아니라 캥커루구나. 그럼, 코알라는 뭐였지?”
“코알라는요, 옹주 자가.”
남이가 재빨리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곰처럼 생겼는데 머리가 더 동그란 거요. 새끼 등에 업고 있는. 그놈은 지금 식물원에 있어요. 데려올 때 함께 캐온 나무가 시들시들해져서 거기서 보살피고 있대요.”
경복궁 서남쪽 사직단 옆으로 커다란 식물원이 들어섰다.
이방의 여러 지역에서 캐내 온 식물을 연구하여 국내 과실수와 접목하거나 약용으로 재배하기 위한 목적, 또 순수 관상용으로 키워내려는 목적으로 조성된 왕실 식물원이었다.
코알라만 식물원으로 옮겨져 특별한 보살핌을 받게 된 것은 작은 공주님 소아 덕분이었다.
코알라를 한 번 본 후 코알라 인형을 만들어달라고 졸라 매일 업고 다니는 막내를 보고 웃던 윤서가 불현듯 대나무 잎만 먹는 팬더처럼 코알라도 유칼립투스 나뭇잎만 먹는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고 유칼립투스 나무가 죽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돌보라고 명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금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 바깥에 수북하게 쌓인 신선한 먹이 더미를 가리키며 물었다.
“으응? 여기 풀이랑 과일이 이렇게나 많은데?”
“코알라는 유칼립투스라는 나뭇잎만 먹을 수 있다는구나. 그런데 그 나무가 토질이 안 맞는지 여기서는 잘 자라지 않아서 농학에 밝은 이들이 있는 식물원으로 옮긴 것이야.”
홍위가 다정하게 설명하며 금아가 걸어온 방향을 유심히 살폈다.
실과 바늘처럼 늘 금아와 함께 붙어 다니던 송선이란 아이가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마음이, 허전하다.
“이름이 너무 어려워.”
금아가 히잉, 콧소리를 내며 자신의 무지를 변명했다.
“캥커루는 그냥 ‘두 발 큰 콩콩이’라고 하고, 또 엄뱃은 ‘두 발 작은 콩콩이’라고 하면 되는데.”
“그러게요. 우리 옹주께서는 정말로 이름을 잘 지으시네요. 시를 잘 지으셔서 그런가 봐요. 지어오셨다는 시, 저는 무척 듣고 싶어요.”
남이가 열심히 금아 옹주를 위로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수복이가 금동이의 팔을 툭 쳤다.
“아무래도 몽아(남이의 아명)가 우리 매형이 될 것 같으다.”
“무슨 헛소리야! 우리 금아 누님이 얼마나 순수하신데. 몽아는 여인만 보면 눈이 휙휙 돌아가서, 절대 안 돼!”
“허! 그리 말씀하시는 광헌 대군께서도 못지않으신데요.”
“난 그냥, 도자기처럼 감상하는 거고. 암튼, 몽아는 안 돼. 우리 누님은 아바마마처럼, 큰 매형처럼 다정한 사내랑 혼인하셔야 해.”
아무 생각 없는 금아와 사심 사득한 몽아를 두고 금동이가 수복이가 때 이르게 혼사를 논하는 사이.
“저하, 말 목장으로 가셔야지요.”
범이 일과 그 여파로 고모부 윤사로와 종조부 익녕군의 일이 있은 후 행동거지가 무척 신중해진 계동이 홍위에게 일정을 환기시켰다.
왕실의 일에 엮인 백성들이 어떤 고초를 겪을 수 있는지 목격한 계동은 밝고 다정한 사촌이 세자라서 짊어질 수 밖에 없는 삶의 무게를 깊게 연민하였다.
그렇지만 그 일 이후로도 여전히 세자와 함께 궐 담을 넘어 야행을 나갔다.
중전마마께서 따로 부르시어 범이의 죽음으로 상심한 마음을 위로하신 후.
“우리 홍위가 전처럼 즐겁게 놀 수 있도록 계동이 네가 힘을 써주렴. 늘 절제되고 엄숙한 삶만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갑갑하겠니.”
각별하게 당부하셨기 때문이다.
대신 계동은 놀러 나가기 전 자신의 내관을 먼저 유희 장소에 보내 백성이 애먼 일로 휘말리는 일이 없도록 미리 상황을 조율해 두었다.
“아, 그랬지!”
계동의 말에 홍위가 이마를 탁쳤다.
늘 애처롭기만 한 누이를 우연히 만났는데 누이 옆의 빈자리가 이상하게 자꾸 마음이 쓰이고, 금아와 함께 허리띠를 묶고 있던 그 소녀가 저기 통통 뛰어다니는 캥거루를 그리면 얼마나 색다른 구도의 그림이 나올까 궁금해하던 홍위가 정신을 차렸다.
“금아야, 우린 말 목장에 금동이 새 말 데리러 가는 중이었다. 내가 금동이 생일 선물로 저 멀리 회회국에서 보내온 흑마를 주기로 했거든.”
“아, 그렇구나. 그럼 내 시는 지금 못 듣네. 할 수 없지! 가 보세요. 저는 여기서 캥커루랑 엄뱃이랑, 또 저쪽 앵무새 더 보고 가께요.”
“혼자? 송선이란 단짝 동무는 어쩌고, 혼자야?”
기어이 송선의 행방을 입 밖으로 내어 묻고 말았다.
홍위는 혼자 얼굴을 붉혔다.
오똑한 콧날에 푸른색 물감을 묻히고 있던 소녀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르자 심장의 박동이 쿵쿵 거세졌다.
병이 난 것인가.
“아, 선이! 우리 선이가 요새 바빠요. 고등 학당에 들어갔잖아요. 거기서 으음, 뭐더라, 하여간 숫자 복잡한 거 배워서 고모님 도와야 한대요.”
송선의 고모 대방부부인 송씨가 극단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홍위도 들어 알고 있다.
극장 경영이 이문이 많이 나는 사업이라는 것을 목격한 여러 재산가들이 부부인 극장 소속의 배우들을 비싼 몸값으로 회유하여 빼 내가고, 그에 맞서 부부인은 영응 대군의 재산을 펑펑 써대며 더욱 비싼 월봉과 더 화려한 무대를 꾸미다가 앞에서 크게 벌고 뒤로 더 크게 밑지는 지경에 이르렀다던가.
고등 학당에서 고급 산학을 배우는 송선이 그래서 고모 극단의 회계를 돕느라 바쁜 모양이었다.
···그럼 앞으로 보기 힘들겠네.
심장 한쪽이 어째서인지 콕콕 찌르는 느낌이다.
“···으응, 그렇구나. 쓸쓸해서 어쩌니?”
“안니야. 안 쓸쓸해. 이따 올 거거든. 오라버니도 이따 올래요? 선이에게도 시 들려주기로 했거든.”
“···오후에······.”
‘오후에 할바마마와 함께 운동을 해야 해서 어렵겠는데.’라고 말하려던 홍위는 입을 꾹 닫았다.
‘오후에, 유 소용과 금아가 함께 사는 궁으로 송선이 온다.’
가고 싶은 마음, 가서 그 희고 맑은 얼굴의 소녀를 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렬하게 들었다.
처음 느끼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당황스러워 이홍위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아, 그렇지! 우리 형님은 늘 오후에 할 일이 있지.”
홍위의 머뭇거림을 곤란함으로 오해한 금동이가 얼른 형님을 위해 나섰다.
“누님. 세자 형님은 늦은 오후에 할바마마랑 운동하시잖아. 우리 형님이 시 무척 듣고 싶은데도 못 가니까, 내가 가서 듣고 외워서 형님한테,”
“아니! 내가, 가마.”
홍위의 입에서 저절로 말이 툭 새어나왔다.
“으응? 형님, 할바마마는?”
감기로 열이 오를 때에도 할바마마와의 운동은 거르지 않던 우리 형님이!
금동이의 놀란 눈동자 앞에서 홍위는 허둥지둥 그럴듯한 구실을 지어냈다.
“오늘 할바마마랑 연희궁까지 말을 달려 다녀오기로 했었는데, 마침 금동이 네게 새 말 생겼잖니. 할바마마께 회회 땅의 말은 우리 말이나 또 여진이나 몽골의 말과 어떻게 다른지 보여드리면 좋아하실 거다.”
“!”
“!”
“!”
“그래! 할바마마는 새로운 거 엄청 좋아하시니까. 오나버니! 이따가 봐. 금동아, 내가 시 적은 거 오나버니 편에 보내주께. 나 이제, 글씨 예쁘게 잘 써! 한가야, 가자! 쟤들 둘이 발길질한다! 가서, 응원하자!”
세자의 말에 흐르는 미묘한 침묵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금아는 두 손으로 손벽을 짝짝 치고는 나인 무리를 데리고 마침 수놈 두 마리가 서로 싸우기 시작한 캥거루 우리로 달려갔다.
“옹주 자가! 제가 모실게요. 호종 내관이 하나도 없네. 사내인 제가, 옹주님! 지켜드릴게요!”
몽아가 금아 뒤를 따라 뛰어갔다.
“······.”
“······.”
남은 넷은 어색한 침묵 속에서 왕실 말 목장이 있는 남문으로 향했다.
‘대체 내가 왜 이런단 말이냐. 그깟 송선이 뭐라고. 그런데 송선은 나를 보고 싶어 할까. 내가 왔다고 다음부터 안 온다고 하면 어쩌지.’
홍위는 둥둥 뛰는 가슴에 손을 얹고는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멍하니 걸었다.
다른 때 같으면 ‘어디 우리 누님 곁에 함부로 다가가는 것이냐!’ 몽아의 목덜미를 움켜쥐었을 금동이도,
‘너 진짜 옹주 자가 좋아하는구나. 과연, 전하께서, 으흠!’ 하고 몽아를 놀려댈 계동이와 수복이도 입을 꾹 다물고 다 같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어허, 우리 저하. 정말로 송 소저를 마음에 두셨네.’
*
*
*
“어헛, 부인!”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던 이향이 기어이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
“좀 살살 하시오.”
이향이 이리 명하는데도 윤서의 손길은 거침이 없다.
“아프다고 그냥 두면 전하, 일 년은 꼼짝없이 팔을 못 쓴다니까요. 어제 이만큼 움직였으니 오늘은 오 센티미터만 더.”
윤서는 이향의 오른팔을 잡아 뒤로 당기며 다른 한 손으로 견갑골을 등 안쪽으로 밀어 강제로 움직이게 했다.
겨울이 지나면서 이향이 이따금 붓이며 찻잔을 떨어뜨리는 일이 있었다.
설거지하시던 아빠가 이향처럼 몇 번 접시를 놓쳐 깨뜨리신 후 팔을 못 움직이며 일 년 넘게 고생하신 걸 보았던 윤서는 그것이 오십견의 전조 증상임을 알아챘다.
그래서 매일 밤마다 팔의 움직임에 깊게 관련되어 있는 견갑골 주변의 근육을 풀어주며 어깨와 팔을 가동성을 늘리고 있다.
덕분에 굳어 있던 견갑골도 점차 움직이고, 뒤쪽으로 많이 올라가지 않던 팔의 각도가 회복되고 있지만, 강제로 팔을 움직이게 하는 통증은 무던한 이향도 참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많이 아프셨으니 제가 향유를 발라 드리지요. 이거 찔레꽃에서 얻은 향유인데, 무척 향이 좋지요.”
마침내 오늘의 가동범위를 달성한 윤서가 팔을 놓아주고 동백꽃 기름에 찔레꽃 정유를 섞어 부드럽게 등에 펴 바르기 시작했다.
이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이향이 웅얼웅얼 속삭였다.
“할 때는 무척 아픈데, 하고 나면 어깨가 가뿐해져서. 병판이고 호판이고 다들 어깨가 삐걱거린다고 해서 내가 부인의 안마법을 설명해주었소. 견갑골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무척 신기해하더군.”
“아, 그렇지 않아도 어의 순덕에게 말해 두었어요. 곧 의원 사이에도, 또 의녀 사이에도 이 안마법이······.”
말을 하던 윤서는 낮에 순덕이 올린 보고를 떠올렸다.
“정의 공주께서 혜민국으로 시녀 둘을 보내셨습니다. 갱년기라서 몸이 불편한데 공주라서 함부로 몸을 내보일 수 없으니, 손끝 야문 아이들에게 몸을 풀어줄 안마법을 배우게 해 곁에 두려고 하신다는 서신을 들려서요. 그런데 중전마마.”
윤서는 문득 이향의 등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주던 손길을 멈추고 물었다.
“전하, 풋풋한 소녀들을 보면 어떠십니까?”
“···으응?”
고통 끝에 찾아온 부드럽고 감미로운 손길에 벌써 눈꺼풀이 한참 무거워졌던 이향이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