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345
345화. 홍위의 첫사랑 (2)
19대 조상님 현덕 왕후의 남편이셨던 문종에 대해 실록에 실려 있는 바를 아빠가 말씀해 주신 적이 있다.
[동궁에 있을 때 날마다 서연을 열어서 강론함에 게으르지 않았으며, 동작을 한결같이 법도에 따라 했다. 즐거움과 노함을 나타내지 않고 성색(聲色)을 가까이하지 않으며, 항상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수양했다.]수양 대군이 실권을 장악한 뒤 완성된 실록임에도 저 정도 평가가 내려졌다면 긴 세자 시절과 짧은 재위 기간에 군주로서나 인간으로서나 정말로 반듯한 사람이었을 것이라 말씀하셨던 아빠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다른 여인과 당신을 나눌 수 없다는 윤서의 청에, 그 한 가지 청에 이향은 충실했다.
거대하고 복잡한 정무에서 오는 긴장과 고단함은 협경당에서 윤서와 함께 풀거나, 장영실의 아들 장탄복의 연구실에서 증기기관을 연구하고 임영 대군과 함께 군기시에서 화포를 연구하는 것으로 풀어냈다.
그래서 자신의 열일곱 살 나인 시절, 더 정확히 말하면 윤서 영혼이 깃든 권가 나인의 열일곱 살 시절의 외모와 아주 흡사한데 사람을 홀리는 눈초리는 더욱 요염한 소녀가 나타났다는 보고를 순덕에게 들었을 때.
큰 걱정이 들지는 않았다.
아무리 정의 공주라고 해도 그 풋풋한 소녀를 윤서의 심복 조 상궁이 장악한 궁인 집단에 넣을 재주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아마도 뜻하지 않은 장소와 예측하지 않은 시간에 우연을 가장하여 이향 앞에 세울 것이고, 그리고 그렇게 세워지는 여인이 그 소녀가 처음도 아닐 것이고, 또 끝도 아닐 것이다.
또한 미인계를 써 이향의 환심을 사려는 이도 정의 공주가 처음도 아닐 것이고 또 끝도 아닐 것이다.
조선은 이제 윤서 역사 속의 조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방으로 넓어진 영토에서 막 첫 개척지가 세워지기 시작한 호주의 그 드넓은 대륙까지.
무엇보다 시대의 연속성을 뛰어넘어 나타나는 의술과 각종 과학 기물과 화포까지.
벌써 명 황실 공신 부인은 명 황실의 소생을 홍위의 배필로 맞이할 수 있게 국혼을 주선할 수 있다고 여러 번 언질을 보내올 정도이다.
그러니 막고자 한다고 막아질 미인계가 아니기에 윤서는 그 부분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았다.
통제할 수 없는 변수는 포기하고 통제할 수 있는 변수에만 집중하는 것이 어릴 적부터 지켜온 삶의 자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젊음만이 가지는 눈부심이 있다.
육체적인 욕망을 떠나 젊음 자체가 주는 눈부신 설레임이 있다.
그 설레임을 몸은 스물여섯 한창 젊을 시기이나 정신은 서른아홉 살의 이향보다 두 살이나 더 많은 사십 대의 윤서는 이미 느낀 적이 있었다.
윤서는 무겁게 눈을 깜빡이는 이향 옆에 얼굴을 맞대고 누워 천천히 속삭였다.
“닷새 전에 대비마마 모시고 ‘달빛을 걸어오시는 님’ 가극 공연에 갔었잖아요. 거기 남자 주역 배우가 스물다섯인가, 암튼 이십 대 초중반이라는데 정말 수려하였어요. 그렇게 수려한 배우가 도포 자락을 나붓나붓 휘날리며 선비 춤을 추는데.”
윤사로 일당의 처형이 행해질 즈음 상왕 전하와 안평 대군이 감독하여 만든 왕실 극장이 완공되었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현대의 국립 현대 미술관 자리에 세워진 왕실 극장은 별다른 음향 장치 없이도 계단식으로 높여진 이 층 무대에까지 소리가 잘 전달되었다.
그 왕실 극장에서 세우 작가의 신작 이 음악극으로 각색되어 공연되었다.
출연 배우도 수려한 외모와 탁월한 노래 실력으로 유명한 이들로만 추렸고, 무대 장치도 화려한 이 노래극은 구시대의 진통은 잊고 새 시대의 번영을 맞이하자는 취지를 선명하게 선언하는 것이었다.
은 어릴 적 정혼한 연인을 둔 청년이 과거를 보러 한양에 올라가는 길에 강도 떼를 만나 기억을 잃어버리며 시작된다.
광나루 인근에서 하인이며 말이며 귀중품, 옷가지까지 모두 빼앗기고 머리에 몽둥이를 맞아 한강에 버려진 함양 땅 명문가 사내 김인문을 옥수 앞 섬 저자도에서 닥나무를 팔아 생계를 꾸려가는 춘식이가 발견한다.
알몸으로 발견된 김인문은 기억마저 잃어 자신이 누구인지 까맣게 모르지만 춘식과 그의 딸 봄이는 손에 굳은살 하나 박히지 않고 부기가 가라앉자 드러난 화려한 이목구비에 귀한 명문가 자제거니 짐작하고 훗날을 위해 정성껏 돌본다.
한편 고향에 남아 있던 정혼녀 정순은 김인문의 죽음을 믿지 않아 남장을 하고 그의 행적을 더듬어 광나루까지 온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저자도에서 학당 선생이 된 인문을 찾아낸 정순은 기억을 잃은 연인 앞에서 달빛이 밝은 밤의 밀회에서 함께 추었던 춤사위를 보여준다.
무수히 많이 사랑을 속삭였던 달빛 아래 한때는 농염하였던 사랑의 노래를 애달게 부르며 아리따운 여인이 빙빙 치맛자락을 부풀릴 때, 인문은 문득 손끝, 발끝이 그 가락에 맞춰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자기도 모르게 배어나는 몸짓으로 도포 자락을 빙그르 휘날리며 정순을 향해 가는 걸음걸음마다 기억이 하나씩 돌아오는 장면이 이 소설의 절정이었다.
그리고 춤과 노래를 섞어 만든 가극 공연에서도 이 장면의 춤사위가 가장 감미롭고 아름다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세우 작가의 열렬한 후원자이신 소헌 대비는 파산 지경인 막내며느리 대방부부인 송씨를 격려할 겸 연일 격무에 시달리는 중전에게 잠시의 여흥을 줄 겸 겸사겸사 목적으로 윤서를 데리고 가극을 보러 가셨다.
그리고 그 극장에서 윤서는 젊음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만날 땐 수려한 청년의 모습이었는데 이제는 희끗희끗 흰 머리가 보이고 오십견마저 앓는 서른아홉의 이향과,
권가 나인에게 깃들어 몸은 비록 스물여섯으로 한창이지만 정신은 이미 사십 대에 들어선 자신에게 없는 풋풋한 젊음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전하, 그 두 배우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어요.”
윤서는 이향의 눈가 주름을 손가락으로 쓸며 속삭였다.
“젊음은 저렇게나 멋지구나. 설레는 것이구나 하고요. 무대 위 배우가 후광을 두른 듯 참 빛나 보였어요. 젊다는 이유로.”
“보검이를, 닮았나 보지?”
“으응? ···아!”
자신은 젊고 아름다운 배우들을 보면 가슴이 설레는데 풋풋한 소녀들을 보면, 특히나 열일곱 살의 자신을 빼어 닮았다는 소녀를 보면 기분이 어떨 것 같은지 물어보려던 윤서는 갑자기 언급된 ‘보검 군’의 추억에 빠져들었다.
갑자기 소환된 최애 배우와 그 배우가 출연했던 드라마를 생각하느라 이향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뾰족해졌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 이날 밤 어긋난 대화의 시작이었다.
“그러네. 어쩐지! 눈매가 그윽하고 눈빛이 초롱하고 팔다리가 길어서 도포 차림이 참 멋지게 잘 어울리는 모습이 낯이 익다 했더니. 맞네요. 보검 군이 주연했던 사극 속 세자 모습이랑 비슷했군요.”
추억이 밀려온다.
처마 밑에서 손을 내밀어 빗방울을 맞다가 내관으로 분장한 여주인공을 보며 씨익 다정하게 웃던 그 수려한 모습이!
“그 드라마에서는 여주인공이 역적의 딸이라서 내시인 척 속이고 보검 군 옆에 들어갔거든요. 그래서 자꾸 연심을 느끼는 상대가 내관이라 혼란스러워 막 흔들리던 눈동자가 얼마나 매력적이던지. 지금쯤 보검 군은 어찌 변했을까.”
“늙었겠지. 십 년이 흘렀으니.”
“맞아요. 아쉬워라. 그렇게 잘생긴 얼굴이 늙는다니 생각만 해도 슬프네요. 그래도 늙어서도 멋질 거예요, 우리 보검 군은.”
“우리?”
“···으응?!”
뭔가 이향 어조가 이상하다.
윤서는 이제야 잠기운에 부드럽게 풀어져 있던 이향의 눈빛이 또렷하게 깨어난 것을 발견하였다.
‘아, 이향은 이십일 세기 팬질 개념을 모르지!’
연예인 이야기를 이웃 이야기처럼 가십 삼아 떠들고, 화면 속 크게 클로즈업 된 배우나 가수를 보며 가슴 설레어하는 그 문화를 이향은 모른다.
이향이 아는 것은 궁중 여악을 하는 기생들이 세도가나 왕족의 첩이나 노리개가 되는 유흥 문화와, 요 몇 년 새 극장이 발달하면서 여인들도 배우에 열광하기 시작해 벌써 어느 댁 마님이 어떤 배우를 후원한다더라 하는 등의 대중 문화의 그닥 아름답지 않은 측면이었다.
게다가 이향은 세자로, 군주로 살아오면서 자신의 앞에서 다른 사내의 미모를 칭송하는 여인을 본 적이 없으니.
“저기, 전하. 그것은 말하자면 저, 그, 세우 작가 이야기 속 주인공을 상상해서 좋아하는 것하고 비슷해요.”
“하지만 가극의 배우를 보고 설레었다고 말하지 않았나?”
“아니, 그건 젊으니까. 젊은 청년이니까. 젊은이들을 보면 막 설레잖아요.”
“안 그러던데.”
“아니, 저하. 그러니까, 그, 이야기 속에서는 워낙 현실에 없이 멋지게 나오니까요. 멋진 사내나 어여쁜 여인이 커다랗게 화면이나 무대에 나와 멋진 말과 행동을 하면 어쩔 수 없이, 막 가슴이 설레고.”
“글쎄, 난 그런 적이 없다니까요, 부인.”
“······.”
이게 아닌데.
왜 이야기가 이렇게 흘렀지.
늙어진 이들이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되는 젊음에 대한 동경과 설렘을 혹여나 이향도 그 소녀나 앞으로 무수히 등장할 풋풋한 미인들에게 느끼지 않을까 물어나 보려 했던 것뿐인데.
“부인! 내게 할 이야기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이향이 작정한 듯 엄하게 물었다.
당황한 윤서는 시선을 빗기고 심호흡을 하며 대화가 끝난 지점을 되짚었다.
아, 배우.
“아니 전하, 제가 조선에 태어났더라면 그 청년들 모두 다 아들뻘인데. 제가 몸은 이래도 전하보다도 나이가 많습니다!”
소심하게 반박해보았지만 엄한 눈빛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군주는 노여워하는 자라더니.
윤서는 하는 수 없이 이향의 품을 파고들어 정중하게 사과를 하였다.
“앞으로 잘생긴 청년들 보고 설렌다 어쩐다, 말 안 하겠습니다.”
“······.”
“전하가 좋아요”
“······.”
“소아 아버님, 제겐 소아 아버님뿐입니다!”
급기야 보검 군 백 명이 온다고 해도 눈길 한 번도 아니 주겠다는 유치하고도 절절한 맹세를 하고 나서야, 이향은 노여움을 풀었다.
다시 다정한 낭군으로 돌아와 어깨를 쓸며, 이향이 말했다.
“아바마마도 나도 늘 역사에 어떤 왕으로 기록될까가 걱정이었어요. 성군이 되고 싶은데, 성군이 되어야만 하는데 오늘의 결정이 과연 성군으로 향하는 길인지 알 수 없어 홀로 노심초사해야 했지요. 하지만 부인을 만난 후 지금의 자잘한 모순도 결국 시간과 더불어 해결이 될 것이니, 역사는 결국 올바른 방향을 보는 자들의 시선을 따라 진보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그래서 안심이 된다고 이향은 말했다.
어둠을 밝히는 등불처럼 역사가 나아간 방향을 가리키는 여인이 또한 자신의 후계를 목숨처럼 아끼는 것이 고맙다고도 하였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우리, 소아 동생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아이들은 너무 금방 커서, 소아 어릴 때처럼 방싯거리는 아기 공주님 하나 더 가지고 싶은데.”
아직 건재한 사내였다, 이향은.
*
*
*
“어머니, 그, 고등 여 학당에 송선 있잖아요.”
단오날이 다가오는 오월 초.
홍위가 드디어 그 ‘송선’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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