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346
346화. 홍위의 첫사랑 (3)
“어머니, 그, 고등 여 학당에 송선 있잖아요.”
홍위가 역사 속 함께 불운했던 정비 ‘송선’의 이름을 꺼냈을 때.
윤서는 송선에 대해 금동이와 희아에게 들은 바와, 고등 여 학당 면접 시험장에서 받았던 인상을 떠올렸다.
작년 늦가을, 형님 바라기 금동이 증기기관 연구소에 다녀와서 윤서 귀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어머니, 아까 경회루 연못에서 금아 누님과 송 소저를 만났는데요. 그런데 어머니, 형님이 자꾸 그 소저를 보셔요. 자꾸 보는 것은 아름답거나 마음이 가서인데, 다른 아름다운 소저나 궁녀에겐 눈길도 아니 주시는 것을 보니 마음이 가시나 보옵니다.”
그리고 윤서 품에 폭 안기며 “소자는 그저 어여뻐서 보는 것입니다!” 하고 그날도 왕실 여 학당 소녀에게 홍옥 노리개와 진주 비단 주머니를 선물로 받아온 것을 변명하였다.
경혜 공주 희아는 정종에게 송선을 향한 홍위의 관심을 듣고 송선을 가르쳤던 정연화와 경숙 옹주 선아에게 품성을 미리 알아본 후 윤서에게 말을 옮겼다.
“연화 말로는 산학에 큰 재능은 없으나 꾸준히 노력해서 잘 따라왔다고 하고요. 침착하나 심지가 굳고 요란하지 않게 금아를 챙겼대요. 선아는 송선이 고모인 대방부부인과 외모는 닮았는데 품성이 너무 달라서 놀랍다고, 재주가 많은데 드러내길 즐기지 않는다고 하였어요. 우리 홍위는 어머니께 지나치게 효자가 될 위험이 있어서, 송선처럼 야단스럽지 않으면서 고집도 적당히 있는 소저가 적합할 것 같긴 해요.”
이 대목에서 희아는 윤서의 손을 당겨 잡으며 깔깔 소리 내어 웃었다.
작년 정종이 열다섯 살 생일이 지나고 안채와 사랑채에서 따로 머물던 두 사람이 함께 침소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 전에도 정답던 두 부부가 얼마나 애틋하게 서로를 위하는지 옆에서 보는 이들이 다 설렐 정도였다.
윤서 눈에는 아직도 어리기만 희아가 평안한 왕실과 이향의 든든한 지지 속에서 성숙한 여인으로 밝게 피어나는 모습은 가슴 한쪽이 저리도록 감동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희아는 이내 웃음을 그치고 다시 새초롬하게 엄숙한 얼굴로 돌아가 물었다.
“하지만 명 황실에서 정식으로 국혼을 청해오면 어쩌지요? 명의 공신 부인이 여러 번 넌지시 황태후가 조선 왕실과 국혼을 맺을 의향이 있다고 언질했잖아요.”
희아는 자신이 공주임을, 윤서와 함께 동생들을 지켜야 할 누나임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작년 죽음의 문턱을 넘는 열병을 앓고 난 후 윤서는 자신의 부재 시 홍위와 아이들을 지킬 동지로 희아를 선택했다.
인간사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일은 존재하지 않고, 특히 가장 강렬한 욕망의 대상인 권력과 재물의 정점인 왕실에서 순진하게 방심했다가는 소중한 이들의 목숨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는 것을 역사는 이미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명나라와의 국혼은 두 분 전하께서 아예 말이 안 나오도록 이미 결정을 내린 사안이야. 우린 홍위와 왕실에 걸맞는 세자빈을 조선에서 찾아야 해.”
이는 명나라 황실과 국혼하는 것이 명예만 있을 뿐 실익이 없다는 냉철한 계산 끝에 나온 사전 결정이었다.
봉건 제도를 가지고 있는 서양이나 일본의 왕녀, 공녀 등과 달리 명나라의 황녀는 영토나 황위 계승권을 지참금으로 가져오지 않아 조선에 큰 이문이 되지 않고, 또한 공식적으로 해금령을 고수하는 명 황실이 국혼을 빌미로 해양 진출을 시작한 조선의 행보에 제동을 걸거나 개척지 개발 참여를 요구하는 등 내정에 간섭할 여지가 있다.
게다가 달단에 포로로 잡혀갔던 황제의 복위를 앞둔 명 황실의 복잡한 상황에 골치 아프게 휘말릴 가능성도 농후했다.
이런 이유로 윤서는 송선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희아가 돌아간 후 붓을 들어 역사 속 정순 왕후 송씨에 대한 기록을 떠올려 정리하는 것부터가 그 시작이었다.
[남편 단종도 친정아버지 송헌수도 모두 돌아가신 후, 정순 왕후는 함께 출궁한 시녀들이 동냥해 온 음식이나 염색업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어렵게 살면서도 세조가 내린 식량과 집을 끝내 받지 않았다.노비 신분으로 격하되었지만 노비로 사역하다 불미스러운 일을 당할 수 있으니 정업원에 들여보내라는 세조의 명으로 정업원에서 경혜 공주와 함께 승려로 살다가 말년에 경혜 공주의 아들 정미수의 봉양을 받았다.]
단종의 후궁 하나는 지방 관아에서 관노비로 곤궁하게 일생을 마쳤다는 사실도 기억이 났다.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미어지는 일이었다.
그런 가여운 인연도 실은 운명의 붉은 실타래가 묶여 있던 인연인가.
그래서 불행하기만 했을 인연을 알고 싶지 않다고 단호히 말하는 홍위가 본능적으로 송선에게 끌리는 것인가.
하지만 이번 생에서 우리 홍위는 기필코 행복해야 하기에, 윤서는 송선이 여러 세력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궁중 생활을 이끌 자질이 있는지도 알아봐야 했다.
그래서 고등 여 학당에 응시한 송선의 시험 성적과 면접 시험장에서 보이는 모습에 고도의 관심을 기울였다.
송선의 고등 여 학당 입학시험 성적은 유학의 기초 경전, 산학의 삼차 방정식에서는 딱 중간이었지만 확률과 통계 문제는 다 맞춰 논리적 추론력이 빼어남을 증명했다.
또한 란 논술 시험에서 아이들의 정서적 돌봄과 가정 내 경제적 풍요에 신지식이 기여할 수 있는 바를 체계적으로 기술하여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필기시험 합격 후 치러진 이차 면접 시험장에서 송선은 상왕 전하의 앞에서도 차분했다.
“생활에서 떠올린 바를 통계 지식을 이용해 가정의 풍요로움에 기여할 수 있다고 썼지. 여기 제시한 예 말고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거라.”
필기시험 전체 수석을 차지한 홍주 땅의 최영묘, 차석을 차지한 성삼문의 장녀 성효옥을 대할 때와 달리 불퉁한 옥음으로 세종이 하문하셨다.
송선의 외모가 평소 드센 성격으로 영응 대군을 쥐고 흔드는 막내며느리 대방부부인을 많이 닮았기 때문이었다.
“예, 상왕 전하. 하문하신 사안에 삼가 아뢰옵니다. 근자 여인도 가문이 소유한 공장과 농장의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바, 노동력 등 자본의 투입 대비 산출물의 결과를 통계 내 최적의 생산 비용을 정할 수 있습니다. 저의 숙모님께서 운영하시는 극단의 예를 들면 높은 출연 비용을 요구하는 배우를 몇 명까지 투입해야 관람객의 인원을 최대한 늘릴 수 있는가를 통계 내어 최대 이익 지점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인자하시기로 정평이 나신 상왕 전하께서 자신에게 엄격한 태도를 보이시는 이유를 짐작해 아예 정면으로 거론하며 차분하게 답을 올리는 담대함이 윤서는 참 마음에 들었다.
세종께서도 나중에 윤서에게 넌지시 “저 아이는 제 고모하고는 참 다르구나.” 하고 기분 좋게 말씀하셨다.
세종까지 흡족해하시니 일차 관문은 통과라고 결론을 짓고 있던 차에 홍위가 와서 그 송선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그래, 홍위야. 금아의 단짝 친우 송선이, 왜?”
아무래도 목소리에 기대감이 너무 노골적으로 표시 났나 보다.
“송선이, 그, 대방부부인 숙모께서 운영하시는 극장의 어려움에 대해서, 제게, 말했는데요.”
홍위가 귓부리를 발갛게 물들이며 생전 더듬지 않던 말을 다 더듬거렸다.
“배우를 쓸만하게 훈련시키면 자꾸 돈 더 많이 주는 극단으로 옮겨가서, 그래서, 초보 배우를 일정 기간, 계약으로 묶어 놓는 법이 필요하다고, 그런 말을, 하였어요.”
“으응? 송선이 네게 그런 부탁을 했어?”
세자의 호의를 사적인 문제 해결에 이용한다고!
이번에는 실망이 지나치게 들어나는 어조였다.
정말이지 홍위 배필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지나치게 높은 기대치를 가졌다가 급격하게 실망을 거듭하는 등 감정의 진폭이 너무 크다.
이러다가 그 못된 시어머니가 되는 것이지.
윤서는 심호흡으로 널뛰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부탁이 아니에요, 어머니. 실은 제가 금아의 시를 들으러 갔었는데요. 거기서 송선을 우연히 만났어요.”
“그으래?”
실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금동이에게 들어서 알고 있지만 윤서는 모르는 척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흘 전 땀에 흠뻑 젖은 금동이가 두 손에 작은 연꽃 모양 하늘빛 도자기를 보물처럼 들고 돌아와 말했다.
“어머니, 우리 세자 형님이 정말로 송 소저를 마음에 품었나 봐요. 할바마마 운동까지 제게 떠넘기고 금아 누이 시를 구실로 송 소저를 보러 갔어요.”
덕분에 할바마마랑 연희궁까지 누가 빨리 달리나 내기했는데, 형님이 선물해주신 회회국 말이 워낙 빨라서 할바마마께서 송나라 시대 하남에서 만든 연꽃무늬 자기 하나를 내기 선물로 주셨다고 자랑하고는.
“저는 이렇게 단정한 도자기보단 여러 가지 색을 과감하게 쓴 도자기가 더 좋지만, 이 모양에 아주 짙은 푸른색을 과감하게 내도 참 좋을 것 같아요, 어머니. 그런 의미에서 저 금성 숙부님이 계신 대내전 땅에 다녀오게 해주세요, 예? 제발요, 어머니!”
송나라 시대 도자기와 은광이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한 일본 땅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막무가내로 조르고 졸라 내년에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기어이 받아내고 춤을 추듯 종종거리며 제 전각으로 건너갔었다.
“금아가 시를 읊어주고 나서 대화가 끊겨 어색하길래 제가 송 소저에게 요새 학당에서 무엇을 배우냐고 물었는데요.”
‘송 소저’를 입에 담는 우리 홍위의 눈빛이 부드럽게 반짝인다.
보일락말락 올라가는 입매는 이향이 이따금 짙은 애정을 담아 윤서를 바라볼 때 짓는 표정과 판박이였다.
‘정말로 우리 홍위가 송선을 좋아하네.’
뒤뚱거리는 삼등신의 세 살배기 꼬마가 “아나져” 하며 짧은 팔을 쭉 내밀던 때가 그리 오래 전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러던 아기가 청년의 웃음을 짓고 윤서 앞에 서 있었다.
“학당에서 수석으로 들어온 최영묘와 차석 성효옥이 사회의 발전은 소유권을 보장하는 데서 가장 큰 추동력을 얻어서, 그 소유권을 제대로 보장할 수 있는 다양한 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대요. 그 말을 듣고 있자니 배우를 훈련시켜 연기력을 기르는 것 또한 극단이 가질 수 있는 무형의 소유권이 아닌가, 그러하다면 일정 기간 그 소유권을 보장하는 법도 필요하지 않나 생각했다고 해요.”
홍위의 음성에 뿌듯한 자부심이 배어났다.
‘어머나, 우리 홍위가 제가 마음에 둔 소녀가 이렇게 빼어난 통찰력을 가졌다고 자랑스러워할 줄도 아네!’
윤서는 정말로 홍위가 다 큰것만 같아 마음이 더욱 뿌듯해졌다.
그러나 홍위는 무형의 소유권을 보장하는 법의 필요를 말하던 송선의 붉은 입술과, 그에 대비되는 투명한 얼굴빛과 이따금 말에 곁들이는 손짓을 보일 때의 길고 가는 손가락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자선을 보내 왕실 유리 정원에서 가져온 수수꽃다리 꽃 한 묶음을 건네었을 때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수줍게 받아들고는 머뭇거리며 대답한 내용도 떠올렸다.
“어머니!”
홍위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그런데 송선이, 자기는 당분간 학당 공부에만 전념하고 싶대요.”
“으응?”
“제가 이따금 금아와 함께 시를 짓자고 했더니 학당 공부 따라가고 고모님 극단 운영의 회계를 돕는 것만도 벅차서 시간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사양했어요.”
“저런! 꽃다발은, 받았어?”
“어, 제가 송선한테 꽃다발을 준 것은 어떻게 아셨어요?”
어떻게 알긴.
향이 탁월하게 좋아서 왕실 고급 비누와 화장품에 넣으려고 기르는 수수꽃다리 꽃을 홍위 널 모시는 내관 자선이가 한아름 꺾어갔다는 보고를 들어서 알고 있지.
그렇게 꺾어간 꽃을 나도, 희아에게도, 소아에게도 아니 주었으니 필시 송선에게 준 것이리라 짐작했다.
그러나 한낱 꽃이 문제겠는가.
우리 홍위가 연애를 하겠다는데.
윤서는 송선의 마음이 짐작이 갔다.
송선이 홍위에게 진실로 마음이 없었다면 무슨 핑계를 대어서라도 꽃을 받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꽃은 받았으나 만남을 약속하지 않은 것은 벌써 우리 홍위를 보고 마음이 떨렸다는 뜻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중하게 고민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대대로 풍비박산이 난 왕비의 친정과, 이혼을 두 번이나 하신 금상 전하의 혼인 전력과, 상왕 전하께 내쳐질 뻔한 고모님의 삶을 목격하였으니 세자 저하의 관심을 받아들이겠다고 쉽사리 답을 올릴 수 없는 신중함이었다.
그런 마음을 모르고 거절당했다고 생각해 눈썹을 축 늘어뜨린 홍위를 보자니, 한없이 귀엽고도 또 마음 한쪽이 콕콕 찌르듯 아팠다.
그래서 아들의 연애사에 함부로 개입하지 않겠다는 내심의 맹세를 깨뜨리고 말았다.
“홍위야, 내가 전하의 마음을 받아들이게 된 계기를 말해줄까?”
실은 세종의 명이 먼저 있었지만, 그 이후 정말로 이향에게 마음을 열게 된 것은.
“서신이야. 때로 짤막하게, 때로 길게 써서 보내주시는 연서. 그러니까 홍위야.”
“예, 어머니.”
“새 털 같이 많은 시간이 있으니 서서히 연서로 송 소저의 마음을 물들여보렴.”
지난 역사에서 단종과 정순 왕후의 국혼은 수양 대군이 제 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의 일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생에서는 애달프기만 했던 그 사랑이 행복한 백년해로로 꽃 피우길.
홍위야.
이날 밤 홍위는 자선당 동온돌에서 종이를 스무 장이나 구긴 끝에 겨우 마음에 드는 연서를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