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46
46화. 우리 홍위한테 윤서는
윤씨의 협박에 도발로 맞서주긴 했지만 동궁전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간택령이 내릴 수 있다!
갑자기 간택령이 내려 ‘어엿한 명문가 출신 참한 규수’가 세자빈으로 뽑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콱 막히듯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홍위를 살리고 이향의 때 이른 죽음을 경고한 공만으로도 다른 그 어떤 명문가 규수보다 자신이 이향의 배필로 충분하다는 평소의 자부심은 이향에 대한 마음이 커질수록 상대적으로 작아졌다.
생각을 정리하려면 달리기를 하고 글로 써야 하는데,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는 부작용이라고 윤서는 생각했다.
그래서 윤서는 홍위가 “거나 나잉야!”하고 달려와 안길 때 꼭 안고는,
“우리 연날리기 해요, 아기씨. 모레 평창 군주께서 오시면 아기씨가 연날리기 가르쳐 드려야 하잖아요.”
하고 연날리기를 빙자한 달리기를 통해 부정적인 근심을 날릴 기회를 기어코 만들어 냈다.
이날 저녁 수라는 홍위만 홀로 서온돌에서 들게 되었다.
이향은 전하와 수라를 함께 들면서 전국 각지에 보낼 구휼미의 규모와, 특히 북방에서 무리를 지어 떠돈다는 유민들을 어떻게 구제하고 원래의 지역으로 돌려보낼 일을 감독할 이로 누구를 경차관으로 파견할지를 논의한다고 엄 상전을 통해 전언을 보내왔다.
하필 ‘세자빈 간택’이란 말을 윤씨에게 들은 날 이향이 부재하니 무슨 징조처럼 느껴져 기분은 더 무거워졌다.
홍위는 윤서와 매금이, 그리고 내관 자선이와 함께 만든 붉은 긴 꼬리 방패연을 어서 날려보고 싶어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밥을 먹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눈나 꺼가 꼬이가 긴 거야.”
아기 제비처럼 입을 벌리고 생선 살을 받아먹다 말고 홍위가 말했다.
“눈나는 꼬이가 뱀처엄 나뿌나뿌 흔든리는 걸 조아하 꺼야.”
얼마 전에 경회루 가장자리 풀숲에서 물뱀을 보았다더니 홍위는 그 다음부터 새끼줄을 끌고 다니며 “뱀이야, 무뱀!”하고 놀기 좋아했다.
그렇게 뱀처럼 나풀거리는 걸 좋아하면서도 두 개의 방패연 중 붉은색 꼬리가 더 긴 것을 누이에게 주겠다고 양보할 정도로 우리 홍위는 의젓해져 있었다.
‘놀이 친구가 필요하구나.’
누이를 저토록 반기는 것은 친누이에 대한 본능적인 정이기도 하지만 또래의 놀이 친구가 필요하다는 방증이기도 하였다.
요새 정의 공주의 아들들과 중궁전 뜰에서 한참 놀더니 여섯 살 여달이를 무척 따랐다. 내년에 세손으로 책봉되어 또래 무리로 배동을 갖게 되면 더욱 씩씩하고 활달한 사내아이로 자라날 것이다.
“아나져”하고 더 이상 울먹거리지 않고 늘 치맛자락을 놓지 않으려고 했던 아기에서 이제 또래 친구들과 세상을 탐색하다 다시 윤서 품으로 돌아와 사랑과 지지를 확인할 그런 어엿한 사내아이.
그러면서 또한 친구이되 군주로 군림할 그 간극을 조금씩 느끼며 장차의 군주의 자질을 꽃피워갈 아이로 우리 홍위는 자라날 것이다.
“그럼, 이거 세 숟가락만 더 먹고 나가서 놀아요.”
급한 마음에 제대로 씹지도 않고 다시 입을 벌리는 홍위 입에 버섯 한 가닥을 넣어주며 윤서는 코끝이 찡해졌다.
철없이 즐겁기만 한 어린 아기 시기가 너무 짧은 왕손에 가지는 한 가닥 연민이었다.
그래서 이날 윤서는 직접 연 하나를 들고 뛰며 연날리기 시범을 보였다.
“아기씨, 지금처럼 바람이 없을 땐 이렇게, 줄을 짧게 잡고 힘껏 뛰어서 연이 이 정도는 올라간 후 줄을 풀며 계속 뛰어야 해요.”
윤서의 시범에 따라 홍위도 짧은 다리로 우다다 뛰며 연을 날리려 애썼다.
하지만 아직 삼등신인 다리 길이로는 무리였다.
“너모 힘드여.”
뛰다가 다리가 꼬여 넘어지려는 걸 안아 올린 내관 자선이 품에서 헐떡거리며 홍위가 울먹거렸다.
“자던아, 힘드여서, 연이, 안 나가아.”
윤서만큼 빠르게 뛰지 못하는 게 속상해서 자선이 가슴에 머리를 박고 울먹거리는 홍위를 보며 윤서는 또 가슴이 찡하게 뛰었다.
비상하게 영민한 홍위는 벌써 주변 사람들을 조금씩 다르게 대하는 법을 익혀가고 있었다.
자선이는 늘 지근거리에서 자신을 보좌할 충실한 내관으로, 중전마마는 따스한 사랑과 탄탄한 지지를 줄 수 있는 할머니로, 이향은 닮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롤 모델이자 조금은 어려운 아버지로.
그리고 윤서는.
“거가야, 아나져, 아나져.”
홍위는 실을 감아 연을 내리며 다가오는 윤서를 향해 팔을 쭉 내밀었다.
신나게 세상을 탐색하다 언제든 돌아와 안길 수 있는, 절대적인 보금자리 같은 존재로 홍위는 윤서를 각인하고 있었다.
이십 분마다 물 마시는 시간 빼고 한 시간은 쉬지 않고 달려야 운동 효과를 느끼는 윤서에게 연을 잡고 달린 시간은 일각이 채 안 되었다.
몸은 아직 달리기를 위해 예열도 안 된 상태였지만 윤서는 일단 연을 내려놓고 홍위를 폭 안아 올렸다.
“눈나한테 연난니기 못 가으쳐 줘.”
실망한 홍위가 입술을 비죽거리며 울먹거렸다.
가슴에 와닿는 따스한 온기와, 땀에 젖은 아이 특유의 체취를 깊게 마시며 윤서는 문득 생각했다.
‘다시 환생해 오지 않는 한 ‘명문가 출신 참한 규수’는 결코 될 수 없지만 우리 홍위한테 좋은 보모는 이미 되었으니.’
우리 홍위는 기필코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나 장수하는 왕이 될 것이다!
“아기씨, 원래 바람이 불지 않으면 연이 잘 안 날려요. 우리 처음 연날리기 하던 날은 바람이 엄청 불었잖아요.”
“응. 바얌이 힝힝 불었쪄.”
“당분간 매일 이렇게 바람 없이 더울 테니까, 평창 군주님께 아무리 연날리기 잘 가르쳐줘도 날리기 어려울 거에요. 그러니까 당분간은 꼬리를 더 길게 만들어서 뱀처럼 끌고 다녀요, 우리.”
그러자 홍위가 단번에 얼굴이 환해졌다.
“무배처염, 나뿔나뿔?”
“예, 제가 빨간 천으로 꼬리 더 길게 만들어 붙일게요. 그럼 그거 가지고 연못에 띄워서 당기면 하늘 대신 물속을 머리 커다란 물뱀처럼 멋지게 헤엄쳐 올 거에요.”
“머이 커다얀 무뱀! 머이 커다얀 무뱀! 눈나도 조아하 꺼야!”
아직도 새카만 눈동자에 촉촉이 물기를 머금은 채로 홍위는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신나했다.
윤서는 달리기는 포기하고 홍위 손을 잡고 다시 자선당으로 돌아와 비누로 목욕시키고 머리 감기고 수건으로 탈탈 말려주었다.
그리고 새로 온 심가에게 잠시 홍위를 맡기고 윤서도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는 땋아 올리는 대신 말총머리로 질끈 묶고 자선당으로 갔다.
홍위도 벌써 이불을 펴고 얇은 침의를 입고 잘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아기씨, 우리 오늘도 책례놀이 할까요? 제가 산가지 대신 여기 이 책을 휘릭 넘겨서 여쭤볼 테니 답해볼래요?”
책례를 앞두고 홍위는 별생각이 없는데 홍위의 스승 성삼문께서 너무 긴장하는 게 보여 윤서는 자기 전 서너 개를 홍위에게 물어보며 준비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이향이 한자에 문맹인 윤서를 위해서 천자문 해례본을 만들어서 책처럼 엮어서 주었다.
그래서 윤서는 요새 눈을 감고 아무 장이나 펼치고 홍위에게 물어보는, 놀이를 빙자한 학습을 시키고 있었다.
“응, 아무 거나 무너 바.”
윤서의 무릎에 폭 앉은 홍위가 다리를 동동거리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그때였다.
“우리 홍위, 자니?”
묻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이향이 들어왔다.
이향은 아직 붉은색 곤룡포와 익선관을 빈틈없이 갖춰 입은 채였다.
“아밤마아!”
홍위가 윤서 무릎에서 발딱 이러나 이향에게 달려가 덥석 안겼다.
“아밤마마, 거가랑 텬자문 놀이 해요.”
“천자문 놀이?”
“예, 거가가 눈 감꼬 무어 보면 호이가 답해요.”
홍위를 들썩들썩 몇 번 천장으로 집어 던졌다가 받은 이향이 윤서를 바라보았다.
잠자기에 편하게 얇은 하늘색 치마와 저고리를 입고 머리는 대충 하나로 묶어 올린 차림으로 다 갖춰 입은 이향 앞에 있자니······.
“······.”
윤서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이날은 윤씨를 상대하느라 진이 다 빠지기도 했고, 또 ‘어엿한 명문가 출신 참한 규수’란 말이 사무치게 가슴에 박힌 이상 심리 상태라 비현각에 가지 않을 계획이었다.
그래서 홍위 재우고 그 옆에서 그냥 자려고 편한 옷차림으로 서온돌에 건너왔던 것인데.
“그럼 아비가 몇 개 물어볼까?”
홍위를 안고 앉으며 이향이 물었다.
“예에. 무어 보데요.”
홍위가 이향의 무릎에 앉아 다리를 동동거리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이향은 홍위를 앞으로 감싸 안아 가슴에 기대게 한 후, 홍위 어깨에 턱을 올리고 눈으로는 윤서를 바라보았다.
“저, 저하. 저는 옷을 좀 갖춰 입고,”
“괜찮다. 날도 더운데 그냥 있거라.”
“아니, 그래도.”
윤서가 몸을 움직이려고 하자, 이향이 고개를 흔들며 놀리듯 말했다.
“이미 다 보았거늘.”
“!”
홍위는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지만 윤서가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숙이고, 이향이 자신의 어깨에 턱을 올린 채 즐거운 듯 소리 내어 웃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고개를 돌려 이향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아밤마아, 거가 나잉 논니는 거에요?”
“아니다. 놀리긴. 권가 나인이 홍위 널 돌보느라 고생했으니 그냥 편하게 있으라고 한 것이다.”
그러자 이향의 말이라면 백이십 퍼센트 신뢰하는 홍위는 안심하고 다시 가슴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무더 보데요.”
“음, 고루과문(孤陋寡聞) 우몽등초 (愚蒙等誚)는 어떻게 되느냐?”
“에노울 꼬 더더울 누, 에노울 과, 드들 문, 어니서글 우, 어닌 몽, 무이 등, 꾸디들 초. 보고 배운 거시 더그믄 우두나고 몽매한 다아 가티 꾸딛음을 당한다는 뜨딥니다.”
(외로울 고, 더러울 누, 외로울 과, 들을 문, 어리석을 우, 어릴 몽, 무리 등, 꾸짖을 초. 보고 배운 것이 적으면 우둔하고 몽매한 자와 같이 꾸짖음을 당한다는 뜻입니다.)
“이 어구가 어디에서 나왔는지도 아느냐?”
“예, 아밤마아. 에기(예기)의······.”
오호.
홍위가 천자문을 외워 풀이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윤서는 진실로 세종에서 이향, 그리고 홍위로 이어지는 천재의 핏줄을 생생하게 확인하는 느낌이었다.
신기하게도 홍위는 그냥 외우는 것뿐 아니라 그 맥락의 풀이를 듣고 상황에 맞게 적용할 줄도 알았다.
홍위의 어깨에 턱을 올리고 윤서를 보던 이향은 어느새 진지한 얼굴로 아들에게 예기의 학이 편에서 어떤 맥락으로 배움이 적을 경우를 경계해야 한다고 했는지를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하고 있었다.
다리를 동동거리며 듣고 있던 홍위의 눈꺼풀이 어느새 천천히 무겁게 내려앉기 시작한다.
다리는 천천히 편안하게 이향의 다리 위에 내리고, 숨은 점점 천천히 느려져 고롱고롱 소리를 내며 이윽고 깊게 잠이 들었다.
“···저하.”
윤서가 부르는 소리에 비로소 홍위가 잠든 것을 알아챈 이향이 “아이고, 우리 홍위가 고단했구나.” 하고 안아서 요 위에 뉘었다.
홍위는 습관처럼 윤서의 치맛자락을 찾아 꼭 쥐었다.
“저하, 저도 오늘 고단하여 일찍 잠을 잘까 합니다.”
윤서가 조그맣게 속삭이자, 이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제 방을 나가 동온돌로 건너갈 줄 알았던 이향이 윤서 옆에 앉은 채 윤서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냐? 왜 얼굴이 어두운 것이야?”
“!”
“모레 혜민국에서 수양을 만날 일이 걱정이 되어 그러는 것이냐? 걱정하지 말거라. 엄 상전을 함께 보내주마.”
“아닙니다!”
흥, 수양 대군 따위!
“엄 상전보다는 실력 좋은 의원 하나를 전담으로 붙여주십시오. 제가 여러 약재를 쓰며 고약을 만들어 종기 치료를 시도해보고 또 다른 전염병 치료약도 만들어 볼 터인데 약재의 성분을 함께 고민하면서 실험해볼 의원이 필요합니다.”
“의원이라. 으흠······. 그런데 윤서야, 어째 의원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대체 무엇이냐? 무엇이길래 너답지 않게 마음에 있는 말은 안하고 다른 말만 하는 것이야?”
이향은 정말로 걱정된다는 듯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물었다.
“······.”
그간은 이향이 훨씬 더 많이 사랑한다고 의기양양했었는데.
알고 보니 조건이 쳐져도 훨씬 더 쳐지는 쪽이 바로 자신이었다.
현대에서도 이렇게 기우는 만남은 두툼한 봉투를 받으면서 꺼져달라는 말을 듣거나 물컵 세례를 받거나 하는 각이라는 자격지심까지 들었다.
아아.
달리기를 해야 하는데.
이게 다 부정적인 기운을 받기만 하고 헐떡이는 숨과 땀으로 배출을 못해서 생겨나는 운동 부족성 우울감에서 생겨나는 거다.
좁은 궐 안에 갇혀 사는 삶의 스트레스 때문이다!
윤서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윤서야!”
이향의 목소리가 위험할 정도로 낮아졌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