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47
47화. 검은 밤 우리는 (1)
“윤서야, 네가 이러면 나는.”
커다란 손으로 뺨을 감싸며 이향이 윤서의 눈과 시선을 맞췄다.
“네가 뭔가 말을 안 하고 화를 내는 것 같으면, 나는 불안하다.”
“저하······.”
뜻밖의 말에 놀라 윤서는 눈을 크게 떴다.
“···네가 담을 넘어 도망칠까 불안하다.”
“!”
“기다려 달라 말하던 날, 너는 백 리를 쉬지 않고 달리고, 또 한강을 헤엄쳐 저 멀리 삼남으로 어디로 도망칠 수 있다고 했지. 나는 이따금 네가 그렇게 도망치지 않을까, 네가 말해주는 지식을 들을 때마다 네가 살다 온 세계가 여기와 달리 모든 것이 훨씬 더 자유로운 듯해서, 그래서 네가 이 궐이 답답하다 느껴 결국 나를 버리고 홀가분하게 떠날 것만 같아, 불안하다.”
세상에!
이향의 눈동자가 정말로 깊은 불안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 저녁 수라를 여기 서온돌에서 들었던 것이에요?”
“···그래. 기다리는 동안 네가 나를, 여기 이 궐을 영영 네 것으로 마음에 담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릴까 봐, 그래서 결국 떠나기로 할까 봐 걱정이 되어 눈으로 너를 확인해야 했다.”
“···하 세상에. 저하!”
불안한 사람은 자신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깊은 위로가 되었다.
“저하, 말씀을 하시지요.”
나도 말을 하자.
이토록
혼자 끙끙거리지 말고, 말을!
윤서는 이향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탄식했다.
“실은 저하. 저, 달리기가 너무 하고 싶어요. 수영이 정말로 하고 싶어요.”
반사적으로 윤서를 끌어안으려다 기우제 때문에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해야 한다는 스스로의 절제 때문에 도로 손을 내리던 이향이 귀를 의심했다.
“무어라, 하였느냐?”
“달리기가, 저하. 저는 원래 일주일, 그러니까 칠 일에 오 일은 달리던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강을 헤엄쳐 건너던 사람이었어요.”
“······.”
“달리면서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니까 부정적인 감정이 쌓이기만 해서 너무 괴로워요. 원래 사주에 물기가 부족해 수영으로 채워야 하는데, 그러질 못해 영혼까지 시드는 느낌이에요, 저하.”
말하다 보니 정말로 운동 부족 때문에 생긴 우울감에 차마 자존심 때문에 말하지 못하는 속상함이 더해져 찌질찌질 윤서는 훌쩍이고 있었다.
“하아······.”
이향은 기가 막혔다.
이 달빛 휘영청한 밤에 달리기를 못해서 답답하다고 가슴을 적시며 우는 정인을 대체 어찌해야 할지 난감하였다.
그러다 문득 ‘침호두(沈虎頭)처럼!’ 생각이 들었다.
가뭄이 심해 열흘 후 양진 나루 위의 양진당에서 호랑이 머리를 넣는 침호두 기우제를 지낼 예정이었다.
비를 내리게 하는 물의 용신이 사는 한강에 양기의 상징인 호랑이 머리를 넣어 달래는 기우제처럼, 저 멀리 미래에서 온 영험한 영혼의 육체를 한강에 넣어 용신에게 호소하는 기우제 명분이라면!
“윤서야, 네 정말로 한강을 헤엄칠 수 있느냐?”
“예, 헤엄칠 수 있어요. 약식 철인 삼종 할 때 한강을 왕복한 적 있습니다!”
“좋다. 검은 옷이 있느냐? 야행복 말이다.”
“예, 있습니다만?”
뭔가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아 눈물을 스윽 닦으며 윤서가 물었다.
“그럼 엄자치에게 홍위를 부탁하고 흑의로 갈아입고, 수영 후 갈아입을 흑의 한 벌도 더 챙겨서 이따 반 시진 후에 비현각으로 오거라.”
“예!?”
수영이라니!
수영이라니이!
윤서는 어느새 눈물이 마른 눈으로 이향을 향해 눈을 휘둥그렇게 떠 보였다.
“원래 호랑이 머리 넣어 지내는 기우제가 있는데, 오늘 밤 네가 호랑이 머리 대신 영험한 미래인으로 한강을 헤엄치거라. 한강의 용신이 너를 어여삐 여겨 비를 내려주실지 혹시 아느냐?”
“···저하!”
말은 기우제라지만 이게 다 자신을 위해 수영할 기회를 만들어주고자 하는 배려가 훨씬 더 크다는 걸 아는 윤서는 그만 저도 모르게 이향의 목을 껴안았다.
“저하, 감사해요. 감사해요!”
“윤서야.”
이향은 가슴을 떨며 나직하게 웃고, 윤서를 떼어내어 속삭였다.
“기우제를 구실로 몸을 정갈히 해야 한다고 요구한 사람이 너니라.”
그렇게 안타깝게 몸을 떼어낸 이향은 홍위의 토실한 뺨에 살짝 입술을 댄 후 결연히 서온돌을 나섰다.
이향은 세자의 공식 호위군이 아닌 개인 호위인 내관 천가를 불렀다.
“수영 잘하는 호위로만 다섯, 그리고 망원정 밑 수륙군 훈련장에서 건너편으로 헤엄쳐 건너갈 수 있는 길이의 긴 끈을 튼튼한 천으로 묶어 준비하고, 과일과 포, 향 등 간단히 제사를 지낼 수 있는 물품도 정갈하게 준비하거라.”
“예, 저하.”
보름이 지난 지 이틀.
하늘에는 오른쪽이 조금 이지러졌지만 여전히 환하게 빛을 내는 달이 온통 밝게 빛을 뿌리는 밤이었다.
윤서가 엄 상전의 행각 거처에서 검은색 무명 야행복 저고리와 바지를 입고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머리띠를 이마에 두르고 있는데 방문이 스륵 열리며 매금이가 들어왔다.
“같이?”
“쉿, 나 저하랑 같이 기우제 지내는 수영하러 갈 거야.”
“같이!”
어느새 검은 옷과 검은 머리띠를 한 매금은 홀로 보낼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따라오지 말라고 해도 담을 넘고 지붕을 딛고라도 따라올 것이기에, 윤서는 “그래! 가자!” 하고 또 물었다.
“수영 할 줄 알아?”
“배, 슥삭.”
매금이는 칼을 입에 물고 헤엄쳐 가 누구 목 따는 시늉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보였다.
대체 너의 단체는 무얼 하는 단체길래 배에 탄 자까지 쫓아가서 목을 땄단 말이냐. 그렇지만 또 네가 있어서 위기 시에 수양 대군은 확실히 제거할 수 있으니.
“그럼 수영 후에 갈아입을 옷 하나 더 챙겨.”
그렇게 두 사람은 여벌의 옷이 든 꾸러미 하나씩 등에 메고 기척을 숨기고 비현각으로 갔다.
이향이 온통 검은색의 옷을 입은 채 윤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금이를 본 이향은 눈썹을 치켜올렸지만 별 말 없이 따라오라고 손짓한 후 먼저 앞장섰다.
비현각을 나서 건춘문 쪽으로 가니, 마방 앞에서 다섯 명의 건장한 호위 내관이 말 일곱 필을 끌고 서 있었다.
“말 한 필이 모자라는데, 다시 가서 가져올까요?”
매금이를 본 호위 내관 천가가 물었다.
“아니다. 여기 권가는 나와 함께 타면 된다.”
그리하여 윤서는 이향과 함께 말을 타고 부드럽게 쏟아지는 달빛을 달려 망원정 아래 수군 훈련장이 있는 나루터로 달려가게 되었다.
두두두 빠르게 달리는 말발굽 소리가 잠든 광화문과 육조 거리 일대를 뒤흔들었지만 막아서는 순라꾼은 없었다.
세자 저하께서 한밤중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 한강 변으로 행차하신다는 통보가 벌써 다 전해진 듯했다.
윤서는 등을 자극하는 이향의 탄탄한 가슴도, 뺨을 스치는 초여름 밤의 한기도, 달빛 아래 나직나직 처마를 맞대고 이어지는 한양의 밤의 풍경도, 그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몸과 마음 모두 간절하게, 지극히 간절하게 15세기 조선에 떨어진 후 단 한 번도 마음 놓고 해 보지 못한 수영을 향해 세포 하나까지 모두 흥분에 떨리는 듯했다.
일각이 좀 넘게 달려가자, 강둑 위로 높게 솟은 정자가 나오고 그 옆으로 한강으로 내려가는 너른 길이 나왔다.
“저하, 앞이 자갈밭이라 내려 걸으셔야 합니다.”
맨 앞에 서서 달리던 호위 내관이 말을 멈추고 뛰어내려 말했다.
이향이 탄 말은 다른 말보다 월등히 커서, 이향은 먼저 내린 후 윤서를 향해 팔을 뻗었다.
이향의 가슴으로 내린 윤서는, 달빛 아래 반짝반짝 빛을 내는 모래사장과 그 너머로 마침내 보이는 긴 물줄기에 “와아!” 소리를 질렀다.
“쉿! 기우제부터 지내야 한다.”
이향이 말했다.
호위 내관이 평평한 곳을 골라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또 챙겨온 과일과 육포, 생선포 등을 강을 향해 놓고, 향로에 향을 피웠다.
모두 함께 절을 하고, 이향이 대표로 술을 올린 후 미리 써온 기원문을 읽었다.
한문으로 쓴 것이라 뭐라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해도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윤서는 오로지 반짝거리며 달빛을 반사하는 어두운 강물을 바라보았다.
기원문을 향로 불에 태워 날린 후에 기우제가 끝이 났다.
윤서와 이향, 매금이, 그리고 다른 호위 내관 하나가 더 강가로 향하고 나머지 네 명의 호위 내관 중 둘은 강변에서 강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호위를 서고 나머지 둘은 또 나루터 한쪽에 묶여 있는 작은 배를 끌어왔다.
“허리에 이 끈을 묶거라.”
“예? 왜, 끈을?”
“만일의 경우에 당겨서 꺼내야지.”
“하! 저의 수영 실력을 무얼로 보시고요.”
“항아님, 물에서는 자신을 못 하는 법입니다!”
호위 내관 천가까지 끈을 매어야한다고 주장하는 걸 듣다 보니 권가의 몸이 수영 자체에는 익숙하지 않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하지만 팔을 휘젓고 다리를 차는 것은 머리가 기억해낼 것이고, 게다가 오늘은 밤이라 머리를 물 밖에 내놓은 채 개구리처럼 다리를 차며 느긋하게 왔다갔다만 할 것인데.
“보아하니 준설을 하지 않아 깊이도 얕고 유속도 느린 것 같지만, 걱정들 하시니 그리하겠습니다.”
윤서는 이향의 손에서 끈을 받아 허리에 단단히 묶고 매금이에겐 “끈이 하나니 넌 여기서 기다려!” 명을 내린 후 천천히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서서히 덥혀지고 서서히 식는 물의 특성상 밤공기보다 오히려 강물 온도가 더 따스했다.
종아리까지, 허리까지, 그리고 배꼽까지 물에 들어선 후 윤서는 천천히 몸을 앞으로 숙이며 미끄러운 강바닥에서 발을 떼었다.
촤락촤락.
갑작스러운 변화에 몸이 당황한 것은 찰나, 숨을 두 번 내 쉬는 동안 두 팔은 앞으로 뻗었다가 옆으로 물살을 가르고, 다리는 팔의 움직임에 맞춰 옆으로 쭉 벌려 차며 윤서의 몸이 천천히 남쪽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온몸을 적셔오는 물의 기운과, 팔다리를 움직여 추동력을 만들어 내는 기분 좋은 수고로움이 온몸에 퍼지며 어색하던 몸이 이윽고 기분 좋은 리듬을 가지고 착착 움직였다.
윤서는 아무 생각 없이 오로지 팔다리를 놀리는 것과 이따금 고개를 움직여 좌우, 위 아래를 살피는 것에만 집중했다.
“···윤서야.”
이향은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물 속으로 들어서다가, 허리춤을 넘어선 깊이에 다다르자 몸을 굽혀 물속으로 엎어지듯 잠기는 윤서의 뒷모습을 숨도 쉬지 않은 채 지켜보았다.
권윤서는 머리는 물 밖에 내놓은 채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저 남쪽을 향해 헤엄쳐 가기 시작했다. 첨벙거리는 소리조차 거의 내지 않은 채 부드럽게 미끄러지듯 강물을 가로지르는 권윤서의 모습은 물개 같기도 하고 전설에서 등장하는 인어 같기도 하였다.
이제야 비로소 이향은 권윤서가 자신의 조선에 속한 여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하게 실감했다.
미래의 지식을 전해줄 때보다도 오히려 더 실감 나는 이질감이자, 저렇게 고요히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품에서 영영 놓치고 말 것 같은 두려움이기도 했다.
‘내가 권윤서를 잃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이향은 불현듯 드는 의문에 가슴을 움켜쥐었다.
“권윤서!”
이향의 부름이 달빛처럼 물 위로 부서졌다.
그러나 윤서는 아무 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저 멀리 어둠 속으로 거침없이 나아가, 마침내 깜깜한 강물 속으로 사라졌다.
‘윤서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가슴 여기가 텅 빈 채, 오로지 세자와 장차 국왕으로서의 성실한 의무만 가득 찬 삶이 될 것이고, 다시는 기분 좋게 설렘이 없는 무미건조한 삶이 될 것이다!
“배를 띄워라!”
이향은 명을 내리고, 노를 젓는 환관 하나와 함께 빠르게 윤서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뱃전에 서서 한 손으로는 등롱을 높이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윤서의 허리에 묶인 끈을 단단히 쥐고, 온통 희게 물살 위에 빛나는 달빛 저 너머 오로지 검은 형체로 이따금 빛을 내는 윤서의 머리를 찾아, 팔다리가 움직일 때마다 잘게 부서지는 파문을 쫓아 이향의 마음이 물 위를 미끄러졌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