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53
53화. 평창 군주와 홍위와 세종 (2)
“엊그제 네가 혜민국에 가 있었을 때 내가 중궁전에서 홍위의 재롱을 본 사실을 아느냐? 그 ‘꼬무꼬무 오챙이’ 노래와 춤 말이다.”
“!”
윤서는 재빨리 세종의 표정을 살폈다. 세종께선 평소처럼 의중을 알 수 없게 평온한 얼굴이셨다.
이향은 세종의 말씀하신 ‘꼬무꼬무 오챙이’가 무엇인지 몰라 윤서를 보았다가 윤서의 표정이 창백해지자 자신이 여기 있으니 염려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천추전 접견실의 큰 책상에 앉아 있었다. 세종께서는 북쪽 상석에, 이향은 동쪽에 윤서는 서쪽에 마주 앉아 있다.
“네가 그 올챙이 노래와 ‘아기 돼지’ ‘산토끼’ 등을 가르쳐 주었다고?”
엊그제 세자에게 조정 업무를 넘기고 새 글자 창제의 마지막 단계를 가다듬는 데 집중하고 있던 세종께 중궁전 최 상궁이 왔다.
“전하, 혹여 시간이 되시면 중궁전으로 잠시 납시어 달라고 중전마마께서 청하셨습니다.”
좀처럼 낮에 자신을 청하는 일이 없는 중전께서 어인 일인가 싶어 서둘러 갔더니 홍위와 평창 군주가 함께 있었다.
“홍위야, 아까 할미한테 보여준 거 할바마마께도 보여드릴 수 있느냐?”
엎드려 절한 홍위에게 중전께서 말씀하시자 홍위가 몸을 일으키더니 배시시 웃고는 말하였다.
“할바마아, 이건 거가 나잉이 밤에 갓쳐 주었떠요. 너모 곰부만 하먼 호이 머이가 구더딘대요. 아가드는 노기도 해야 쭈쭈 큰대요.”
(할바마마, 이건 권가 나인이 밤에 가르쳐 주었어요. 너무 공부만 하면 홍위 머리가 굳어진대요. 아가들은 놀기도 해야 쭉쭉 큰대요.)
어린 마음에 생각해도 낮에 배우는 근엄한 천자문과는 사뭇 다른 점이 마음에 걸리는지 변명처럼 한참 설명을 하더니, 홍위가 짧은 팔을 허리에 척 얹고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개우까에 오챙이 한 마디 꼬무꼬무 헤염티다 앞 다디가 뚜욱! 뒤 다디가 뚜욱! 파딱파딱 개구디 됐네.”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헤염치다 앞 다리가 쑤욱! 뒤 다리가 쑤욱! 팔딱팔딱 개구리 됐네.)
생전 처음 들어보는 가락으로 노래를 하며 팔다리를 들썩들썩 움직이고 손을 모아 요리조리 물결치는 모양을 만드는 세 살배기 귀여운 춤에,
중전은 “아하하하하!” 폭소를 하며 배를 쥐고 웃었고 뒤에서 슬그머니 지게문을 열고 구경하던 상궁과 내관, 나인들까지 엎드려 바닥을 치며 한사코 웃음을 참았다.
웃지 않는 이는 세종 자신과, 홍위의 모습을 표정 없이 인형처럼 바라보는 평창 군주뿐이었다.
실은 세종 자신도 깨물어주고 싶도록 노래 부르고 춤을 추는 홍위가 귀여웠다.
무표정하게, 조금은 부러운 표정으로 홍위를 노려보는 평창 군주가 아니었다면 세종께서도 중전처럼 폭소를 터트리며 박수를 쳤을 것이다.
그토록이나 홍위는 찬란하게 사랑스럽고 티 없이 발랄했다.
자신의 어린 시절만큼이나 영민하면서도 주눅이 들어 눈치를 살피던 아이가 이렇게 달라진 모습은, 두려움에 반쯤 넋이 나가 있던 권가가 스스로를 토닥거리고 나서 당당히 자신을 직시하던 모습만큼이나 경이로운 변화였다.
“또 다른 것도 배웠느냐?”
묻자 홍위는 또 머리에 양손을 올리고 폴짝폴짝 뛰면서
“단 도끼 도끼야, 어디느 가느냐. 깡통 깡통 뛰먼더 어디느 가느냐.”
(산 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깡총 깡총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하고 또 낯선 노래를 불렀다.
다 부르고는 붉어진 뺨으로 쌕쌕 숨을 몰아쉬면서 홍위는,
“하바마마, 호이 다이가 아파더 더 모타겠떠요.”
(할바마마, 홍위 다리가 아파서 더 못하겠어요.)
하고는 달려와서 품에 덥석 안기는 것이었다.
품에 안기는 따스한 체온과, 아이의 건강한 숨결과 펄떡이는 심장의 소리는 자신의 살아온 세월 모두가 이렇게 영민하고 사랑스러운 손주로 피어났다는 강렬한 기쁨이 되어 세종의 온몸을 휩쓸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외딴 섬처럼 홀로 앉아 있는 첫 손녀 희아(喜兒)가 그만큼이나 안쓰럽고 애처로워 세종은 평창 군주를 불렀다.
“희아야, 할애비한테 오너라. 여기, 이쪽 무릎에 앉거라.”
군주를 아명인 희아로 부르며 손짓하자 평창 군주가 오긴 왔는데, 어떻게 앉아야 할지 몰라 몸가짐이 어색했다. 쭈뼛거리며 무릎 위가 아닌 옆에 앉아 입꼬리만 살짝 들어서 소리도 못 내고 겨우 웃는 시늉만 하는 것이었다.
세종은 무척 가슴이 아팠다.
그날 이후 세종은 미완성본인 초고를 다시 꼼꼼하게 읽으면서 홍위의 극적인 변화와 평창 군주의 풀죽은 모습을 비교하며 그 원인을 유추하고, 또 이 이론에 비추어 해결 방안을 나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나서 권가와, 평창 군주의 아비인 이향을 천추전에 부른 것이었다.
윤서가 홍위에게 여러 동요와 율동을 가르쳐 준 것은 일단 노래 부르며 춤추는 홍위 모습이 몹시 귀엽다는 이유였다.
한 번만 불러줘도 홍위는 동요의 음률과 가사를 완벽하게 (그러나 아직은 혀 짧은 발음으로) 다 외우고, 서너 번이면 율동도 다 외워 열심히 부르며 꼼지락거렸다.
그 모습은 천년의 우울도 다 사라질 만큼 귀엽고도 또 귀여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천자문을 비롯하여 진지한 배움을 너무 일찍 시작한 홍위가 옷깃 하나 풀어놓지 않던 과거의 이향처럼 너무 근엄하게만 자라 적절하게 긴장을 풀어놓는 법을 배우지 못할까 염려되어서였다.
늘 바른 마음과 몸가짐만 하려는 긴장을 몸에 품고 살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미세하게 끊임없이 분비되고, 그러면 자율신경계와 자가면역체계가 무리를 하게 되어 두통, 강박, 우울, 가려움증, 류머티즘을 비롯한 여러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윤서는 홍위가 자신을 만난 후 옷도 느슨하게 입고, 둘만 있을 때는 능글능글 마음을 풀어놓는 지금의 이향처럼, 아니 지금의 이향보다 더 자유롭고 활기차게 긴장을 풀고 즐길 줄 아는 성인으로 자라나길 바랐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토록 귀여운 홍위의 모습을 중전마마와 세종께, 그리고 이향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이렇게 빨리 혼자 선보였을 줄이야!
우리 홍위는 정말 눈이 부시게 밝아졌구나.
세종의 반응은 무엇일까.
반쯤은 기대되고 반쯤은 우려되는 마음으로 윤서는 침착하게 전하의 말씀을 기다렸다.
세종께선 윤서가 가져온 을 받아 휘리릭 넘겨 보셨다. 초고로는 거의 완성본이었다.
“······.”
윤서는 긴장한 채 세종의 말씀을 기다리고,
“······!”
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모르나 진지하게 지식을 탐하는 아바마마께서 윤서를 함부로 내치진 않으시리라 믿는 이향은 윤서의 긴장을 풀어주지 못해 안타까웠다.
“권가 네가 여기에 적은 것 중에 생애 초기 기간의 아기에겐 절대적인 지지와 공감과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네가 우리 홍위에게 준 것이 이것이더냐?”
이윽고 세종께서 물으셨다.
윤서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예, 전하. 아기씨께서는 지적인 측면은 과도하게 발달한 반면 정서적인 안정과 애착 발달은 부족한 편이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기씨께서 건강한 아이답게 커가는데 필요한 지지와 공감을 드린 것은 맞지만, 그것은 어떤 의도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제가 아기씨를 무척 사랑하면서 또 함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럼 우리 희아가, 권가야, 희아는 평창 군주의 아명이다. 으흠.”
세종께서는 목을 가다듬으셨다.
그것이 홍위와 대비되는 평창 군주의 모습을 마음 아파하시는 세종의 따스한 마음이라는 걸 윤서는 알아챘다.
“우리 희아가 저렇게 무표정하게 된 것은 그럼 그 유모 백가의 부족함 때문이겠지?”
“아닙니다!”
윤서는 반사적으로 부정했다.
사실 아까 유모 백씨를 본 후 윤서는 역사 지식을 더듬어 백씨가 그 유명한 백어리니로 훗날 성종의 유모로 국정을 농단했던 인물이었다고 역사책 어디선가 본 지식을 떠올렸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일은 개돼지를 키우는 것과 다르다.
적어도 지금까지 일관되게 군주의 곁을 지키며 군주의 마음을 보듬은 이는 유모였다.
역사 속에서 경혜공주가 자신의 아이를 또 맡겼을 만큼.
“유모는 군주 아기씨의 우울감에 책임이 없습니다. 오히려 아기씨께서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의지할 수 있는 인물일 것입니다.”
“!”
권가가 백 유모를 탓하며 자신이 군주를 모시겠다고 나서서 공을 세우려 들 것이라 예상했던 세종은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군주 아기씨께서 그렇게 우울한 모습을 여러 어른께 내보이실 수 있는 것은 오히려 건강함의 한 징표입니다. 돌아가신 세자빈께서 지극히 사랑으로 키우셔서,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읽어낼 줄 알고 그걸 어른들께도 표현하는 법을 이미 익히신 것이니까요. 정말로 정서적으로 위축된 아이들은 어른들이 기대하는 모습에 맞춰 연기를 하거나 아예 손도 대기 어렵게 말썽을 피우거나 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느끼는지 알아낼 기회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
“······.”
세종은 권가 나인이 자신의 지식 분야에서는 감추지 않고 당당한 것을 눈여겨 보았고,
이향은 권윤서가 제 공을 세울 기회를 마다하고 딸 아이 입장에서 가장 좋은 최선안을 찾는 모습을 인상 깊게 바라보았다.
“그럼, 윤서야. 희아가 궐에 돌아와서 예전과 달리 내게도 냉랭한 것이 결국 아비인 나의 잘못이라는 말이로구나. 맞느냐?”
이향이 맥락을 옳게 짚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요 며칠 따로 불러 무릎에 앉히고 여러 가지를 묻는데도 홍위와 달리 거의 반응이 없어서 나도 무척 마음이 아팠느니라.”
“시간을 많이 같이 보내주세요. 단번에 마음을 열어 주리라 기대하지 마시고 갑작스럽게 외부로 보내야 했던 것은 어른들의 사정이었지 군주님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확인해 주시고, 어마마마를 잃은 슬픔도 많이 공감해 주세요. 또 그동안 무척 보고 싶었고 돌아와서 정말 기쁘다는 표현을 많이 하시면 차차 마음을 여실 것입니다. 또한,”
윤서는 생기 없이 무표정하던 군주의 표정에서, 군주가 무척 자존심이 강하고 완벽주의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다고 읽어냈었다.
“친근하게 사람을 잘 따르는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게 하시면 좋겠습니다. 갑자기 홀로 떨어지게 되어서 어른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 또다시 버려질지 모른다는 불안, 어머니를 잃은 슬픔 등으로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데는 동물과의 교감이 큰 위로가 되어 마음을 쉽게 열 수 있습니다.”
“오호!”
세종께서는 윤서의 말을 곰곰이 곱씹으시고는 문득 말씀하셨다.
“향이 대신 내가 해도 되겠느냐? 네가 말하는 것처럼 행해서 우리 희아가 홍위처럼 밝아질 수 있다면, 그 변화를 내가 직접 보고 싶다.”
“···전하.”
“향이는 무척 바쁘지 않느냐? 긴 시간을 내기 어려우니 내가 낮에 한 시진씩 데리고 이것 저것 같이 하고, 개랑 노는 거 봐주고.”
윤서는 이향을 바라보았다.
이향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증하시고, 싶어서입니까?”
윤서가 물었더니, 세종께서 잠시 침묵하시다, 고개를 끄덕이셨다.
“권가 네가 여기에 쓴 이론들을 내가 직접 검증해 보고 싶은 것도 맞다. 정말로 이게 사실이라면 새 문자로 더 쉽게 정리하여 백성들에게 나눠줘야지. 아이가 조선의 미래가 아니더냐.”
정말로 애민 군주시구나.
윤서는 가슴이 뭉클하게 감동을 받았다.
“그럼 매일 정해진 시간에 때로 중궁전에서 중전마마와 함께, 또 때로 여기 천추전에서 같이 글자도 가르쳐주시고, 또 때로 개와 노는 아기씨와 뜰에서 함께하시고,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너도 홍위랑 같이 놀러 오거라.”
“당분간은 아기씨만 혼자 돌보아주십시오. 오롯하게 아기씨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처럼, 그렇게 소중하게 귀하게 여겨진다고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 당분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윤서는 처음으로 세종 앞에서 편안한 느낌을 가졌다.
아이 심리를 상담하는 조부모님을 대하는 느낌이었다.
아! 한가지는 덧붙여야지.
“유모 백씨가 아기씨를 너무 잘 보필하려는 의욕에서 아기씨를 주변과 오히려 고립되게 할 수는 있습니다. 이는 지켜보시고 필요하면 타이르시면, 영민한 사람이니 잘 알아듣고 고칠 것입니다.”
“알겠느니.”
세종께서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런데.
“우리 유도 그럼, 어릴 적에 홀로 사가에 나가 살았던 것이 문제가 되느냐?”
갑자기 기습적으로 물으셨다.
“그래서 네가 그렇게 내 아들 수양을 경계하는 것이냐?”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