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64
64화. 수영 강습을 하였더니 (1)
“왜 승휘냐? 아이를 낳기 전이라 당장 빈으로 올리는 것은 무리나, 나는 종3품 양원을 생각하고 있었다.”
군기시에서 돌아와 함께 동온돌에서 밤을 보낸 새벽, 이향이 품에 안고 물었을 때 윤서는 고개를 흔들었다.
“간택 후궁이 아닌 승은 후궁의 경우 처음 시작이 상궁이라고 들었어요. 승휘도 제가 우리 홍위의 나인이 아니었다면 받기 어려운 품계라는 거 잘 알아요. 전 아직 궐 생활에 서툴러서 처음부터 너무 높이 올라가면 사방에서 책만 잡힐 것입니다. 대신,”
처음으로 함께 깨어나 맞는 새벽이었다.
윤서는 이제 정식으로 남편이 될 이향의 몸 구석구석을 손끝으로 느끼며 원하는 바를 말했다.
“사람을, 사람을, 신중하게 고르겠습니다. 사람을 주세요, 저하.”
“엄 상전이나 박 상궁에게 말해 누구든 데려다 쓰거라. 대신,”
이향은 몸을 더듬는 윤서의 손을 가져다 단단히 깍지를 끼며 속삭였다.
“매일 밤 이렇게, 내 곁에서 잠들고 내 곁에서 깨어나겠다고 약속을 하거라. 무슨 일이 어떻게 있어도, 날 밀어내지 않겠다고, 약속하거라.”
이런 약속을 해야 할 사람은 부르기 전에는 동온돌에 올 수 없는 후궁 윤서가 아니라 언제든 윤서의 거처를 찾을 수 있는 세자 이향이지만, 윤서는 이향을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우리 함께 오래도록 행복해요.”
상투적인 말이었지만 원래 상투적인 말에 가장 절실하고도 근원적인 바람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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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휘로서 윤서의 처소는 자선당 북쪽 후궁의 거처 중 가장 남쪽의 거처 두 채를 터서 사용하기로 정해졌다.
보통 후궁의 거처는 사각으로 두른 담이 있고, 담 안에 대청마루를 사이에 둔 방 두 개짜리 주요 전각 하나와 담을 겸한 행각에 나인과 허드렛일을 하는 방자, 수모 대여섯이 거할 작은 방, 광, 작은 부엌 등을 둔다.
윤서가 두 채를 함께 쓰게 된 이유는 중전마마의 명 때문이었다.
“전하께서 ‘권 승휘는 육아 이론을 바탕으로 왕실 교육에 관여해야 할 바가 있으니 연구 공간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말씀하셨네. 하니 엄 상전이 알아서 적절한 공간을 확보해 주게.”
하고 명하셨다.
그래서 전각 하나는 다른 후궁들처럼 생활하는 공간이고, 벽을 허물어 한 집처럼 이어진 다른 전각 하나에는 원손 홍위와 평창 군주 희아를 비롯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연구실 형식의 방이 대청마루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또한 권 승휘는 왕실 교육 외에도 혜민국 일과 전하를 도와 책을 집필하는 등 업무가 많으니 당분간 내명부의 업무는 면제하도록 하겠다.”
중전마마께서 또 이르신 덕에 윤서는 각종 연회와 세시 풍속에 따른 행사 등에 돕는 일을 면제받았다.
윤서를 보필하는 상궁은 중전마마의 지밀 최 상궁을 오래 보필한 조 상궁으로 정해졌다.
윤서가 엄 상전과 박 상궁에게 요구한 궁인의 요건은 이러하였다.
“저는 아직 궐 내의 암투에 어둡고, 그리고 앞으로도 빼어난 수를 내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니 궐 사정에 밝으면서 동시에 암투와 계략에 능한 이를 제게 붙여주세요.”
인간은 타고난 기질과 생애 초반 학습을 통해 대뇌피질에 새긴 기억의 궤적을 따라 일평생 생각하고 행동한다. 의식적으로 노력하여 사고의 구조를 바꿀 수 있지만 대략 스물다섯 살까지 굳어진 사고의 패턴을 근본적으로 바꾸기는 무척 어려운 존재이다.
윤서의 사고 궤적은 20세기 말 21세기 초의 지식과 경험, 윤리 의식에 따라 형성되었기 때문에 중세의 사고방식, 특히 엄격한 신분 제도 사회의 최고 권력 주변에서 벌어지는 궐 내의 암투에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엄 상전은 흰 종이에 이 사람 저 사람 이름을 쓰며 박 상궁과 한참 의논한 후 이윽고 말했다.
“으흠, 중궁전 지밀 최 상궁을 오래 보필한 조 상궁이 적임이긴 하네. 중전마마께서 그 많은 후궁과 승은 상궁들을 잡음 하나 없이 통솔하시는데 제일 큰 기여를 한 이가 최 상궁이니, 그 밑에서 아주 확실히 보고 배웠겠지. 하지만······.”
“그런 이가 제 상궁으로 올지 염려라는 말씀이군요.”
“그러하네. 박 상궁, 자네가 좀 설득해 보면?”
“아이고, 나도 그러고 싶지만 조 상궁이랑은 상극이오, 상극. 너무 수를 많이 써서 그 앞에 서기만 해도 골치가 아파.”
“제가 설득해 볼게요. 대신 마마님은 똘똘하고 눈치 빠른 나인 둘을 부탁드려요. 저 대신 바깥일도 종종 봐야 할 터이니 말도 좀 탔으면 좋겠는데.”
“말이, 뉘 집 개냐? 말 한 필 값이 노비 두세 구 값인데.”
투덜거리면서도 박 상궁은 음식 솜씨가 아주 빼어난 자신의 방자 중비를 윤서 거처로 보내주기로 하였다.
원손 아기씨나 평창 군주, 다른 왕손들도 자주 방문할 것이니 간식이며 다과상을 잘 볼 이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지만 실은 딸 시집 보내듯 무엇이든 좋은 걸로 챙겨 주고 싶어 하시는 마음이었다.
윤서의 제안을 받은 조 상궁은 열 살에 궐에 입궐하여 이제 삼십 대 중반이 된 여인으로 눈매가 초승달처럼 휘어진 서글한 인상이었다.
그러나 그건 대외 포장용 인상이었던지 윤서의 영입 제안을 듣자 눈매가 아주 날카롭게 돌변했다. 한참 고심한 후 조 상궁이 직설적으로 물었다.
“승휘 마마님은 어디까지 올라가실 작정이십니까?”
무릇 상전의 위치에 따라 모시는 궁인의 지위도 정해지는지라 조 상궁은 윤서의 야망부터 확인하고자 하였다.
“끝을 보겠네.”
“···하루만 말미를 주십시오.”
그렇게 하루를 고심한 후 조 상궁은
“중도에 멈추실 수 없으실 것입니다.”
란 경고와 함께 윤서의 사람으로 합류하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승휘 책봉을 받게 될 거란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홍위의 아지(유모) 이씨 부인이 입궐하였다.
알고 보니 몸은 진즉에 다 나았는데 양 귀인이 윤서를 세자 곁에 붙여두기 위해 부러 몸이 아직 덜 나았다고 둘러댄 것이었다.
그리하여 윤서는 7월 4일 길일에 전하의 인장이 찍힌 승휘 책봉 교지를 받고 정식으로 이향의 후궁이 되면서 이미 준비되어 있던 거처로 옮겨갔다.
원래 세자의 후궁은 신하에게 벼슬을 내릴 때 주는 고신처럼 [교지. 권씨를 승휘로 삼음 (敎旨. 權氏爲承徽者)]이라 쓰인 비단 두루마리 교지만 받고 별도의 책봉 절차는 없었다.
그렇지만 책봉 날 저녁 이향은 윤서의 거처에 와 가장자리를 오색 실로 장식한 연노란색 고운 비단 종이에 붉은색 먹으로 공들여 쓴 청혼서를 건네주었다.
[마른 고목 같던 무미한 삶에 다채로운 색채를 입혀준 그대 권윤서(權允瑞)에게 나 이향(李珦) 손을 내밀어 혼인을 청하노니. 삶이 끝나는 날까지 우리 맞잡은 손의 온기가 내내 따스할 것을 믿노라]한자에 서툰 윤서를 위해 정음으로 쓰인 청혼서였다.
윤서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금가락지를 이향의 약지에 끼워주었다. 민무늬에 매끈한 금가락지였는데, 손가락이 닿는 안쪽에 장수할 수(壽)자를 새겨넣었다.
같은 모양의 금가락지를 윤서도 약지에 꼈는데, 그 안쪽에는 복(福)을 새겨 넣었다. 윤서도, 윤서 주변의 모든 이들도 모두 행복만이 가득하길 바라는 염원에서였다.
그리고 이날부터 이향은 늘 윤서의 거처에서 함께 잠을 자고 새벽에 자선당으로 돌아갔다.
홍위도 평창 군주와 함께 오후 내내 윤서의 거처에서 놀다 중비가 차린 이른 저녁까지 함께 먹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아 잠만 따로 자게 되었다 뿐이지 자선당에서 지낼 때와 별반 차이가 없게 되었다.
그래도 저녁에 혼자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할 공간이 주어진 것은 무척 고대하던 일이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이향이 올 때까지 윤서는 홍위와 평창 군주에게 가르칠 교재, 이향에게 배운 사기의 내용을 토대로 중국 역대 황제들의 심리 분석서, 혜민국 운영 개선안 등을 작성하였다.
그리고 또 전에 하던 일, 주변 사람들의 심리 분석 일지도 쓰기 시작했다. 아직 정식으로 심리 상담을 시작한 것은 아니라서 깊게 들어간 분석 일지는 아니었지만, 란 주제로 미래를 준비하기에 아주 제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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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엇보다 여름 내내 윤서의 일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동시에 장기적으로 조선 사회 전체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은 수영 강습이었다.
처음 수영 강습은 정릉의 계곡을 막아 만든 간이 수영장에서 이뤄졌다.
윤서가 급히 만든 수영 영법서를 교재로 이루어진 강습의 첫 대상은 이향의 개인 호위 내관 중 물질을 능숙하게 할 줄 아는 자 셋이었다.
이들에게 땅 위에서 자유형, 평영 두 영법의 기본 동작을 설명한 후, 온몸을 꼼꼼하게 가리는 무명옷을 두 겹 (속의 옷은 현대의 긴팔 티셔츠처럼 목 아래부터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상의에 무명 바지를 입고, 그 위로 다시 검게 물들인 빳빳하고 두꺼운 삼베 재질의 벙벙한 바지와 긴 저고리를 입고 옷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허리에 띠를 매는 형태였다) 겹쳐 입고 영법 시범을 보였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수륙군의 전투역량을 키우겠다는 이향의 의지가 워낙 강해서이기도 했고, 또한 조선이 건국된 후 아직 오십 년이 채 되지 않아 아직 고려의 자유로운 기풍이 남아 있어서이기도 했다.
“자, 보세요. 음, 파, 음, 파가 기본입니다. 그렇지만 숙달되면 평영을 할 때처럼 머리를 물 밖으로 내놓고도 가능합니다. 아주 빨리 가야 할 때 물 속에 머리를 넣고 음, 파 호흡법으로, 그리고 조금 여유 있게 장거리를 가야 할 때는 머리를 물 밖으로 내놓고!”
윤서가 대략 현대 기준으로 길이 30m, 깊이 2m 가량 되는 깊은 계곡물에서 수영 시범을 보일 때 간이 수영장 주변은 모두 차일로 가려져 외부의 시선을 차단했다. 참관하는 이는 강습 대상자 3인과, 이향, 그리고 이향의 개인 호위 내관 천가뿐이었다.
윤서는 피티 체조의 기본 동작으로 몸을 덥히고 물에 뛰어들어 착착착 팔을 놀리며 기본 자유형 동작으로 두 번 수영장을 왕복하였다.
그리고 뒤이어 철인 삼종 경기에 참가했을 때 속도를 내어 한강을 건너야 했을 때 하던 것처럼 머리를 밖으로 내놓은 변형 자유형을 선보였다.
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이향이 두꺼운 모포로 몸을 감싸주며 소리쳤다.
“자, 잘 보았겠지? 똑바로들 하거라!”
기본적으로 무술이 뛰어나고 개헤엄을 능숙하게 할 줄 아는 데다가 이향의 눈초리가 워낙 무시무시해서 금세들 기본 동작을 익혔다.
평영은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려 일단 기본 발차기와 손동작, 호흡법을 가르쳐 준 후 물속에서 시범을 보이고, 사흘 뒤 얼마나 진척되었는지 검사하겠다고 하였다.
이 모든 강습은 채 한 시진이 되기도 전에 모두 완료되었다.
천가와 내관들이 모두 물러간 후 윤서는 다시 물 위에 둥둥 떠 팔베개를 하고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이따금 다리만 살랑살랑 물을 차며 느긋하게 누워 있었더니, 그 모습을 의자에 앉아 한참 지켜보던 이향이 문득 말했다.
“이 수영, 홍위와 희아에게도, 다른 왕실 아이들에게도 가르치자꾸나. 그리고 나도 배워서 아바마마께 가르쳐드려야겠다. 물만 좀 따스하다면 어마마마도 좋아하실 것 같은데.”
“그럼 저하, 이보다 깊이를 낮게 물을 가두면 됩니다. 그리고 강원도 쪽에 탄광이 있어요. 북한에 아오지 탄광도 유명했는데. 거기에서 시커먼 석탄이 나오는데, 불을 붙이면 아주 오랫동안 잘 타지요. 정식으로 수영장을 만들면 그거 캐와서 물을 데우면 됩니다. 나무를 때서 물을 데우다간 온 산이 다 민둥산이 되고 말 거에요.”
윤서가 소리치자 이향의 눈이 몹시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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