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69
69화. 종기 수술 시연과 세종의 아들들 (2)
“왜 공을 주장하지 않는 것이오?”
수양 대군이 침중한 얼굴로 윤서에게 따져 물었다.
이날 종기 치료의 예방과 치료법에 대한 혜민국의 성과의 대부분이 수양 대군의 공으로 돌려지는데도 권 승휘가 부처님처럼 고요한 미소를 지으며 침묵한 연유를 묻는 것이었다.
종기 수술 시연이 끝난 후 세종께서는 크게 기뻐하시며 혜민국 주부와 의학 교수 등 소속 관원들의 품계를 특별히 한 단계씩 높여주는 동시에 녹봉에서 쌀 석 섬, 비단 다섯 필, 정포 열 필을 더해 지급하도록 명을 내리셨다.
또한,
“종기로 고생하는 백성들을 위해 우리 수양 대군이 참으로 큰 공을 세웠으니, 녹피 안장을 올린 말 한 필, 비단 열 필을 상으로 내리노라.”
하고 특별히 수양 대군의 공을 치하하셨다.
또 전순의에게는 혜민국 주부와 내의원 주부 직위를 겸하게 하란 파격적인 승진을 지시하시고, 표본 실험이라는 과학적인 방법을 구현한 보고서의 처음 도입부터 최종 과정을 적어 전의감에서 의원들을 교육할 때 기본 교재로 쓰게 하라는 명도 내리셨다.
크게 감격한 전순의는 엎드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하오나 이 모든 방법론은 처음부터 최종까지 권 승휘 마마님께서 지도해주신 덕분입니다. 도표 또한 권 승휘 마마님께서 그리신 것이옵니다.”
하고 고해 수양 대군을 분노하게 했다.
수양 대군은 자신이 대군의 권위를 가지고 진두지휘했기 때문에 이러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굳게 믿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실질적인 세부안을 이끈 것이 권 승휘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전순의가 저렇게 고할 때 내심 권 승휘가 자신의 공을 주장하고 나설 것이라 예상했는데, 끝까지 함구하고 있자 무슨 다른 꿍꿍이가 있지 않은지 의심스러워진 것이었다.
전하께서는 혜민국의 관원들에게 음식과 술을 내리시고 환궁하시며
“대군들은 모두 중궁전으로 들거라. 중전마마께서 오늘 유의 공적을 치하하실 것이다. 나 또한 오늘 유의 공적을 본받아야 할 너희에게 당부할 것도 있느니.”
하고 이르셨다.
이향은 전하 내외를 모시고 먼저 환궁하였고, 안평 대군과 임영 대군 등 다른 대군들도 그 뒤를 따라 중궁전으로 향했다.
윤서는 서류를 마저 정리해 놓고, 신숙주의 상태가 안정되는지 본 다음 환궁할 생각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수양 대군도 바로 궐을 향하지 않고 윤서를 찾아온 것이었다.
윤서는 유 승휘와 다른 후궁들, 매금이와 보좌 내관 강인구까지 물리고 집무실에서 수양 대군과 마주 앉았다.
수양 대군이 윤서를 다시 추궁했다.
“공을 내세우지 않는 것은 구태여 주장하지 않아도 형님께서 혜민국을 내려주리라 믿기 때문이오?”
역시, 수양 대군은 감이 좋았다.
늘 서자들까지 꼼꼼하게 챙기시던 중전마마께서 직접 낳은 대군들에게만 연회를 베푸시는 것은 전하께서 대군들에게 긴히 내릴 임무가 있어서라는 걸 간파하고 있었다.
“대군 자가께서는 혜민국만으로 만족하십니까?”
“!”
윤서가 되묻자, 수양 대군은 미간을 찌푸렸다.
“권 승휘께선 늘 그렇게 되묻더군. 이야기를 할 땐 솔직하게 서로 의견을 나눈다고 믿게 만들고 늘 의뭉스럽게 뒤통수를 치더이다. 신 수찬 일만 해도.”
수양 대군은 불쾌한 듯 빈약한 수염을 쓸었다.
수술을 받는 도중 신숙주는 너무 큰 고통에 혼절하다시피 하였고, 수술이 끝난 후 수양 대군에게 원망을 퍼부었다.
“대군 자가께선 내게 무슨 원한이 있어 이리하신 것이오? 중독될 위험이 있으니 앵속을 태우지 말라! 하! 내 통증으로 정신을 놓아버릴 뻔하였소이다!”
신숙주가 앵속을 못 쓰게 한 사실을 맹렬하게 원망하였는데, 실은 그건 원래 권 승휘의 생각이었다.
신 수찬은 전하께서 지극히 아끼시는 빼어난 인재니, 혹여 고통을 덜어준다고 앵속을 쓰게 하였다가 중독이라도 되면 큰일이라고, 앵속이 얼마나 무서운 풀인지 잘 알지 않냐고 윤서가 넌지시 제안했었던 것을 수양 대군이 그대로 신숙주에게 옮긴 것뿐이었다.
알코올이 상처에 닿으면 벌겋게 달군 쇠처럼 타는 듯한 통증을 일으킨다는 걸 몰랐던 수양 대군이 마찬가지로 그 사실을 모르는 신숙주를 설득해 맨정신으로 수술을 받게 한 것이었는데, 원망은 고스란히 수양 대군이 다 받게 되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수양 대군은 처음부터 이것이 권 승휘가 의도한 일이란 확신이 들었다.
신숙주가 원망을 품어 절대로 자신의 사람이 되지 못하게 할 의도!
“그러니 처음부터 신숙주를 수술하자고 한 것도, 오늘 구태여 공을 주장하지 않으면서 형님 곁에 고요히 서 있었던 것도 다 나름의 계획이 있어서가 아니오?”
“계획이 없지는 않습니다, 대군 자가.”
윤서는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중궁전 연회에 들면 주상 전하께서 이향의 의견을 받아들여 대군들에게 여러 일을 나누실 것이다.
그러니 이 대화가 수양 대군과 속 깊게 나눌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전에 저와 나누신 몇 번의 대화를 기억하십니까? 성인이 되어 하는 행동의 많은 양태가 실은 어릴 적 정서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심리 이론 말입니다.”
“그게 오늘 일이나 신숙주의 일과 무슨 관계란 말이오?”
“하늘에 빛나는 별은 우리 인간의 눈에는 모두 다 찬란하게 빛을 내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별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스스로 빛을 내는 별과, 다른 별이 내는 빛을 반사하기만 하는 별이 있지요.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고 태양 빛을 반사하는 것일 뿐입니다. 저는 자가께서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이 되시길 바랍니다.”
“!”
“누구와 비교하여 더 잘나길 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대군 자가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시고 그 성취 속에서 기쁨을 찾으시길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새 임무를 맡게 되었을 때, 혜민국에서 보인 추진력으로 더 크게 성취하고 그에 만족하길 바랍니다.
윤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었지만, 더는 말하지 않았다.
한 달 전, 수양 대군의 심리적 동인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슬쩍 심리 유도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질문의 방식은 저명한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 받았던 최면 상담 세션의 질문 기법을 응용한 것이었다.
그 최면 상담 세션에서 상담 의자에 누워 눈을 감았을 때 윤서는 엄마의 손을 잡고 홍성 읍의 장터에 나갔다가 미아가 되어버렸던 네 살의 어린 자신을 만났었다.
북적거리는 장터 한가운데 홀로 오도카니 울고 서 있던 어린아이의 공포가 윤서가 가진 기본 정서였고, 그래서 누군가 이성을 만났을 때 언젠간 저 사람도 내 손을 놓고 가버리겠지 하는 불신의 마음이 시작되는 곳이 바로 아직도 무의식 한가운데 울고 있던 그 어린아이의 존재였다.
그래서 수양 대군에게 의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슬쩍, 어린 시절 가장 강렬한 기억이 무엇인지 눈을 감고 떠올려보라 했을 때,
“유모와 함께 오랜만에 궐에 들어왔더니 형님과 안평이 어마마마의 손을 하나씩 잡고 나를 낯설게 보았소. 나중에 형님과 안평은 아바마마께 논어를 배웠다면서 내게 한 구절씩 물어보았는데 나는 대답할 수 없어 가슴이 무척 답답했소.”
대답하고는 눈을 뜨고 사내인 자신에게 계집 따위에게나 물을 질문 따위를 던졌다고 화를 냈었다. 너무도 생생하게 어린 시절의 상처받은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듯했다.
“어린 시절의 상처 따위! 인간은 의지를 가지고 성취하는 존재란 말이오. 아바마마와 형님께선 이상한 자를 아끼시는군.”
분노하면 할수록 수양 대군이 가진 심적 동인이 확실하게 분석되었다.
성인기에 직면하는 많은 심리적 문제의 뿌리에 어린 시절의 겁에 질린 자아가 있다는 기법은 심리 상담에서 많이 쓰는 치유 기법이다.
내면의 그 어린아이를 안아주며 그때는 아프고 외롭고 무서웠지만 결국 이렇게 무사히 잘 컸다고 안아주며 안심시키는 것이 내면의 아이 치유의 방식이다.
실제로 윤서도 홀로 울고 있는 네 살의 자신에게 곧 다시 엄마를 만날 수 있고 그래서 무사히 이렇게 잘 컸다고 속삭이며 안아주는 상상을 반복적으로 한 후 사람들을 만날 때 느꼈던 두려움과, 버림 받을까 봐 먼저 거리를 두는 양태가 많이 줄어들었었다.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불안이 어린 시절의 투영이라는 것을 인지하였기 때문이다.
윤서는 수양 대군도 그렇게 평안해지길 바랐다.
잘난 형제들과의 비교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목표를 찾으려 하지 말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목표를 세우고 지금 만난 부인과 자식과의 관계 속에서 만족과 행복을 찾을 수 있길, 그래서 현재로도 만족하고 행복해질 수 있길 바랐다.
그러나 홀로 버려진 듯한 소외감을 느낀 어린 수양의 존재를 지금의 수양 대군이 보듬어 달래 장차 평안한 수양이 될지, 아니면 그 어린 수양에게 널 초라하게 만든 것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도 왕이 되어야 한다고 다그치는 수양이 될지는 결국 수양 대군에게 달렸다.
윤서는 그가 역사 속에서 걸어간 길을 그대로 걸어가더라도, 무슨 일이 어떻게 생기더라도 이향과 홍위를 지킬 방도를 빠짐없이 세울 뿐이다.
“혜민국은 결국 권 승휘 그대의 것이 되는 것이오?”
겨우 가진 하나를 손에서 억지로 빼앗기는 어린아이의 표정을 하고 수양 대군이 물었다.
“대군 자가께서는 이보다 훨씬 더 중차대한 일을 맡게 되실 것입니다.”
“중차대하다고, 누가 결정한다는 말인가?”
“모든 것은 다 주상 전하의 뜻에 달린 것임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최악의 종기라도 속수무책으로 죽어가지 않게 할 치료법을 원했고, 드디어 찾아내 손에 쥐었습니다.”
이향은 종기로 죽지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종기가 악화되지 않도록 늘 살필 것이고, 악화되더라도 째서 농을 제거할 것이다.
물론 항염과 항생 작용을 할 약제, 마취 성분이 있는 약제를 추후 찾아내야 하겠지만.
“······.”
수양 대군은 한참 동안 의중을 짐작하기 어려운 눈으로 한참 동안 윤서를 바라보았다.
“형님은 무슨 복이 많아 당신 같은 첩을 얻었는지 모르겠군. 하지만,”
“······.”
“세상의 모든 일이 다 권 승휘 당신의 그 교묘한 세 치 혀 대로만 돌아가진 않을 것이오.”
중궁전으로 향하기 전 수양 대군이 남긴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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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전마마의 교태전에서 열린 연회에서 세종께서는 수양 대군을 무척 칭찬하셨다.
“혜민국에서 단기간에 혁신적인 종기 치료법을 정리해낼 수 있었던 것은 유가 진심을 다해 백성을 위하는 마음을 내었기 때문이다. 또한 평소 지식을 쌓길 부지런히 하고, 동시에 대군의 권위를 적절히 사용하여 휘하 관원과 의원을 부릴 수 있는 지도력을 갖추었기 때문이지. 유는 동생들에게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성과를 낼 수 있었는지 상세히 설명하거라.”
“과찬이옵니다, 아바마마.”
전하의 칭찬과 인정에 수양 대군이 뿌듯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 빼어난 성과를 낼 수 있었는지 처음부터 오늘까지 상세하게 설명했다.
수양 대군의 설명을 귀담아들으며 “오호!” “그래, 참으로 잘 하였도다!” 추임새를 넣으며 세종께서는, 잘난 아들들의 얼굴을 하나씩 눈에 담았다.
그리고 어주를 한 잔씩 내리고, 이렇게 잘난 아들을 낳아 하나도 잃지 않고 잘 키운 중전마마의 은공을 치하한 다음,
“아바마마! 어, 어떻게, 갑자기!”
가만히 모란꽃처럼 웃고 계신 중전과 이미 알고 있어 차분한 이향을 제외하고 모두 놀라 기함할 어명을 내리시었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