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72
72화. 홍위와 희아와 사역원 나들이 (2)
사역원의 한학 교수가 홍위 옆에 무릎을 꿇고 교재를 보여주며 수업 방식을 설명했다.
“이것이 한어 회화 교재로 쓰이는 노걸대(老乞大)입니다.”
“‘형님, 어디에더 왔뜹니까.’난 뜻인데, 한어로는 어뜨케 밧음하지요?”
(‘형님, 어디에서 왔습니까.’란 뜻인데, 한어로는 어떻게 발음하지요?)
홍위가 묻자 한학 교수는 큼큼 목을 가다듬고, 성조를 잘 살린 유려한 발음으로,
“따거 니쭝나리래”
하고 교재를 읽자, 홍위도 “따거 니쭝나니내” 하고, 발음은 서툴러도 성조는 정확하게 살려 따라 읽자 한학 원생들이 “와아!”하며 또 환호했다.
홍위는 친근하고도 위엄 있게, 그렇지만 작은 몸짓과 젖살이 통통한 붉은 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귀여운 모습으로 참관 업무를 수행했다.
“어떻게, 어떻게 저렇게, 우리랑 있을 때와 다르지?”
뒤에서 윤서의 손을 잡고 따라가던 누이 평창 군주가 까치발을 들고 윤서 귀에만 들리게 속삭였다.
나이 차이가 많고 성별이 달라서인지 희아는 홍위에 대해 남매 사이에도 있을 수 있는 부러움이나 시기가 없이 담백한 애정, 또 때로 짓궂은 애정을 가졌다.
지금도 비꼬는 것 같으면서도 윤서에게 제 동생이 얼마나 대단한지 은근히 자랑 중이었다.
“왕재를 타고나셔서 그러하지요.”
윤서도 뿌듯한 마음으로 함께 칭찬하고, 군주의 손을 더욱 힘주어 잡고 또 속삭였다.
“그렇지만 군주 자가께서 궐에 돌아오신 후 아기씨께서는 훨씬 더 아이답게 밝아졌어요. 누이의 존재가 무척 의지가 되고 안심이 되어 그런 것이지요.”
“뭘, 나한텐 맨날 장난만 쳐서 성가신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엄마의 존재를 모르고도 저리 잘 자란 동생에 대한 애정이 늘 단정한 눈매에 부드럽게 깃들었다.
이렇게 둘을 함께 데리고 나오니 좋았다.
윤서와 둘이서 있을 때 홍위는 윤서를 믿고 의지하면서도 늘 의젓하게 굴기 위해 애쓰는 부분이 있었다. 그건 윤서가 태어나면서부터 무조건적인 든든한 애정을 준 엄마 같은 존재가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든든한 애정과 절대적 지지를 주는 존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위는 자신이 잘못하면 윤서가 애정을 거둘지 모른다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때로 애처로울 정도로 잘하려고 애를 썼다.
이런 사정은 윤서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이 몸의 권가가 품고 있던 애정에, 반지로 소환될 때 세자빈 권씨에 의해 정신에 깊게 각인된 임무에, 안쓰럽고 연약한 생명에 깊게 연민하는 윤서의 본래 성품이 더해져 홍위를 지극히 사랑하고 아끼지만, 신분의 차이와 ‘새엄마’라는 자기 검열에서 의식적으로 애를 쓰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 홍위와 윤서는 서로를 강력히 지지하고 애정하지만, 서로에게 더 잘해야 한다는 의식적인 의무감이 깃든 관계이기도 하다는 걸, 어린 홍위는 아직 모르지만 윤서는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이런 홍위에게 핏줄로 이어진 다섯 살 위 누이는 안심하고 마음껏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안식처 같은 존재였다.
평창 군주 희아도 아직 여덟 살 어린아이지만, 어마마마를 잃고 갑자기 궐 밖에 나가 살아야 했던 환경이 조숙한 아이로 만들었고, 그 경험이 동생의 처지를 연민할 수 있게 하는 사려 깊은 누이로 만들었다.
거기에 자상하지만 여러 후궁과 배다른 아이를 가진 아바마마 밑에서 결국 세상에 피를 나눈 남매는 자신들뿐이라는 본능적인 애정과 연민으로 둘은 굳게 연결되어 있었다.
‘원래 역사에서도 홍위와 희아는 비극적일 정도로 각별하였지. 그러나 이번 역사에서는 끝까지 서로 아끼고 애정하면서 내내 행복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믿으며 윤서는 셋이 함께 있을 때는 의식적으로 한발 물러났다.
남매간의 우애가 더욱 돈독하게 피어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윤서의 이런 배려가 두 남매가 더욱 윤서를 믿고 따르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였다.
왜어와 유구어 학당에 이어 마지막으로 여진어 학당을 들어설 때 홍위의 걸음이 자꾸 느려졌다.
이제까지 없는 듯, 뒤쪽에 서 있던 윤서는 빠른 걸음으로 홍위에게 다가섰다.
“아기씨.”
윤서가 작은 목소리로 부르자 마침 여진어 교수에게 “그염, 앞프요도 잘 부탁합니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하고 마지막 말을 건넸던 홍위가 뒤로 돌았다.
그리고는 외투 아래로 팔을 쭉 내밀고는,
“아나져.”
하고 오랜만에 안으라고 요구했다.
많이 지쳤다는 뜻이다.
윤서는 서슴없이 홍위를 품에 안았다.
홍위는 반투명한 흰색 너울 속으로 얼굴을 묻고는 “눈꺼풀이 자꾸 내여와.” 하며 졸리다고 칭얼거렸다.
윤서는 홍위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의젓하게 너무 잘하셨어요. 이제 눈 감고 쉬세요, 아기씨.”
윤서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홍위가 눈을 감았다.
궐에 돌아가서 낮잠을 재워야 할 시간이었다.
사역원의 관원과 원생들은 금세 쌕쌕거리며 윤서 품에서 잠든 홍위를 보고, 의젓하게 참관 임무를 다한 원손 아기씨가 실은 얼마나 어린아기인지 실감을 하고 더욱 감격하였다.
“원손 아기씨께서는 교수와 원생 여러분들께서 더욱 정진하시어 앞으로도 조선의 외교 업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주길 바라십니다.”
윤서는 홍위를 대신해 치하의 인사를 남겼다.
“더욱 부지런히 정진하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원손 아기씨!”
모두 엎드려 홍위에게 예를 취하는 가운데 윤서는 홍위를 안고 사역원 뜰로 나왔다.
수석 통사 김을현을 비롯한 사역원의 관원들이 홍위를 전송하기 위해 모두 시립해 기다리고 있었다.
윤서는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고, 너울 너머로 수석 통사 김을현을 다시 직시하였다.
너울 너머 검은 눈동자가 강렬하게 자신을 주시하자, 김을현은 허리를 숙이고 윤서에게 다가왔다.
“정문까지 제가 전별하겠습니다.”
밖에는 어느새 홍위와 윤서, 군주를 모시고 갈 가마가 대령해 있었다.
윤서는 천천히 정문을 향해 나가다 걸음을 멈추고 다시 김을현을 바라보았다.
“오늘 우리 원손 아기씨의 방문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
대군들의 입지가 급변하고 있는 이 민감한 시기에 세자의 후궁이 원손을 앞세워 사역원 참관을 겸해 자신을 찾을 이유를 알아채지 못할 만큼 김을현은 어리석지 않았다.
그렇지만 하던 대로, 이미 명나라 황실에 굳건한 줄을 대고 있는 사람들과 장차도 함께 하는 것이 편안하고 안전한데.
하지만.
수석 통사 김을현은 세자가 지극히 총애한다는 후궁과, 그 후궁 품에 안긴 원손 아기씨를 바라보았다.
한때 불운한 징조를 타고났다고 알려졌던 원손은 조선과 명나라를 두루 다니며 견문을 넓힌 자신의 눈에도 범상치 않았다.
저리 비범한 왕손이시라면.
저 왕손이 정말로 이대로 장성하여 장차 조선을 이끄신다면.
‘그럼 분명히 오늘의 사역원 방문과 이 만남을 분명히 기억하시리라!’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김을현은 저도 모르게 원손과 권 승휘 앞으로 다가섰다.
“이번 동지사 행에는 저하의 명으로 북경에 머물면서 다양한 분야를 배우고 익힐 젊은 인재들도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김을현은 세자가 총애하는 후궁이라고 해도 묻기 전에는, 아니 묻는다고 해도 결코 고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있던 말을 저도 모르게 나직하게 읊었다.
“그중에는 한어와 몽골어를 현지인에게 배우고 익히면서, 명의 황실 내 인사들과 친분을 쌓아가며 정보를 모을 인재도 있습니다. 이들이 잘 자리 잡으면 한쪽에서만 나오던 황궁 내 소식을 다각도에서 수집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드디어!
고대하던 말이 김을현의 입에서 나왔다.
윤서는 뿌듯한 마음으로 가볍게 코까지 골고 있는 홍위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윤서가 오늘 어린 홍위와 함께 사역원을 방문한 것은 홍위를 교육시킬 목적도 분명히 있었다. 세손으로 책봉된 후 외국어도 배울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이번 동지사 행을 이끌고 북경에 갈 수석 통사 김을현에게 홍위를 보여주어 확실히 경고하고자 하는 목적이 더 컸다.
대명 외교의 창구가 한확의 세력권에 지나치게 치우친 것을 시정해야 한다는 경고였다.
한확은 누이 둘을 영락제의 후궁 여비 한씨, 선덕제의 후궁 한씨로 각각 보내면서 명나라 황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그를 배경으로 대명 외교에 해결사 역할을 하면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또한 명 황실의 인척이라는 위치를 이용해 세종이 무척 총애하는 서장자 계양군을 사위로 얻어 조선 왕실과도 긴밀한 인척 관계를 맺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조 전언 밑에 심어둔 나인이 은밀히 보고해 오길 수양 대군은 벌써 도원군을 장차 한확의 막내딸과 맺어줄 것을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합니다.”
조 상궁이 한 달 전 보고한 사안이었다.
이미 수양 대군의 부인 윤씨와 그 세력이 한확의 누이인 선덕제 후궁 한씨를 움직여 우리 조선 왕실의 세자빈 간택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었다.
일이 그렇게 진행되면 역사가 똑같이 되풀이 된다!
윤서는 이미 이향에게 정보를 전달했고, 장차 판세를 바꾸는데 핵심 조력자로 얻어야 할 김을현에게 홍위가 어떤 아이인지 직접 보여주고자 사역원까지 온 것이었다.
며칠 전 이향이 먼저 김을현을 은밀히 불러들여 명을 내렸다.
“명나라 장태 황태후가 승하한 이후 태감 하나가 어린 황제를 끼고 무섭게 권력을 농단하기 시작하였다지? 그자가 장차 몽골족과 여러 전투를 벌이며 큰일을 낼 것 같으니, 명의 조정과 황실의 사정을 정확하게 수집하여 보고할 인재를 북경에 심어둘 방도를 찾으라.”
김을현은 자신이 보고한 적도 없는 명나라 사정을 세자 저하께서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예, 저하. 소신 빼어난 역관들로 하여금 북경에 머물며 정보를 수집할 방안을 마련하겠습니다.”
김을현은 그렇게 답하고 영민하고 재치 있는 이들을 따로 맹렬하게 교육 중이었다.
그렇지만 윤서는 김을현이 진심으로 이향의 명을 따를지 의구심이 들었다.
조선에서는 한확의 영향력이 무척 컸고, 명나라 북경에서는 그의 누이 한씨 부인과, 한씨 부인과 손잡은 조선 출신의 명나라 환관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게다가 원래 역사에서 한씨 가문의 영향력이 날로 커져 결국 수양 대군의 야심을 더욱 불타오르게 하고, 결국 계유정난과 그 뒷수습을 성공적으로 뒷받침하여 마침내 도원군의 부인이 된 한확의 막내딸을 인수대비로 만들고야 말았기 때문이다.
윤서는 홍위의 천진난만한 귀여운 모습이 김을현의 눈에 잘 보이도록 너울을 넘겼다.
그러자 분홍빛 뺨으로 건강히 잠든 홍위의 얼굴과 함께, 서늘한 미인이라는 소문이 자자한 세자의 후궁 승휘 권씨의 얼굴도 함께 드러났다.
가만히 응시하면 속을 꿰뚫는 듯 강한 눈빛을 가진 왕실의 미인이 김을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외교에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지요. 주상 전하와 세자 저하, 그리고 장차 성군으로 자라나실 우리 원손 아기씨에 대한 깊은 충심으로만 무장한, 그런 전문 외교 인력의 활약을 기대하겠습니다.”
드디어 역관도 조정의 핵심 인재로 인정을 받는구나!
심장이 쿵 내려앉는 감동을 받은 김을현은 깊게 허리를 굽혔다.
“예, 세자 저하께서 명하신 모든 일에 신명을 다할 것입니다.”
“귀공의 각오와 충정에 깊게 감사드립니다. 먼 사행길 오가시는 데 불편함이 덜하시도록 우리 혜민국에서 특별히 만든 여러 가지 고약과 탕약, 비누 등을 지원해드리겠습니다.”
윤서는 환하게 웃으며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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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가 사역원을 방문해 대명 외교의 축을 변화시키고 있을 때.
수양 대군은 종기 수술을 받은 후 혜민국에서 지극한 보살핌을 받고있는 신숙주를 찾았다.
곰곰이 생각한 결과 자신이 대마도와 유구국에 가게 된 것이 신숙주의 건의에서 비롯되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양 대군은 몸을 보하는 데 도움이 될 각종 귀한 한약재와, 한확을 통해 명나라에서 구했던 희귀한 서책 여러 권을 병문안 선물로 먼저 내어놓았다.
집현전에도 없는 몇 권의 서책에 신숙주의 얼굴이 환해졌을 때, 수양 대군이 때를 놓치지 않고 제안했다.
“신 수찬, 나와 함께 대마도와 유구국에 가십시다. 일본과 대마도, 유구국의 사정에 신 수찬만큼 밝은 이가 조선에 없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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