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81
81화. 광평 대군의 죽음을 막기 위해
“우리 아이가 생기니, 저하. 저는 절실해졌습니다.”
윤서는 천추전에서 아이를 가졌을지도 모른다고 깨달은 순간을 떠올렸다.
그 순간, 아무리 홍위를 애달파하고 아무리 이향을 사랑하던 순간에도 이 세계는 내 것이 아닌 듯 붕 떠 있는 것만 같던 느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역사의 비극이 일어나지만 않으면 된다고 수동적으로 생각하던 삶의 조건이, 더 나은 것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나의 것으로 다가왔다.
원래 이 세계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향이 이 미묘한 이방인의 느낌을 이해할 수 있을까란 의문에, 캄캄한 어둠 속에서 이향의 수려한 콧날을 더듬던 윤서가 문득 물었다.
“실감 나게 읽은 역사서나, 패관소설이 있어요?”
“나? 으흠, 사신들이 들여온 책 중에 삼국지연의가 있어 읽었지. 중국의 기서를 너도 읽었느냐?”
“삼국지! 어느 날 당신이 거기 항우가 사랑한 우희가 되었다면요. 그래서 마침 항우와 사랑을 하고 그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면요,”
항우가 최후의 순간에 ‘우희여, 우희여, 그대를 어찌하면 좋은가’ 하고 읊게 한 그 애닯은 장면을 떠올리며 윤서가 말하자, 이향이 “크흠” 목을 가다듬더니 그래도 웃음을 참지 못하는지 맞닿은 가슴을 잘게 떨었다.
“진지하게 말하는데 왜 웃어요? 여자가 되면, 이상할 것 같아서?”
“윤서야, 항우와 우희가 나오는 것은 삼국지연의보다 훨씬 앞선 시기니라. 항우는 한나라를 세운 고조와 싸운 장수이고, 삼국지연의는 한나라가 망해가는 시기의 영웅들 이야기니.”
“아!”
아니, 모를 수도 있지.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걸 꼭 이렇게 짚고 넘어가야 하나.
호르몬 작용인가, 평소보다 더 서운한 기분에 몸을 뒤로 물리자, 이향이 더욱 바싹 품에 당겨 안으며 속삭였다.
“내가 우희가 되었다면, 항우의 그 불퉁하고 얄팍한 성미를 고쳐 유방을 반드시 이기게 하려고, 윤서 너처럼 갖은 수를 다 쓰겠지. 이렇게 아름다운 몸으로 애간장을 녹이면서. 응?”
“······.”
“윤서야, 헷갈릴 수도 있지. 그래서, 무엇이 절실해졌다는 것이냐, 응?”
이향이 다정하게 묻자 서신을 보내는 대신 직접 두 시진 가까이 쉬지 않고 추위 속을 달려온 마음이 다시 생각났다. 조금 눈을 붙인 후 곧 곧 다시 칼바람 겨울 추위를 뚫고 이천으로 돌아가야 할 이에게 어째서, 나는!
“피곤할 것이니 눈 감고 들어요. 이제까지 이 세상은 좀 추상적이었어요. 저하나 홍위, 희아는 모두 역사서에서 읽었던 사람들이라 저하만 오래 살면 모두 다 해결된다고 생각했어요. 그 속에 내 삶이 어떻게 녹아들어야 하는지 별 고민이 없이, 그저 저하랑 홍위만 오래, 세종의 빛나는 업적을 계승하는 모습만 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나 봐요. 하지만 이 아이는 나 때문에 여기 살게 된 것이니까.”
윤서의 말에 이향이 아직 납작하기만 한 윤서의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그러니까 네 삶도, 우리 아기의 삶도 이제 실체를 가진 절실한 것이 되었다는 말이로구나. 여기, 나와 또 홍위와 진짜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할 삶으로 다가왔다는 말이지?”
“맞아요. 좀 더 자유롭고 좀 더 안전한 삶. 이 아이에게도, 홍위에게도, 다른 조선의 아이들에게도.”
아이가 좀 더 아이답게 꿈을 꿀 수 있는 세상, 질병으로 일찍 스러지지 않을 안전한 세상이 절실해졌다는 윤서의 말에 이향은 생각에 잠겼다.
한참 침묵이 이어져 잠이 들었나 했더니, 문득 이향이 말했다.
“무엇이든, 다 하거라. 윤서야. 네게 절실한 그 세상이 바로 우리 아이들에게도, 백성들에게도 절실한 삶일 터이니.”
허락하고는 이내 조건을 덧붙였다.
“하지만 책 간행은 홍위의 스승 성삼문과 논의하면서 그 내용을 검열하거라. 너무 급진적인 내용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사회가 혼란스러워지고, 그러면 오히려 반동의 역풍이 불 수 있으니.”
군주다운 우려를 표하고 이향은 마침내 가볍게 코를 골며 잠에 빠져들었다.
윤서는 그 옆에서 어둠을 응시하며, 이향이 말한 ‘반동의 역풍’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한글처럼 배우기 쉬운 문자가 백성들 사이에 본격적으로 퍼져나가는 것이 현대의 인터넷의 등장과 비슷한 파급력을 가질 수 있으리란 점을 짚어보며.
인터넷을 통해 인류가 서로 소통하며 자유롭고 평등한 세계를 만들어가리라 기대했던 처음의 전망은 곧 틀린 것으로 판명이 났다.
오랫동안 생존이 가장 절실한 삶의 조건에서 살아온 인간은 신체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인지 편향’을 발달시켜왔다. 새 지식과 사고 방식을 습득하는 것은 모두 다 에너지가 드는 일이니, 기존에 알고 있는 것에 기반해 새로운 상황을 이해하고 추론하는 것이 ‘인지 편향’이다.
그리고 이 인지 편향은 먹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의 인터넷 상에서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범람하는 정보와 견해 속에서 자신의 편협한 시각을 수정하기보단 비슷한 사고나 신념 체계를 지닌 이들을 찾아내고 그들과 연대하며 자신의 그릇된 견해를 더 공고히 하는 식으로 발전했다.
‘문자의 보급도 비슷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조선처럼 세습 노비제가 엄격한 사회에서 노비들까지 한글을 알게 되었을 때, 벽서나 찌라시의 형태로 가장 낮은 이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면, 그러면 어떤 파급력이 생겨날 것인가.
더구나 이제 이향이 한강에 배를 촘촘히 묶어 부표 다리를 놓고, 경기 각 지역에 길을 닦으며 대동법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내년부터 두 대군이 석탄을 실어 오고 수양 대군이 우각과 유황을 실어 오며 해외 무역을 시작하면 더욱 급변할 조선 사회에서 문자의 보급이 가져올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 것인가.
생각은 이어지고 이어져 문득 윤서는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이 실은 다 내가 조선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된 나비효과다.’
그저 홍위를 지켜야 한다고 시작한 일이 이향의 관심을 끌게 되고, 결국 많은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이 변화의 끝은 무엇일까.
기다란 수염 끝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의 바다를 유영하다가 잠이 들었다 깨어나니, 이향은 벌써 떠나고 없었다.
[울지 말고, 아기와 함께 잘 있거라.]다정한 편지 한 장을 남겨 놓고서.
******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 임신은 당분간 비밀로 유지하라고 중전마마께서 말씀하셨다.
“지금 북방의 여진과 남방의 왜 등지에서 신년 하례를 올리기 위해 사신단이 모여들고 있어. 사람들이 모여들면 전염병도 따라 들어올 수 있으니 궐 안에 안전하게 머물거라.”
중전마마께서 당분간 혜민국에도 나가지 말고 궐 안에 안전하게 머물라는 명을 내리시며 하신 말씀이었다.
그러나 혜민국에 나가지 않더라도 해야 할 일은 많았다.
먼저 윤서는 궐 안에 있는 내의원에서 전순의와 함께 광평 대군을 만났다.
수양 대군이 관장하던 혜민국의 일을 이어받게 된 열아홉 살의 광평 대군은 이향처럼 인물이 수려하고 덩치가 컸고, 그리고 애석하게도 원래 역사대로라면 내년에 죽을 운명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윤서는 이향에게 수양 대군의 후임으로 그를 임명해달라고 청했었다.
‘실은 광평 대군이 일종의 리트머스 종이이기 때문이다.’
온갖 노력을 다했는데도 역사가 도도하게 제 갈 길로 가버릴지 모른다는 것이 윤서가 품고 있는 근원적인 공포였다.
그래서 늘 죽음의 길목에서 매금이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수양 대군만은 죽이겠다는 확답을 받았고, 어머니 같은 박 상궁 마마님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서라도 그 살수 조직을 수양 대군 휘하에도 넣은 것이었다. 여차하면 제거할 수 있도록.
‘하지만 두창 예방법과 치료법을 알아내 광평 대군이 살게 된다면, 그러면 그의 삶이 바로 이향의 운명과 홍위의 운명도 바뀔 수 있다는 징표가 된다!’
그래서 윤서는 반드시 광평 대군을 살리고 싶었다.
반드시 살려야 할 시동생을 바라보는 윤서의 눈빛이 너무 강렬했는지, 광평 대군이 맞은편에 앉으며 어색한 어조로 칭찬부터 늘어놓았다.
“형수님, 혜민국에 나가 여러 운영 서류를 살펴보며 무척 감탄했습니다. 약재의 확보에서부터 의원과 의녀 관리, 또 전반적인 운영 비용까지, 어쩌면 그렇게 한눈에 들어오기 쉽게 항목별로 꼼꼼히 정리하셨습니까?”
“과찬이십니다. 여기 전순의 주부와 함께 한 일인 것을요. 오늘 대군 자가를 이리 뵙고자 청한 것은 제가 당분간 이야기 책을 펴내는 일에 집중해야 해서 혜민국에 나가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 책이요? 형수님께서 우리 정의 누님과 함께 집필하신 원고를 아주 인상 깊게 읽었는데, 이야기까지 쓰신단 말씀입니까?”
광평 대군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물었다. ‘우리 홍위 조카도 그리 어여뻐 하더니, 아이들 이야기까지 짓는구나. 대체 이분의 끝은 어디란 말인가.’ 감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현대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자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조선 실정에 맞게 각색해서 들려주고 있는 윤서로는 참, 쑥스러운 일이었다.
“이야기는 주로 유 승휘가 쓸 것입니다. 저는 그저 우리 원손 아기씨와 평창 군주 자가께서 즐거워하시는 이야기를 수집하는 역할이에요. 그건 그리 급하지 않고, 자, 먼저 전 주부 말부터 들으시지요.”
윤서가 전순의에게 눈짓하자, 전순의가 서책 오십여 권을 세 번에 나눠 안아 날라 탁상 위에 내려놓았다.
“이것이 다 무슨 서적인가?”
놀란 광평 대군이 물었다.
“권 승휘 마마님 분부로 수집한 마진(홍역)과 두창(천연두) 관련 치료서들입니다. 이 책은 송나라 때 주굉이 지은 , 이 책은 원 나라 때 위역림이 지은 , 이 책은 한무가 지은 , 이 책은 지금 명나라에서 널리 읽히고 있는 ,”
“아니 어째서 이렇게 역병 관련 서적을 다 모았단 말입니까?”
광평 대군이 윤서에게 물었다.
‘왜냐하면, 광평 대군 당신이 두창으로 죽었다는 역사 기록이 있기 때문이지요.’
두창으로 죽었는지 생선 가시가 목에 걸려 죽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당신은 죽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역병은 몇 년에 한 번 발생하나, 발생했다 하면 수없이 많은 이들이 죽습니다. 저는 우리 혜민국이 두창이나 마진 치료법과 예방법을 만들어 내길 바랍니다. 그 일을 광평 대군께서 맡아주셔야 하고요. 대군 자가께선 두창을 앓으신 적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마진과 두창 모두 걸린 적 없습니다.”
“마진과 두창 모두 한번 앓고 나면 다시는 걸리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렇지 않은가요, 전 주부?”
“이 책에 그런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두창을 앓고 있는 병자의 부스럼을 모아다가 코에 넣고 비비거나 상처를 작게 내어 비비면 약하게 앓고 지나가면서 다시는 두창에 걸리지 않는다는 기록이 여기 있습니다.”
전순의가 라 쓰인 책의 중간 부분을 펼쳐 보였다.
그러자 광평 대군이 책에 쓰인 내용을 빠르게 훑어보고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여기 쓰인 내용이 맞다면 수없이 많은 백성의 목숨을 살릴 방법이 아닌가?”
예, 당신의 목숨을 살릴 방법이지요.
나아가 우리 아이의 목숨도 안전하게 지킬 방법이고요.
“하지만 형수님, 지금 두창도 마진도 유행하지 않고 있고, 그 부스럼을 채취할 자는 반드시 이미 한번 앓은 적이 있는 자여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전 주부와 대군 자가께서 먼저 민간에 두창과 마진에서 성공적으로 회복한 이를 수소문해 확보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전국 어디에서 발병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들이 가서 부스럼을 채취해 아직 걸리지 않은 이들에게 옮겨줄 수 있게 미리 기반을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형수님. 내가 책임지고 전 주부와 함께 이 서적들과, 또 필요하면 여러 곳에 사람을 보내 예방법과 치료법을 갖추도록 하겠습니다.”
세종의 아들답게 진지하게 역병 치료법에 임하는 광평 대군을 보자 한 가지 우려가 들었다.
“전 주부, 당분간 사람들을 접촉하는 일은 마진과 두창을 앓은 적이 있는 이들을 확보하는 일은 모두 전 주부께서 전담하세요. 전 주부는 이미 앓고 지나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 마마님. 제가 세 살 때 두창을 앓은 적이 있어 여기 눈썹 위가 패였습니다. 허니 제가 환자를 발견하면 먼저 시료를 채취해 대군 자가부터 예방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아, 그럼 나는 여기 이 서적을 연구해 이미 걸린 병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법을 알아내겠습니다. 예방법을 알아냈다고 해도 효과를 입중하는 덴 시일이 꽤 걸릴 것이니까요.”
광평 대군이 열정적으로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진과 두창 예방법을 확보할 안을 세워 놓고 윤서는 처소로 돌아왔다.
이제 유 승휘와 작업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한달음에 달려온 유 승휘의 낯빛이 좋지 않았다.
“큰일이 났소, 권 승휘. 하아.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이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