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84
84화. 훈민정음 반포와 육아보감
“지난 연말, 우리 임금께서는 어린 백성을 위하시는 지극한 마음으로 새 문자를 만들어 반포하셨습니다. 그 문자가 얼마나 배우기 쉽고 우리 입말과 바로 연관되어 있는지는,”
윤서가 말하는 동안 옆에서 유 승휘가 큰 붓을 들고 윤서가 말하는 내용을 그대로 정음으로 적어나갔다.
커다란 흰색 종이에 검은 먹으로 낯선 기호가 매끄럽게 쓰여지는 장면은 기이하게 매혹적이었다.
“저것이 말하는 그대로 적어지는,”
“쉿! 나중에 말씀하시오. 나도 모르오.”
“획수가 적어 편리할 것 같아요. 한자는 당체 너무 획수가 복잡해서.”
“규칙이 있는 것 같아요. 비슷한 모양이 반복되고 있어요.”
서로 속삭이며 부인들은 유 승휘의 붓끝에서 생겨나는 새 문자에 시선을 집중했다.
대개 명문가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한자를 접했지만 한학에 도통한 여인은 많지 않았다. 다수는 가족 이름 석 자나 읽고 쓰는 수준이었고, 개별 한자를 많이 안다고 해서 작문을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혼인할 때 가져온 재산과 노비도 많아 남편에게 꿀릴 것이 없는데도, 기생들 끼고 노는 행태를 탓하면 늘 나오는 “부인은 글을 모르지 않소? 차운(次韻)을 하여 시를 짓고 현인의 말씀을 논하는 풍류를 모르니 그리 한심한 투기를 하시는 게지요.” 하는 타박에 입을 꾹 다물어야 하는 설움이 많았다.
또한 남편을 일찍 여의기라도 하면 홀로된 슬픔에 더해 속임을 당해 재산 문서, 노비 문서 등을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실질적인 근심도 매우 컸다.
“이것이 정음의 원리입니다.”
윤서의 말이 끝나자 어린 권 승휘와 동궁전 나인들이 세 장으로 묶은 종이를 나눠주었다.
“첫 소리와 끝 소리를 이루는 자음이 기역(ㄱ) 니은(ㄴ), 디귿(ㄷ) 등이고, 자음을 매개하는 중간 모음이 아(ㅏ), 야(ㅑ), 어(ㅓ), 여(ㅕ) 등으로 합하여 한 글자가 이루어집니다. 간략하게 예를 들면, 보세요.”
윤 승휘가 이응(ㅇ)과 이(ㅣ)와 미음(ㅁ)을 한 글자로 쓰고, 그 옆에 기역(ㄱ), 으(ㅡ), 미음(ㅁ)을 또 한 글자로 썼다.
[임금]윤서는 윤 승휘가 쓴 글자를 긴 지휘봉으로 짚으며 말하였다.
“자음 이응과 모음 이와 자음 미음이 합쳐져 ‘임’이 되고, 자음 기역, 모음 으, 자음 미음이 합쳐져 ‘금’이 됩니다. 우리에게 이 귀한 문자를 만들어주신 전하를 칭하는 귀한 글자입니다. 자 그럼, 여기서 문제 내겠습니다. 여기 있는 세 개의 자음, 이응 기역 미음과 두 개의 모음 이와 으를 합쳐 하나의 문자를 만들어 보실 분 계십니까?”
윤서의 말에 맞추어 유 승휘가 새 종이에 커다랗게 자음 ‘ㄱ’ ‘ㅁ’ ‘ㅇ’, 모음 ‘ㅡ’ ‘ㅣ’를 썼다.
“자 이 세 개의 자음 기역, 미음, 이응과 두 개의 모음 으와 이를 합쳐 ‘임금’처럼 새 글자를 만드시는 분께는 제가 만든 최고급 비누를 상품으로 드리겠습니다.”
권 승휘의 최고급 비누라니!
운종가 비누 점에서 파는 쌀겨 들어간 동백유 비누 한 덩이가 쌀이 두 섬인데!
잠시 눈을 굴리던 이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번쩍번쩍 들었다.
주로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젊은 부인들이 많았다.
그러자 한발 늦게 머리가 희고 옷차림새가 단아한 부인이 손을 들고 소리쳤다.
“나, 좌찬성의 안 사람 이씨요!”
오, 좌찬성이면 하연 어르신. 몸 약한 문종을 도와 우리 홍위가 무사히 보위에 오르게 한 후, 세월이 수상하니 자손들까지 모두 관직에서 물러나게 한 절의지사의 부인이시라면, 그러면 기회를 드려야지!
“정숙부인, 말씀하십시오.”
“이응에 이를 더하고 기역을 더하면 이익 할 때 ‘익’이오.”
유 승휘가 재빨리 이씨 부인이 부르는 대로 붓을 놀려 ‘익’ 자를 만들어 내었다.
윤서가 손뼉을 짝 치며, 소리쳤다.
“오! 맞추셨습니다.”
그러자 좌중의 부인들도 “오오! 과연!” “전하께서 만드신 글자가 이리 쉽군요.” 감탄하며 열렬하게 박수를 쳤다.
“조 상궁, 정숙부인께 비누를 드리시게.”
윤서의 명에 조 상궁이 분홍색 고운 한지에 정성껏 포장한 비누 덩이를 좌찬성의 부인 이씨에게 공손히 건넸다. 포장이 아름다운 것도 아름다운 것이었지만 포장 밖으로 은은히 새어나는 비누 향이 일품이라서, 모두 부러워 눈을 반짝였다.
“아이고, 이리 귀한 것을. 우리 대감이 워낙 청빈하신지라 비누 한 덩이를 못 사게 하셔서 내가 아주 속이 터졌다오.”
학식이 높고 원칙주의자이면서 빼어난 신하로 세종의 총애를 받는 남편을 은근히 자랑하면서 이씨 부인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권 승휘는 참, 재주꾼이네요, 어마마마.”
소헌 왕후와 함께 상석에 나란히 앉아 이 광경을 지켜보던 정의 공주가 몸을 기울이고 속삭였다.
“저리 재치가 있으니 오라버니가 아주 폭 빠져서 헤어나질 못하시는 거지요.”
한 칸 낮은 자리에서 정의 공주의 칭찬을 들은 수양 대군 부인 윤씨와, 계양군의 부인 한씨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윤씨가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리자, 한씨가 피식 웃으며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재주가 제법 봐줄 만한 것은 맞으나, 고작 몇 달 더 뽐낼 일이에요.’
아버님께서 명 황실에서 은밀하게 내린 성지를 가져오시고, 또 그 외에 여러 가지 일들이 본격 진행되면 본래의 보잘것없는 후궁 자리도 보전하기 어려울 것을요. 그런 의미였다.
정의 공주의 말에 소헌 왕후가 흐흠 큰 숨을 내쉬었다.
“향이만 푹 빠진 게 아니다. 홍위도 그러더니 요새 희아도 아주 치맛자락을 꼭 붙들고 쫓아다닌다.”
“···어째, 말씀에 뼈가 있으시네요.”
“내궁이 평안하려면······.”
소헌 왕후는 입을 꾹 다물고 몇 마디 말로 새 문자가 얼마나 익히기 쉬운지 바로 증명해 보인 권가와, 그 옆에서 열심히 권 승휘를 돕고 있는 유 승휘의 편안하고 투박한 얼굴과, 아직 소녀 티를 간직한 채 부인들 사이에서 열심히 새 문자의 조합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어린 권 승휘를 바라보셨다.
그리고 이와 대조적으로 왕실 내명부의 말석에 앉아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날 선 눈으로 권 승휘 일행을 훑고 있는 정 승휘와 문 승휘, 양 사칙을 바라보았다.
“전에는 여색에 관심이 없어 애를 태우더니, 이젠 한 여인만 오롯하게 편애하니, 원.”
“어마마마, 홍위와 희아에게 누가 좋은지만 생각하세요. 그간 그 아이들을 제대로 지키고자 하는 후궁이 하나도 없었잖아요.”
정의 공주가 한 마디 아뢰고 말 몇 마디로 전하께서 만드신 새 문자가 얼마나 위대한지 증명한 윤서를 감탄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때마침 윤서는 새 문자의 위대함을 찬양하고 있었다.
“보셨지요? 벌써 두 글자를 가지고 달리 조합해서 ‘익’자를 만드셨습니다. 임금께서 만드신 새 문자는 이토록 쉽고, 그래서 정말로 위대, 합니다!”
늬들이 정말 이 문자의 위대함을 알어?
세계사를 통틀어 이토록 배우기 쉬우면서 거의 모든 소리를 다 표현할 수 있는 문자는 없단 말이다!
임신 초기처럼 감정이 들쑥날쑥 날뛰지는 않지만 평소보다 여전히 더 쉽게 흥분하는 윤서가 또 목이 메어 몇 번이나 침을 삼키자, 저 멀리서 정의 공주가 두 손을 높이 들고 소리 나지 않는 박수를 쳐 보였다.
그만 감동하고 어서 을 소개하라는 격려였다.
“정음을 익히는 법은 사흘 후 한 번 더 상세히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 서책은, 저기 앉아 계신 정의 공주와 제가 편찬한 육아서입니다. 공주님, 나오셔서 서문을 읽어주시지요.”
원래는 윤서가 읽기로 되어 있지만, 정의 공주에게 양보했다.
정의 공주의 평판을 높여주는 동시에, 책에 더 큰 신뢰도를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높은 신분이 곧 강력한 설득력이 된다.
윤서의 부름에 정의 공주가 비단 치맛자락 스치는 소리를 사락사락 내며 앞에 나와 섰다.
그 사이 어린 권 승휘와 동궁전 나인들은 재빨리 이란 제목이 멋들어지게 박힌 책 한 권씩을 귀부인들께 나눠드렸다.
정의 공주는 윤서가 건넨 책을 펴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세종께 직접 글과 산학을 배운 정의 공주는 학식이 높기로 명성이 자자했고 동시에 아이들을 잘 키우는 현모(賢母)로도 이름이 높았다.
“그간 서책이 모두 어려운 문자로 쓰여 있어 전하고 싶은 귀한 지식이 있어도 나누기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하께서 위대한 문자를 만드신 덕분에 이제 쉽게 지식을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의 공주는 책의 표지가 앞으로 오게 한 후 제목을 한 글자씩 짚으며 말을 이었다.
“여기 ‘육아보감’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아이들을 제대로 잘 키울 수 있는 지식을 담고 있는 동시에, 한때 아이였던 우리 자신을 치유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내용을 가장 잘 소개한 한 단락을 제가 읽을 터이니, 모두 표지를 넘겨 보세요. 거기 첫 단락입니다.”
정의 공주는 큼큼, 목을 가다듬고 서문의 첫 단락을 읽었다.
“어떻게 해야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가에 대한 성현의 가르침은 많다. 그러나 그런 방법론을 배우지 않아도 사실 부모는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할지 이미 알고 있다. 부모도 한때는 어린아이였고, 아이일 때 부모님이 어떻게 대하실 때 행복했는지, 어떻게 대하실 때 두려웠는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 공주는 책을 다시 덮고 좌중을 보았다.
“이 책의 내용은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아낌없이 사랑하고 지지해 주어라’입니다. 그렇게 풍성한 사랑과 정성 어린 돌봄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나중에 커서 혹여나 만나게 될 최악의 고난도 수월하게 견뎌낼 힘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대체 어떻게 사랑하라는 것이냐, 그 구체적인 방법이 궁금하시다면 전하께서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창제하신 새 문자, 훈민정음을 속히 익히십시오.”
정의 공주의 말이 끝나자 모두 와아, 박수를 치며 환호하였다.
말하는 대로 적을 수 있는 문자로 드디어 자신들도 지식뿐 아니라 인생사의 희노애락 모두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다는 기대와 기쁨에서 오는 환호였다.
“그리고 또 전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또 하나의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윤서가 공주의 말을 받았다.
“그간 여식을 귀하게 기르시면서도 장차 혼인하여 큰 살림을 맡게 할 준비를 체계적으로 하지 못함이 불안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왕실에서는 6세에서 12세의 여아들을 가르칠 학당을 만들고자 합니다. 학당에서는 기초 한문, 정음으로 글쓰기, 가산 경영에 필요한 기초 산학, 가족의 건강을 위한 기초 의료 지식 등을 배우게 됩니다.”
“오오!”
이 소식에 대한 반응은 더욱 컸다.
문자와 지식을 익혀 더욱 윤택한 삶을 이끌고자 하는 욕망은 여인들에게도 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왕실에서 운영하는 학당에 다니게 되면 귀한 가문의 여식끼리 친교를 맺을 수 있고, 그러면 앞으로 두고두고 도움이 될 인맥을 맺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열렬히 환영할 일이었다.
성리학이 국시로 채택된 후 점차 ‘현숙한 여인의 도리’란 이름으로 점점 여인의 대외활동을 규제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는 사회 분위기에서도, 왕실 학당의 설립은 더욱 반가운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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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연회가 끝나고 며칠 후.
평창 군주 희아가 윤서에게 말했다.
“나 생각한 거 있는데.”
“예, 자가.”
“저번에 나한테 최소공배수, 최대공약수 가르쳐 주었잖아.”
“예.”
윤서는 놀이 친구가 없어 심심해하는 평창 군주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조건으로 기초 수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라비아 숫자와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의 사칙연산만 가르쳤는데 희아가 너무 흥미를 보여서 1차 방정식에서 1차 함수, 비례, 확률, 통계 등 생각나는 대로 차례로 가르쳤다.
윤서는 수학을 잘하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수능 만점을 위해 공부한 것이었고, 수학 자체에 큰 흥미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희아는 윤서가 두서없이 가르치는 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더니, 괘종시계의 톱니바퀴를 보고 사륜 구동체를 조립해 본 후, 수학에 점점 더 깊게 몰입하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나무로 깎은 세 개의 톱니바퀴를 들고 와 윤서에게 말했다.
“나 이 바퀴의 톱니 말이야. 덜 부러지게 하는 거 알 것 같아!”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