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reincarnated, I was a discontinued nanny RAW novel - Chapter 88
88화. 전하의 문자로 쓰인 벽서
[皇帝賜冕服, 韓氏借皇命望婚](황제사면복 한씨차황명망혼)
“황제가 면복을 하사하였다는 소식과, 한씨가 황명을 빌려 혼인을 바란다는 소식이로군요.”
내용을 확인한 윤서가 서찰을 화로에 던져넣으며 중얼거렸다.
“한낱 황제의 후궁, 그것도 죽은 황제의 후궁 나부랭이가 황명을 빙자해 망혼(望婚) 서신을 보내오다니, 과연 대단합니다.”
“너는 한확의 누이가 이리 나올 줄 어찌 알았느냐? 권가 네가 노산대를 보내 우리 조선 출신 환관 정동을 접촉해 그 한씨의 동향을 파악하라고 할 때 나는 속으로 이 무슨 헛소리인가 했는데.”
“···그 언니 여비와 달리 황제가 죽었는데도 순장을 당하지 않았잖아요. 조선인 출신 후궁으로 황궁에서 살아남았다면 그만큼 판세 보는 눈이 빼어나고 수완이 좋을 거라 예상한 것뿐이에요.”
실은 홍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세종에서 세조까지 역사를 관심 있게 공부한 덕에 알게 된 것이다.
선덕제의 후궁으로 진상된 한확의 누이가 토목의 변 때 어린 성화제를 돌봐준 ‘아보(阿保)의 공’으로 명 황실에서 권세를 누렸고, 그 덕에 왕위를 찬탈한 수양 대군이 수월하게 책봉을 받을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니 정동을 잘 구슬려 그 한씨의 움직임을 제한해야 합니다. 우리가 명나라에 비누 가게를 낸 것은 이문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처럼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것이니, 정동을 확실히 챙기면서, 여기 조선에 있는 그의 가족을 돌봐주면 됩니다. 가족의 안위가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을 알게도 해야지요.”
박 상궁이 윤서를 낯선 이 보듯 물끄러미 보며 문득 말하였다.
“권 승휘 마마님은 날이 갈수록 궐의 여인다워지십니다.”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켜야 할 이도, 지켜야 할 것도 많아졌으니까요!”
저들은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지키기 위해 명나라 황제 권력의 부스러기까지 동원하여 세자빈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다.
지금 이향이 추진하기 시작한 개혁을 되돌리고, 향후 우리 홍위를 밀어내기 위해서!
“저들이 불충한 움직임을 시작했으니 명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비누 공장과 목공 공장 직원들에게 글은 다 가르쳤지요?”
“그럼. 워낙 배우기 쉬운 글자라서 다들 한 달만에 깨쳐서 저희끼리 연애 서신도 주고받고 난리다.”
“예, 그럼 은밀하게 움직여주세요. 한확이 의주에 들어왔을 때 공포에 휩싸여 도로 압록강을 건너 명나라의 그 잘난 누이한테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말이지요.”
*****
“해삼을 말렸다가 불려 볶은 것이라 식감이 한결 쫄깃한 것이 참 별미이옵니다. 한확의 누이 한씨 부인이 전하를 위하는 충정이 이리 깊은 줄은 신첩 미처 몰랐습니다.”
신빈 김씨의 거처 희락당 안.
삼십 대 후반에도 여전히 소녀 같은 신빈이 말린 해삼을 불려 죽순과 함께 볶은 요리를 올리고 있었다.
이 건해삼은 선래 통사가 챙겨와 계양군의 부인 한씨에게 전했고, 한씨가 시어머니인 신빈에게 바친 것이었다.
“음, 좀 질기긴 하지만 풍미가 좋구나. 계양군의 안사람이 효심이 아주 깊어.”
“그럼요, 전하. 계양군 안사람의 효심이 깊은 것은 다 그 친정 아비인 한확이 잘 가르쳐서 그러한 것이지요.”
선래 통사를 통해 명 황제가 의복을 세 벌이나 하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아직 혼인에 대해서는 듣지 못한 세종이었다. 그래서 명 황제의 후궁이 된 한확의 누이가 보냈다는 해삼을 기쁜 마음으로 맛보았다.
신빈은 정성껏 준비한 탕과 전유어 등도 함께 올리면서 문득 한숨을 쉬었다.
“왜 어여쁜 입술로 한숨을 쉬는고?”
“이역만리 명나라 황궁에서 쓸쓸히 있을 한씨 생각을 하니 마음이 좀 그러합니다. 한씨가 전하의 후궁이 되었었더라면 저처럼 늘 평안하고 즐거웠을 것을요. 후궁들은 그저 주군께서 건강하시면서 골고루 베풀어주시는 보살핌이 있어야 행복하지 않습니까?”
“어허!”
세종께서는 신빈이 공손하게 들이미는 젓가락을 손으로 밀어내셨다. 그리고 정색한 표정으로 하문하였다.
“평생 이런 일이 없더니, 자네 어째서 늘그막에 이러는가?”
“예? 전하, 무슨 말씀이신지.”
당황한 신빈이 놀란 듯 긴 속눈썹을 떨었다.
“신, 신첩은 그저 전하께서 우리에게 골고루 성총을 베풀어주시는 것을 감사하였을 따름이옵니다.”
“그런가?”
“예. 그러하옵니다.”
“그래, 난 또 자네가 다른 말을 하려고 하는 줄 알았지.”
“그, 그럴 리가 있사옵니까? 저는 그저 한씨 부인과 한확이 전하께 지극한 충심으로 보내온 해삼을 전하께 올리고 싶었습니다.”
변명하며 신빈 김씨는 낭패감을 곱씹었다.
한씨와 자신을 빗대 동궁에서 지금 세자께서 권 승휘만 편애하고 있는 것의 부당함을 고하려고 했던 속내를 고스란히 들켰기 때문이다.
세종께서는 더 들지 않고 신빈의 거처를 나와 중궁전으로 향했다.
이맘 때 즈음이면 몸살을 앓는 소헌 왕후 때문에 원래 국왕 내외는 초정의 온천으로 피접을 떠날 예정이었다.
그러나 세자가 지어준 목욕탕 덕분에 번거롭게 어가를 옮기지 않고도 궐 안에서 매일 온천욕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희락당에서 주무신다면서, 어쩐 일이십니까?”
한참 온천물에 몸을 담가 발그레해진 뺨으로 소헌 왕후가 세종을 맞이하였다.
“요새 누가 세자빈 책봉에 대해 중전께 말을 꺼냈소?”
자리에 앉자마자 세종이 물었다.
한마디만 들으면 그 후에 나올 열 마디를 짐작하는 세종께선 신빈의 말을 통해 한확이 동지사의 사신을 자청해 북경에 갔던 일이 단순히 누이를 보러 간 것이 아님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세자빈이요? 그거야,”
소헌 왕후는 수양 대군의 부인인 며느리 윤씨와, 계양군의 부인 한씨가 참한 명문가 규수가 있다고 여러 번 고한 일을 떠올렸다.
“신년 연회 때 여러 말이 있기는 했지요. 하오나 우리 홍위가 이제 막 세손으로 공식 책봉된 이 시점에 굳이 세자빈 논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요?”
“그렇지. 내 생각도 그러하오.”
소헌 왕후는 잠시 생각을 더듬었다.
전하께서 신빈의 처소에 들었다가 이런 말을 하는 상관관계를 찬찬히 짚어본 소헌 왕후는 문득 미간을 찌푸렸다.
“일개 후궁이 감히 이 나라 국본의 일을 입에 담다니요. 순진한 줄 알았더니, 궐 생활 이십여 년에 신빈이 많이 컸습니다.”
“···중전.”
평생 투기하는 기색 없이 후궁 모두를 포용해 온 중전이 신빈을 노여워하자, 세종께서는 내심 당황하셨다.
“지금 내 아들들이 다 외방에 나가 있는 연유가 무엇입니까? 왕실의 후계 일이 이토록 지엄한 일이거늘, 감히, 후궁이 되어서 세자빈 자리를 운운하다니요.”
“아, 그것이 아니오. 신빈은 그저 군주가 건재해야 내궁이 평온하다는 말을,”
“그런 말을 왜 한답니까? 내궁이 평온한 것이 오로지 전하 때문만이랍니까? 전하의 총애를 받는다고 신빈이 아주 오만방자해졌군요.”
호기롭게 수양 대군을 대마도와 유구국에 보내기는 했지만 막상 보내고 난 후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바다에 거센 풍랑이 일지 않을까 근심이 되는 소헌 왕후께서 역정을 내었다.
이 모든 것이 주제넘게 왕위를 탐내는 무리들의 꾐에 수양 대군이 흔들린 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신빈과 계양군, 그리고 그의 부인 한씨가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기 때문이다.
*****
사흘 후.
명의 황제가 전하께 면복 두 벌과 상복 한 벌을 하사하였다는 소식에 기뻐하던 조정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인파가 몰리는 곳에 벽서가 붙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벽서는 반포된 지 석 달 만에 제법 배운 사람들이 많은 정음으로 쓰여졌다.
[백성의 고혈을 빠는 방납 업자를 고발한다.해마다 공물을 대납해준다는 명목으로, 시세의 열 배에서 오십 배 이상을 챙긴 업자가 여럿이다.
지난해 요역의 대가로 전하가 나눠주신 쌀과, 구휼미인 환곡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모두 굶어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 보리도 추수하지 못했는데 또 공물을 빌미로 스무 배 이상의 값을 부르는 악덕 업자들이 있다.
전하! 부디 이들을 잡아 공물의 폐단을 시정해 주시옵소서.]
투박하게 쓰인 벽서가 밤사이에 운종가와 마포 나루, 광나루 등지에 붙었다.
이틀이 지나자 벽서는 가난한 백성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지나치게 높은 이자를 받는 고리대금 업자들을 비난하는 내용도 포함하였다. 이 벽서에는 특히 세종의 서녀 정현 옹주의 남편 윤사로, 수양 대군 부인 윤씨의 남동생 윤사균, 학역재 정인지의 이름이 실명으로 들어가 있어 파장이 더욱 컸다.
조정에서는 날랜 병사를 곳곳에 풀어 벽서를 붙이는 무리들을 찾아내려 했지만 밤의 어둠을 이용해 귀신처럼 움직이는 무리를 찾기 쉽지 않았다.
역사상 처음으로 문자를 가지고 제 목소리를 내는 백성의 소리에 세종 이하 조정 대신들은 무척 당황하였다.
그러나 평소 방납의 폐해를 깊이 근심해 온 황희와 하연, 김종서 등 일부 조정 대신과, 신숙주, 성삼문을 비롯한 집현전의 학사들이 이에 동조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전하, 전하께서 어리석은 백성들이 임금께 고충을 호소하고 싶어도 문자가 없어 고하지 못함을 가엾게 여기시어 마침내 새 글자를 만드셨습니다. 이제 전하의 백성들이 전하의 문자로 전하께 그간 고하지 못했던 고충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일평생 방납의 폐해를 근심해 온 황희가 희어진 머리를 조아리며 세종께 고했다.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명한 후 좀처럼 공식적인 조회를 열지 않으시던 세종께서 편전인 사정전으로 주요 신하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였다.
“벽서를 붙이는 자들이 뭉쳐 소요를 일으키는 것만은 절대 막아야 하나, 벽서는 또한 태종께서 실시하셨던 신문고와도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들이 호소하는 고충을 조정에서 정식으로 논의할 때가 되었습니다.”
하연이 황희의 말을 받았다.
“소신이 생각하건데, 세자 저하께서 내년부터 방납을 폐지하고 모두 쌀로 일원화해 거둬들일 대동법을 경기도에서부터 추진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 기회에 그간 백성의 삶을 도탄에 빠트린 방납 업자들을 벌하고 가는 것도 좋을 듯하옵니다. 그들이 대개는 세곡미를 운송하면서 고의로 배를 침몰시켜 쌀을 빼돌린 운송 업자들과도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조 판서 김종서도 나섰다.
“전하, 소신이 전하의 어명을 받고 공법을 연구하면서 공물을 현물이 아닌 쌀로 거둬들이는 것의 여러 이점을 찾아내어 보고드린 바 있습니다. 공물을 쌀로 거둬들이면 대납하는 방납 업자와 결탁한 수령의 농간을 줄이면서, 동시에 방납으로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그것으로 또 식리(고리대)를 놓아 이중으로 백성의 고혈을 빠는 이들을 모두 줄일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전하. 내년에 경기도에서부터 점차 시행할 대동법을 이 기회에 미리 공표하시고, 동시에 국정을 쇄신하는 의미로 그간 많은 백성을 괴롭힌 방납 업자들을 색출해 처벌하시옵소서.”
“···하아!”
세종께서는 이마를 짚으셨다.
방납 업자들 뒤에 있는 이들이 주로 왕실의 종친과, 종친과 혼인 관계를 통해 묶인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 하나가 지금 명나라 황제의 성지를 들고 귀국 중인 한확의 가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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