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105)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105화(105/405)
“와~ 나 이런 데 처음 와 봐!”
“일단 앉아, 앉아.”
마지막 라몽드 사진관의 손님은 김유리였다. CCTV 너머로 확인한 다음 옷을 골랐던 손님들과는 다르게, 이 손님은 윤슬이 직접 옷까지 가져와 입혔다.
“잉 네이비네…. 근데 나 잘 어울리지?”
“어. 진짜 예뻐.”
“예쁜 만큼 박수~”
짝짝짝짝짝-
성의도 없고 영혼도 없는 윤슬의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유리는 뻔뻔하게 다이아수저에게도 박수를 쳐달라며 손짓했다. 다이아수저도 덩달아 박수를 쳤다.
잘 어울리기야 했다. 밝은 네이비 컬러의 재킷에 핑크 리본, 흰색 와이셔츠. 어디 웹툰이나 영화에서 나올 것 같은 여주인공 같은 모습이었다.
윤슬의 핸드폰에 있던 교복 사진들을 보고 유리는 제일 먼저 그레이와 핑크 조합으로 입고 싶다고 했으나, 어색한 알파카의 얼굴을 한 윤슬은 무조건 다른 색이 어울린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슬아 나 이거 진짜 괜찮아? 나 아무리 생각해도 좀 더 밝은….”
“아니야!!! 네이비가 딱 잘 어울려. 그쵸? 맞죠?”
“어어 네… 지금 예쁜데요?”
윤슬은 기억을 더듬어 회귀 전 열렸던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의 교복 디자인을 제작했지만, 그 옷을 유리에게 입히지는 않았다.
‘비슷한 옷 입히면 나중에 백 프로 화살받이 된다.’
연줄이 있다거나, 편집의 특혜를 받았다거나 하는 의혹이 생길 수도 있으니 재킷 컬러만 바꿔 유리에게 입힌 윤슬이었다. 지금 유리에게 입혀 두면 교복 대여점 오픈 때 금전적인 이득은 있겠지만, 길게 봤을 때 유리에게 있어 이득 되는 건 없었으므로.
“저 펄 많이 얹어주세용.”
“눈이 어쩜 이렇게 예뻐요~. 연예인 하라는 소리 많이 듣죠?”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윤슬이 골라 준 제품으로 섬세히 붓질을 했다. 워낙 좋은 피부라 파운데이션은 거의 필요도 없을 지경이었다. 바짝 올린 인형 같은 속눈썹과 화려한 글리터, 발그레한 핑크빛 블러셔와 자연스러운 혈색 같은 컬러의 립으로 마무리하자 다들 감탄의 연속이었다.
“제가 진짜, 연예인 메이크업도 많이 해봤는데요…. 와, 비연예인 상대로 이런 보람은 또 처음이에요.”
“윤슬 씨 친구 진짜 사진 잘 받게 생겼는데요? 대단하네.”
포토그래퍼 역시 셔터를 누르면서 굉장히 흡족해했다. 화기애애한 촬영장 사이 가장 흡족해하고 있는 건 윤슬이었다.
‘일단 초반 화제성은 확보했다.’
유리는 두 달 뒤면 시작할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기로 결정했다. 소속사? 아직 없다. 왜냐면 기억을 더듬었을 때, 일반인도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었거든.
‘시즌마다 몇 명씩은 무소속으로 나왔던 기억이 난다.’
소속사를 통해서 참가할 수도 있었지만, 무소속 일반인들도 있었다. 나중에 데뷔해서도 소속사가 있다면 가수가 가져가는 건 얼마 안 되지만, 무소속이라면 오롯이 전부 가져갈 수 있으니 더 이득이다.
‘그리고 악덕 소속사는 없으니만 못하지.’
[소속사 없이도 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연습생.jpg] 으로 대중에게 서사를 팔아먹을 수도 있으니 이쪽이 더 이득이다.“진짜 연예인 연습생, 이런 것도 아니에요? 카메라에 너무 익숙한데….”
촬영장에서도 카메라 앞에 선 유리를 보며 연습생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다.
나중에 다들 문자 투표 좀 참여해주면 좋겠군.
비밀유지 조항을 잘 지키고 있는 유리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의 참가자들을 모집한 건 이미 꽤 시간이 흘러 있었다. 유리는 마감 이틀 전 아슬아슬하게 들어가게 됐다.
참고로 유리는 인맥으로 참가 신청서를 넣었다. 다들 소속사나 보컬 트레이닝 학원에서 알음알음 넣는데 유리는 그런 게 없으니까.
누구냐고?
당연히 하진이다.
며칠 내내 머리를 잡고 고민하던 나는 그냥 유리에게 넌지시 물어봤었다.
“유리야. 만일 그 프로 나가면…. 넌 어떤 게 좋을 것 같아?”
“뭐가?”
“살짝 긍정적인… 이미지?지만? 조금 욕먹지 않게 묻히는 게 좋은지? 그 좀 욕을…. 먹더라도? 너를 사람들이 확실히 아는 게 좋은지?”
“왜 이렇게 어색하게 묻지? 너 오늘따라 뚝딱거리는데?”
이상한 데서 눈치가 좋은 유리였다. 평소에는 눈치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 같았는데.
어색한 알파카 표정으로 윗잇몸만 보이며 웃자 유리는 어깨를 가볍게 한 번 으쓱거렸다.
“몰라. 그냥 재밌는 거?”
“…그게 다야?”
“이왕 할 거면 난 열심히 할 테니까. 남들은 재밌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는데 그냥.”
판단 한번 깔끔하군.
유리의 답을 듣자마자 며칠 전 나는 하진에게 부탁했다.
-음…. 신청서 내는 건 말 해볼 수 있죠. 어려운 일 아니니까.
“진짜요? 와. 역시 믿고 있었어요!”
전화를 한 보람이 있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에서 하진도 똑같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근데, 그 친구. 아이돌이 많이 되고 싶대요?
“네? 갑자기요?”
평소보다 더 무겁고 낮은 목소리로 하진은 조언했다.
-미리 이런 말해서 미안한데, 그 프로 나간다고 해서 100% 데뷔한다는 보장 없어요. 알죠? 오히려 소속사 없는 상태에서 대중의 관심을…. 뭐라고 해야 하지.
“악플이요? 아니면 뭐 욕먹는 거?”
-…네. 그거. 감당하는 게 생각보다 힘든 일일 텐데. 어린 나이기도 하고.
하진은 씁쓸한 웃음을 섞어가며 말했다.
-한두 명이 날 싫어한다고 해도 상처받는 게 사람인데. 백 명 천 명. 더 나가면 뭐 만 명도 될 수 있겠고. 특히 그런 서바이벌 프로 같은 경우는 아이돌에 관심 없던 일반 대중이 말 얹기도 쉬우니까.
유리의 멘탈을 걱정하는 것 같았다. 사실 나도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매 시즌 서바이벌 프로만 시작됐다 하면 온 커뮤니티에서 서로를 물고 뜯고 싸우고는 했으니까. 순간 짜집기 된 편집 내용만 보고 해당 인물에 대한 인성 평가까지 했었다.
“그래도… 친구가 하는 데까지는 해보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요?
“그리고 만 명이 싫어해도 걔는 천만 명이 좋아할 애라 괜찮아요. 일단 저 포함해서.”
내 기세등등한 말에 하진이 수화기 너머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알겠어요. 그럼 신청 얘기해 볼게요.
“아 그리고요. 하진 씨도 천만 명이 좋아하고 있을 거예요. 만 명 그거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어쩐지 자기 경험담 같아서 그냥 넘기기가 좀 그랬다. 그래서 한 말인데 이번엔 사람 무안하게 아무 말이 없었다.
-고마워요. 내가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자꾸 이러네. 조금 울 뻔했어요.
“뭘 또 울어요. 참아요.”
그렇게 유리는 서바이벌 프로에 신청서를 내게 됐다.
* * *
‘어쩔 수 없다….’
학교 갔다 알바 갔다만 반복했는데. 내가 그 오디션 프로를 제대로 알 리가 없지. 대충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나중에는 몇 개의 에피소드를 알긴 하지만.
‘그 흐름 전부를 알지는 못하니까.’
일단 짜집기 편집한 건 알고, 인기 많았던 몇몇은 서사로 영업했던 거 알고, 센터로 유명했던 멤버 알고.
그럼 남은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다.
‘유리가 알아서 잘하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얼굴 합격. 노래 합격. 스타성까지 합격! 다만 문제는 편집할 때 쏠쏠하게 써먹을 어그로성까지 합격이라는 거다.
‘아… 남의 인생에 너무 깊게 개입하는 것 같은데.’
그래도 이미 시작한 거 어쩔 수 없었다. 친구가 된 이상 알고서 모르는 척할 수 없었으니까. 악덕 소속사 때문에 고생하는 걸 보느니 내가 머리 빠지게 고민하는 게 나았다.
나는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길 바라며 카페에 들어갔다.
“…안녕.”
오늘은 재언이랑 수학 과외를 하는 날이거든.
* * *
윤슬은 여전했다. 여름 방학이 지나고서는 ‘내가 겨울 방학에는 반드시 쉰다!’, ‘침대 위에 누워 있을 거야!’라고 습관처럼 다짐했지만. 그 말을 듣는 백휘와 재언은 조금도 믿지 않았다.
그리고 역시나, 방학이 시작됨과 동시에 윤슬은 늘 바빴다.
[나? 미팅 왔지~]시작은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것 같았다.
[나… 팝업 스토어 오픈 전에 한번 들리러 왔어]그러나 ‘일_추가/ 일_한번_더_추가/ 일_더_추가_최종/ 일_더_추가_진짜_최종’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은 윤슬이었고.
[ㅎㅎ 나 이제 10시부터 10시까지 팝업 스토어에 있어]마침내 해탈했다.
[(죽어버린 바보멈 이모티콘)]그런 윤슬을 보며 바쁜 것도 걱정되었지만, 또다시 시무룩해할까도 걱정되는 재언이었다.
“여름 방학에 인강도 듣고 그랬다? 근데 진짜 모르겠는거야.”
혼자 인강을 보면서 이해하지 못해 끙끙거리고 있었을 윤슬을 생각하며, 이번 겨울 방학에는 조금 더 잘 가르쳐줘야겠다 다짐했던 재언이었다. 너무 바빠 보이는 윤슬을 위해 개학하고 나서 할까 고민했지만.
‘그래도…. 두 달 가까이 손 놓고 있으면 또 까먹을 테니까.’
재언은 이미 윤슬을 잘 알고 있었다. 조심스레 특강에 대한 말을 꺼내자 윤슬은 마침 팝업 스토어랑 너네 집이 멀지 않으니까 잘 됐다며 일찍 퇴근해서 만나자는 대답을 해줬다.
방문객들의 니즈를 확실하게 파악한 윤슬은 빠르게 100%의 만족이 들어간 미소를 획득했고, 둘은 생각보다 이른 시간부터 만날 수 있었다.
“와. 진짜… 오랜만에 보니까 또 모르겠네.”
윤슬은 새 문제집을 펴 놓고 끙끙거렸다. 그래도 일 년 전과는 달리 가장 쉬운 문제들은 풀 수 있었지만, 난이도가 조금 있는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는 듯했다.
“개학하면 큰일 났다. 우리 방학 며칠 남았지?”
“3주 조금 안 남았지….”
“눈 한번 감았다 뜨면 개학이네. 미쳤다.”
“그래도 여름 방학보다는 조금 길어서 좋지.”
“어, 그래서 난 여름보다 겨울이 좋은 것 같아.”
얼마 전 내린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얼음이 되어 더 추운 기온이었지만 그래도 한 달도 안 되는 여름 방학보다는 역시 겨울 방학이 좋았다. 얼음장 같은 손을 하고 샤프를 쥐고 있던 윤슬은 연달아 기침을 했다.
“여기 사장님 자연인이신가? 난방을 안 하네.”
“추워?”
“좀. 그리고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니까. 야… 환기 잘 되고 좋다.”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한국인이 아닌 러시아인이 된 듯한 체험을 하고 있는 윤슬 예카테리나 로마노프의 어깨 위로 큼지막한 옷이 걸쳐졌다.
옷을 벗어 준 재언은 자신의 프라푸치노를 벌컥벌컥 마시고는 태연한 척 말했다.
“나는 더워서….”
휘이이잉-
말이 끝나기도 전에 때마침 창문을 흔드는 강풍이 몰아쳤다. 카페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문을 열던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아악!”
“추워!”
소란스러움에 재언과 윤슬의 고개가 자연스레 그쪽으로 돌아갔다. 롱패딩 모자까지 쓰고 목도리까지 꽁꽁 둘러싼 그들을 바라보던 재언은 황급하게 말을 이었다.
“그, 내가 복싱장에 자주 가니까…. 원래 혈액순환이 잘 되면, 어, 되게…. 덥거든.”
“아, 진짜?”
운동이라고는 숨쉬기만 하고 있는 윤슬은 철석같이 그 말을 믿었다.
‘역시 헬창 유행이 왔던 이유가 있었어.’
뜨거운 몸 덕에 재언이 벗어준 옷에는 열기가 묻어났다. 벗어준 옷을 어깨에 걸치고 윤슬은 문제집 다음 장을 넘겼다. 집중하는 듯 눈썹을 찡그려가며 문제를 풀던 윤슬은 시간이 지나 재언이 설명해 줄 때는 잠시 딴생각을 하는 듯했다.
“무슨 생각 해.”
“어, 그냥 뭐…. 누워서 들으면 참 좋겠다. 그런? 미안해.”
아침 일찍 일어나 강남역 팝업 스토어까지 가고, 내내 서서 일하다 공부하러 온 윤슬의 체력은 슬슬 한계치였다. 팝업 스토어를 향한 것도 벌써 며칠 연속으로 갔으니 종잇장 같은 몸이었다. 정신력으로 수학과 맞서 싸우던 윤슬은 서서히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누워 있을 수 있는….”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곧 함께 세상을 뜰 것 같이 시들어가는 윤슬을 바라보던 재언은 머뭇거리며 물었다.
“우리 집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