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109)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109화(109/405)
“윤슬아, 친구들 다 갔어?”
정신없이 손님들을 맞던 엄마가 내게 와 물었다.
“어. 다 갔어.”
“손에 쥔 건 뭐야? 애들이 편지 주고 갔어~?”
“…별거 아니야.”
나는 궁금해하는 엄마를 뒤로하고 매장을 정리하는 척 걸어갔다. 행거 뒤에 숨어 구깃구깃해진 흰 봉투를 여니 수표 하나가 나왔다.
“…허.”
돈지랄도 가지가지 하는구나.
대여비의 열 배 가까이 돈을 내고 간 하제인을 보니 기도 안 찼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안 돌려주길 잘했다.’
찌질하긴 한데 어쩌겠어? 이미 빈정거리는 말을 들었는데 정신적 피해보상금이라고 생각하는 게 낫다. 남는 장사다.
“저기요~. 이거 리본 어떻게 하는 거예요?”
“네네. 해드릴게요! 잠~시만요.”
나는 다시 바쁘게 손님들을 맞았다. 첫날치고는 과하게 북적이고 있는 매장 안을 바라보니 제인의 말이 아무렇지 않았다. 난 열심히 살 거고. 그게 부끄럽지 않으니까.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매장으로 익숙한 누군가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재언아!”
손에 핑크색 쇼핑백을 여러 개 들고. 노랑색 필기체로 쓰여 있는 포장지는 내가 좋아하는 바닐라 클라우드였다. 마카롱과 함께 등장한 재언에게로 윤슬이 달려갔다.
* * *
“와. 좀 살겠다….”
윤슬은 친구랑 밖에서 잠시 숨 돌리고 오라는 엄마의 등쌀에 못 이겨 카페에서 재언과 함께 아이스 초코를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평소보다 시럽을 더 잔뜩 넣은 아이스 초코는 보기만 해도 달았다.
“많이 힘들었어?”
“진~짜 손님 많았어. 아무래도 알바생 시급을 조정해야겠어. 이러다간 다들 추노할지도 몰라.”
윤슬은 머릿속으로 주휴수당과 더불어 보너스를 계산했다. 첫 달이라 사람이 이렇게 몰릴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잘 되고 있었다. 역시 키키 게스트 페이지에 홍보를 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휘핑크림을 떠먹었다.
“묻었다.”
“어디?”
빨대를 사용하지 않고 벌컥벌컥 산적처럼 아이스 초코를 들이킨 윤슬의 입가에는 초콜릿으로 경계선이 져 있었다. 웃으면서 조심조심 냅킨으로 닦아 준 재언이 질문했다.
“친구들은…. 많이 왔어?”
“어, 아까 좀. 너 나연이 기억하지? 우리 다 같은 반이었는데.”
“너랑 맨날 같이 다니던.”
“어어 걔. 걔랑 다른 친구들이랑 와서 사진 찍고 갔어. 아마 지금도 회전목마 앞에서 찍고 있지 않을까? 나연이는 오픈하기도 전부터 맨날 1등으로 오겠다고 그랬었거든.”
나연이를 생각하며 편안한 웃음을 지어 보이던 윤슬이 다시 제인을 떠올리고는 표정을 굳혔다. 그런 윤슬을 바라보던 재언은 의자를 당겨 가까이 앉았다.
“왜 그래?”
“아니야. 그냥… 열심히 해야지.”
“너 지금도 열심히 하는데.”
“이것보다 더~. 내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어. 다시 그 동네 간다고 했잖아.”
장난스럽게 웃어 보이며 윤슬은 고개를 숙여 빨대를 입에 물었다.
“그래…. 빨리 다시 와.”
재언의 손바닥이 조심스럽게 윤슬의 머리 위에 닿았다 몇 번 부드럽게 문지르고는 떨어졌다. 언젠가의 윤슬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을 때처럼.
* * *
“야, 이거 매장이 아주 근사한데요~.”
“안녕하세요. 윤슬이 친구 백휘예요.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재언과 윤슬이 아이스 초코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매장엔 새로운 손님이 도착했다. 싱글벙글 웃으며 윤슬의 어머니와 악수를 주고받는 능구렁이 정치인과 옆에서 체념한 미소를 짓는 백휘였다.
“내가 누군지 잘 모르죠? 나 장매란이 친구입니다.”
“아아, 어머머…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차라도 한 잔 드려야 하는데.”
“차는 괜찮습니다. 허허 감사는 무슨! 매란이랑 나랑은 가족. 가족 같은 사이니까! 어디라도 달려야지요~. 그런데…. 매란이는…?”
“어머니 오늘 오픈할 때 계시고, 지금은 일 보러 나가셨는데…. 혹시 연락 못 받으셨어요?”
받았을 리 없다. 일방적으로 늘 연락하고 무시당하는 사이니까. 오늘도 읽씹을 당한 최강묵의 눈빛에 아쉬움이 스쳐 지나갔다.
“이런. 사람이 나이 먹으면 깜박깜박하지요~. 자자. 이건 번창하길 바라는 마음 담아서~”
최강묵의 뒤에서 비서가 쇼핑백을 건넸다. 단정하고 고급스러운 상자를 여러 개 담은 쇼핑백 안에는 이태리 가죽 장인이 만든 슬리퍼가 여러 켤레 들어가 있었다.
“모름지기 오래 서 있다 보면 건강이 망가지는 법이에요. 항상 조심 또 조심하고~”
“세상에. 너무 감사합니다….”
“꼭. 매란이에게, 나 최강묵이가, 왔다 갔다고. 전해 줘요. 꼭…!”
“네…? 네.”
눈에 은은히 서린 광기와 함께 최강묵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옆에 있던 백휘가 작게 한숨 쉬었다.
“이제 바쁠 텐데 가 보셔야 하지 않나요.”
제발 가라는 소리다.
“아쉽지만 이만~. 아, 도움이 필요하면 꼭 여기로 연락해요~. 부담 갖지 말고~”
칼같이 각이 잡힌 슈트 재킷 안으로 손을 넣어 명함을 꺼내 준 최강묵이 퇴장하고 난 다음에서야 백휘는 품에 안겨 있던 장미 다발을 건넸다.
“개업 축하드려요.”
“향기가 너무 좋네~. 고마워요. 이제 곧 슬이 올 테니까 보고 가요!”
“네. 감사합니다. 매장 구경하고 있을게요.”
교복을 고르던 손님들의 시선은 어느새 백휘에게 모두 향해 있었다. 자연스럽게 매장의 입구에서 벗어나 가장 안쪽 구석에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최백휘의 귓가로 짜증스럽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슬이슬이~. 어, 슬이 어머니세요? 세상에 슬이 언니인 줄 알았어요…! 저는 윤슬이 친구! 재겸이에용.”
번잡한 매장 안이 더 번잡해졌다. 아는 척하고 싶지 않아 등을 돌린 최백휘의 어깨가 잡혔다.
“야 배키도 여기 있네?”
“너 여기 왜 있어!”
“진짜 무슨 일이냐 여기 핫플이네.”
억지로 등을 돌려 마주한 백휘의 눈에 재겸이 말고도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재밌는 것을 발견했다는 재겸의 눈동자가 빛났다.
“친구네 가게라 왔지. 그럼 너네도 재밌게 놀다 가. 난….”
“방학에 연락도 없더니 여기 와있었구나 우리 배키?”
“그러게, 여기서 만나네. 그럼 재밌게 놀다 가.”
어떻게든 꺼지라는 의도가 다분히 드러났지만 재겸은 결코 순순히 꺼져주지 않았다. 매장을 둘러보니 윤슬이 없었고, 윤슬을 보러 왔음이 확실한 백휘가 있었고, 마침 오면서 SNS를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Youstagram]@서윤슬 대여점 갔다가 우리 공주들이랑 (≡^∇^≡) 아빠가 사주신 브로치랑 머리띠 첫개시ㅎㅎ 인기 많아서 웨이팅? 해야 한다는데 친한 셀러님이 바로 구해다주셔서 기분 짱조아…♥ 아참 백도 이번 시즌 신상 ✿˘◡˘✿ 철들어야 할텐데 노는게 제일좋아 어떡해 힝
장소-Seoul Jamsil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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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오늘이에요? 저도 여긴데ㅠㅠㅠㅠ 이건…운명…?
-저 아까 성 근처에서 은하님 본 거 같애요! 예쁜 사람들 몰려있어서 저도 모르게 흘낏거렸는데 댑악
-@김민주 야 다 합하면 저거 얼마냐? 개쩐다 같은나이인데ㅠㅠ
˪내가 알겟냐고… 일단 개비싼건 확실ㅠㅠㅠㅠㅠ 부럽당
-은하님 안녕하세요 오늘의훈녀소개 페이지입니다 은하님 사진을 저희 페이지에서 써도 될까요? 태그 남기겠습니다! (ง˙∇˙)ว
고은하와 하제인이 함께 있었다. 게다가 마침 최백휘까지. 잘하면 도파민 터지는 구경을 할 수 있겠다 판단한 재겸은 능글거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교복을 집었다.
“나 교복 골라줘.”
“맨날 입는 게 교복인데 뭘 또 골라.”
“너무 서운해…. 그럼 이따 슬이한테 골라달라고 해야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백휘는 주변에 있는 아무 옷걸이를 집어 재겸에게 내밀었다.
“야. 이거 여성용인데.”
분홍색이 영롱하게 빛나는 S 사이즈의 재킷을 품에 안게 된 재겸이었다.
“재겸이…. 진작 말하지 그랬어.”
“그래. 우린 널 이해한다.”
뒤에서 교복을 고르던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 왁자지껄하게 재겸을 놀렸다. 순식간에 수줍은 핑크보이가 된 재겸이 윙크했다.
“뭘 입어도 예쁜데 이렇게 또 핑크까지 골라주고.”
그 모습에 주변이 웃음으로 가득 찼을 때. 드디어 재겸이 원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와, 진짜 추워….”
“우리 시간 맞춰서 온 거 맞지? 내 대여증 누구한테 있어?”
“은하 가방 안에 없나?”
“어? 최백휘다! 뭐야 너 왜 여기 있어?”
역시 기다림이 강할수록 재미는 더해지는 법이다. 친구들 사이에 있던 제인의 표정이 굳어있는 걸 발견한 재겸이 환히 웃었다.
“제인이 안~녕. 오랜만이네.”
“…안녕.”
“인사가 그게 뭐야. 더 반가워해야지.”
찔리는 게 있는 듯 시선을 피하는 제인의 옆에 있던 은하가 상기된 얼굴로 백휘를 쳐다봤다.
“너 제인이 보러 온 거야?”
“…내가?”
무슨 말을 하냐는 듯 티 나지 않게 눈썹을 찡그린 백휘는 팔짱을 꼈다.
“어? 뭐야뭐야? 둘이… 역시 뭐 있어?”
때를 놓치지 않고 재겸은 싱글거리며 과장스럽게 한 손으로 입을 가렸다.
“뭐가 있어. 우리 얼른 옷 갈아입고 가자~”
제인은 황급히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러나 눈치 없는 은하가 제인의 손목을 잡았다.
“뭐야 제인이, 부끄러워하는 거야~?”
“아, 진짜 둘이 뭐 있었어?”
그러자 나연과 친구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제 티 나게 당황한 제인이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그럴 리가.”
그러자 가만히 팔짱을 끼고 대화를 듣고 있던 최백휘가 입을 열었다.
“있긴 뭐가 있어.”
높낮이조차 없는 무덤덤한 목소리에 제인의 발걸음이 멈췄다. 뒤에 있던 나연과 친구들이 조용히 시선을 교환했다.
‘제인이 유스타엔 뭐 있던 것 같은뎅.’
‘썸 깨진 건가?’
‘근데 별말 없었잖아…? 그냥 제인이가 혼자 좋아했나 봐.’
미묘히 싸늘해진 분위기에 어색하게 은하가 웃으며 수습을 시도했다.
“아, 난 그냥 둘이 잘 어울려서~ 그냥 말한 건데. 야 너무 정색한다, 최백휘.”
천천히 끼고 있던 팔짱을 뺀 백휘는 두 손을 주머니 안으로 집어넣었다. 별 관심 없단 태도에 어느새 모두가 백휘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슬~. 너 왜 이제 와! 흑흑. 나 온다고 했었잖아.”
“진짜 왔네? 어… 뭐야. 동창회야?”
윤슬이 들어왔다. 재겸은 도파민이 쫙 도는 상황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동창회 아니고 제인이랑 백휘 지금 기자회견 중.”
“무슨 기자회견….”
“둘 사이 뭐 있는지? 나도 제인이 유스타 때문에 뭐 있는 줄 알았는데 저쪽 분은 뭐 없다시네?”
그 말과 동시에 제인과 윤슬의 눈이 마주쳤다. 아까 전의 기세등등함은 어디로 갔는지 제인은 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본 윤슬은 그저 심드렁했다.
“어어 기자회견 그럼 이제 끝내시고. 이렇게 몰려계시면 우리 오늘교복의 소중한 고객님들 교복 고르기 힘들어요~”
“냉정해잉. 나 교복 골라줘!”
“안녕하세요. 재겸이 친구예요. 이런 놈이랑 친구하기 힘드시죠?”
“아무거나 입고 꺼지라고 해주세요.”
윤슬의 그 말에 빠르게 분위기가 정리되고 친화력이 좋은 재겸의 친구들은 윤슬과도 친구가 되기 위해 오디오 빌 틈 없이 말을 걸었다.
제인은 어느새 인사조차 하지 않고 빠르게 가게를 나섰다. 그런 제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재겸은 혼자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백휘의 옆으로 가 속삭였다.
“고맙지? 말 안 해도 알아. 그러니까 나 1학기 수행평가 부탁한다.”
“미친놈이.”
“나 아니었으면 넌 평생 하제인 키링이였어.”
“? 된 적 없는데.”
“이미 무료로 당하고 계셨어요.”
재겸은 핸드폰 화면을 백휘에게 잠시 보여주고 빠르게 사라졌다.
“슬아~. 우리의 영원한 우정 그새 잊은 거야? 쟤네랑 친해지지 마. 내 거 골라줘!”
백휘는 오랜만에 읽지 않고 저 아래에 처박혀 있던 제인의 카톡창을 켰다. 그리고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려 노력하며 빠르게 자판을 눌렀다.
입력: 내 사진 삭제해
1은 바로 사라졌다. 그러나 답장은 오지 않았다.
며칠 뒤 제인을 제외한 모두의 SNS에 오늘교복의 사진이 올라왔다. 소소하게 홍보가 된 사진들은 오늘교복 SNS 계정에 사용되었다. 곧 고객들은 모두 하나의 교복을 대여하러 물 밀듯 몰려왔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 방영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