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113)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113화(113/405)
‘아이고.’
어린애가 교우관계 부족으로 디버프를 먹다니. 귀엽기만 한 긴장한 모습은 이제 내 눈에 다르게 다가왔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화술이 낮은 것도 마음이 아팠다.
‘엘더아머 아저씨 화술 뺏어서 얘 주고 싶네….’
하진 동생이라 일부러 붙이려는 건 아니고, 지금까지 면접 보러 온 애들 중에 사진보정 스킬이 제일 높으니까. 얘는 무조건 붙여주고 싶었다.
‘겸사겸사 교우관계 부족 디버프도 풀어주면 좋고.’
방송부에서라도 친구를 만들어 가면 좋겠지.
작년 초에는 나와 사이가 별로였던 방송부 애들도 지내보니까 다 좋은 애들이었다.
‘이래서 사람은 오래 봐야 안다니까.’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하는 하경이를 바라보며 그동안 꺼두었던 호감도 창을 켰다. 얘부터 시작해서 30명의 후배들한테 호감도를 채우면 되겠다.
「♥호감도: 130/999」
‘…이건 뭐여.’
나는 시작도 전부터 이미 100을 넘겨있는 하경의 호감도를 보고 조금 당황했다. 이러면 카운트가 안 되는데?
‘정이 많은 타입인가 봐….’
처음 본 사람한테 이렇게 마음을 주다니. 더더욱 교우관계 부족으로 인한 디버프가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질문을 하는 부원들에게 덜덜 떨며 대답하는 하경을 바라보며 눈물을 삼켰다.
‘그럼 얘한테 임팩트 좀 줘 볼까.’
마지막 면접이라 다들 얼른 집에 갈 생각에 살짝 면접을 대충 보는 게 티가 났다. 예의상 하는 질문들을 끝으로 내 차례가 왔다.
“이제 내 차례네…. 음, 우리 친구 보정이 특기라고 했는데 얼마만큼 잘해요?”
“어, 기본은 당연히 하고요….”
몇 번의 대답을 하면 긴장이 좀 풀리기 마련인데, 말할수록 긴장하는 타입인지 내 물음에 얼굴이 빨개져서 대답을 잘 못하고 있었다.
“그럼, 여기서 보여줄 수 있어요?”
“야 갑자기?”
“제일 오래 기다렸잖아~. 실력 한 번만 보면 안 돼? 나 궁금한데.”
그러자 오래된 면접 때문에 지루해져 있던 방송부원들의 눈이 빛났다.
‘그치. 면접에서 돌발 상황 일어나면 제일 재밌는 건 심사위원이니까.’
나는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포토샵을 켜 하경에게 건넸다.
“제일 자신 있는 사진 한번 해볼래요? 여기 폴더에 사진 많으니까.”
그러자 하경이 잠깐 당황하는 듯싶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와 뭐야? 손 왜 이렇게 빨라?”
“조용히 보기만 해~. 애기 긴장한다.”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해요, 편하게.”
하경은 손이 정말 빨랐다. 사진관 10년 차 알바생처럼 마우스를 미친 듯이 빠르게 클릭하면서 키보드도 신 내린 듯 눌러가며 보정을 진행했다.
“저 다했어요….”
노트북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하경은 완성한 사진을 화면에 띄웠다. 이토록 짧은 시간 내에 완성했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퀄리티였다.
보정 사진을 보는 방송부원들의 눈이 면접 시작 때보다 더욱 빛났다.
* * *
“권!재!언!”
“권!재!언!”
3월 26일을 맞은 서기고의 교실은 조례 전부터 떠들썩했다.
“야, 옆 반 뭔 일이래?”
“권재언 생일이래.”
칠판에 휘갈긴 글씨로 ‘생일축하해’, ‘재언대장님 충성충성’, ‘제발 축구 돌아와’ 따위가 쓰여 있는 오늘은 재언의 생일이었다. 재언은 5분 전 민준의 어깨 위 목말을 타려 했다가.
쾅!!!
“…아야.”
천장에 머리를 박고 잠시 기억상실증에 걸릴 뻔했다. 재언은 민준의 등 위에 업혀서 반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제 생일파티에 와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야 너 언제까지 업어줘야 되냐?”
“약소하지만, 제 성의로…. 여러분들은 이제 모두 집에 가셔도 됩니다.”
“권! 재! 언! 권! 재! 언!”
책상 위에 선물이 가득 찼고, 급식으로 나왔던 꿀피스는 모두 재언의 몫이 되었다. 누구보다 생일을 알차게 보내고 있는 재언은 하교 전 교무실로 불려가 강중엽 선생님께도 선물을 받아왔다.
“이걸 왜….”
“가져가라.”
『한계란 벽을 뛰어넘어라』라는 책을 받아들고 꾸벅 인사한 후 교무실을 나선 재언은 시간을 확인하고 잠깐 핸드폰 화면으로 상태를 체크했다.
“어 재언~! 생축~”
“감사.”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을 나서는 동안 축구를 하는 무리들이 재언을 발견하고 소리 질렀다.
“생일기념 축구 콜?”
“약속 있어.”
윗옷을 들어 땀을 닦던 민준은 자꾸만 축구를 같이 하자고 조르는 친구에게서 공을 빼앗았다.
“야, 쟤 신난 거 안 보여? 냅두고 와.”
“…신났다고?”
민준의 눈에는 너무너무 신나서 금방이라도 뛰어서 운동장을 가로지를 것 같은 재언이 보였다. 오늘도 땀이 나면 안 되니 제 딴에 조심조심 걷고 있는 재언은 그 와중에 빠르게 교문을 나섰다.
“야 미안~. 좀 늦었지? 면접이 진짜 늦게 끝나서.”
오늘도 셋이 함께 모인 곳은 윤슬 학교 근처의 카페였다. 어느새 완연한 봄날을 맞이한 카페는 계절 신메뉴라고 적힌 딸기 연유 시럽 아이스크림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기분 좋게 불어오는 바람을 마주하는 테라스에 앉아있던 재언과 백휘가 손을 흔들었다.
“재언아! 생일 축하해~”
“축하해.”
윤슬이 손에 들고 있던 케이크 상자를 들어 보이며 웃자, 백휘도 테이블 아래 내려두었던 쇼핑백을 꺼냈다.
“…이게 뭐야?”
“너 선물! 뭐 줄까 우리 둘이 진짜 고민하다 같이 샀는데~. 나 미리 양심고백… 엄청 비싼 건 아니야.”
“그게 무슨 상관이야….”
순한 눈으로 케이크 상자를 받아 든 재언은 가만히 눈을 깜박거렸다. 백휘가 내민 쇼핑백 안 상자에는 운동화가 들어 있었다. 무난하게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운동화는 재언의 발 사이즈에 딱 맞았다.
“고마워….”
“여기서 먹지만 않으면 초 켜도 된대! 이거 초 일부러 너네 집에 있던 토끼랑 비슷한 걸로 샀다?”
“뭐? 너네 집…?”
“아, 백휘는 그날 없었지. 나 지난번에 재언이네 집에 놀러 갔었거든.”
신이 나서 케이크에 초를 꽂던 윤슬은 몰랐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온갖 감정을 담은 눈으로 백휘가 재언을 보고 있었다는 걸. 쇼핑백을 건넬 때까지만 해도 웃는 눈이었던 그 눈에….
‘미쳤냐?’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다정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재언이 동생 재언이랑 진짜 비슷하게 생겼다?”
초를 다 꽂은 윤슬이 고개를 들고 웃자 그제야 백휘가 마주 웃었다.
“아~. 동생… 동생 있는 집. 귀엽겠네.”
“어, 진짜 귀엽더라.”
진지한 얼굴로 초를 긁어 불을 붙인 윤슬이 케이크를 재언이 앞으로 슥 밀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재언이’라는 가사가 나오자 재언은 태어나길 잘했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온 세상이 아름다운 것 같았고, 오늘따라 테라스 위로 내리쬐는 햇빛이 밝았다. 거리에 있는 벚나무들이 꽃을 피우려 연분홍빛을 머금고 있었다. 파란 하늘 위로 솜사탕 같은 구름이 둥둥 떠다녔다.
“누나가 돈 많이 벌어서 나중엔 진짜 좋은 거 해줄게!”
“이것도 좋아… 진짜로….”
그 말에 윤슬이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셋은 오늘 만난 목적대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서로의 노트북을 테이블 위에 올린 팀 최선은 봄맞이 어플 업데이트 막바지 작업을 했다.
“아, 슬아. 내가 최근에 찾아봤는데. 이런 대회가 열리더라.”
백휘의 노트북 화면 위로 ‘Mㅣ디어로 표현해, 너 Zㅏ신을!’ 이라는 촌스러운 문구가 적힌 홈페이지 포스터가 떠올랐다.
“어? 이게 뭐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중소기업벤처부에서 주최하는 대회야. 작지만 상금도 있고.”
“와 진짜? 이런 걸 또 언제 찾아봤대~”
이번엔 재언의 덤덤한 눈에 감정이 담겼다. 백휘를 바라보는 눈동자에 따뜻한 마음을 담아 외쳤다.
‘연기하고 있다….’
대회를 만들어 온다더니 진짜 만들어 온 백휘였다. 작년 말에 열려야 할 대회는 겨울 내내 백휘를 열심히 부려 먹은 최강묵의 지휘하에 새해 선물로 받은 것이었다.
“조건 보니까…. 우린 참가할 수 있겠다.”
“재언이 너 벌써 다 읽었어?”
“어어…. 그, 요강 부분만 빨리 읽었어.”
며칠 전 이미 백휘에게 전해 들어 대회 준비를 80% 이상 마쳐놓은 둘이었다. 새 학기에도 늘 바쁜 윤슬을 위한 배려였다.
“우리 일등 하면 좋겠다!”
야심 차게 눈을 빛내는 윤슬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얼굴이 느슨히 풀렸다.
“근데 중기부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나?”
“음. 이름대로 중소기업 세금 공제나 지원 같은 거 하는 부서야. 청년을 대상-”
“지원?! 그거 지원금 말하는 거야?”
돈이라는 얘기에 윤슬이 침을 흘렸다. 재빠르게 마우스를 조작해 중소기업벤처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글자를 읽는 눈동자가 빠르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질주하길 반복했다. 지원금엔 별 관심이 없었던 둘은 생기 넘치는 윤슬의 모습에 후회했다.
‘저것도 알아봤어야 했는데….’
‘근데 우리가 지원금 받아야 할 필요가 있던가…?’
필요에 의한 게 아니면 나라로부터 돈을 받을 생각이 전혀 없던 두 사람은 그런 윤슬을 지켜봤다.
“야 대박!!!”
갑자기 윤슬은 손에 든 무선 마우스를 쥔 채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청소년 사업 지원을…! 사무실을 주네? 야 사무실 준다!!!”
누군가 본다면 올림픽 금메달이라도 딴 것 같은 광경이었다. 더할 나위 없이 감격하고 있는 윤슬의 입가에 있던 마우스를 백휘가 친절하게 치워줬다.
“먹으면 안 되지.”
“야 안 먹었어.”
“그렇게 사무실이 가지고 싶었어…?”
어느새 재언과 백휘의 노트북 화면 위에도 윤슬의 것과 동일한 공고가 떠 있었다. 그런 둘을 바라보는 윤슬은 이미 사무실을 얻은 것처럼 행복해했다.
“…윤슬아.”
“이거 날짜가.”
그런 행복이 깨진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조심스럽게 둘이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공고의 접수 마감일이.
[3월 29일]단 3일 남은 상태였으므로.
* * *
재언은 땀이 날까 조심스럽게 카페로 갔던 것과 달리 집은 거의 뛰어가다시피 들어갔다. 접수 시간까지 67시간 52분 12초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일분일초가 아까웠다. 방금 마친 회의에 필요한 자료를 준비해야 했기에.
팀 최선은 오랜만에 불태우는 열정의 시간을 보냈다. 행복하게 웃고 있던 윤슬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굴러가라 머리머리.”
“안 돼. 뭐하는 거야….”
“윤슬아 손에 힘 잠깐만 풀자.”
윤슬은 의미 모를 단어들을 몇 개 중얼거렸다.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마라탕…? 새로운 어플… 비대면 화상 통화 프로그램… 아!”
그러더니 갑자기 홀린 것처럼 타자를 쳤다.
[창업 아이템: 인생필름 부스]“우리 지난번에 찍었던 증명사진 있잖아. 그걸 스티커 사진처럼 만드는 거지. 회전율도 빠르고 부스도 공간 차지 많이 안 하니까 평수 안 넓어도 되고. 아 그리고 SNS에 다들 업로드하니까 마케팅 비용 안 들고….”
마치 그동안 준비라도 한 사람처럼 사업 비전을 말하는 게 아주 능숙했다. 재언과 백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음료를 마셨다.
“이게 프로그램으로 뒷배경을 바꾸는 거라면 좀 힘들겠지만, 그냥 부스마다 컬러를 정해놓으면 뒷배경 바꿀 일도 없고. 앱으로 QR코드나 png 파일 넣어서 자기만의 프레임도 만들고!”
자신이 한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자판을 치며 입력한 윤슬은 곧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노트북 화면을 돌렸다.
“짠~! 어때? 사업 계획서 어때?”
때맞춰 바람이 불었고, 잠시 구름 사이로 숨었던 해가 드러났고, 윤슬의 머리 위로 환하게 쏟아졌고, 윤슬이 웃었다. 그랬기 때문에.
“윤슬아. 이거 창업 아이템이 계획서만 내는 게 아니고. 중간에 면접이 따로 있거든. 아마… 말한 것 중에 하나는 눈에 보여야 할 텐데.”
재언은 어쩔 수 없었다.
삑-삑-삑-삑-!
“어 큰형~! 작은형 들어왔다. 형! 케이크 사놨어.”
“너 먹어.”
“그런 게 어디 있어! 형 생일인데!”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프레임 QR 앱 토대를 잡는 수밖에. 태언이 방으로 쳐들어와 억지로 씌워 준 고깔모자를 쓴 채 재언은 자판을 눌렀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재언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얼굴로 피곤함을 매달고 있는 승언도 대충 박수를 치며 재언의 방 안에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등 뒤에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는 형제들을 무시하고 재언은 어플 토대 잡기에 열중했다.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은 생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