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121)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121화(121/405)
윤슬은 아무도 없는 텅 빈 복도에 홀로 있는 채린을 마주하자 이유 모를 서늘한 기분을 느꼈다. 청소를 하느라 다른 동아리가 끝나는 시간보다 최소 30분은 더 늦게 나온 윤슬이었다.
“채린아, 혹시 나 기다렸어?”
“어? 아니~. 우리 동아리도 늦게 끝났어.”
우르르르릉-!
창 사이로 들어오는 폭우의 소리는 더더욱 거세졌다. 자신도 우산이 없다고 말한 채린은 윤슬에게 제안했다.
“슬아, 우리 비 그칠 때까지 둘이 같이 교실에 있다 갈래?”
“이거 빨리 안 그칠 것 같은데.”
“그래도…. 너 그냥 맞고 갈 거야? 그냥 있다 가자.”
“나 친구가 정문 앞에 데리러 왔다고 해서. 너 교무실에서 선생님한테 하나 빌릴 수 있지 않을까?”
“친구? 친구 누구?”
친구라는 말에 채린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어쩐지 기다린 듯한 얼굴이었다.
“혹시 그… 너 유스타에 자주 댓글 다는 그 뭐였지 이름? 재경? 재겸? 이었나.”
“재겸이? 아니야.”
“아아~, 맞다~, 차재겸~”
이미 재겸의 SNS에 눌러둔 하트를 다 알고 있는데 뻔히 보이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모습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어? 저기 너 친구 맞지?”
정문 근처로 다다랐을 때, 윤슬보다 채린이 먼저 백휘를 알아봤다. 윤슬을 바라보고 다가오던 백휘가 옆에 있는 채린을 보고 잠시 걸음을 멈췄다.
“…윤슬이 안녕.”
“오래 기다렸어?”
“아니 별로. 괜찮아.”
혹시라도 이대로 가버릴까 마음이 급해진 채린은 윤슬의 어깨를 잡았다.
“윤슬아, 혹시…. 나 여기 앞까지만 데려다주면 안 될까?”
“…응?”
“여기 앞에 버스정류장까지만, 네 친구가 나 데려다주고 다시 여기 와서 너랑 같이 가면 되겠다. 친구야 괜찮지? 응?”
채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두운 하늘이 번쩍거렸다. 그리고.
꽝-!!!
다시 한번 천둥이 쳤고, 윤슬은 이 폭우에 채린은 비를 맞고 가라 할 수도 없다는 판단을 했다. 계단 아래에 고인 빗물이 찰랑거리며 흐르고 있었다. 투명한 빗물이 아스팔트의 회색빛에 물들었다.
두 사람의 시선을 받고 있던 최백휘는 둘이 서 있던 계단으로 올라와 우산을 접어 물기를 잠시 털더니, 그 우산을 윤슬에게 내밀었다.
“슬아, 데려다주고 와.”
가까이 다가온 백휘의 얼굴을 열심히 바라보던 채린은 잠시 굳었다.
“내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둘이 갔다 와.”
백휘의 손에서 우산을 넘겨받은 윤슬은 아직 그 자리에 서 있는 채린을 불렀다.
“그러면 되겠다, 채린아! 이리 와.”
채린의 시선은 백휘에게 잠시간 더 머무르는 듯하더니, 웃으며 가볍게 백휘의 어깨를 두드렸다.
“친구야 지인짜 고마워~. 나중에 또 보자!”
우산을 쓰고 멀어지는 두 사람을 보며 백휘는 조용히 어깨를 한 손으로 털어냈다.
* * *
“걔랑 친해?”
잠잠해질 기미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하늘 덕에 윤슬과 백휘는 우산을 쓰고 있었음에도 어딘가 군데군데 젖어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하늘이 미쳤다며 웃던 윤슬은 자신에게 던져진 물음에 대충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 뭐…. 그렇지? 전학 온 지 얼마 안 된 친구야.”
“같은 반이야?”
“응. 내 뒷뒷자리야.”
“그럼 다음에도 데리러 가면 또 걔랑 같이 있겠네.”
윤슬은 채린에 대해 이상하리만치 묻는 백휘가 이상했다.
“옆에 있을 수도… 있겠지? 같은 반이니까.”
어느새 윤슬의 집 앞이었다. 윤슬은 함께 쓰고 있던 우산을 나서서 대문 처마 아래로 들어갔다.
혼자 우산을 쓰고 있던 백휘는 뒤에 메고 있던 가방을 열었다. 그리고는 안에서 뭔가를 꺼내 윤슬에게 쥐어 줬다.
“뭐야? 너 우산 두 개였어?”
“이거 사물함에 두고 앞으로 걔가 우산 없다 그러면 줘. 너 혼자 있어.”
“두 개였으면 말을 하지! 하나씩 쓰게.”
“알았지? 알았으면 대답.”
백휘는 알았다고 말할 때까지 앞에 서 있을 기세였다.
“알겠어. 이거 걔 줄게.”
“응. 그럼 잘 들어가.”
백휘의 오른쪽 어깨는 우산을 쓰지 않은 것처럼 젖어 있었다. 그리고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오른손으로 들어가라며 인사를 했다.
* * *
‘왜 혼자 기다리라고… 한 거지…?’
나는 수수께끼 같은 백휘의 말이 아지랑이처럼 남아 괴로웠다.
‘왜 우산이 두 개인데. 나랑 한 개만… 같이 썼던 거지?’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자꾸만 궁금했다. 우산이 두 개인데 하나만 쓰는 건! 너무 클리셰잖아!
‘혼자 기다리라는 건…?’
어딘가 간질간질거려 입술을 꽉 물고 발가락에 힘을 주었을 때, 불현듯 떠오르는 게 있었다.
“여자친구는요. 대학 가야죠.”
“아, 정신이 확 드네.”
“뭐야 슬아? 뭔데? 무슨 일인데?”
“아냐아냐.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나연이네 집으로 와 플래카드를 만드는 중이었다. 발가락에 힘을 꽉 주다가 그만 내 흑역사가 생각나 버려 더더욱 힘을 주게 되는군.
‘그래…. 백휘는 낯가리는 것 같았어.’
카톡 알림은 항상 999+ 지만 그중에서 답장하는 걸 보지 못했다. SNS도 계정만 만들어 두고 들어가지 않고, 백휘 입에서 친구 얘기를 못 들어 본 것 같기도 하다.
‘혼자 기다리라고 한 건. 그래서겠지….’
하마터면 흑역사 시즌 2 쓸 뻔했다. 이건 다 최백휘 때문이다. 서사가 있는 얼굴 때문에 점점 내가 김여주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헉 슬아! 너 가위질을 이렇게 하면 어떡해!”
“미안….”
“딴생각하지 마! 오로지…. 유리의 앞날만을 생각해!”
나는 잠시 상태창이 준 인생 샷 폴라로이드로 유리의 사진을 찍을까 고민도 했었지만.
‘스포 방지 때문에 카메라 검사를 얼마나 할지 모르니까….’
그리고 카메라를 잘 숨겨서 들어간다 해도, 유리만 현장 사진이 돌아다닌다면 제작진 눈 밖에 날 게 뻔했다. 그뿐인가. 화제가 된 만큼 개인 팬 기조가 심해지고 있는 프젝 판에 먹잇감으로 애를 던져주는 셈이다.
‘응원이나 열심히 해야지.’
미래의 스타가 나타났음을 알려야 한다며 나연이는 반짝이 종이를 많이도 사 왔다. 그리고 전부 별 모양으로 오려서 김유리 이름 옆에 붙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별 모서리를 좀 너덜너덜하게 잘라 나연이에게 조금 혼난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뺨을 쳤다.
“우리 플래카드 진짜 이쁘다, 그치?”
“…응. 이쁘다.”
나연이는 금색별과 은색별을 다 붙여 둔 다음 ‘김유리’ 이름 하나만을 가운데 크게 박아 넣었고, 난 무지개색 바탕을 프린트해 유리에게 전하는 응원의 문구를 붙였다.
[김유리반드시데뷔하게되어있다]
참고로 굴림체다. 그리고 옆에는 우리의 친구 보노보노를 함께 넣었다. 이만하면 방송국 카메라가 찍지 않고서는 못 견디겠지.
‘이것도 김유리 밈이 되면 좋겠다.’
이렇게 짤로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유리의 이름을 한 번이라도 더 알 수 있게 되겠지. 파이널에 문자 투표 한 번씩 부탁합니다.
‘좋아, 이제 바로 내일….’
드디어 <프로젝트 111>의 첫 번째 공방 시작이었다.
* * *
“와, 사람 많다아~”
나연이가 두 손에 꼭 쥔 플래카드를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윤슬 역시 생각보다 많은 인파에 놀란 눈을 했다.
“저기 저 사람들은 기자인가?”
목에 커다란 카메라를 걸고 온 사람들도 가득했다. <프로젝트 111>의 인기가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윤슬은 방송국으로 들어가며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야, 저기 봐.”
“아니…. 뭐야 저건….”
주변에서 다들 윤슬이 들고 온 플래카드를 보며 수군거렸지만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밝고 뜨거운 조명, 소리가 웅웅 울리는 높다란 천장, 긴장된 표정과 행복한 표정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들….
‘내가 더 긴장된다.’
바로 어제 방영했던 <프로젝트 111>의 3화는 여전히 매운맛이었고, 유리의 분량은 별로 없었다. 대신 유리의 라이벌로 조명되고 있는 예령의 분량이 역대급으로 많았다. 오랜 연습생 서사에 탄탄한 보컬 실력 그리고 유리와 비교되는 춤 실력까지….
‘그래도 방송에서 대놓고 비교는 안 해서 다행이지.’
하기야 방송에서 8년 연습생과 2개월 연습생을 대놓고 라이벌 구도로 짜 맞춘다면 8년 연습생도 우스워 보일 수 있을 것이었다. 나중에 ‘김유리가 더 나은데?’, ‘8년 연습생…. 왜 데뷔 못했는지 알듯’ 식의 반응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윤슬은 예령의 소속사가 돈을 얼마나 먹였는지는 몰라도, 아직 방송국까지 제대로 닿지 않은 것이길 바랐다.
“와…! 시작한다!”
지루한 초반 인사도 끝났다. 어느새 조명이 서서히 꺼지고 주변에서 자그마한 탄성이 터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 무대를 보여줄 참가자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슬아!!! 유리다, 유리! 유리 첫 번째야! 미쳤어 김유리이이익~!!!”
무대용 메이크업을 한 유리는 오늘따라 반짝반짝 빛났다. 눈 아래에 찍어 둔 글리터가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별의 파편처럼 부서졌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프로젝트 111>에서 첫 번째 무대를 보여드리게 된.”
“마카롱~. 입니다!”
“왜 마카롱이냐면요, 저희 팀들이 B팀보다 평균 키가 아주 조금! 조금 더 작은 편인데요.”
“대신 달달함 만큼은 지지 않겠다! 이런 뜻을 담아 만들었습니다.”
“흑흑. 김유리 예뻐…. 기특해 죽겠어….”
아직 유리는 인사밖에 하지 않았는데 옆에서 나연이는 감탄을 멈출 줄 몰랐다. 귀엽게 인사를 하던 참가자들이 대형을 갖췄다. 공간을 울리는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 여돌 1군을 차지하고 있는 디어즈의 히트곡이었다.
‘이거 꽤 고음인데….’
회귀 전 트렌드는 적당한 고음과 세련된 사운드였다. 그치만 이건 미칠 듯한 고음 대결을 하던 시기의 노래다. 누가누가 높게 잘 지르나 하던 스타일이라 윤슬은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손에 땀이 배어났다.
오늘도 여전한 너. 대체 언제까지 그럴 거야?
Umm 다 알잖아,
내 머리가 나쁜 거
노래의 난이도와는 달리 춤은 비교적 쉬운 편이었다, 귀여운 킬링 포인트 안무가 몇 개 섞여 있는. 저마다 자신의 파트에서 앞으로 나와 안무를 했다. 유리는 춤 실력 때문에 수납 당했는지 대부분 뒤에 있거나 끝자락에 있었다.
‘그래도 얼굴이 자연스러워, 유리야….’
윤슬은 틀리지 않길 바라며 유리의 차례를 기다렸다.
지루한 서론은 제발 끝내줘
No no no no (no!)
몇 번이나 더 들어야 하는 건지
A to Z 이제는 지겨워
넌 사실 알고 있었지?
더 이상은 못 참겠어!
그러나 유리의 차례는 생각보다 뒷부분이었다.
‘어…. 얘 서브 보컬이 아닌가? 메인이야?’
귀엽게 통통 튀는 젤리 같은 기계음이 높아지고.
pit-a-pat pit-a-pat pit-a-pat!
드디어 수납되어 있던 유리가 무대의 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잠시 주춤하더니 가만히 서서 한 손을 위로 올리고 높은 하이톤의 맑은 목소리로 가사를 불렀다.
모!르는척 하지마
쿵쾅대는 심장소리
정답은 하나잖아
“와아아아악!!!”
유리의 시원한 고음에 주변에서 환호가 쏟아졌다. 아직 1절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마음 놓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프로들의 공연장을 방불케 하는 소음이었다. 부끄러운 듯 웃고 다시 제 동선을 찾아가는 유리는 관객들의 시야를 꽁꽁 묶어둔 것만 같았다. 모두가 2절 첫 도입부의 센터 대신 유리를 바라봤다.
모!르는척 하지마
가까워진 눈빛 사이
정답은 하나잖아
2절의 가장 높은 고음이 올라갈 때도 유리는 실수 한번 없이 잘 해냈다. 인사를 하고 들어가는 동안 관객들은 첫 번째 팀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이 팀 메보 잘한다.”
“이거 몇 팀이나 나오지? 얘가 마지막이 아니라 다행이다….”
‘그럼. 우리 앤데.’
그런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윤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쟤가 걔지? 김유리.”
‘맞아요. 우리 애예요.’
“실물이 더 예쁘다~”
‘그쵸. 자세히 보면 더 이쁜디.’
한창 옆자리 대화에 마음속으로 한마디씩 참견하고 있는 윤슬의 앞에.
“안녕하세요! 저희는 두 번째 무대를 보여드리는~”
“별사탕! 입니다.”
예령이 올라왔다.
“A팀과 같은 곡으로 무대를 시작할 건데요.”
심지어 유리와 같은 곡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