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123)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123화(123/405)
“소원?”
“응. 너무 거창한가? …그럼 성인 되면 뭐하고 싶은지? 그런 거. 작은 거라도.”
“성인 되면….”
세 사람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셋 중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재언이었다.
“나는… 피시방 열 시 넘어서도 안 쫓겨나기…?”
“음? 지금도 쫓겨날 리가 없을 텐데?”
“맞아. 누가 널…?”
둘의 말에 재언은 조금 상처 입은 듯한 눈으로 바라봤다.
“친구들이 쫓겨나니까… 같이 나가야지.”
그 대답을 들은 둘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재언을 더욱 상처 입혔다.
“윤슬이는?”
“난 술 마실 거야!!! 맥주 소주 진짜 질리도록 먹을 거. 비 오는 날은 막걸리나 하이볼도 좋고 가끔은 좀 비싸긴 한데 칵테일도 괜찮고 무엇보다 소맥.”
“숨 좀 쉬고 말해….”
술이라는 단어를 내뱉자마자 얼굴이 한껏 상기된 윤슬을 보며 둘은 어딘가 찜찜함을 느꼈다.
‘설마 1월 1일부터 술에 빠져 살지는 않겠지.’
불행하게도 재언과 백휘는 감이 제법 좋은 편이었다.
“백휘 너는?”
“…독립.”
그 표정이 어찌나 결연한지 마치 국사책에서 봤던 것 같은 데자뷰마저 느꼈다. 두 눈을 꼭 감은 상태에서 이마를 짚고 말한 백휘를 재언이 팔꿈치로 건드렸다. 윤슬은 사무실을 다시 한번 눈에 담았다.
그리고 언젠가 이 시절을 떠올린다면 반드시 오늘 밤이 기억나리라. 그런 확신이 들었다.
열어둔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봄바람이 지나치게 달았다. 살포시 영글지 못한 밤 사과꽃 향기를 물어온 듯도 했다.
* * *
“윤슬아, 괜찮아?”
“어. 이번에 운이 좋네…. 찍은 거 다 맞았다.”
나는 사실 꼬리표를 받아 들고 표정 관리부터 하기에 바빴다. 애들 중 시험 잘 못 본 애들도 있을 테니까.
‘미친 이번에 레전드다….’
이대로라면 소희를 제치고 반 1등도 노려볼 만하다. 포션 아이템 없이 밤을 샜는데도 불구하고 점수가 높았다.
‘나 진짜 스카이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성적이 완만한 상승세기도 하고, 수시로 노린다면 못해볼 것도 없을 것 같았다. 꼬리표를 확인하고 또 확인해도 기분이 좋았다.
“윤슬아! 성적 잘 나왔어? 서은이는~? 다른 애들은 이번 영어 어려웠다던데.”
채린이가 웃으며 내 옆에서 걸었다. 이제 늘 둘이서 하교하던 나와 서은이 사이에 채린이가 꼈다. 버스정류장 앞까지만.
어느새 전학생에서 반 친구로 잘 녹아든 채린이는 이 친구 저 친구 새로 사귄 친구들이 참 많았다. 붙임성이 좋아서 그런가, SNS를 보면 다른 친구들이랑 찍은 사진들도 많이 올라왔다.
‘내가 예민한 거겠지.’
이전에는 나랑 같이 찍은 사진이 도배되다시피 업데이트 되었었는데, 지금은 또 서은이나 다른 친구들이랑 같이 찍은 사진들이 올라온다. 조은주 때문에 아무래도 내가 지나치게 예민했던 것 같다.
“어? 나 버스 온다. 먼저 갈게!”
“서은이 잘 가~”
서은이가 승무원 학원으로 가는 버스를 급하게 잡아타자 나와 채린이 둘만 남았다. 채린이는 버스정류장을 지나쳐 나를 따라왔다.
“버스 안 타?”
“오늘은 나도 걸어가려구. 윤슬이 너도 원래 버스 탔었다며?”
“어. 근데 체력이 너무 떨어져서….”
1학년 때 바닥을 기는 체력 탓에 포션을 물 마시듯 마셨었다. 2학년이 되고 나서는 맨날 학교를 걸어 다녀서 그런가. 이전보다 HP가 조금 늘어 있더라.
‘포션 안 써도 되는 건 이것 때문이었나…?’
내가 딴생각을 하고 있자 옆에서 종알대던 채린이는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윤슬아…?”
“어, 나 듣고 있었어.”
“진짜?”
가방끈을 양손으로 꾹 잡아 쥔 채린이와 눈이 마주쳤다. 채린이는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고마워…. 사실 이런 얘기하기가, 좀. 부끄러웠는데.”
‘무슨 말 했는디…?’
“윤슬이 너가 담담하게 들어주니까 마음이 편하네….”
‘…무슨 말을 했는디?!’
가볍게 숨을 들이켠 채린이는 그제야 내가 듣고 싶었던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언니 일도 그렇구…. 그래서 당분간은 나도 SNS로 용돈 벌어야지. 협찬 들어오는 것도 팔고.”
“아.”
아무래도 뭔가 진지한 얘기가 시작될 타이밍 같다. 나는 딴생각을 빠르게 접고 채린이의 발걸음에 맞춰 천천히 걸었다.
* * *
오연지는 친구로선 완전히 꽝이었다. 점수로 따지자면 100점 만점에 -100점. 하지만 자신이 연지 옆에 있을 만큼의 가치는 충분했다. 연지와 함께 있으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왔으므로. 그게 좋은 시선이건, 나쁜 시선이건. 일단 가지고 있으면 도움이 되는 건 확실했다.
“아 쟤가 오연지야?”
타인의 입에 이름이 오르내린다는 건 지루한 일상에 특별함을 몇 스푼 더한 것과 같았다. 연지의 친구라는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채린은 연지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묘한 우월감을 느꼈다.
“그럼 걔 행사 초대받는 거 너도 따라가고 그랬겠네?”
“어? 아니. 연지가 그런 데는 혼자 가는 걸 좋아해서.”
물론 종종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자신과 연지 사이에 그어져 있는 선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밖에 없었지만.
[Youstagram]내가 제일 조아하는 우리 예삐랑♥ (✿∂‿∂✿) 입고 있는 옷은 #체리쉬 에서 보내주셨어요! 이번 후드티도 폭닥폭닥 조아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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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2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연지님 예쁜 사진 감사합니다 😀 항상 체리쉬 제품 예쁘게 착용해주셔서 저희 모두 감동… ପ(๑•̀ᴗ•̀)*
-언니 친구도 예뻐용ㅠㅠ 고등학교 가면 다 저런 예쁜 언니들만 있는건강ㅎㅎㅎ
-둘이 실물 궁금한데 진짜 저렇게 생겼나 궁금 @김지민
“채린아 이거 봐. 너 태그 한 거 반응 좋다?”
“아, 진짜…?”
“사람들이 너한테 예쁘대~. 다음에도 너랑 찍은 거 올려야겠다.”
-ifyouloveme 님이 회원님을 팔로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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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의 SNS에 함께하는 자신에게 내밀어지는 그 한 스푼의 관심은 모르는 체하기엔 지나치게 달았다.
‘나한테 예쁘대…!’
그때부터 채린은 틈만 나면 SNS에 들어갔다. #좋반 #맞팔 #좋아요반사 따위의 해시태그를 건 계정이 있으면 먼저 좋아요를 잔뜩 눌렀고, 상대방이 자신의 계정에 들어와 댓글을 남기거나 팔로우를 할 때까지 좋아요 누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오늘의 훈녀 페이지 담당자입니다 (∗❛ᴗ❛∗)*♡ 채린님의 사진을 저희 페이지에 업로드하고 싶은데요~♥
“야 채린아. 너 여기 올라온 거 반응 좋더라? 여기 나한테도 연락 왔었는데.”
“응. 이거 타고 팔로우하러 사람들 좀 왔었어. 메시지도 좀 왔다?”
“근데 난 여기 올리는 거 좀 관종? 같아서 별로. 아, 너한테 그렇다는 건 아니고~. 그냥 내가 그렇다고.”
“아….”
“나한테는 여기 댓글 세 번이나 남긴 거 보이지, 메시지도 따로 왔었는데 난 매번 거절하다가 그냥 씹었었거든. 그래서 내 계정에 있는 너한테 간 건가 봐.”
그렇게 연지의 옆에서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법을 배운다면, 언젠가는 자신이 연지를 넘어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런 마음으로 연지의 친구를 하는 일은 처음에만 양심에 찔렸지.
“아니 그러니까, 걔네들은 진짜 한 달에 용돈을 몇백씩 받는다니까?”
“은하가 그러는데, 백화점 VIP에도 등급별로 명절 선물이 다르대.”
“와인더라고 알아, 와인더? 명품 시계는 그냥 냅두면 안 되고 돌아가는 장치? 같은 거에 놔야 한다는데. 이 와인더도 좋은 건 지인짜 비싸대….”
입만 열면 고은하 얘기인 연지를 보니 아무렇지 않아졌다. 이런 마음으로 친구를 하는 건 자신만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채린은 늘 자신에게는 궁금한 것 하나 없이 하고 싶은 말만 쏟아내는 연지를 보며 습관처럼 스타일 슈어 앱을 체크했다.
♥오늘 주목해야 할 스타일♥
오늘도 앱을 켜면 최상단에 떠 있는 계정은 연지의 것이 아니었다.
“얘가 걔지, 지난번에 말했던.”
“서윤슬? 아아- 어. 얘 되게 웃긴 거 말해줄까? 가까이 와 봐 채린아.”
몸을 가깝게 붙여 다른 친구들에게는 들리지 않게 비밀 얘기를 하는 것도, 연지와 가장 친한 채린만 얻을 수 있는 특권이었다. 이제 연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던 친구들도 이쪽을 흘깃거리는 게 보였다.
주목이라는 건 이런 거다. 미워하면서도 끝까지 관심을 끌 수는 없는 거. 연지를 둘러싼 사람들은 언제나 환하게 켜져 있었다. 마치 어두컴컴한 교실 속 이곳만 스포트라이트 조명이 켜진 것만 같았다. 채린은 머리칼을 귀 뒤로 꽂아 연지에게 가까이 갔다.
“걔네 집…. 원래 은하네 집 근처였는데. 아 물론 비슷하게 잘 사는 건 아니고, 은하가 훨씬 더 잘살지만…. 망해서 빨간 딱지 붙었대.”
“진짜?”
“원래 저기 시골 어디야. 그… 아 이름도 까먹었다. 암튼 그런 데 살다가 잠깐 압구정 가서 살았던 거. 그래서 걔가 아득바득 스슈에서 좋아요 받으려고 하는 거잖아. 옷 살 돈 없으니까. 불쌍하지?”
그 얘기를 듣자 호수에 물감을 떨어뜨린 듯 채린의 머릿속에서 어떠한 감정들이 빠르게 번져나갔다. 단순한 흥미? 우월감을 동반한 쾌감? 아니면… 동정심이었을까?
“…아. 그래?”
“그래서 얘 유스타 보면 협찬받은 거 진짜 많은데, 지가 먼저 연락해서 달라고 구걸한 걸 껄? 여기는 원래 협찬 잘 안 주는 데거든.”
아니. 그건 정답을 발견했을 때의 희열이었다. 윤슬의 가장 약한 부분이자 채린에게 가장 강한 부분이 될 정답을 발견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희열.
채린은 그 뒤로도 꾸준히 연지의 옆에서 윤슬의 정보를 수집했다. 윤슬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주변 친구들은 어떤지, 평소 성격은 어떤지 같은 것들을.
실제 친구가 아니면 알 수 없었던 이야기들은 고은하의 입에서부터 건너 건너 전해져왔다.
‘운이 좋았지.’
윤슬과 같은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된 것도, 그걸 알자마자 같은 반이 되길 간절히 기도했던 것도, 이제는 윤슬의 곁에 스스럼없는 친구가 된 것도, 그리고….
“그랬구나….”
“이런 부탁 하면 좀, 그런가? 미안해 슬아. 너한테도 예민할 수 있는 문제인데….”
“아냐 아냐, 알려줄 수 있지. 근데 광고는 팔로워마다 단가 다른 거… 알고는 있어야 돼. 무슨 얘긴지 알지?”
“그럼! 너랑 같은 가격 받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어.”
이제는 한 단계 뛰어넘어서 윤슬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될 것까지. 채린은 연지와 함께 찍었던 사진을 모두 삭제한 그 자리에 윤슬을 채워 넣었다.
“나중에… 혹시 윤슬이 너 기분 조금이라도 상하면 말해줘야 돼, 꼭!”
“기분이 상할 게 뭐가 있어.”
“그냥… 내가 너 태그해서 팔로워 뺏어가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뭐 그렇잖아. 사실 내가 너한테 업혀 가는 건데.”
“뭘 또 업혀 가. 나도 돈 벌려고 SNS하는 건데. 신경 쓰지 마. 일단 너도 그럼 스슈부터 깔래? 내가 협찬받은 거 몇 개 빌려줄 테니까 입고 사진 찍어서 올려봐. 초반 팔로워 늘면 협찬 메시지 바로….”
채린은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윤슬의 가장 약한 부분을 제대로 찔렀고, 윤슬은 의심 하나 없이 믿었다. 윤슬과 헤어지고 뛰다시피 집으로 돌아온 채린은 숨이 가빴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오늘 윤슬과 같은 신발을 신고 같이 찍은 사진을 서둘러 보정해 유스타에 업로드할 생각으로 가득 찬 채린은 수많은 연속사진 중에 윤슬이 가장 잘 나온 사진을 하나 골랐다.
[Youstagram]전학와서 제일 좋은 건 너랑 친구 된 거?ㅋㅋ 내 요정 슬이랑 같은 신발 신고! ٩(●’▿’●)۶
#체리쉬 이번 여름도 잘 부탁해~
#좋아요 #좋반 #셀카 #협찬환영 #협찬문의 #체리쉬운동화
하교 시간에 맞춘 업로드인 만큼 좋아요가 빠르게 늘었다. 채린은 새로고침을 하며 언젠가는 윤슬처럼 자신도 업로드한 지 몇 분 만에 좋아요 수가 몇백씩 오르는 상상을 했다.
핸드폰에 켜 둔 유스타 알림이 쌓였지만 확인하기 버거울 정도로 많이 쌓이지는 않았다. 업로드한 지 10분. 좋아요 79개, 댓글 4개에 아쉬워하던 채린은 #좋반 태그를 타고 들어가 무작위로 좋아요를 눌렀다. 그때였다.
핸드폰 상단에 새 댓글 알림이 떴다.
“아 미친… 왜 이딴 말을.”
-둘이 외모 합 최고ㅠㅠ 댕댕두마리 조합 쪽
-언니 새 학교 교복도 잘어울려용ㅎㅎ
-저 이전부터 봤던 팔로워인데 혹시 연지님이랑 손절? 하신 게 윤슬님 때문이신가요? 윤슬님이 왕따 피해자라…?
댓글을 확인하던 채린은 빠르게 왼쪽으로 검지를 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