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131)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131화(131/405)
시험 첫날부터 마지막 날인 오늘까지, 나는 주현이와 함께 밤새워서 공부 중이다. 지금은 새벽 세 시. 얘네가 우리 집에서 자는 건 이제 오늘이 마지막이다.
“언니…. 저 이것도 헷갈려요….”
“응, 하경이 이리 줘 봐.”
그리고 게스트 하경이까지. 아무래도 혼자 있으면 계속 머리가 멍한데다가, 하경이 머리 위에서 깜박거리는 디버프 글자는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더라고.
「!Debuffs! 교우 관계 부족」
흑흑. 내 새끼…. 그래도 처음보다 밝아진 하경이가 귀여웠다. 친구네 집에서 처음 잔다고 신나서 잠옷까지 새 걸로 샀다고 했었지.
“어, 근데 친구는 아니고, 그… 선배! 언니…네 집에서 자는 건 생전 처음이어서요….”
누가 들으면 노벨상이라도 수상한 것처럼 감격해서 얘기를 하던 하경이를 생각하니까 또다시 귀엽다. 나는 하경이가 질문한 문제를 천천히 설명해줬다.
“네!!! 이제 이해했어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하경이를 보고 있자니 머리가 맑아진다. 요 며칠간 이렇게 머리가 맑았던 적이 없는 거 같은데. 역시 귀여움 테라피가 답인가.
“윤슬아. 우리 잠깐만 쉬자, 진짜 잠깐만….”
핸드폰 한 번 만지지 않고 계속해서 공부만 한 우리 셋이었다. 도저히 못 버티겠는지 주현이가 십 분만 쉬자고 했다.
“그래. 딱 십 분.”
지금 머리가 진짜 맑아서, 이 시간을 놓치면 아까울 것 같다. 공부가 너무 잘 되거든. 잠깐 뻣뻣해진 목 운동을 할 때였다.
“…윤슬아, 너 이거 봐.”
하얗게 질린 얼굴로 주현이가 내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 * *
나는 일단 상황부터 침착하게 파악하려 했다. 마침 인터넷 고인물들이 활동하는 새벽 세 시. 필터링 없이 내 욕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군.
-근데 저거 누가봐도 줌한건데ㅋㅋㅋ 몰카 아님?; 음침갑
˪친구끼리 사진좀 찍을수 잇지ㅜ 친구없오?
˪니보단 많을듯
-ㅅㅇㅅ도 저러다가 ‘사실 친구랑 같이 먹고 있던 효소! 너무 조아서 혼자먹기 아까웠어요ㅠ’ 하고 ㅇㅊㄹ 공구 끝나자마자 올리는 거 아님?
˪22이거다 이런사람 존나많이봄ㅋㅋ
중간중간 서윤슬은 안 먹은 거 아니냐 하는 부류도 있고, 인플루언서들의 공구 방식을 꿰뚫고 있는 사람들은 나도 할 거라고 생각하는군.
‘그래도 반응이 아주 망하지는 않았다.’
평소에 내가 공구를 많이 했으면 아마 이런 반응은 안 나왔겠지. 다행이었다.
“야, 이거 유채린 미친 거 아니냐? 너 이거 효소 왜 들고 있어???”
“서은이가 요즘 손에 힘이 없어서 대신 따 줬었어.”
“걔 아직도 일일 일식 해?”
계속 나만 보고 있던 건지, 딱 한 번 대신 뜯어줬을 뿐인데 이걸 찍었네. 대단하다.
나는 댓글을 훑으며 수습을 고민했다. 젤링핏 PPL이 <프로젝트 111>에 들어간 만큼, 잘못하면 유리한테도 피해가 갈 테니까.
-ㅅㅇㅅ 프젝 ㄱㅇㄹ 친구 아님?ㅋㅋㅋㅋ
어떤 상황은 언급만으로도 마이너스가 된다. 나는 평소에 교실에서 효소도 젤리도 먹지 않았으니 일단 증인들은 차고 넘치지.
‘하나도 안 먹길 잘했다.’
…어? 근데 이상하다? 왜 지금은 채린이를 떠올리는데 회귀 전 생각이 하나도 안 나지. 원래 채린이만 생각하면 머릿속에 영화를 틀어둔 듯 선명하게 떠오르고는 했었는데. 딴생각은 하나도 못 할 정도로….
“윤슬아. 너 지금 인스타 닫아놔 당장.”
“맞아요 언니… 팔로워 계속 늘고 있어요….”
원래 논란이 생기면 사람들이 몰려오기 마련이다. 비공개 계정으로 돌리고 나면 재밌는 구경을 하기 힘드니까.
어? 근데 잠깐.
무언가 내 뒤통수를 세게 내리친 것만 같았다.
나는 내 핸드폰으로 유스타에 들어갔다. 몇 시간 사이 3천 명이 상승했다. 댓글도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작년 10월과 12월. 스타일 슈어에서 팔로워가 급상승한 뒤로 내가 유스타에 크게 신경을 썼었나?
‘…아니다.’
작년 하반기에는 이야깃거리를 만들려고 서포터즈도 하고, 이어서 라몽드 팝업 스토어도 했었지. 그걸 전부 SNS에 올리면서 팔로워가 순조롭게 늘어났었다.
‘그리고 점점 협찬 건이랑 일상 조금. 나머지는 스토리로 올렸었고.’
스토리는 피드에 올라가는 사진에 비해 유입이 적다. 또한 24시간 안에 사라지니 태그를 타고 오는 사람도 적을 수밖에.
나는 유스타 통계를 클릭해 스크롤을 위로 올렸다.
교복 대여점을 오픈했을 때, 홍보를 위해 유스타 업로드를 마친 후로는 그래프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방송부 면접, 중기부 대회, 사무실을 얻기 위한 밤샘….
‘개인 유스타를 키울 시간이 전혀 없었다.’
채린이가 전학을 왔던 달부터 지금까지, 팔로워가 순차적으로 늘고는 있었지만 지난겨울만큼 급성장을 보이지는 못했다.
‘당연하잖아. 미션이 안 뜨는데….’
왜 팔로워를 모으려고 그렇게 시간을 쏟아붓겠어? 이미 돈은 부족하지 않게 벌고 있는데.
“너 빨리 비공개 안 할래! 댓글 달리잖아!!!”
다급하게 주현이가 통계를 멍하니 보고 있는 나를 말렸다.
“아니, 나 안 닫아. 생각할 게 있어서 그래.”
어느 때보다 맑은 머리는 기억을 떠올리기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나는 책꽂이로 걸어가 상태창을 기록해 둔 노트를 펼쳤다. 언젠가부터 키키 게스트로 얻어낸 성과에 히든 보상창이 뜨지 않았던 것.
‘이때 서윤슬로 얼굴 드러낸 쪽에 보상을 준다고 적어 놨었고.’
노트를 넘기는 손이 빨라졌다.
유스타 팔로워가 10만이 되자마자 나오지 않았던 제비가 나왔던 것. [친구 없으면 못 부르는 페이지] 유스타 계정이 언제부터인가 인식이 안 돼 포인트가 들어오지 않았던 것. 스탯이 멈춰서 오르지 않았던 것….
모두가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쿵- 쿵- 쿵-
심장이 아플 만큼 뛰었다. 어지럽혀진 퍼즐이 순식간에 제자리를 찾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며칠 전 상태창이 내 눈앞에 보여줬던 그래프가 떠올랐다. 그리고 상태창에 쓰여 있던 글자들도.
하지만 아직은 부족해요. 당신의 하루, 일거수일투족, 감정까지 궁금해하는 팔로워들을 넘쳐나게 만들어봐요.
…상태창이 원하는 건 ‘서윤슬’의 팔로워 숫자였다.
“하… 나 참.”
머리가 멍한 건 잠을 못 자서가 아니었다. 채린이를 볼 때마다 과거 생각이 났던 건 내 자의가 아니었다. 나는 홀린 듯 채린이에게 연락하려 했던 지난밤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공구를 같이 하자고 적었다가 깜짝 놀라 전부 삭제했었지.
그리고 공구를 한다면 내 이름을 꺼내지 말아 달라고 보냈었다.
‘같이 공구하자고 보냈다면?’
지금보다 팔로워가 배는 늘어났겠지. 같이 논란이 되었을 테니까. 효소를 들고 있는 몰카 한 장보다 훨씬 더 확실한 증거가 되잖아.
‘상태창 주제에….’
사람을 이렇게 조종해? 머리가 싸늘하게 식었다. 상태창이 이전에 줬던 미션이 떠올랐다.
「▶예쁜애 옆에 예쁜애
SNS를 활발하게 할 수 있는 [좋은 친구] 를 사귀어보세요. 좋아요는 좋아요를 불러 옵니다」
“팔로워 늘리라고 유채린을 나한테 붙여 놨구나.”
내 주변에 지금의 유채린 만큼 SNS를 열심히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누가?! 야 말만 해. 내가 가서 죽여 버리게.”
“맞아요 언니…! 저도 죽일게요…!”
옆에서 두 주먹을 쥐고 말하는 애들을 보니까 그래도 좀 낫다. 상태창이 원하는 게 팔로워라면. 원하는 대로 해주는 수밖에.
“주현아. 방송실 키 너한테 있지?”
참고로 유스타는 스토리 서비스를 오픈할 때 라이브 방송 서비스가 함께 오픈됐다.
* * *
드륵-
채린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동시에 수십 쌍의 눈동자가 꽂혔다.
“야, 유채린 왔다….”
“쉿. 목소리 너무 컸어.”
이미 퍼질 대로 퍼져 있는 상태였다. 채린은 조심스럽게 윤슬의 자리로 가 말을 걸었다. 윤슬을 둘러싼 친구들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윤슬이만 괜찮다고 하면, 다 괜찮아져…!’
교실까지 걸어오는 동안에도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했던 채린이었다. 그중 몇몇은 채린을 진심으로 싫어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전의 연지가 그랬듯, 부러움을 사는 일이라는 건 반드시 귀찮은 일을 겪어야 했으니까.
“저, 윤슬아….”
윤슬이가 괜찮다고 해 줘야 한다. 윤슬이만 괜찮다고 해 주면. 윤슬이는 괜찮다고 할 거다.
채린의 머릿속은 은하와 제인의 SNS에서 봤던 명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었다. 윤슬을 놓치면 갤러리에 잔뜩 캡처해 둔 명품과도 영영 멀어진다고 생각하니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이따 얘기해. 조용한 데서.”
조금 화가 나 있더라도 봐줄 거라 생각했던 윤슬의 표정은 싸늘했다. 지금까지 봐 온 적 없던 모습에 채린은 주춤했다.
어느새 교실 안은 조용해져 있었다. 텅 빈 공백 사이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작게 채워졌다. 둘의 대화에 모두가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걸 알아챈 채린은 쉽게 물러날 수 없었다.
“잠깐이면, 잠깐이면 돼! 뭔가 오해가….”
“그러니까 시험 끝나고 얘기하자고.”
윤슬은 다시 귀에 이어폰을 끼고 요점집을 넘겼다. 잠시 고요했던 반 안은 다시 웅성거리는 소리가 퍼졌다. 책상을 미는 소리와 달칵거리는 펜 소리, 작은 귓속말들, 핸드폰 진동. 이 모든 게 채린의 귓가에는 지나치게 크게 들렸다.
“윤슬아….”
탕-!
그때였다.
“홀수 번호 놈들! 옆 반 안 가고 뭐하냐. 느그들 그거 오 분 십 분 더 본다고 성적 달라지냐? 하여간에…. 얼른 나가!”
담임이 들어왔다. 채린은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지금 윤슬을 잡고 무작정 매달렸다가 큰소리라도 나게 되면,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게 되면, 정말 끝이라는 걸.
가방을 대충 싸 옆 반으로 가는 동안 채린의 뒤통수가 따끔거렸다. 그런 채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주현은 어딘가로 연락했다.
* * *
“가자 이제. 얘기하러.”
“응….”
채린은 그동안 공구를 하기 위해 SNS에 과시용으로 샀던 물건들의 가격이 계속해서 생각났다. 공구 금액이 들어오면 금방 메꿔질 텐데, 아니, 몇 배는 더 들어올 텐데 왠지 모르게 심장이 쿵쾅댔다.
“윤슬 하이!”
“응 안녕~”
윤슬의 뒤에서 걸어가는 동안 채린에게 향하는 시선들이 따가웠다. 시험이 끝난 직후답게 복도는 어수선했다. 아직 종례를 마치지 못한 반도 상당했다.
채린은 머릿속으로 윤슬에게 할 말을 외우며 걸었다. 일직선으로 쭉 뻗어 있는 회색의 복도가 유난히 짧았다.
덜컹-
윤슬은 능숙하게 열쇠로 잠겨진 문을 땄다.
“근데 좀 어둡다. 우리 불….”
“켜지 마. 지나가다가 보여.”
문에 나 있는 작은 창으로나마 복도의 햇빛이 들어왔지만 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눈을 마주치기엔 충분했다.
“이제부터 묻는 말에 대답만 해.”
“…슬아, 나는….”
“변명하지 말고, 대답.”
쿵. 쿵. 쿵.
채린의 심장이 뛰었다. 방금 전까지 윤슬에게 할 말을 연습했던 머리가 움직임을 멈췄다.
‘어… 뭐지. 그, 러니까….’
매끄럽게 굴러가던 뇌가 딱딱해졌다. 버석하게 굳어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