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138)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138화(138/405)
“아빠 빨리! 빨리!”
윤슬은 강물이 넘실대는 선착장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그 뒤를 아빠가 뒤따랐다.
“천천히 가~. 그러다 빠지면 클나.”
또 그 뒤는 레이스 양산을 쓴 엄마와 할머니가.
“빠지면 시원하고 좋지 뭐. 냅둬~.”
“슬아, 시간 아직 남았다.”
네 사람은 ‘블루 마리나’라는 간판이 적힌 곳으로 향했다.
새하얗게 반짝거리는 유람선의 입구에서 가족 코스를 예약한 윤슬은 티켓을 꺼내 내밀었다.
“여기요!”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한 달도 채 안 남은 시간 동안 미션을 위해 팔로워를 모아야 했지만, 윤슬은 오랜만에 가족들과의 시간에 집중하고 싶었다.
“우와, 여기 이거 전부 다 먹어도 된대요. 이거 과자! 아빠 먹어봐.”
잽싸게 배 한편에 구비된 스낵 테이블에 간 윤슬이 과자를 까 아빠의 입에 갖다 대고는 그 옆의 주스 바로 다가갔다.
“할머니! 여기 녹차도 있어요.”
“그래. 좋구나.”
그리고는 녹차를 한가득 따라 할머니에게로 내밀었다. 설레며 부산스레 움직이는 윤슬을 향해 선장이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아아. 블루 마리나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많이 기대되시죠?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아름~다~운 반포의 한강을 보여드릴 선장입니다.”
하얀색 모자를 벗어 인사한 선장이 간단하게 주의사항을 안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서히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분 좋은 환호성이 울렸다. 배 안에 탄 모든 이가 환하게 웃었다.
“우와아!!!”
물살을 가로지르고 나아가는 배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머리카락을 훑고 지나가는 푸른 바람은 더위를 잊게 했다. 뱃머리에 있는 은색 조형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윤슬을 데리고 타이타닉이 뭔지 알려주겠다며 허리를 잡고 번쩍 들어 올린 아빠 때문에 커다란 웃음이 터졌다.
“이거 왜 이렇게 무거워졌어….”
“아니야!!! 아빠가 힘이 약해진 거지!!!”
“팔뼈 분질러진 것 같은디. 지금….”
배 위에 설치된 그늘막 아래 부채를 팔랑이던 할머니의 입가에도 웃음이 걸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큰일을 겪었는데 덤덤한 표정을 짓던 윤슬이었다. 지금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뛰어다니고 웃으니 비로소 그 나이 때 어린아이 같았다.
“어머니, 녹차 한 잔 더 갖다 드릴까요?”
“응. 고맙다.”
유유히 배는 앞으로 나아가다가 천천히 한 곳에서 멈췄다. 잠시 자동 운전으로 돌려놨다는 선장은 폴라로이드 필름 카메라를 들고 말했다.
“자 여러분, 가족끼리 사진 한 장 남기셔야죠!”
그 말에 매란은 자연스레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려 했지만 양옆에서 팔이 잡혔다.
“어머니, 어디 가세요?”
“할머니 얼른! 가운데 서세요!”
매란이 강을 등지고 가운데에 서자 그대로 팔을 잡은 두 사람이 함께했다. 뒤에는 아빠가 섰다. 완벽한 가족사진의 구도였다.
“자, 찍습니다-”
“잠시만요!”
카메라의 버튼을 누르려던 선장을 잠시 멈춘 윤슬은 가방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제 카메라로도 찍어 주세요.”
「▶[랜덤 협찬: ‘Canno’ 일회용 폴라로이드 카메라 협찬 (B+)]
○무엇이든 인생 샷을 찍어주는 카메라
[지금 사용하기]」오늘 아빠가 온다는 메시지를 받자마자 켰던 인벤토리였다. 아이템을 받을 때 나왔던 문구를 떠올려보면 꼭 오늘 써야만 했으니까.
「※ 눈을 감고서도 그 장면을 생생히 기억나게 해 주는 아이템. 단 한 장의 사진이지만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될 거예요. (1/1)」
“자, 모두들 웃으시고! 지금 좋아요 좋아요, 누릅니다!”
하나-
둘-
셋-
청량하게 푸른 강을 배경으로 행복하게 웃고 있는 네 사람의 사진에서는 행복이 묻어났다. 모두의 마음속에 그 순간이 영원히 간직되었다.
* * *
“어떻게 카메라를 챙겨 올 생각을 다 했어?”
“엄마, 나 원래 준비성 되게 철저해.”
“들어본 말 중에 제일 웃기는 말이여. 필름은 한 장 챙긴 게.”
“아빠!!!”
나는 한 장을 찍자마자 부서지려는 카메라에 달려갔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선장님이 당황하실까 선택한 일이었다. 그리고 빠르게 부서지는 카메라를 가방 안에 넣는 척하며 좀 뻔뻔하게 말했었다.
“필름이 한 장이라…. 나머지는 그 카메라로 좀….”
그때 어이없어하는 모두의 얼굴을 떠올리니 나는 다시 변명하고 싶어졌다.
아니 이게 내가 그러려고 한 게 아니라 상태창 이 자식이 쩨쩨하게 한 장만 줬다니까요. 상태창이 누구냐고? 아 있어, 내 친구…. 엄마 아빠 모르는 애 있다고….
제일 잘 나온 첫 번째 사진은 아빠의 지갑 안에, 그 뒤를 이어 찍은 사진들은 모두가 한 장씩 사이좋게 나눠 가졌다. 할머니는 조용히 사진을 보다 말씀하셨다.
“…고맙다.”
그렇게 네 사람은 한정식집으로 가 저녁 식사를 했다. 분위기가 좋은 가게라 그런지 입구부터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서윤슬. 너 핸드폰 꺼내기만 해.”
“알았다고….”
“거, 밥 먹으러 왔는데 애한테 왜 그려?”
식사 시간에 핸드폰 금지. 엄마가 이것만은 무조건 지켜야 된다고 했던 것이었다.
나는 메뉴가 나오면 하나씩 사진을 찍으려 했던 마음을 고이 접었다.
윤기가 흐르는 메뉴들이 하나씩 정갈하게 테이블에 놓였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가고, 따뜻한 식사 시간이 지나갔다. 후식으로 나온 유자주(酒)를 마시던 할머니가 조용히 입을 여셨다.
“자네. 그간 지각 한 번 한 적 없다지.”
“넵. 그럼요.”
“몸이 고됐을 텐데, 잠은 최소한으로, 딴짓은 전혀. 공장 사람들과 관계도 좋고 다들 자네라면 일을 믿고 맡기더군. 사실 내 일부러 텃세 심한 부산으로 보내긴 했다만서도. 의외야.”
“이 서충남이 이름 하나면 아직도 예산에서는 기가 막혀요.”
할머니는 칭찬을 평이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아빠는 평소처럼 너스레를 떨며 별거 아니라고 답했다.
“그간 고생했네. 이제 서울로 올라와. 자네 일자리를 다시 구해 주지.”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갑자기 폭탄선언을 했다.
아빠 서울로 올 수 있는 거야? 우리 가족 다시 같이 살 수 있는 거야? 나는 눈만 크게 뜨고 아빠를 바라봤다. 하지만 아빠는 씩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에이, 쪽팔리게 어떻게 그래요.”
…뭐? 아빠 미쳤어? 이 기회는 당장 잡아야 한다니까! 오랄 때 와야지, 뭐 해?!
나는 입 밖으로 튀어 나갈 뻔한 말을 애써 참았다.
“자네, 아직도 창피할 게 남았나? 왜. 늙은이가 매번 일을 구해주는 게 창피해?”
“그건 아니고요. 마누라랑 딸자식한테 쪽팔리기 싫어서 그래요.”
고작 그거 때문에? …아빠 언제까지 그렇게 힘든 일 할 건데.
“사업 말아먹은 것도 쪽팔린데, 고작 일 년 좀 힘들었다고 냉큼 올라가면 써요? 공장은 몸 힘든 만큼 돈도 많이 줘요.”
“돈? 내가 더 주지. 언제까지 몸 축내면서 일할 게야?”
“…어르신, 저도 사업하던 사람입니다. 우리 안사람 월급을 굉장히 많이 주신다는 것쯤은 저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늘 웃는 얼굴이던 우리 아빠는 전에 없이 침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테이블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일하는 만큼 주는 거야.”
“판매점 매니저도 아니고, 어떤 대여점 매니저가 돈을 그만큼 받는대요? 지금은 망했지만 그래도 제가 눈치 하나로 먹고살던 놈입니다.”
…그래. 내가 사랑하는 우리 아빠. 밑바닥에서부터 올라간 다음에도 늘 성실하게 일했었다. 나랑 엄마만 걱정 없이 쓰라고 카드를 쥐어 주고 자기는 양말도 꿰매 신었었지.
“저까지 어르신한테 기대버리면 우리 슬이가 저한테 뭘 보고 배우겠습니까. 저요, 우리 슬이 뱃속에 있을 때부터 얘한테 당당한 아빠 되자고 매번 다짐하면서 살았습니다.”
엄마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입술을 앙다물고 있는 걸 보니 애써 눈물을 참는 것 같았다.
“마누라 고생시키는 거, 딸래미 고생시키는 거 배는 제가 해야죠. 급한 불은 이미 껐고, 남은 금액 금방 갚고 당당히 올라가겠습니다. 이 속도면 내일모레예요.”
우리 아빠는 파산이 아닌 개인 회생을 했다. 솔직히 난 아빠가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집 팔고 공장 팔고 재산도 없는데 뭘 지키겠다고 대체 개인 회생을 한 거야? 빌린 돈은 파산하면 전부 사라진다고! 누구한테 빌렸건 뭔 상관이야! 법이 그렇다는데!
잠이 오지 않는 새벽마다 그 생각을 했었다.
“부모가 빚지고 다니면, 그거 전부 자식이 갚아야 하는 겁니다. 빚쟁이들이 제가 서울 와서 일하는 거 알면 얼굴 한 번 봐야쓰겄다고 하겠죠.”
하지만 아빠가 지키고 싶었던 건.
“슬이한테도 찾아가면 어쩝니까. 힘들게 빚 갚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그 사람들도 믿고, 참고 기다려주죠. 제가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럽니다.”
…바로 나였다.
“우리 슬이 빚쟁이가 찾아가면 못 참고 또 팰까 봐 그것도 겁나요 아주. 애가 승질머리가….”
“아 아빠!!!”
“지 아빠 욕한다고 바로 머리채를 잡고 그냥.”
“그럼 욕하는데 냅둘까?”
다시 떠올리니 또 화나는군. 씩씩거리는 내 머리를 쓰다듬은 아빠가 말했다.
“웃어 인마, 공장 사람들이 서충남이 딸래미는 웃는 게 이쁘다고 다들 그러더라. 쌈박질은 기가 맥히게 잘하는데 얼굴은 순허게 생겼다면서.”
“…싸우는 거 다 봤어?”
“그럼 봤지! 딸래미 잘 키웠다고 난리도 아녀. 아조 그냥 다들 부러워 죽을라 그려.”
아니 근데 잠깐, 내가 유채린을 때리면서 웃은 기억이 없는데? 내가 싸이코패스도 아니고?
“…뭐 보여줬어?”
“어디보자하-”
자랑스럽게 내민 아빠의 핸드폰 속 화면에는.
[고등학생들이 사이버 피싱 조직을 일망타진하는 데 협조…]“아 아빠!!! 박동진 기자 사진 보여주면 어떡해!!! 내 프사 보여줘야지!!! 카톡프사!!!”
“그건 가짜여.”
“뭐가 가짜여!!! 아 이걸 보여주면 어쩐대 진짜 미친다 내가!!!”
“내 딸은 그렇게 생기지 않았어.”
어색한 알파카의 웃음을 짓고 있는 내가 띄워져 있었다.
‘안돼애!!!’
나는 스스로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유채린한테 잡힌 것보다 더 아팠다…. 고개를 돌리고 있던 엄마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다.
웃겨? 엄마… 웃어요…?
* * *
‘역시 돈이 좋긴 좋다.’
나는 잠실에 위치한 초호화 레지던스에 도착했다. 누구냐고? 당연히 이름값 하는.
“왔어요?”
다이아수저의 집이다. 심지어 가족끼리 사는 것도 아니고 자취한다고 하더라. 이걸 자취라고 하는 게 맞나?
“아빠짱은 뭐 줄까? 얼굴에 아직도 상처 있네? 약 안 발랐어요?”
“발랐어요. 근데 아빠짱…이 뭐에요?”
“일진이 된 아빠짱 몰라요?”
“뭐지… 혹시 몇 살이세요?”
뭐라고 한 건 아니고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다이아수저가 상처받은 얼굴을 했다. 인터넷 고인물인 내가 모르는 게 있다니 진짜 오타쿠들만 암암리에 알고 있는 건가 본데.
“뭐 마실래요? 녹즙? 보약? 홍삼차?”
“라인업이 왜 이래요…. 아아 마실래요.”
여름을 맞아 시원시원해 보이는 실버 컬러 주얼리를 화려하게 한 다이아수저는 나에게 오렌지 주스를 내밀었다.
“자, 쭉 들이키고. 우리 본론으로 들어가요.”
‘아아 줘유….’
“그래. 잘 마시네. 옳지. 그거 생과일로 만든 거예요. 첨가물 없이.”
‘아아 줘유…….’
지난번에 밤을 새가며 일한다고 말한 뒤로, 다이아수저는 부쩍 내 건강을 챙겼다. 며칠 전엔 몸이 허할 테니 마시라며 양배추사과즙을 집으로 보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달라는 내 말은 먹히지도 않았다.
오늘은 여러 가지 볼 일이 있어서 왔다. 물어볼 것도 있고, 받아낼 것도 있고. 날 집까지 부른 거 보면 저쪽도 나에게 아쉬운 게 있을 테니.
나는 상태창을 확인하기 위해 다이아수저의 머리 위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