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14)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14화(14/405)
“그래서? 붙었어?”
쭈웁- 소리와 함께 남은 버블티를 마시는 나연이였다. 졸업식 이후로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다람쥐같이 하얀 볼이 여전히 귀여웠다.
“아직 동아리 면접 시작 안 했어. 다음 주야.”
당도 100, 타피오카 펄 추가한 버블티를 나도 같이 쭈웁- 들이켰다.
아직 흑당 버블티가 유행 전이라 아쉽다. 설탕 진하게 졸인 걸로 먹고 싶었는데. 지난번 편의점에서부터 흑당 버블티에 대한 광기는 점점 커져만 간다.
“근데 걔 진짜 재수 없다.”
대충 알겠지만 우리는 DDP에 입장하기 전 들어온 카페에서 이예원을 욕하는 중이다. 그 미묘한 재수 없음을 얘기하지 않으면 화병 날 것 같아서. 심지어 싫어할 만한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 * *
하루 전.
12:30 AM
지잉-
[윤슬아 나 너 유스타 팔로우했당ㅎㅎ..] [이모티콘] [모해??] [나도 맞팔해조~ㅎㅎ]갑자기 이예원한테 톡이 왔다.
단톡이면 몰라도 개인톡으로는 한 마디도 건 적 없었는데?
아마 오늘 내내 소희를 은근히 배제시키려다 본인이 당한 뒤로 소희 편을 들어주는 내가 자기 쪽에 붙길 바라는 모양이다.
갑작스러운 친한 척. 조금 당황스러운걸.
‘이렇게 속이 드러나니.’
일단은 사회생활이니까. [알겠어 ㅎㅎ]라고 대충 답장을 하고 맞팔을 하러 SNS에 들어갔는데….
나는 순간적으로 내 눈을 의심했다.
[Youstageam]언니랑 7번방의 선물 보러~
@won_vely
-예원이 콩먹어 콩
-ㅋㅋㅋㅋ야 얼만큼 울었음?
-그거 재밌지~
“……?”
니가 왜… 여기서 나와…?
저 태그된 계정, 익숙한 얼굴. 이 대리였다. 좋좋소에서 날 어떻게든 괴롭히지 못해 안달이었던. 최악의 상사! 내 인생의 원수! 거지 같은 이 대리.
“윤슬 씨 이거 좀 부탁해~”
“네…? 지금요?”
“퇴근 시간까지 10분 남았다고 지금 퇴근인 거 아니잖아? 내일 오전까지 전달해줘.”
퇴근 시간 10분 전에 세 시간은 해야 되는 일 떠넘기기. 물론 이것 때문에 최악의 상사는 아니다.
“대리님, 어제 말씀하신 보고서….”
“어. 옆에 두고 가.”
“어? 이거 다다음주까지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아~. 제 스타일 아시잖아요. 일 미뤄두면 불안한 거.”
“하하, 하긴 이 대리가 꼼꼼한 타입이긴 해! 지난번에도 말야. 이 대리가 미리 준비해 둔 그거 말야!”
‘X발…. 지난번에도 내가 한 거거든?’
이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으나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꿀꺽 삼켰었다.
‘참자, 참자…. 연봉 협상되고, 내가 대리만 달면 그래도 나아질 테니까…!’
“사장님, 연봉…이? 여기 적힌…게?”
“어, 그렇게 됐어. 윤슬 씨 잘해주는 건 아는데… 윤슬 씨한테만 파격적으로 올려주기엔, 회사 사정도 있고. 다른 직원들도 눈이 있는데, 알지? 내 사정? 이번 한 번만 이해해줘. 내년엔 꼭! 윤슬 씨 명함에 대리 파 줄게. 번쩍번쩍하게.”
그래. 좋좋소에 뭘 바라냐. 많이 일하고 적게 버는 삶에 익숙하다. 매일채움공제랑 적금, 다달이 나가는 보험비에 통신비에 이자까지 갚아야 하니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내가 더 열심히 하면 되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고 거지 같은 연봉협상 다음 날.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더니 탕비실에서 괴담보다 무서운 소리가 들려왔다.
“거 보세요. 제 말이 맞죠?”
“키야. 이 대리 없으면 어쩔 뻔했어, 정말.”
“윤슬 씨가 그렇다는 건 아닌데…. 솔직히 요즘 어린 애들 돈 버는 거 쉽게 안다니까요? 말이 3년 차지 아직 가르칠 게 한참인데. 이건 어디 가서 돈 주고 배워야 해요.”
“그럼. 솔직히 연봉 그 정도 올리는 건 나 때는 아주 꿈도 못 꿨어. 나 때는 말야.”
‘X발!!! 그럼 니들이 밖에 나가서 돈 받고 가르치던가!!!’
엄지척 대머리 이모티콘을 블로그에 쓰며 울분을 삼켰었다.
미친 이 대리. 지금 생각해 보면 분명 내가 자기랑 같은 직급을 다는 게 꼴 보기 싫어서 수작 부린 거다.
[Youstageam]언니랑 카페 왔당ㅎ 우리 언니 나 닮아서 존예~
@won_vely
-니가 날 닮은 거겠지 ㅎㅎ 내 동생 사랑해♥ 영원한 내 사람 🙂
이지원 대리 동생이었구나, 너…. 어쩐지 뭔가 익숙하게 싫은 느낌이다 했어.
* * *
“여기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입니다. 오픈을 하자마자 시민들로 들어찬 이곳은 활기를 띄고….”
“입장권 구매하신 분들은 이리로 줄 서 주세요~!”
“단체 입장은 대기 없이 반대편 입구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버블티를 다 마시고 나연과 함께 들어간 DDP. 커다란 은색 건물에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햇빛을 받아 유난히 반짝이는 외관에 심장이 뛰었다. 나연이를 잡고 있는 손에 살짝 땀이 날 것 같다.
처음으로 초대받아 온 곳이라 티켓에 쓰여 있는 ‘초대권’이라는 글자가 눈에 박힌다. 아무런 장식도 없이 그저 흰색으로 적혀 있는 그 초대권이란 세 글자가.
‘자파 하디드 특별전’이라고 쓰여 있는 포스터를 따라 4층으로 올라갔다. 건축과 디자인을 보여주는 거장의 전시. 넓고 높은 천장과 눈이 부시도록 햇살이 들어오는 통창의 건물.
“슬아, 여기 서 봐!”
오늘 하루 담당 촬영기사가 되겠다며 들어오는 입구에서도 내내 사진을 찍었던 나연은 들어와서도 카메라를 끄지 않고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곡선의 커다란 테이블 앞에서 자연스럽게 걷는 척을 하면서 사진을 찍는데.
“어?”
아…. 이예원만큼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존재가 여길 보고 아는 체하며 걸어온다. 고은하다. 내 중학교 동창.
“윤슬이 아냐?”
또각- 또각-
홀에 명품 구두 특유의 가볍고 사뿐한 발걸음이 울렸다. 반갑다는 듯이 웃고 있지만 눈은 재밌는 걸 발견했다는 듯 빛났다.
‘아빠 사업 부도나기 전까지는 쟤네 엄마랑도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는데….’
“어머, 윤슬 엄마~. 이거 다 뭐야, 너무 예쁘다.”
“친척분이 해주신 거지?”
“에휴…. 그분도 참, 이런 거 말고 지금 윤슬이네한테는 그냥 봉투를 주시는 게 센스인데-”
“맞아, 좋은 마음으로 하셨을 텐데. 어쩌나….”
가십거리를 좋아하고, 남에 대해 얘기하기를 좋아하고.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닌 줄 알았는데.
‘그게 친했던 사이에도 적용되는 건 줄 몰랐지.’
사이가 안 좋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만 쉽게 하는 게 아니라, 일단 재미가 있으면 그게 누구건 상관하지 않는다는 걸 아주 나중에서야 알았다.
졸업식 때 위하는 척했던 말도 포장만 예쁘게 한 쓰레기였지.
회귀 전 딱 이 나이 때. 열일곱 살. 내가 알바 하던 닭갈비집까지 굳이 찾아왔던 고은하.
“윤슬아!”
“어…? 은하야…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친구가 알바 하는 데 와 봐야지~. 보고 싶어서 왔어!”
그날따라 고은하와 친구들은 참 예뻤다. 샵에 들렸다 온 건지 뿌리부터 볼륨이 살아있는 웨이브에 베이스부터 광이 나는 피부 표현의 메이크업. 손톱 하나하나 반짝거리는 스와로브스퀸의 파츠를 박아 손을 움직일 때마다 빛났다.
그래도 난 정말 나를 응원해주려고 온 줄 알았는데.
“진짜, 대박이지.”
“그니까…. 나 같으면 쪽팔려서 이런 데 알바 못 한다.”
“야! 우리가 알바를 왜 해? 졸부… 아니, 졸부‘였던’ 윤슬이나 하는 거지.”
화장실 문틈으로 들리던 날카로운 말소리에, 평소 같았으면 문을 열고 화냈을 나는 얼굴이 빨개져 그냥 허겁지겁 못 들은 척 도망쳤다. 아무렇게나 하나로 질끈 묶은 머리가 흩날렸다.
친구라고 생각한 아이들에게 서비스로 내주었던 음료수값은 내 두 시간 치 일당이었다.
‘아, 또다시 생각하니까 화나네….’
화려한 걸 좋아하는 건 여전하구나.
회귀 전 닭갈비집에 찾아왔던 때와 비슷하게 꾸민 고은하를 바라봤다.
밝은 미색의 트렌치코트에 색을 맞춘 구두, 작게 명품 로고가 새겨진 핑크색 프로디 크로스 백. 위아래로 스캔하면서 나를 견적 내는 눈이 보인다.
‘너네 얼만큼 망했니?’ 이런 말을 하려는 듯한. 그때 또다시 홀에 가벼운 구두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기 있었네.”
뒤따라오는 익숙한 얼굴. 하제인이다.
* * *
어릴 적부터 제인은 ‘부럽다’라는 말을 좋아했다.
예쁘다는 말, 똑똑하다는 말, 그런 것들을 모두 모아 한데 뭉쳐낸 것이 ‘부럽다’라는 것이니까. 부러움이라는 감정은 자기 몫이 아닌 남들의 몫이어야만 했다.
남들의 부러움을 사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그래야지만 어머니의 꺾인 꿈에 초라해지지 않는 딸이었다.
발레리나의 딸답다는 말답게 마른 몸을 유지하고 긴 머리를 유지하고, 어른들이 좋아하는 웃음과 여자다운 몸가짐.
“어쩜 제인이는 이렇게 예뻐~? 삼촌 기억나지?”
“애교가 진짜 많구나. 딸 있는 맛이 있네!”
그래야지만 실패작이 아니었다.
아들을 낳기 위해 두 번이나 삐끗해버린 딸이라는 실패작.
“아들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꼬….”
제인이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던 말이었다. 딸로서의 쓸모를 증명해내야만 했다. 그래도 제법 괜찮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사랑 받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제인은 본인이 받고 있는 사랑에 충분히 만족했다. 서윤슬을 만나기 전까지는.
‘별것도 아닌 것 같은 애.’
제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공부도 나보다 못하고. 얼굴도 나보단 덜 예쁘고. 같이 놀아도 나쁘지는 않지만 나보다 급이 낮은 애. 그렇기에 진심으로 잘해 줄 수 있었다. 윤슬은 자신을 부러워할 테니까.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하지만 제인은 난생 처음 지독한 부러움을 느꼈다. 그것도 본인보다 급이 낮다고 생각한 윤슬로부터.
윤슬의 아빠가 환한 얼굴로 학교에 왔을 때, 우리 공주라고 하며 책가방을 들어주던 손. 그게 익숙한 듯 손을 잡고 가던 윤슬을 봤던 날 하제인은 난생처음으로 열등감이라는 감정이 목구멍까지 꾹꾹 차올라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뜨거워졌다.
“우리 공주, 어떻게 오늘 같은 날도 발표 한 번을 안 혀?”
“아빠 수학이었잖아….”
“학부모 참관일이래서 아빠 오늘 양복 다림질 각 잡고 왔는데, 아까 졸더라? 이노무 지지배. 아주 이불 깔지 그랬어!”
“아빠 수학이었잖아…….”
“여보 그만해~ 조는 티 안 내려고 하는 거 못 봤어? 침까지는 안 흘리더라.”
복도를 울리는 단란한 가족의 목소리. 윤슬은 순식간에 제인이 차곡차곡 쌓아 둔 부러운 마음을 훔쳐 가버렸다.
마음속 가장 밑바닥까지 잘 숨겨두었던 것인데.
“제인아, 네가 있어서 엄마가 살아. 알지?”
할머니 댁에 다녀오기만 하면 한숨 쉬며 짓씹듯 세뇌하던 말.
“엄마는 너 가지고 꿈도 다 포기했어, 나는 네 엄마로 살아가는 거야. 왜냐면 널 사랑하니까.”
‘엄마는… 내가 자랑할 게 없어도 나를 사랑해줄 건가요. 그 애처럼.’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열등감과 함께 꾹. 삼켜 넘겼다. 목구멍이 뜨거워지도록. 그저 평소처럼 예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나도 사랑해요 엄마.”
* * *
“…또 보네.”
그래서 제인은 윤슬이 반갑지 않았다.
집 망해서 이사 갔다더니, 예전보다 더 자주 마주치는 기분은 뭐지. 거지면 거지답게 빚이나 갚지 왜 놀러 나와서는.
‘집도 망한 주제에 잘도 놀러 다니네…. 꼴에 신났나 봐.’
티 나지 않게 립글로스가 투명하게 발린 입술을 짓씹으며 제인은 백휘의 빨간 손등을 떠올렸다.
“뭐야 둘이 같이 왔어?”
“응! 제인이 요즘 자주 보네.”
“그러게, 나연이 너 가방 지난번에 백화점에서 쇼핑한 거야? 예쁘다~. 나도 하나 살까 봐.”
“그치~ 이거 윤슬이가 골라준 거야.”
“아… 하긴 윤슬이가 이런 건 잘 고르지. 오늘 윤슬이 가방도… 예쁘네. 잘 골랐다. 너도 그때 백화점에서 같이 쇼핑한 거야?”
제인은 윤슬을 위아래로 훑으며 웃었다. 어릴 때부터 좋은 것과 귀한 것에 익숙해진 심미안으로 바로 보이는 허접한 가방을.
‘가죽 딱 보면 인조네. 어디 시장판에서 굴러다니는 걸 주워 왔나?’
윤슬은 얼굴이 조금 붉어진 상태로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 아니. 이건 그냥, 신생 브랜드 거야.”
“음. 그래? 너한테 잘 어울려. 그럼 재밌게 보다 가. 은하야 우리 이제 가자.”
가벼운 인사를 건네고 제인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전시장을 빠져나갔다. 대리석 바닥에 울리는 구두 소리가 상쾌했다.
“제인아, 쟤네 집 망했다고 하지 않았어?”
“응, 그래서 이사 갔다던데.”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쟤네 집 경매 넘어가기 직전에 팔린 거래. 쟤 어디 반지하 같은 데 살면서 여기 온 거 아냐? 아 웃겨.”
옆에서 윤슬의 급을 확실하게 정해 주는 은하의 말에 가라앉았던 제인의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그치. 그게 서윤슬 급이니까. 반지하.’
은하는 제인의 무덤덤한 동조에 신이 나 더욱 윤슬에 대한 가십거리를 풀어놨다.
“쟤네 집 원래 졸부잖아. 아빠가 공장하는데 한강 보이는 아파트? 무리지~. 우리랑은 다른데.”
“그래? 난 몰랐네.”
“집 망한 거 부끄러워서 유스타 사진도 다 삭제했다가 협찬 구걸하려고 다시 올리더라? 이거 봐.”
그 말이 어쩐지 제인의 귀를 사로잡았다.
‘그렇단 말이지….’
* * *
“윤슬아. 여기 재미 없어?”
“어? 아니… 재미있어.”
전시회의 끝 방에는 곡선의 미학을 살려 낸 디자이너 가구들이 조명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윤슬은 자신도 모르게 제인을 마주친 후부터 계속 미간을 찌푸리고 있음을 알았다. 걱정하는 나연의 두 눈과 마주치자 아까 전의 찝찝함은 사라져 다시 웃음을 머금었다.
“재밌는데 표정이 왜 그래~ 아까 그 예원인가 하는 애 때문에 그래?”
‘나연이는 내가 하제인 싫어하는 거 모르지….’
고은하도 하제인도, 회귀 전까지는 윤슬과 그럭저럭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자신만 알고 있는 둘의 모습까지 나연에게 말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윤슬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셋은 같은 학교니까 굳이 틀어지게 둬서 좋을 것도 없고.’
내가 싫어한다고 해서 나연이까지 싫어해야 하는 건 아니지.
윤슬은 나연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냥~ 키키 게스트 다음 주 글 뭐로 쓰나 해서.”
“야 그런 거면 진작 말해야지. 당연히 지금 DDP 왔으니까 이번 주에 DDP 글 쓰고, 다음 주에는 DDP 앞에서 사진 찍은 사람들 데일리 룩 모으면 어때? 여기 인플루언서들도 많이 왔으니까 사진 쓰기도 좋잖아.”
“뭐지? 천잰데?”
“그런 말은 더 크게 해야지. 1층까지 들리도록.”
“천잰데!!!”
“그러취.”
아무 말이나 던져 본 건데 갑자기 소재까지 얻은 윤슬은 기분이 좋아졌다.
나연이는 키키 게스트에 글을 올린다고 했을 때부터 도와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겠다며 큰소리를 쳤었다. 그 말을 지키기라도 하는 듯 나연은 늘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게 없나 물어보고는 했다.
“나연아. 저거 보고 갈래?”
그런 나연에게 자신도 뭐든 해주고 싶었지만 당장 이전처럼 비싸고 예쁜 가게에 함께 가서 맛있는 걸 사준다거나, 네일 아트를 받으러 간다거나 할 수는 없는 형편이었다.
윤슬은 아쉬운 대로 DDP 바로 앞에 있는 액세서리 좌판에 나연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언니 이거 한 번씩 다 해보셔도 돼요! 오늘 첫날이니까 현금으로 하시면 깎아드릴게요.”
목걸이부터 팔찌, 반지, 머리띠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 지금 나연이 하고 있는 액세서리들은 모두 명품이었지만 개의치 않는다는 듯 나연은 작은 손으로 이것저것 만져보며 윤슬에게 어울리는 것을 골랐다.
“슬아! 이거 너 잘 어울리겠다. 한 번 해봐바!”
“대박. 언니 거울 한 번만 보세요. 친구분 보는 눈 있으신데?”
윤슬에게 어울리는 목걸이를 해 준 나연이 환하게 웃었다. 윤슬은 쑥스럽게 웃으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내 거 사는 거 말고…. 우리 커플 팔찌나 목걸이 사면 어떨까 해서….”
“진짜? 똑같은 거?”
“색깔만 달라도 되고. 아무거나!”
“슬아아….”
나연의 얼굴이 감동으로 물들었다. 그러더니 역시 반지가 좋겠다며 진지한 눈빛으로 이게 예쁜지 저게 예쁜지 고르는 나연이었다.
자신이 사주겠다는 나연을 한사코 말려 장미 넝쿨이 둘려진 얇은 은반지를 한 쌍 구매한 윤슬은 검지에 바로 반짝이는 반지를 끼웠다.
“슬아! 여기 오길 잘했다, 그치~. 반지 진짜 예쁘다!”
“그래. 잃어버리지 말고.”
“그러취! 나 이거 순장할 거야.”
둘은 손을 겹쳐 반지가 보이게 사진을 찍었다.
윤슬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명품 액세서리보다 방금 길거리에서 산 반지를 더 아껴주는 나연의 앞에서 아까 전의 초라했던 감정을 잊었다.
* * *
제인은 그날 집으로 돌아가 유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윤슬에게도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부러움보다 퍼석하고 추한 감정을.
“얘 원래 지난달에 게시글 다 없앴었거든? 근데 며칠 전부터 갑자기 막 올리는 거야.”
“아… 그래?”
“진짜 거지 되긴 했나 봐. 뭐 들어보지도 못한 브랜드에서 협찬받았다고 사진 올리고 그러던데? 아까 들고 온 가방 봤어?”
“응. 비닐로 만든 것 같던데.”
“미친. 비닐이래. 그것도 그냥 협찬이라고 받은 거야. 여기 이거.”
고은하는 쉬지 않고 윤슬의 유스타 계정의 사진들을 보여줬다.
화려한 네일 아트의 검지가 닿은 화면에는 소박한 윤슬의 일상들이 보였다. 학교에서 예원에게 무시를 당한 뒤로 본격적으로 본 계정을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단기간에 늘어난 윤슬의 팔로워는 천 명이 훌쩍 넘었다.
그리고 그런 윤슬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댓글까지.
-언니 너무 예뻐요ㅠㅠㅠㅠ셀카 매일 올려주세요
-존귀 우리언니… 다해먹네… 미유미유는 뭐해 우리언니 안데려가고ㅠㅠ
-윤슬님 안녕하세요! 에뛰앙입니다. 협찬 제안으로 DM 드렸어요 🙂
제인이 보기에는 정말 별거 아닌 것들도 사람들은 부러워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노는 일상, 명품이 아닌 그저 인터넷 브랜드의 옷들, 종종 받는 협찬들까지.
‘뭐야 서윤슬… 주제에 대단한 척하기는.’
제인이 계정을 만들자마자 ‘알 수도 있는 친구’에 바로 윤슬이 떴다. 피드 속 윤슬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라면, 좋아요 훨씬 더 많이 받았을 거야. 서윤슬보다.’
제인은 발끝에서부터 스멀스멀 어떤 감정이 올라오고 있음을 알았다.
타인에게 부러움을 사기에는 윤슬의 급이 맞지 않는다는 판단. 자신이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볼 거라는 확신. 그리고 저런 싸구려에도 열광하는 사람들에 대한 완벽한 우월감.
자신에게 윤슬의 계정이 떴듯, 윤슬 역시 자신의 계정이 뜰 거라고 생각한 제인은 가볍게 웃었다.
‘잘 봐. 너는 두 번 다시 돌아올 수도 없는 곳에 내가 있는 거야.’
한강이 보이는 뷰의 아파트. 백화점의 VIP 카드. 지붕이 열리는 외제차와 시즌별로 살 수 있는 명품 백들. 여유롭게 살아가는 삶. 일곱 번 망해도 여덟 번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집안. 너는 꿈도 못 꿀 그런 인생.
[Youstagram]유스타 첫 시작! 쪼끔 어색하다 ㅎㅎ 은하가 찍어준 DDP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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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0
-헐 뭐야 제인이 유스타 시작함?
-진작하지 ㅋㅋㅋ 존예 ㅠㅠ 몇 반됐어?
-나 번호 바뀌었어 디엠해!
빠르게 올라가는 하트의 개수를 보며 제인은 조용히 웃었다. 그래, 자신은 사랑받고 있다.
제인은 핸드폰 갤러리에 들어가 다음에 올릴 만한 사진을 골랐다. 화려하고 부러운 삶을 잘 담아낼 만한 그런 사진을.
곧 서윤슬도 보겠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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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s ] [ No ]」집에 오자마자 상태창이 떠올랐다.
안 그래도 얼마 전 이예원이 유스타 팔로워가 적다고 비웃은 것 때문에 열심히 본 계정을 키우고 있었는데, 마침 눈앞에 떠 준 미션창이 반갑다.
단숨에 Yes 버튼을 클릭했다.
‘마침 오늘 DDP 다녀왔으니까 올릴 사진도 있고.’
다른 사람들은 DDP 태그를 어떻게 달았나 확인하기 위해 검색창을 누르고 화면을 봤을 때, 핸드폰 안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하제인의 사진이 보였다.
“하제인?”
얘 고등학교 3학년 때 유스타그램 만들었었는데, 수능 끝나고서. 근데 왜 오늘 만든 걸로 뜨지?
슥-
오른손 검지로 스크롤을 내려 댓글을 확인했다. 익숙한 아이디들이 몇 개 보였다. 나랑도 맞팔로우가 되어 있는 사람들.
이건 하제인 계정이 맞다.
‘과거가 바뀌고 있는 건가….’
그렇게 큰일도 아니고. 신경 쓰지 말아야지 생각했지만 환하게 웃는 제인의 얼굴이, 어쩐지 좋아요를 누르고 싶지는 않게 했다. 그래도 사진에서 쉽게 눈을 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