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143)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143화(143/405)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웠다. 지난 일 년 반, 셋 다 프로젝트 직전에는 잠도 못 잘 정도로 시간에 쫓기고 쫓겼다.
하지만 지금은?
“데드라인 없으니까 좋다, 그치….”
데드라인이 없었다. 첫 어플은 엘더아머에 맞춰야 했고, 두 번째 어플은 표절사태에 맞춰야 했고, 세 번째 어플은 심사 기간에 맞춰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만들기만 하면 되니 조급함이 없었다.
방학이 시작하고 윤슬을 사무실에 나오지 말라고 했던 건 둘의 배려 때문도 있었지만, 진짜 윤슬이 와서 할 일이 없기도 했었다. 물론 나중엔 둘만 있는 사무실에서 둘 다 후회했다.
“너네 이번 방학에 뭐하고 지냈어?”
“너 기다렸지.”
“최백휘 뻥치지 말고.”
“진짠데.”
윤슬은 옆에서 주는 대로 잘 먹는 재언에게 다시 작은 초콜릿 하나를 건넸다.
“재언아, 넌 뭐했어?”
“음. 오랜만에 체육관….”
“그러고 보니까 살 빠진 거 같다? 운동 열심히 했나 봐?”
그 말에 재언은 속으로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다. 사실, 재언과 백휘 둘은 묘하게 똑같은 방학을 보내고 있었다.
* * *
늘 그렇듯 시작은 유스타였다. 윤슬의 SNS 댓글에 자꾸 해괴한 것들이 올라왔다.
-윤슬과 재겸은 연인사이이다, 맞나?
-둘이 진짜 사겨요?ㅠㅠㅠㅠㅠ졸라잘어울려 럽스타해줘요
‘…뭐지?’
어느새 재언의 일과 중 하나가 되어 있는 윤슬의 유스타였다. 재언은 너무 놀라 침대 헤드에 머리를 박았다. 큰 소리가 났지만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재언의 부스스한 눈이 순식간에 떠졌다.
‘남자친구…?’
그런 말 없었는데. 근데 남자친구? 우리 되게 바쁜데? 어떻게?
재언은 온갖 명제를 떠올렸다.
1. 남자친구 생기기 전에 꼭 자신에게 말을 해야 하나? (예/아니오)
2. 바쁘다고 해서 연애를 할 수 없나? (예/아니오)
3. 윤슬이가 마음먹으면 남자친구를 못 사귈 것 같나? (예/아니오)
4. 윤슬이가 사귀자고 한다면 안 사귈 미친놈이 있을까? (예/아니오)
…불행하게도 모두 다 아니오였다. 재언은 충격에 그날 아침도 굶고 점심도 굶고 저녁도 굶었다. 같은 반 친구들이 ‘이 새끼 죽을병 걸렸다’라고 옆에서 소리를 질렀지만 입맛이 없었다. 윤슬의 남자친구라고 지칭되는 녀석은 지난번 덕현여고 축제 때 봤던 여우 새끼 친구, 뺀질이었다.
‘어쩐지, 머리띠 쓰고 귀여운 척을 하더라….’
윤슬의 반에서 가증스럽게 동물 머리띠까지 대가리에 꽂고 있던 재겸을 생각하며 재언은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침대 위에 놓여 있던 바보멈 인형이 재언의 손 사이에서 일그러졌다.
나중에 앤플패드를 달달하게 뽑아먹은 윤슬이 남자친구 아니라는 댓글을 단 후에야 재언은 조금 마음이 놓였다.
생일파티를 할 때 슬쩍 물어봤지만 앤플패드를 받기 위해서였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자 더 큰 의문이 생겼다.
‘…왜 나한테는?’
왜 나한테는 사진 찍자는 말을 안 했지? 나도 맨투맨 자주 입는데. 나 편한 옷 좋아하는데. 나 어두운 옷 맨날 입는데….
고민하던 재언은 하나의 결론을 냈다.
‘좀 마른 남자…. 취향인가 보다, 윤슬이가.’
그냥 어린애들이 선호하는 얼굴이라 재겸이 뽑힌 것까지는 몰랐다. 그 뒤로 재언은 은근한 다이어트 중이었다. 만일 다음에도 앤플패드를 받고 싶어 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자신을 생각해주길 기다리면서.
* * *
공교롭게도 재언이 충격받은 날, 동일한 시간보다 정확히 두 시간 전. 새벽같이 일어나는 최백휘는 가만히 침대에 앉아 눈을 깜박거렸다.
‘…XXXXXX……. XX….XXXXX…….’
표준 국어대사전에 차마 실리지도 못할 많은 문자들이 백휘의 머릿속을 지나갔다. 필수가 아니라면 어떤 앱도 깔지 않는 최백휘에게 유스타는 오로지 윤슬의 하루가 궁금했기에 깔아둔 것이었다.
비공개 계정, 팔로잉 1 서윤슬.
‘이걸 봤다고 물어볼 수도 없고….’
아직 해가 제대로 뜨지 않아 푸른 새벽을 잠잠히 보내며 백휘는 여러 가지 번뇌에 시달렸다.
‘진짜로? 왜? 어째서? 뭐 때문에?’
일단 차재겸이 안 되는 이유는 너무 많았다.
1. 주변에 여자가 많음
2. 사람이 가벼움
3. 미래 계획이 전혀 없음
(생략)
…101. 윤슬에게 도저히 어울리지 않음
그렇게 가볍게 이유를 정리하고 난 후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매번 잘생겼다고 사진에 실물이 일 퍼센트도 안 담긴다고 말해주는 윤슬의 말을 들으면서 은근히 기뻐했던 백휘였다.
‘그냥, 장난쳤던 건가.’
사실 윤슬의 취향은 차재겸 같은 얼굴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자 어쩐지 어깨가 아래로 내려갔다. 학교에 가서도 수업 내내 집중이 안 됐다. 교과서 위에 흐릿하게 윤슬과 차재겸(나부랭이)의 사진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스탠딩 책상 앞에 서 있던 최백휘는 드디어 결론을 내렸다.
‘…노력하면 돼.’
운동선수의 짬이 남아 있는 백휘였다. 얼굴이 취향이 아니더라면 다른 모든 걸 윤슬의 취향으로 바꿔버리면 되는 일이었다. 취향이야 얼마든지 변하는 것이다.
추후 앤플패드를 받기 위한 우결 쇼타임이었다고 윤슬의 해명을 듣고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왜…. 나한테는?’
왜 나한테는 사진 찍자는 말을 안 했지? 내가 맨투맨을 잘 안 입어서? 편한 옷을 안 좋아하는 거 같아서?
고민하던 백휘는 하나의 결론을 냈다.
‘윤슬이 앞에서 편한 모습을 보여주자.’
그냥 어린애들이 선호하는 얼굴이라 재겸이 뽑힌 것까지는 몰랐다. 그 뒤로 백휘는 윤슬을 만났던 날마다 맨투맨을 입었다. 만일 다음에도 앤플패드를 받고 싶어 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자신을 생각해주길 기다리면서.
* * *
그렇게 윤슬의 SNS를 들어갔다, 운동했다를 반복한 게 둘의 방학 일과였다. 그런 둘 앞에서 윤슬은 또 새로운 SNS 앱을 확인하고 있었다.
“새로운 거야?”
“아, 나 팔로워 좀 늘리려고.”
“…유스타는 안 하고?”
처음 보는 로고가 윤슬의 핸드폰 화면에 들어가 있었다.
그날 밤 똑같이 어플을 깐 두 사람은 윤슬이 만드는 이상한 액체 장난감의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좋아요를 눌렀다. 헤이이… 헤쓰으… 헤에엠… 하알….
서 윤 슬 @seo_yoonseul
TeenTok
팔로워: 47,002명
* * *
「▶System
【미션: 메인】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드디어 유명세를 높인 당신, 이제는 어디를 가면 한둘쯤은 알아볼지도 몰라요.
하지만 아직 한참 부족해요!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당신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게 만들어봐요.
[새로운 플랫폼] 에서 ( 5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모아 봅시다.―성공적으로 진행이 완료되었습니다.
보상이 수령됩니다.
보상
○매력 스탯 상승
○유명세 스탯 상승
○어쩐지 부러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당신을 동경할 확률이 20% 이상 상승합니다(상승률 랜덤: 2~40%)
○✧✿여기 있어요✿✧ (사용 시간 5시간) 아이템 ( 3 )개 지급」
오늘도 잠들지 못하는 새벽 세 시, 일을 하고 있던 나에게 상태창의 미션 알람이 드디어 떴다!
“와악!!!”
생각보다 일찍 완료됐군. 아이템 숍이 풀리지 않은 건 짜증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 마침 버번시 키스 무대 뒤로 유리 언급량이 순조롭게 올라가고 있는데, 곧 아이템을 써서 자연스럽게 늘려볼 수 있겠다.
‘솔직히 미션 완료되면 하나 정도는 나한테 쓸까 했지만….’
그러기엔 지금 작업이 너무 순조롭게 잘 되고 있군. 나는 지난번 다이아수저와 함께 약속했던 엔지생건 족치기를 은밀히 하고 있는 중이었다. 티 안 나게 잠입하기, 이거 내 전문이거든.
‘다이아수저한테 말하면 또 참견하고 싶어 할까 봐 말 안 했다….’
뭐 또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하면 피곤하지.
‘오늘도 댓글 성공적이고.’
아, 눈 뻑뻑해. 다음 작업 넘어가기 전에 잠깐 쉬는 시간 좀 갖자.
나는 상태창을 클릭해 지금 내 스탯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상태창>
체력: 22(↓44)HP/999
매력: 290(↑20)/999
사진촬영: 130/999
사진보정: 170/999
화술: 102/999
유명세: 310(↑30)/999」
지금 내 스탯은 이 모양이다.
‘개쓰레기 체력….’
제발 아이템 좀 풀어줘, 미친 상태창아. 아이템 없이 계속해서 밤을 새려니까 체력이 진짜 딱 죽기 직전까지 떨어진다.
‘그래도 20선에서 더 떨어뜨리지 말아야지.’
10대로 진입하니까 어지러워서 눈앞이 잘 안 보이더라. 그래도 자는 시간이 아까우니까 어쩔 수는 없지만.
상태창의 잠금이 풀린 뒤로 순조롭게 수치가 올랐다. 영영 안 오를 줄 알았던 매력 스탯도 팔로워의 급증과 함께 올라갔다. 유명세는 한 번에 300 가까이 올라갔고.
‘아마 SNS에 관심 있는 10대 중에서 날 모를 만한 사람이 없게 됐으니까.’
아마 유명세가 올라갔으니 아이템 숍의 새 제품이 풀렸을 텐데, 여전히 상태창이 잠금해 둔 덕에 아쉬워서 미치겠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아이템 없이도 나는 체력을 높이는 법을 알고 있었지. 예를 들면,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는 우리 아빠라던가.
입력: 아빠 잘 잤어???
지잉-
[☎아빠]-딸래미, 오늘도 미라클 모닝이여?
“당연하지, 서충남 씨 딸인데.”
* * *
아빠는 공구 사건 직후 서울로 올라왔지만, 오래 쉴 수는 없어 곧 다시 내려갔다. 떠나기 전 기차역에서 아빠와 할머니는 악수를 나눴다. 그 뒤에 엄마는 아빠를 길게 한번 꼭 끌어안았고.
“우리 딸램.”
아빠가 양팔을 넓게 펼쳐 나를 불렀다. 나는 다가가서 아빠의 품에 안겼다.
아주 오랜만에 안기는 그 품은 여전히 익숙하게 포근했다. 조금 더 단단해지고 약간 살이 빠진 우리 아빠.
“이거 친구들이랑 맛있는 거 먹어.”
“에헤이! 아빠! 뭐 용돈을 주고 그래.”
아빠가 지갑에서 만 원짜리 몇 장을 꺼내 내 손에 억지로 쥐어 줬다. 안 받으려고 몇 번이나 손사래쳤지만 결국엔 아빠의 승리였다. 어쩐지 조금 슬픈 눈으로 아빠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임마. 옛날엔 어떻게든 용돈 좀 더 받으려고 하던 게….”
“그땐 어렸지.”
“지금도 어려.”
―잠시 뒤 11시 30분에 출발하는 부산행 WRT 제 371열차가 도착합니다.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지 않았다면 하루 종일 내 머리를 쓰다듬을 것 같았던 아빠는 느릿하게 손을 뗐다.
“슬아.”
“응?”
“…잘하고 있어.”
“나야 언제나 잘하지.”
“그래. 잘하고 있으니까. 잠 좀 늘리고. 엄마가 그러는데 너 밤을 그렇게 샌다며? 이노무 지지배. 잠이 보약이라는 말을 그렇게 해도 듣지를 않어.”
“잔소리하지 말고 빨리 가!”
아빠는 짐이 든 낡은 가방을 한 번 고쳐 메더니 말했다.
“불안해하지 말어. 아빠 곧 돌아올 테니까. 걱정 하덜 말고. 니가 그렇게 죽어라 안 해도 돼.”
“…….”
“잘하고 있으니까. 더 잘할 생각 하지 말고 기다려. 알았어?”
“…응.”
“그래. 아빠 몫은 냄겨 줘야지.”
손을 크게 흔들어 인사한 아빠의 뒷모습이 멀어져만 갔다.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들로 부산스러운 기차역에서 우리는 한참 동안 아빠를 배웅했다.
잘 다녀오라고, 얼른 돌아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당연한 거니까.
아빠를 떠나보내고, 다시 일에 집중하려던 때였다. 체력이 얼마나 남았나 체크하기 위해 켜 본 상태창은 예상외의 숫자를 띄우고 있었다.
「<상태창>
체력: 177HP/999」
‘이럴 리가 없는데?’
아빠를 배웅하기 전만 해도 3-40을 웃돌고 있던 체력이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무언가.
[딸램! 오늘도 아빠가 집에 못 들어가서 미안해. 그래도 밥 잘 챙겨먹어야 하는 거 알어 몰러? 오늘도 사랑해~]이전에 아빠의 문자 덕에 한 번에 체력이 올랐던 때가 기억났다.
‘왜 이걸 까먹고 있었는지 몰라.’
그 뒤로 확인해 본 결과, 할머니한테 가서 무릎베개를 하고 잠시 떠드는 시간이라거나, 엄마랑 장 보러 가는 시간이라거나, 이렇게 아빠랑 통화하는 시간이라거나.
돈에 미쳐 있을 땐 안 보였던 것들이 내 체력을 지탱해주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상태창을 꺼놔서….’
알림 소리가 귀찮아 꺼뒀고, 포션 아이템에 집중하느라 몰랐던 것들이 그 뒤로는 눈에 보이더라.
나는 요즘 새벽 네 시만 되면 출근 준비를 하는 아빠와 짧게 통화를 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체력 포션.
-그럼 이제 자. 지 엄마 닮아서 거짓말을 못혀 이거는.
“…일어난 거라니까?”
-너 지금 자겠다고 말 안 하면 오늘 하루 종일 아빠 신경 쓰여서 일도 못혀.
“알겠어, 잘게. 자면 되잖아!”
안 믿고 있었군. 잘 속여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아빠와 통화를 끊고 자기 전 마지막으로 엔지생건을 족쳤던 글을 확인하고 삭제했다. 그런데 잠깐.
띠링-!
상태창이 왜 또 뜨지? 미션 완료는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