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164)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164화(164/405)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놀이공원. 지나가는 이마다 행복하게 웃고 떠들었다. 마스코트 탈을 쓴 캐릭터들이 나타날 때마다 근처는 즐거운 비명과 카메라 소리로 가득 들어찼다.
하지만 여기. 혼자 벤치에 앉아 고독을 씹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
“야, 기분 풀어. 왜 이래 이 새끼?”
재언은 민준이 직접 씌워 준 머리띠를 하고서도 그저 시무룩하기만 했다. 손에 들린 따뜻했던 추로스가 미지근하게 식어갈 때까지도 계속해서 재언은 땅바닥만 바라봤다.
“민준아.”
“왜.”
“…왜 우리 학교는 수학여행을 여기로 온 걸까.”
“맘에 안 드냐?”
“…응.”
그렇다. 이곳은 바로 홍콩. 한국에서 적당한 거리인 X즈니랜드. 고작 하루뿐인 학교 축제에도 진심인 서기고가 수학여행이라는 빅 이벤트를 놓칠 리가 없었다.
수학여행 전, 사무실에서 온갖 박물관과 유적지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던 경하고의 스케줄표를 보고 불쌍해하던 것도 잠시.
“헐, 그럼 겹치는 거 동궁과 월지 하나네? 뭐 이렇게 박물관을 자주 가….”
윤슬의 그 한마디로 순식간에 더 불쌍한 건 재언이 되었다.
“…겹치다니?”
“아. 재언이네 학교는 홍콩이랬지. 백휘네 학교랑 우리 학교는 둘 다 경주! 신기하지!”
재언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순도 100%로 맑게 웃어 보이는 녀석을 다시 생각해 보니 뭔가 있었던 듯싶었다. 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재언은 핸드폰으로 윤슬의 유스타를 새로고침 했다. 아직 올라온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야. 그럼 투표할 때 다른 데를 했어야지.”
“한국은 하나도 없었어…. 그랬지….”
“뭐야. 권재언 왜 이래?”
“한국 여행이 하고 싶으시댄다.”
“오. 이 새끼 애국자야.”
재언을 둘러싼 친구들은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학생들의 버스킹인 줄 알고 둘러싸 박수를 쳐 주었다.
“Bravo~~!!!”
재언은 진심으로 혼자 있고 싶었다.
* * *
한편 그 시각,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건 재언 하나뿐이 아니었다. 윤슬 역시도 우중충한 얼굴로 경주에 가는 버스로 몸을 실었다.
‘X발…. 인생네컷 포즈 사진을 먼저 올리지 말걸….’
차라리 미션이 나오고 난 다음 업로드했으면, 100일 안에 10만 명이라는 터무니 없는 숫자도 말이 되게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 후회하는 윤슬이었다.
새로 들어온 교복을 입고 찍은 만큼 상태창도 윤슬 스타일로 카운트를 해줬을지도 모른다는 미련이 자꾸만 사람을 미치게 했다.
‘괜히 그걸 일찍 올려서!!!’
심지어 오늘교복에 새 교복을 넣어둔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미션을 위해 또 다른 디자인의 교복을 선보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야말로 해결법이 보이지 않았다.
옆자리 소희는 이런 윤슬의 마음도 모르고 계속해서 과자를 내밀었다.
“이제 이거 먹어.”
“…안 먹어.”
“진짜? 후회 안 해?”
소희는 꼭 이렇게 삼세번을 물어봐 줬다. 이러다 보면 굳건히 안 먹겠다고 했어도 슬슬 마음이 움직이기 마련이다.
“…그럼 조금만.”
“먹을 거면서 매번 왜 이래.”
바삭거리며 감자칩을 먹은 윤슬은 입맛이 없어서 휴게소에서 소떡소떡, 떡라면에 참치김밥, 깻잎 핫바 하나와 통감자밖에 먹지 못했다.
“하….”
수심 가득한 눈으로 현란하게 강아지를 만지는 윤슬의 곁엔 항상 주현이 존재했다.
“야!!! 혀를 입천장에 붙이라고!!!”
“…….”
“고개 살짝 옆으로! 그림자 진다! 눈 아예 깔고!!!”
협찬으로 한탕 크게 땡기려고 한 건 윤슬뿐만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캐리어를 야무지게 싸온 주현은 바닥을 기어가며 사진을 찍어줬다.
아기 강아지들은 신이 나 윤슬의 머리카락을 물고 놀며 옷도 박박 긁었다. 어딘가 혼란스러운 사진이 완성되었다. 중간중간 강아지들이 너무 신이 나 눈을 뒤집고 있었지만, 몇 장은 확실히 성공적이었다.
“다음 나.”
아기 강아지들 사이에서 행복한 아기공주st로 윤슬의 사진을 찍어준 주현은 자연스럽게 교대했다.
“끼잉….”
하지만 주현의 카리스마에 억눌린 강아지들은 눈치를 보며 주현의 손바닥을 핥았다. 머리카락과 옷은 얌전히 두었다.
“최주현 뭐야?”
“X형욱인가….”
눈을 감고 ‘못 말리는 행복감에 취해 있는 척st’의 사진이 자연스럽게 완성되었다. 강아지들이 각을 맞춰 앉아 있어 단 한 장도 실패한 사진이 없었다.
이곳은 경주의 한옥 마을. 첫째 날 첫 번째 장소였다.
닭꼬치를 먹으면서도, 강아지를 만지면서도 윤슬의 머릿속은 하나뿐이었다.
‘대체 뭘 유행시키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은 한계가 있다.
이전에 다이아수저와 했던 대화가 머리에 맴돌았다.
“윤슬 씨. 내가 인플루언서한테 왜 그렇게 집착하는 줄 알아?”
“…바보라서?”
“야.”
아. 이건 아니고.
“인플루언서들은 일종의 전단지 같은 거예요. 일반 소비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지. 인플루언서들만 보면서 소비자들이 ‘따라 하고 싶다’라는 마음까지 먹기는 쉽지가 않거든.”
“근데 판매량은 높지 않나요? 확실히 입소문 타는 건 인플루언서가 시초잖아요.”
“당연하지. 돈이 걸렸으니까.”
다이아수저의 주장에 따르자면 이렇다. 인플루언서들은 어떤 이미지가 잡혀 있어도 일단 연예인보다는 친근하다.
개인 SNS를 통해 처음 접하는 것과 대중 매체를 통해 처음 접하는 건 심리적 거리가 어마어마하게 다르니까.
“자신이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을 모호하게 생각하고 있던 대중들이 연예인을 보면서 확신을 얻게 되고. 인플루언서들을 보면서 지갑을 여는 거예요.”
이건 안전해, 이건 확실해, 이건 좋은 거야. 인플루언서들이 그런 메시지를 담아 전단지를 뿌리면 자연스럽게 중간 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난 중간 역할이 한계라고!’
어느 순간부터 미션 스케일이 점점 커지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 커지면 이건 아예 실패하라고 던져 주는 미션 아닌가?
윤슬은 자꾸만 멍하니 딴생각을 했다.
“윤슬아, 오늘 어디 안 좋아?”
“나 뭐 생각할 게 좀 있어서. 신경 쓰지 마.”
수학여행 첫째 날답게 다들 활기찼다. 윤슬은 중간중간 함께 떠들고 웃었지만 D-93이라는 숫자가 거슬렸다.
저녁이 되니 은근히 쌀쌀한 날씨였다. 버스에서 내린 윤슬은 가디건 소매 끝을 쭉 늘려 손등을 덮었다.
[동궁과 월지]“자, 여기부터는 자유시간이다. 각자 산책하고 있다 정해진 시간까지 돌아와라-!”
“네~”
한산한 유적지는 주황빛 조명으로 가득했다. 어두운 하늘 아래 반짝거리는 별들과 함께 보니 제법 운치가 있었다.
“와하하학!!!”
‘뭐야. 저 시끄러운 놈들은.’
저렇게 시끄럽게 웃는 사람들만 빼면.
윤슬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시 원위치했다.
‘튀자.’
“어!!!”
하지만 어딜. 금방 잡혀버렸다.
재겸이었다.
“와 보자마자 도망가네? 이러기 있어? 나 너무 서운해요.”
“누구시죠? 잘못 보신 것 같아요.”
“나 여기서 크게 말한다. 흡…. 자!!!!”
심호흡까지 하고 복식으로 ‘자기야’를 외치려고 한 재겸의 입을 빠르게 막은 윤슬은 다급한 알파카 표정을 하고 달랬다.
“쉿…. 입 다물어. 우리 학교 여고야. 다들 우결 렌즈 끼고 다녀.”
“으엄어오이….”
“뭐가 그럼 더 좋지야. 죽을래 너.”
순식간의 재겸의 친구들이 함께 몰려들었다.
“누구야?”
“누구야!”
“누구야~”
앵무새 같은 누구야 소리에 윤슬은 잠시 넋이 빠졌다.
“이분은 비밀이시고. 그리고 이쪽은. 음….”
재겸은 잠시 도파민과 최백휘 사이에서 고민했다. 소개했다가 맞팔이라도 하게 되면 별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그래서 우아하게 가면 무도회식 소개가 시작되었다.
“얘는 해돋이야.”
“뭐야 그게?”
옆에 있는 친구의 이름은 정동진이었다.
“나는? 나도 소개시켜줘!”
“쟤는 USB.”
뒤에 있던 친구의 이름은 이동식이었다.
“나도 나도! 뭔데?”
“…그냥 현우야.”
“나만 왜 갑자기 다운그레이드지?”
앞에 있는 친구는 그냥 현우였다.
앵무새 사이에 껴 있던 넋 놓은 알파카는 간신히 탈주했다.
“야, 배키 어디 갔냐?”
“몰라. 아까부터 자꾸 뭘 찾던데.”
“뭘 찾는데? 닌 아냐?”
최백휘가 찾는 알파카가 달아나는 걸 보며 재겸은 뒤에서 친절하게 손도 흔들어줬다. 그리고는 웃으며 모르는 척했다.
“나도 모르겠다~”
* * *
윤슬은 오늘 찍은 사진을 기계적으로 SNS에 스토리를 올리며 뷰 수를 체크했다. 하루 종일 정신이 딴 곳에 있다 보니 실시간으로 스토리를 업로드하지 못했다.
‘주현이가 태그 많이 해놨었네….’
리그램으로 윤슬도 스토리에 올려 버렸다. 일단은 수학여행 내내 주현이 업로드해 준 사진들로 스토리를 때우면 될 것 같았다. 귀찮은 일 하나를 덜 수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기분이 풀렸다.
“후….”
인적이 드문 뒤편에 혼자 앉아 있으려니 윤슬은 조금….
“엇췌에-!!!”
추웠다.
“크흥. 쌀쌀하네.”
다시 가디건의 소매를 쭉쭉 내려 손등을 덮는 윤슬의 어깨 위로 따뜻한 뭔가가 올라왔다.
“찾았다.”
익숙한 향수 냄새. 적막과 잘 어울리는 목소리.
“너 나 어떻게 찾았어?”
“그냥, 보이던데.”
오늘도 흐트러짐 하나 없는 백휘였다. 윤슬의 옆 벤치에 앉은 백휘는 꼼꼼하게 어깨 위 올려둔 자신의 옷을 정돈했다. 바람이 들지 않도록.
“표정이 왜 그래. 오늘 재미없었어?”
“아니야. 재밌었어.”
“강아지는. 잘 만났고?”
“무슨 강아지가 내 친구인 것처럼….”
실없는 웃음이 터진 윤슬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백휘 말대로 맑은 날이라 그런지 별이 반짝반짝 잘 보였다.
“그냥…. 뭔가 좀….”
“도와줘?”
잠시의 고민도 없이 나온 물음에 윤슬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너 같은 인터넷 최약체에겐 버거운 일이야. 평소 너를 보면 도움을 받기가 좀….”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알겠어.”
보노보노 PPT 얘기가 나올까 황급히 입을 막은 백휘였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둘은 동시에 웃었다.
“아, 진짜 나 머리 터지겠다. 자세한 건 말을 못 하겠는데. 막. 아 진짜 막….”
“침착해.”
머리를 쥐어뜯는 윤슬의 손등 위로 큼직한 손바닥이 올라왔다.
“잠깐 눈 감아봐.”
“왜?”
순순히 윤슬은 눈을 감았다. 그러자 차가웠던 손등에 닿은 따뜻한 손바닥의 온기가 더 잘 전해져왔다.
“눈 감고 생각을 하는 거야. 분명 니 머릿속에 여러 개의 답이 있는데, 그걸 못 정해서 이러고 있을 테니까. 그럴 때는 표를 만든다고 생각해. 흐릿하게 이미지만 떠올리지 말고.”
손등에 닿은 손바닥이 일정한 속도로 토닥임을 반복했다.
“하고 있어?”
“…응.”
“그럼 그중에서 1번부터 번호를 써 봐.”
“으으음.”
눈을 감은 윤슬은 인상을 썼다. 뭔가 정답을 알 것 같기도 하면서도….
“아, 큰일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