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2)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2화(2/405)
사람이 너무 놀라면 소리가 안 나오는 법이다.
멀뚱멀뚱. 눈을 몇 번 깜박였다. 그래도 창은 사라지지 않았다. 눈앞에 나오는 상황이 이게 대체 뭐지? 아까부터 믿을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이건 꼭… 게임 같잖아.’
이것까지 나오니까 진짜 꿈같네. 나는 가볍게 뺨을 꼬집었다. 아픈데?
어렸을 때 자주 했던 육성 시뮬레이션의 도입부와 비슷한 활자를 보니.
“색이 뭐 이래.”
반짝거리는 핑크색 글자, 화면 안에서 보는 건 나쁘지 않지만 실제 눈앞에서 불투명하게 뜬 화면을 보니 영 안 읽힌다.
「▶System
당신은 【인플루언서】 가 되어야 합니다.
시작하시겠습니까?
[ Yes ] [ No ]」혼자 중얼거렸을 뿐인데, 갑자기 글자가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이상하게 배경도 더 투명도가 진해져 글자가 읽기 쉬워졌다.
“폰트 크기도 좀.”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폰트가 커졌다.
「당신은
【인플루언서】
가 되어
야 합니다.
시작하시
겠습니까?」
“가독성이….”
「당신은
【인플루언서】
가 되어 야 합니다.
시작하시겠습니까?」
이러다가 고급스러움이 부족하다고 하면 양재샤넬체로 바뀔 것 같다. 순식간에 착착 바뀌는 글자들을 읽자니 이제 머릿속에 천천히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래. 이건 현실이다.
「▶▶▶Loading….」
「[프롤로그 완료!]
▶현재 상황을 아주 잘 파악하고 있습니다.
-보상으로 골드 ‘10,000’과 체력 +10,
그리고 ‘그냥저냥 넘어가기’ 소원석이 주어집니다!」
「□현재 인벤토리 아이템
[♣‘그냥저냥 넘어가기’ 소원석 (등급 하)]」소원석이면 소원석이지, 그냥저냥 넘어가기 소원석은 뭐야? 이거 왜 이렇게 쩨쩨해? 이 시작은 치트키도 없어? 체력 999+, 골드 99999+ 다 이뤄주는 소원석 같은 거.
「[도둑놈 심보 완료!]」
“장난하나.”
* * *
이맘때의 나는 어른이 되면 화려한 삶을 살 줄 알았다. 적당히 유복한 집안, 화목한 부모님, 무난한 학교생활.
내가 꿈꾸는 미래는 괜찮은 인서울 4년제에 들어가서 과 생활도 해보고 동아리도 해보고, 남자친구도 사귀고 부모님의 지원으로 해외도 나갔다 오고, 분기별로 여행을 가고. 그런 내 모습을 SNS에 자랑하면 댓글로 사람들이 부럽다며 칭찬해주는, 그런.
‘꼭 하제인 같은.’
하제인의 스물다섯 살은 남달랐다. 드레스룸에 있는 명품 백들, 스펙 짱짱한 주변 사람들, 생일이면 쌓이는 선물들. 그런 것보다도 그 애는 태생부터 유명인이었다.
중학교를 다닐 땐 몇 반 예쁜 애, 고등학교를 다닐 땐 어디 고등학교 예쁜 애, 대학교를 다닐 땐 그 예쁜 애, 그리고 졸업을 한 다음엔 그냥 제인. 두 글자면 됐다. 하제인도 아니고.
[무난한 명품백부터 한정판까지 ♥ 드레스룸 공개해요] 20:38 [ENG/디엠 엄청났던 엄마 Pick 다이아 액세서리 ] 15:46 [ENG/ 내 방을 소개합니다~ 랜선 집들이 룸투어] 30:10-진짜 이런 삶은 어떤 기분일까.. 태어나보니 한강뷰 금수저, 화목한 부모님… (좋아요 1천)
-언니는 모든 게 장점인 것 같아요 (좋아요 3백)
-사랑해요.. ㅠㅠ 언니 인튜브 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옛날부터 유스타 보면서 내적친분 쌓았는데 이렇게 얼굴 오래보니까 너무 좋아요 진짜 오래오래 해주기~! 흑흑 (좋아요 7백)
˪유스타 아이디 뭐예요?
˪jane_agnes 예요
-3:25초에 잠깐 스쳐가는 원피스 정보 알 수 있을까요 ㅠㅠ
-언니 얼굴 최고야.. 얼굴만 찍어서 한 시간 보여줘요..ㅠㅠㅠㅠㅠ (좋아요 23)
명품백 하울, 엄마가 물려주신 액세서리 하울, 그리고 룸 투어. 세 가지 영상으로 알고리즘을 타 하제인은 단박에 명품 행사에 초대받는 인튜버가 됐다.
내가 물에 빠지기 전까지도 매일 인튜브 구독자가 몇 천씩 늘어나고 있었다. 어제보다 오늘, 그리고 오늘보다 내일 더 유명해질 그 애. 유명한 건 돈이 되고 돈은 유명해지는 지름길이었다.
생일이면 명품 브랜드에서 꽃다발을 전해주고, 인튜브 소속사에서는 케이크를 제작해주고, 팬들은 소속사 주소로 선물을 보내거나 SNS 메시지로 기프티콘을 보내고, 부모님은 스물다섯 살을 맞이해 독일제 신차를 사주고, 파인다이닝에서 코스 요리를 먹으며 생일 축하 합니다 노래를 듣고, 설탕으로 만든 장미꽃잎이 놓인 빨간 케이크의 초를 불고 소원을 비는.
그런 게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던 그 애.
[Youstagram]오랜만에 우리 가족 총출동한 날♥ 하씨 삼남매 도란도란(한 척)
이번에도 내 취향 제일 잘 아는 엄마픽 선물이랑 아빠가 준 용돈~
아빠 나 영원히 아빠 딸 할래! 축하해주신 분들도 모두 감사합니다.
소속사에서 보내주신 케이크도 감동이에요 🙂 올해도 최고의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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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20
반면에 나는 좋좋소 3년 차, 아직도 신입(지난번에 뽑아둔 신입은 눈치가 빠르다. 삼일 나오고 튀었다). 야근은 밥 먹듯이 하지만 야근수당은 나오지 않고. 연봉협상 테이블에만 앉으면, 일 년 내내 죽도록 노력한 회사생활은 ‘고생하는 거 알지만~’으로 시작해 쥐꼬리만큼 올라가는 금액으로 퉁쳐졌었다.
내 생일엔 메신저 생일 알림 때문에 적당히 지냈던 과 동기들에게 아메리카노 케이크 세트 몇 잔 받은 것 정도가 고작이었다.
‘이건 그냥 품앗이긴 하지….’
그래, 맞다. 나도 걔네 생일에 그 브랜드 아메리카노 줬었다.
핸드폰 화면으로 끝없이 하제인의 인튜브와 유스타를 멍하니 쳐다보게 되는 나는. 나 역시도 인튜브를 했었다.
하제인보다 3년이나 먼저.
처음엔 남들이 다 하니까, 그다음엔 부업으로 돈 좀 벌어볼까 싶어서. 나중엔 나도 잘 살고 싶어서. 결국은 부러워서.
그래서 했다. 직장인의 진짜 겟 레디 위드 미, 오랜만의 봄 데일리 룩, 평범한 브이로그.
영상 안에 담긴 것들은 몇 년째 입고 있는 인터넷 쇼핑몰 니트, 드럭스토어 세일할 때 쟁여두는 저렴한 팩, 나름 영상을 찍겠다고 색깔별로 구매한 로드 숍의 틴트였다.
그리고 편의점 알바 몇 시간을 더 대타 뛰어주고 받았던 푼돈을 모아 준비한 봄 데일리룩 삼십만 원어치 하울.
삼십만 원이면 나한테는 정말 큰 건데. 뷰는 천 조금, 댓글은 이십 개 될까 말까 했었다.
-4:58초 핏 좀 애매하네요 ㅠㅠ 싼티? 좀 나는 것 같아용…
˪이만 원짜리니까 그렇죠 뭐, 여기 그래도 티셔츠는 나름 괜찮더라구요.
-6:10 이 착장 잘 어울려용ㅎㅎ
-제 채널도 놀러오세요~^^.. 잘 보고 갑니다.
그렇게 3년 동안 영상을 올렸어도 구독자는 500명대를 웃돌았다. 유스타는 고작해야 300명 정도.
하지만 하제인은 달랐다. 하제인의 인튜브는 삼 년을 모은 내 구독자를 하루 만에 끌어모을 정도였으니까.
어머니가 물려 주신 쇼네르 옷들, 명품관 VIP 카드로 들어가는 라운지 카페에서의 브이로그, 명품 브랜드에서 보내주는 신제품 틴트들과 이번 시즌 신상 백 하울.
[익명 게시판] [일상] 인튜버 때문에 현타온다… (댓글 44)요즘 알고리즘에 뜨는 인튜버인데 존예.. 명품백 하울 할 때부터 봤는데 엄마가 젊은 시절에 억대 시계 차고 다니셨더라. 대대로 금수저 인가봐. 물려주셨다는 것들 다 합치면 서울에 아파트 하나 나올 듯 부럽다….
-엥 나 알 거 같음
˪누군데?
˪나도 알 거 같아ㅋㅋㅋ ㅎㅈㅇ??
-넌 니 인생 살어 뭐 그런 거 가지고 현타 옴
˪ㄴㅈㄴㄱㄷ) 글로만 봐도 현타 오는디; 그럴 수도 있지
-인튜버한테 자아 의탁하는 거 다음으로 이해 안가는 게 박탈감 느끼는 거ㅋㅋ
˪그 시계브랜드? 우리집 에도? 있는 건데 그렇게? 비싼?건 줄 몰랐네? ㅎㅎ
˪네 다음 한남 드 힐 주민
˪한남드힐 주민 머리 위로 박수 짝!
주말엔 편의점 오전 알바를 해가면서 생각했었다.
“아가씨! 든힐 하나.”
“여기….”
“에헤이! 그거 말고.”
“그럼 이거….”
“아, 거참 말귀 못 알아듣네. 든힐 달라고 든힐!”
‘X발놈아,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알아들어….’
삑-
아침부터 일어나 부은 두 다리로 서서 기계처럼 바코드를 찍는 난 대체 뭔지. 그때의 하제인은 압구정의 명품 카페에서 애프터눈 티를 마시고 있었다. 내 하루치 일급을 훌쩍 넘는 가격이었다.
@jane_agnes
Youstagram
팔로워 37.7만명
Intube
구독자 52만명
@seo_yoonseul
Youstagram
팔로워 340명
Intube
구독자 513명
* * *
침대에 누우니 아직 선택하지 않은 상태창이 침대에까지 따라왔다. Yes 아니면 NO를 눌러야 꺼질 것 같은데.
“아니 근데. 팔로워 300만? 내 월급도 300만이 안 되는데 뭔….”
터무니없는 숫자에 잠깐 헛웃음이 나왔다. 허 참. 그 와중에 인심 쓰는 것처럼 SNS 팔로워를 합쳐서 쳐주겠다고 한다.
그래봤자 유스타, 인튜브, 에이스북 이거 세 개 합치는 거잖아.
머릿속으로 하제인의 구독자를 떠올렸다.
그 대단한 하제인도 100만이 안 됐는데.
죄 없는 상태창을 노려보자 상태창의 ‘300만’이라는 글자에 반짝이 효과가 생겼다.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아, 어쩔 수 없지.
“이 상황에서 No 누르면 바보지.”
우리 집이 두 달 뒤에 경매 넘어가거든.
딱히 다른 선택지가 없다. 허공에 손가락을 대 Yes 버튼을 살짝 눌렀다.
띠링-
「▶▶▶Loading….」
「▶System
당신은 【인플루언서】 되기에 승낙 버튼을 눌렀습니다.
선택 옵션이 주어집니다.
▷[매력 / 화술 / 바디 / 사진촬영&보정]」
스크롤이 있어 살짝 내리자 아래엔 간략한 설명이 써 있었다.
「▼상세 설명▼
1) 매력: 아예 얼굴이 바뀌거나 눈에 띄게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 하는 묘한 아름다움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 이 옵션은 매력 상승 아이템을 사용함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역시 가장 확실히 눈이 가는 건.
‘매력이지. 당연히.’
연예인과 얼굴 바꾸기 이런 거였다면 더 좋았을 텐데. 매력에 외모도 포함될 수 있으니까.
초반에 사람들을 끌어모으기도 쉽고 화장품 시장이 강세였던 때는 최대한 더 유명해질 수 있겠지.
몇 년 뒤 모두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시대가 와 시장이 많이 침체되었지만. 사람들은 예쁜 것을 찬양하는 마음도 강하지만 친근감을 느끼는 인플루언서를 더 믿고 구매한다.
‘일단 딱 보기에 예쁘면 처음 봤을 때 팔로우 할 확률이 높기야 하겠지만….’
「2) 화술: 말을 조금 더 간략하지만 알아서, 딱, 잘, 깔끔하게, 센스 있게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말에 호소력과 설득력을 살짝 더해줍니다.
※ 이 옵션은 제2외국어 (영어/일어/중국어) 등에는 불가합니다.」
조금 더 길게 보자면 공구 수익과 브랜드 창업 시에는 화술과 바디를 무시하지 못할 거다. 화술은 라이브 방송 때 쓰기 가장 든든한 히든카드가 될 거고, 내가 한강에 떨어지기 전 한창 유행하던 건….
‘헬스였지.’
그 외에도 필라테스라든지, 다이어트 식품들도 날개 달린 듯 팔렸다. 헬창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였고.
「3) 바디: 먹는 칼로리에 비해 체중 증가가 덜합니다. 최소한의 운동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이는 다이어트 방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 이 옵션을 선택한 다음 먹토를 하게 된다면 체중 증가 속도가 (???) 버프됩니다.」
아마 바디를 택하면 다이어트 보조제, 레깅스를 비롯해 스포츠 의류 브랜드, 온갖 다이어트 식품을 판매하는 브랜드를 하나 따로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정말 인플루언서로 내 제품을 만들기에 쉬워질 거다.
「4) 사진 촬영&보정: 같은 구도로 사진을 찍어도 타인의 사진보다 훌륭해 보이는 효과 버프가 +5% 들어갑니다. 보정을 했을 때는 향상 실력에 따라 추가 버프 효과가 있습니다.
※ 이 옵션의 향상 실력은 인물 사진과 사물/풍경 사진이 별개입니다.
※ ‘촬영’, ‘보정’ 두 가지의 스탯이 한 번에 오를 수 없으니 잘 선택해야 합니다.」
마지막 선택지.
‘사진과 보정….’
이건 셋 중에서 가장 별로인 카드 같지만. 나중에 레드오션이 되어버린 SNS 생태계를 생각해보면….
“장기적으로 가기에는 가장 편하려나.”
인튜브를 비롯해 모든 컨텐츠를 클릭하기 위해서는 멈춰져 있는 사진, 즉 썸네일이 필요하다. 타인의 사진보다 눈에 더 띄고, 이게 궁금하다는 마음을 갖게 하는 거면 초반부터 후반까지 꾸준하게 사소한 도움이 될 텐데. 어떤 걸 고르지.
한참을 곰곰이 생각했다. 나에게 지금 가장 부족한 건 뭘까…
‘잠깐, 지금 스탯을 일단 확인해야 하잖아?’
일단 내가 고민을 하기 전에 객관적인 지표부터 봐야지.
“상태창.”
선택지 창 위에 다시 상태창이 겹쳐 띄워진다. 역시, 객관적인 지표가 따로 있는 게 맞았어.
「<상태창>
이름: 서 윤슬
나이: 17
키: 162cm
몸무게: 51kg
체력: 60HP/999
매력: 100/999
사진촬영: 20/999
사진보정: 23/999
화술: 87/999
[스킬: 반짝반짝 (F)] [스킬: (안) 죄송합니다 (B)] [스킬: 직장인의 마음가짐 (A)]현재 골드: 160,000」
스킬 이름이 조금 이상한 것 빼면 그래도 세 개나 있는 게 다행이다. 직장인의 마음가짐 A클래스.
좋좋소 사원으로 다져진 짬이겠지. 어쩐지 슬프지만 뿌듯하다.
‘근데 직장인의 마음가짐이 대체 뭐야?’
지각 안 하기, 회식 피하기, 상대 띄워주기, 이런 건가…?
“설마… 복사와 파쇄 능력은 아니겠지.”
누구보다 파쇄기에 종이를 좍좍 갈던 실력을 생각하다 그만뒀다. 이런 거지 같은 게 내 스킬일 리가 없어.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눈앞에 띄워진 상태창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더 이상의 고민은 불필요하니까.
내가 고른 첫 번째 스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