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206)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206화(206/405)
[제101회 덕현여고 졸업식]추운 공기 속에서도 속속들이 장미 향기가 나는 2월, 바야흐로 졸업의 계절이었다. 학교 앞에 즐비하게 늘어진 꽃다발들이 설렘을 더했다.
“진짜 졸업을 하긴 하는구나.”
“나 아직도 실감 안 나.”
“그니까. 지금도 열두 시 되면 급식실 가야 될 것 같은데.”
나는 친구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너무 바쁘게 살아서 그런가. 학교를 떠난다는 게 실감이 안 난다. 여기서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냈었지. 울고 웃고 싸우고 화해하고 그랬는데….
나는 강당으로 가기 전 교실에서 친구들과 마지막 사진을 찍었다.
“슬! 카메라 안 가져왔어?”
“나도 브이로그 나올래!”
친구들은 인튜브 영상만 업로드하면 다들 보러 와줬다. 이번 BGM 좋았다느니 자막 센스 보라느니 칭찬 감옥에 가둬서 좀 멋쩍긴 하지만, 나쁘지는 않다.
나는 카메라를 켜 우리의 고등학교 생활 마지막을 담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슬이 친구이자! 이제 유명 헤어디자이너가 될 김가영입니다.”
가영이는 고등학교 3학년 초, 미용으로 진로를 틀었다. 헤어도 메이크업도 재밌지만 고데기를 잘했던 가영이는 앞으로 헤어 쪽에 집중해 볼 예정이라고 했다.
“안녕하세요…. 나 예쁘게 나오고 있는 거 맞아? 화질 좋은 거라 좀 불안한데. 아무튼. 저는 윤슬이 친구 이서은입니다. 저는 영문과 들어갔고, 앞으로 외항사 노려보려구요.”
서은이는 꾸준히 스튜어디스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서울에 있는 여대에 합격했다.
“나도 찍으라고? 뭘 또…. 큼, 안녕하세요. 이예원입니다. 윤슬이 친한 친구고. 저는 취업했어요.”
예원이는 졸업 후 바로 취직을 했다. 내가 처음엔 듣고 기절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 ㈜스타팅 스마트 애드에 취업을 했더라고.
이지원 대리 제정신이야? 어린애를 거기에 끌고 가?
아무튼 언니랑 같은 회사라고 좋아하는데 내가 뭘 어쩌겠냐…. 그래서 입사 초기에 살아남을 수 있는 팁 몇 개를…, 정정한다. 몇백 개를 알려줬다. 어그로 잘 끄는 법, 일 대충 하되 잘리지는 않게 중간중간에 조회수 높이는 법 등.
“…서윤슬 너 이런 거 어떻게 알아?”
“어? 아니 그냥 뭐 인터넷에 있는 거 보다가 보면….”
“너 솔직히 말해.”
“…….”
“유채린이랑 조은주 때문에 인터넷만 보다가 이런 거지! 너같이 잘 시간도 없는 애가!”
“…….”
“커뮤니티 계속 보지 마. 니 얘기 좋게만 나오는 것도 아닐 텐데 봐서 뭐 해. 물론 내가 신고…. 아무튼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알았지? 좋은 거만 봐.”
뭔가 오해가 있던 것 같지만 넘어가자. 그리고 마지막.
“안녕하세요. 재수열차 타게 된 박소희입니다.”
그 말에 장내가 숙연해졌다.
“여러분. 나중에 <프젝>하게 되면 그냥 보지 마세요. 진심 담은 충고입니다…. 아니. 경고. 반드시 기억하세요.”
소희의 픽은 파이널을 남겨두고 삼다리 논란이 터지면서 장렬히 탈락했다. 소중한 고3 생활을 불태운 소희는 한동안 집이 무너진 비버 같은 표정으로 학교를 다녔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서윤슬 자기소개 한번 하세요~”
가영이가 나에게서 카메라를 가져갔다. 렌즈가 나를 향했다.
“내 인튜브에서 뭘 또 자기소개를 해.”
“그럼 소감? 소감 한마디~. 졸업하는 기분이 어떠신가요?”
“음. 졸업하는 기분이라….”
뭐라고 말해야 할까. 회귀 전과는 달리 추억이 많이 생겼다. 혼자 학교를 다니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선배도 친구도 후배도 많고. 학교 행사마다 열심히 참여했었지. 그만큼 바쁘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되돌아보면 다 추억이고. 한 번 더 하라면 못 하겠지만 그래도 이번 고등학교 생활은.
“아쉬워요.”
아쉽다. 엄청 많이.
“뭐가 아쉽냐 물으면 답은 못 하겠는데….”
이 교실에 다시 올 일도, 비 오는 날 급식실로 뛰어갈 일도. 졸린 눈 비비면서 매점 빵 먹는 일도, 무슨 날이 있으면 그 전에 뭐 입지 다 같이 고민하는 것도, 그냥 별거 없는 생라면 하나를 다 같이 부셔 먹던 것도.
“그냥 아쉬워요.”
카메라 렌즈에 대고 속마음을 말하려니 좀 부끄럽군.
나는 이제 카메라를 돌려받으려고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나를 더 부끄럽게 하려고 작정한 모양인지 가영이는 카메라를 돌려주지 않았다. 대신 질문을 하나 더 했다.
“그럼 졸업생 대표로 연설하는 소감은 어떠신가요?”
* * *
이제 드디어 졸업식 시작 십 분 전. 나는 강당에 모인 다른 반 친구들과도 인사를 했다. 이름은 모르지만 낯익은 얼굴의 친구들이 나한테 작은 선물을 주고 갔다. 옛날에 증명사진 찍어줘서 고맙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나. …별거 아닌데.
“많이 떨려?”
“그래. 떨려 죽겠다. 물이나 마셔야지.”
아까부터 얘들은 내가 떨리지는 않은지 긴장하진 않았는지 수시로 체크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짬이 있지 수학여행 무대에서도 안 떨었는데 졸업식 무대에서 떨 리가….
“그거 물병 아니고 삼각대인데.”
“아 미친.”
어쩐지 뚜껑이 안 열리더라.
나는 내 하얀 미러리스 삼각대를 다시 가방 안에 넣었다. 엄마 아빠에 할머니까지 다 오시니까 좀 긴장했나보다.
“이번엔 왜 미스트를? 야 누가 서윤슬한테 물 좀 줘라.”
정정한다. 그래. 많이 긴장했나 보다. 이번엔 미스트 통을 꺼내 비틀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까 내 가방 안에 물 같은 건 없었-
“뀨?”
“으아아악!!!”
갑자기 가방 안에서 제비가 튀어나왔다.
이게 미쳤나. 여기가 어디라고 따라와?! 오늘 아침으로 과자도 많이 주고 나왔는데?!
나는 잽싸게 제비를 손안에 가둔 다음 주변을 살폈다.
“너 뭐 해?”
“봐, 봤어?”
“어…. 뭐하는 거야?”
갑자기 머리에 리본 단 제비가 가방 안에서 나온 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나는 잠시 굳어있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왜 허공에 대고 박수를 쳐?”
“…어?”
“나 알겠다! 대중들의 박수 시뮬레이션!”
“그런 것까지 미리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다니…. 진짜 떨리나 봐.”
“뀨~”
답답하다는 듯 내 손 틈 사이로 제비가 부리를 콕콕 쪼더니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너희 아무것도 안 보여?”
내 말에 친구들은 나를 빤히 바라봤다. 손에 들어있는 제비가 마주 보고 있었다.
“지독한 컨셉충….”
“그래. 널 향해 환호하는 관객들이 보여.”
하지만 내 손에 잡혀 있는 제비는 끝까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뀨!!!”
손 틈새를 기어코 나와 내 주변을 날아다니는 제비의 표정이 의기양양했다. 마치 ‘내가 뭐랬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모르겠다. 일단 따라왔으니 어쩔 수 없지.
나는 예원이가 건네준 물을 마셨다.
―잠시 뒤 101회 덕현여고 졸업식이 시작됩니다. 학생 여러분들은 자리에 앉아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
그렇게 졸업식이 시작됐다.
* * *
졸업식의 순서는 늘 그렇듯 의례적으로 진행되었다. 다만 하나의 파격적인 사건이 있었는데,
―다음은 상장 수여식이 있겠습니다. 호명하는 학생들은 앞으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바로 상장 수여식이었다.
교과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수여되는 상장과 성실한 학생에게 수여되는 학교장상, 기타 봉사상, 특기상, 선행상, 외부에서 수여하는 구청장상 같은 것들을 한 명이 대부분 휩쓸었다.
―위 학생은 성실한 태도로 교육 과정에 임하였으며….
바로 윤슬이었다.
우수상과 학교장상, 특기상, 종로구에서 보낸 특별상에 문화부에서 보낸 상까지 받아 품에 한가득 벨벳 상장을 안게 되었다.
“역시 내 딸이여!!! 쟤가 내 딸이에요!!!”
“여보, 좀 앉아….”
윤슬의 아빠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 박수를 쳤다. 무대 위에서도 너무 잘 보이는 아빠를 바라보며 윤슬은 상장을 흔들어 보였다.
교장 선생님의 마지막 인사가 지나고, 드디어 윤슬의 졸업생 대표 인사 시간이 돌아왔다. 무대 위로 다시 걸어 올라간 윤슬에게 수많은 이들의 시선이 향했다.
“안녕하세요. 이번 101회 덕현여고 졸업식 대표를 맡은 서 윤슬입니다.”
윤슬이 인사를 하자 장내에서는 화답하는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무대 앞에서는 카메라를 든 방송부 후배들이 윤슬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단 한 컷이라도 날아가게 두지 않으리라는 결연한 의지가 돋보였다.
‘언니!!! 저희만 믿으세요!!!’
라고 말하는 것 같은 눈을 보자 윤슬은 긴장이 서서히 풀렸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조그맣게 강당을 울렸다.
“사실 준비한 말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삼 년 동안의 학교 생활을 짧게 말하자니 뭐부터 말해야 할까. 그런 고민을 참 많이 했었어요. 마지막이니까 더 잘해야지. 그런 생각이 있었거든요.”
강당 왼편에는 선생님들을 위한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모두 따뜻한 눈빛으로 윤슬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난 쟤가 졸업하는 게 왜 이렇게 아쉬운지 모르겠어….”
“그런 말 말아요. 한국대 가는 애를 여기 붙잡아 둬서 뭐 하게?”
윤슬을 가르쳐 본 선생님들은 특히 그 애정이 각별했다.
“졸업생 여러분도 저와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이제 스무 살, 성인이 되었으니 새롭게 대면해야 할 일들이 많잖아요. 나 혼자 책임지고 해야 할 것들이 생겼으니까. 뭐부터 해야지 고민하고, 잘 해내야지 다짐하고. 또 열심히 준비하고, 그럼에도 실수하진 않을까 긴장되고. 내가 잘하고 있나? 이게 맞는 건가? 의심도 들고.”
그때였다. 윤슬의 가방 안에 있던 제비가 다시 나와 강당 안을 날았다. 제비의 날개 아래 황금빛 가루들이 사람들 머리 위로 떨어졌다. 축제의 마지막을 알리는 종이 폭죽처럼. 지금 윤슬이 잘하고 있다는 걸 말해 주듯이.
“하지만 우리는 알죠? 지금. 스무 살이 되었을 때만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라는 걸요. 저희가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두려움이 있었고 고민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우리 모두 잘 헤쳐 나갔잖아요. 혼자서, 친구랑 같이,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고서요.”
윤슬을 찍는 카메라는 방송부의 DSLR뿐만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윤슬을 향해 핸드폰을 든 친구들이 저마다 사진과 영상을 찍고 있었다.
“사회도 학교와 크게 다를 게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늘 그렇듯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제 몫을 해낼 거고. 혼자 하기 힘든 일이라면 옆에 있는 사람이 도와주겠죠. 그러니까 너무 미리 겁먹지 말고. 무슨 일이건 자신을 믿는 덕현여고 졸업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윤슬을 둘러싼 셔터 소리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럼 마지막으로. 저희 덕현여고 슬로건을 다 같이 외치면서 끝내겠습니다. 하나, 둘, 셋 하면 모두 다 같이 외쳐주세요.”
윤슬을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눈동자에서 애정이 묻어났다. 어느새 강당 안은 제비가 뿌린 금빛 반짝이로 가득 차 있었다. 따스한 공기가 부유했다.
“세상을 밝히는 빛! 모두 졸업을 축하합니다.”
윤슬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강당이 터질 듯한 박수 소리가 휘몰아쳤다. 드디어 졸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