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213)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213화(213/405)
대학가 술집 골목이란 으레 그렇듯 젊은 학생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로 차기 마련이다. 학기 초는 본인의 주량도 모른 체 술자리에 참여했다가 온갖 흑역사를 쓰는 학생들이 많으니 더더욱.
“…….”
하지만 여기, 골목을 어두컴컴하게 만들어 버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
아무런 말 없이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것뿐임에도 그랬다. 두 사람의 가운데에는 애써 시선을 피하는 한 사람이 놓여 있었다.
“체대 애들인가?”
“아직도 군기잡네….”
지나가는 학생들도 위압적인 분위기에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떨어져 빙 돌아갔다. 하지만 셋은 동기였으며, 제각기 다른 과였고, 군기 잡는 것도 아니었다.
“이제 동기들이 나만을 애타게 찾고 있을 것 같은데 나 들어간다…?”
제 발 저린 차재겸은 눈웃음을 치며 오른쪽으로 슬쩍 몸을 틀었다.
“…과팅?”
하지만 함께 방향을 튼 재언에게 막혔다. 가뜩이나 낮은 목소리가 오늘따라 더 잠겨 있었다.
“아니 뭐, 내가 주선해 왔나? 내가 체대 남자애들 데려왔나? 여자애들이 자기들끼리 한다는데 내가 거기서 뭐라 해?”
이번엔 본인의 억울함을 주장하며 왼쪽으로 슬쩍 몸을 틀었다.
“니가 말할래. 내가 찾아볼까.”
이번에는 함께 방향을 튼 백휘에게 막혔다. 평소에는 예의상으로나마 웃고 다니던 얼굴에 무표정함이 실렸다.
차재겸은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탈출구는 없다. 그렇다면 최후의 보루를 써야만 했다. 원래 큰 도파민 파티일수록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었다.
“솔직히 너네가 나한테 이럴 자격 없다고 본다.”
자격 운운하는 재겸의 말에 두 사람의 미간이 함께 찌푸려졌다.
“너네도 알 텐데? 지금까지 안전하고 즐거운 슬이의 학교생활에 내가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
그 말에 더더욱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반박할 수는 없었다. 맞는 말이었으니까.
차재겸이 인생에 두 번 다시 없을 도파민 요정을 위해 행동한 바는 다음과 같다.
1. 초대좀 해~
학기가 시작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단톡방에서 이미 한두 달 내내 대화를 한 동기들 사이에는 암암리에 발언권이 센 사람이 누구인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한국대 언론 단톡
[우리 이번에 한번 만나자ㅋㅋㅋ! 동기모임 ㄱ] [ㅇㅇ 몇시?] [여섯시 가자] [나는 알바 좀 늦게 끝나서…ㅠㅠ 일곱시쯤 괜찮아? (우는 바보멈 이모티콘)] [엥 일곱시ㅋㅋ 배고플거같은데 그냥 우리끼리 먼저 모일게~] [아…ㅎㅎ]바로 이렇게. 자연스레 분위기를 주도해버리는 몇 명은 ‘그 애’ 윤슬을 좀 탐탁지 않게 생각했었다. 한창 한국대 입학 뽕이 최고조에 오를 때였다. 하지만 한국대에 입학했다고 하면 주변 친구들은 다들 ‘그 애’에 대해 이야기했다. 심지어 그 애는 입학 전부터 대학매일에서 모셔가기까지 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뺏겨버린 데다가 같은 동기들 중 제일 호감이 가는 차재겸마저 그 애를 싸고 돌았다.
[걔는 왜 단톡 안들어와?ㅋㅋㅋ 차재겸 니가 초대좀 해~]라고 말하면.
[차재겸 님이 대화방을 나가셨습니다]가 몇 번 반복되었다. 은은하게 느껴지는 악의에 윤슬을 단톡에 초대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재겸이었다. 끝없는 차재겸의 도주에 포기한 동기들은 그냥 개강 전까지 윤슬을 단톡방에서 만날 수 없음을 받아들였다.
2. 나만 그런가?
“근데 이건…. 아 말해도 되나?”
그중에서도 정시로 들어와 수시인 윤슬을 가장 싫어하는 동기가 있었다. 물론 싫어한다면 관심을 아예 끄면 될 일이지만, 스토리마다 알람을 켜두고 보는 동기였다.
“윤슬이 걔…. 너무 남자?들이랑만 놀지 않나? 다른 과까지 불러오는 것도 좀 그렇고.”
“어 좀…. 그렇지?”
“동기들 단합 안 되는 것도 솔직히 윤슬이…. 아, 이건 나만 그런가?”
스무 살. 새내기들은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ㅋㅋㅋ야 재겸 나 지금 카페왔는데 니 동기들? 이 니 친구 욕한다..ㅜㅜ] [;; 뭐지? 인상착의좀요 누나]대학은 자신이 모르더라도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입조심 하지 않으면 소문은 빠르게 퍼지고 퍼진다는 것이다. 심지어 윤슬을 알고 있는 동기와 선배들이 이렇게 넘쳐나는데 학교에서 얘기를 한다는 건 그냥 다 들으라고 하는 얘기와도 같았다.
미리 말하지만 차재겸은 친구가 많았다.
한국대 언론 단톡
[여러분~ 같은 동기끼리 못된말 나쁜말 했다는 제보가 들어왔어요 어떻게 이런일이… (◍´ω`◍) 재겨미는 너무 마음이 아파서 누가그랬는지 꼭짚어 말하고 싶지만 교양인으로서 한번 넘길게요? 오늘 ㅎㄹㅅ에서 커피와 딸기케이크 드셨던 동기들은 앞으로 단합을 생각해서 그러지 말기 약속♥] [???머임머임 무슨일임?] [ㅋㅋㅋㅋ왜 뭔데] [ㅋㅋㅋ안돼 비밀임 얘들아 우리 이제 고등학생도 아니고 성인인데 어른스럽게 행동해요♥ ٩(๑`^´๑)۶ ♥ 동기사랑 잊지말고~ 다음에 또 그러면 그냥 말한다ㅋㅋㅋ]그날 밤. 한국대 언론 새내기들의 단톡방을 확인한 몇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메시지가 전하는 의도가 너무나 명백했다.
“이거 우리 얘기 아니야…?”
찔리는 마음에 답장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대처가 다른 동기들에게 범인이 누구였는지 확실하게 알려주는 단서가 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게 누구냐며 그냥 말하라고 닦달을 했을 텐데, 입을 닫고 있는 게 너무나 어색했으니.
재겸은 따로 오는 개인톡에 씩 미소 지었다. 원하던 방향이었다.
자연스레 그 셋은 과팅에서 배제되었다.
3. 셋이 무슨 사이야?
바로 어제 일어났던 일이었다. 평소처럼 같이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가는 길이었다. 윤슬은 마주친 동기와 인사를 했다.
“윤슬~. 어디 가?”
“나 이제 공강. 카페가지~”
해맑게 웃은 동기는 오늘도 윤슬 덕에 볼 수 있는 양옆의 안구치료제를 구경하다 그만 근질거리는 입을 열었다.
“근데…. 셋이 무슨 사이야? 진짜 친구? 아니지?”
안 그래도 윤슬이 없는 곳에서는 둘 중에 누가 진짜 남자친구가 될지 늘 얘기가 나오고 있었다.
동기가 말하자마자 신과 같은 반사신경으로 재겸이 답했다.
“뭐야? 난 왜 자연스럽게 빼놔~?”
“차재겸 너는….”
동기는 뒤의 말을 생략했다. 능글거리며 머리를 쓸어 넘긴 재겸이 마음 아픈 척 흑흑 울었다.
“나는 뭐? 나도 맨날 같이 있는데 나는 왜? 내가 슬이의 남자가 되기에 뭐가 부족해?”
“아니-. 윤슬이가 이…. 재현이? 랑 아, 너 이름 뭐였지. 미안….”
분명히 이름을 기억하고 있으면서 그 찰나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동기였다. 티 나게 이름을 모르는 척하는 동기에게 재겸이 물었다.
“그래서 얘네랑 윤슬이가 뭐~?”
“아니 그냥 얘네끼리만 말하고, 밥 먹고, 같이 있다가도 가버리고 그러니까~”
“그럼 사업 얘기할 때 얘네끼리만 하지, 다 끼어서 할까? 그렇게 안 봤는데 산업스파이 출신이야?”
“아, 걍 궁금해서 그런 거지 뭐 또 정색을 하고 그래~”
“차재겸 말이 맞아. 우리끼리 진지한 얘기가 있어서 그랬지~ 왜 그래, 진짜.”
“미안미안. 그냥 궁금해서 그랬어, 슬~”
동기를 떠나보내고 윤슬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한숨을 쉬었다.
“아직 애기들이다…. 하긴, 한창 뭐 남자친구 이런 거에 관심을 가질 때지.”
“자기야. 누가 들으면 곧 환갑파티해야 되는 줄 알아.”
“너 그 자기 소리 좀 언제 안 할래. 지난번에 형범이가 화냈잖아.”
“어, 형범이~. 진짜 안경잡이라고 한 거 아닌데 렌즈 끼고 오더라. 나 너무 억울행.”
그렇게 윤슬은 나름대로 평탄한 대학 생활은 아직까지 잘 이어지고 있었다. 초반엔 좀 친해지기 어려울 것 같은 인플루언서의 이미지가 있었던 게 한몫했다. 윤슬은 동기들의 사진을 찍어줄 때면 바닥에 누워 인생 샷을 건져주었고, 팔로워가 적은 동기들도 신경 쓰지 않고 맞팔을 해주었다. 생각보다 쾌녀 같은 성격도 한몫 더 했다.
“어? 솔직히 나 아니었으면 너네 윤슬이가 우리 과 근처에 못 오게 금지령도 내렸을걸. 내가 너네 때문에 그런 건 아니라 생색은 안 냈는데 굳~이 따지자면 뭐 그렇다 이거지.”
불길한 기운을 뿜고 있던 눈앞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졌다. 차재겸은 본인의 눈물겨운 노력과 함께 도파민 폭탄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왜? 너네 윤슬이 친구 아니야? 남자친구도 아닌데 뭐…. 못 나가게 할 자격 없지 않나.”
자격.
그 말에 제대로 타격을 입은 듯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임시방편인 거지. 과팅도 안 나가고 소개도 안 받는다? 그럼 아휴…. 아니다…. 무슨 소문 날지는 뭐…. 아휴…. 아니다~”
차재겸은 벅차오르는 심장을 애써 내리눌렀다. 보아하니 곧 블록버스터급 파티가 오픈될 것 같았다.
“야! 차재겸 왜 안 와?”
“슬이가 나를 찾네? 그럼 나는 이만~”
그제야 둘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던 재겸은 싱글벙글 웃으며 술자리로 들어갔다. 남겨진 둘 사이에 미묘한 공기가 흘렀다.
“…….”
“…….”
눈을 마주친 둘은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주 과팅. 어떻게 해서든 망쳐놓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돋보였다.
“차재겸 밖에서 뭐 했어?”
“어어. 나 과팅 얘기 좀 하느라고. 통화.”
재겸은 전화를 흔들어 보인 후 다시 연락에 집중했다. 키패드를 치는 재겸의 손가락이 경쾌했다.
[ㅋㅋ과팅 장소? ㅁㄹ 아직 안정함 아무튼 ㄱㅅㄱㅅ] [나 첫 과팅이라 벌써부터 쫄림;;ㅋㅋㅋㅋ]입력: ㅋㅋㅋㅋ현우야 엄선해서 데려와라 알았지?
체대 과팅은 사실 차재겸이 물어온 게 맞았다. [그냥 현우]라고 저장되어 있는 사람은 다음 주에 윤슬과 과팅을 할 재겸의 친구였다.
* * *
“오, 과팅. 청춘이다.”
윤슬은 주말을 맞아 또 일하러 왔다. 대학 생활을 하다 보니까 인생필름 쪽에 비교적 신경을 덜 쓰게 됐는데, 몸에 새겨진 일개미 DNA가 윤슬을 채찍질했다.
프리뉴 사무실에서 피자를 시켰다고 연락이 와 윤슬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온몸에 알록달록 타투를 한 사람들이지만 겉보기와 달리 마음씨는 고운 것 같았다. 매번 피자도 사 주고.
“친구 둘은 과팅 안 나가요? 아 동기들이 안 껴 주려나? 몰표라서?”
“…전 안 나갈 거예요.”
“저도. 평생.”
“왜?! 그 얼굴 아껴서 어디다 쓰게?!”
눈치 없는 프리뉴의 막내는 너무 아깝다며 난리를 쳤다. 프리뉴 대표는 그런 막내를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누가 봐도 윤슬 들으라고 한 말인데 윤슬은 피클이나 집어 먹고 있었다. 버팔로윙을 윤슬에게 밀어 준 대표는 웃으며 물었다.
“그럼 윤슬 씨만 나가고?”
“네, 근데 좀 기대돼요. 한 번도 해 본 적 없으니까.”
회귀 전엔 대학 생활이고 뭐고 알바에 찌들어 살았던 윤슬은 그 과팅이라는 게 조금은 궁금하긴 했다. 어느 가게에 가서 어떻게 노는지. 뭐 딱 그 정도.
하지만 두 사람의 귀는 좀 다르게 들렸다.
“네. (나올 남자애들) 좀 기대돼요. 한 번도 (남자친구 사귀거나) 해 본 적 없으니까.”
조용히 피자를 내려놓은 둘은 디데이를 셌다.
D-6. 윤슬의 과팅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