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215)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215화(215/405)
윤슬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가다시피 했다. 분명 아침까지만 해도 쌩쌩했던 윤슬이 이렇게 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기분을 달래줄 방법은 이미 알고 있었다.
“…슬아. 오늘은 학관 가지 말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이 근처 가게 다 거기서 거기지…. 학관 가. 그냥….”
“자기야~. 내가 있잖아. 이 근처 가게만 알까? 말만 해. 나 진짜 네비게이션의 환생이야. 뭐 먹고 싶어? 한식양식일식중식분식? 그것도 아니면 그냥 고기? 닭돼지양소? 역시 소가 좋겠지?”
“흔흔들들지지마마…. 먹고 싶은 거 없어….”
“음, 지금 먹고 싶은 거 없어?”
“응….”
“그럼 일단 타. 돌면서 생각해.”
백휘가 주차장으로 향하며 차 키를 꺼내 들었다. 저 멀리에서 꼿꼿하게 선 채로 윤슬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서늘한 눈동자가 빛났다….
‘…재밌어 보이네.’
분명 자신을 봤을 텐데 인사 한번 없는 최백휘와 차재겸이 서윤슬을 싸고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무의식중에 인지하고 있는 것과 눈앞에서 직접 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불쾌감을 안겨주었다.
“제인아, 안 가~?”
“응. 갈게.”
제인은 핸드폰에 뜬 알람을 확인하고 애써 지금의 기분을 잊기 위해 노력했다.
[루비: 광고 알람 봤어~? (づ ̄ ³ ̄)づ] [루비: 다음주에 업로드 할 영상은 이제 렌더링까지 완료!] [루비: 참고로 지금 상승세는 이래. 너도 알지? 니 이름은 이제 곧 브랜드가 될 거야.] [Intube creative]▶평균 시청 시간: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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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인튜버를 압살할 만큼 월등히 높은 수치였지만 아직 윤슬에게는 못 미쳤다. 하지만 제인은 불안해하지 않았다. 분석 앱에 적혀 있는 키워드가 제인에게 힘을 실어주었으므로.
▶검색어: 하제인
▶검색어: jane
▶검색어: 금수저
코어팬층이 있는 데다가 커뮤니티에서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는 제인의 키워드는 그야말로 하제인이었다. 유신사 쇼핑, 새내기 하울, 이따위 키워드를 애써 제목에 붙이지 않아도. 하제인 그 하나만으로도 알아서 찾아온다는 말이었다. 그 사실이 제인의 바닥난 자존감을 조금씩 채워주었다. 제인은 여전히 제인이니까.
* * *
그렇게 넷의 점심 식사는 평소와는 다른 곳에서 이루어졌다. 물론 반포 한강까지 나가서 밥을 먹자는 차재겸의 주장은 무시당했다.
가게 선정은 실패했지만 대신 메뉴 선정만은 차재겸의 뜻대로 이루어졌다. 학교 입구에서 좀 떨어진 새하얀 벽돌 가게는 소고기 전문점이었다.
“우리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겠지? 나 이렇게 학교랑 멀리 떨어지니까 불안해.”
“그렇게 멀지도 않은데. 좀 늦어도 뭐 어때~. 자기는 너무 빡빡해.”
“음. 카페까지 들릴 시간은 없을 것 같고, 식사만 간단히 하고 가야지. 커피 테이크아웃 하자.”
너무나 잘 짜인 시간표 덕에 공강 시간이 적당했던 넷이었다. 따라서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하는 점심 식사는 처음이었다. 물론 차재겸 한 명은 빼고.
재겸은 수업 늦는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정신머리의 소유자였다.
“자기야~. 여기 맛있어. 일단 부챗살이랑 꽃등심? 가볍게.”
“전혀 가볍지 않은데.”
“우리 자기라면 가볍게 먹을 수 있을 거야~”
능글대며 장난을 치는 차재겸은 사태의 심각성을 아직 인지하지 못한 듯했다. 말없이 윤슬에게로 스윽 메뉴판을 건넨 재언은 생각했다.
‘평소라면 당장 훑어봤을 텐데….’
설렁설렁 메뉴판을 보는 윤슬의 눈에서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아직 기분전환이 되기엔 멀어 보였다.
“…사장님. 일단 콜라 한 캔 부탁드립니다.”
재언은 메뉴 주문 전 콜라를 시켰다. 시원한 콜라 캔 따는 소리가 오늘따라 청량하게 들렸다. 얼음이 한가득 들어간 컵 안에 보글보글 탄산이 터지는 콜라가 한가득 들어찼다.
“마셔…. 일단 마시고 생각해.”
윤슬은 재언이 건네준 콜라를 들이켰다. 달달한 콜라 향기가 혀끝에 맴돌자 기분이 좀 나아진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까 아까부터 모두가 자신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조금 미안해진 윤슬은 그제야 정성스럽게 메뉴판을 정독했다. 이 기분을 오래 끌어 봤자 자신만 손해였다.
* * *
“자기야. 그래서 이제 기분 좀 어때?”
“쓸 만해졌어. 고맙다.”
나는 진짜로 기분이 괜찮아졌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하제인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는데 이제 좀 희미해진 것도 같았다. 아무래도 소고기가 만병통치약인 것 같았다.
한창 식사 중인 우리와 달리 입 짧은 차재겸은 이제 창가에 비스듬하게 기대서 간간이 물이나 홀짝대고 있었다.
“야. 떡갈비는 먹어. 일인당 한 개잖아.”
“쟤 신경 쓰지 말고 마저 먹어.”
백휘가 서비스로 나온 떡갈비를 내 앞접시에 올려주었다. 차재겸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입안에서 살살 녹는 떡갈비를 우물거렸다.
‘차라리 스터디 주제 말고 다른 걸로 하면 좋을 텐데. 이렇게 막막하지도 않고.’
가뜩이나 최근에 한국대 주제로 영상을 세 개나 뽑았다. 하나는 수시 망한 브이로그, 하나는 합격 영상, 그리고 또 하나는 대학매일까지. 이 상태로 또 한국대 운운하면 애매하게 뇌절 같을 거다.
-평생 자랑이 그냥 한국대인가봄ㅋㅋㅋ
-한국대 얘기… 이제 지겹다…ㅋㅋ
-알았다고요 한국대인거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반응이 대충 눈앞에 그려진다. 앱에서도 종종 수시인데 나댄다는 소리나 나오고. 이거 어쩌지.
‘이제 남은 기한은 2주 정도….’
다시 생각하니까 좀 암울하다. 나는 차재겸 몫인 떡갈비를 다시 하나 집어먹었다.
“…슬아. 근데 댓글 삼천 개가 왜? 너 지금까지 잘 했잖아.”
맞은편에서 내 얼굴을 살피고 있던 재언이가 물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나도 모르게 맥락 없이 미션의 목표를 말해 버렸다. 스터디 주제의 브이로그, 댓글 삼천 개.
“…생각보다 어려울 것 같아서.”
“자기야. 고민할 게 뭐가 있어? 자. 여기 봐.”
가벼운 핑거스냅으로 윤슬의 주의를 끈 차재겸은 한 손으로 백휘와 재언이를 번갈아 가리켰다.
“좋은 재료가.”
그리고 난 다음에 양손으로 꽃받침을 만들어 제 얼굴 밑에 댔다.
“여기 있잖아?”
“이 새끼 왜 너만….”
“하하. 미쳤나.”
저 둘을 사용하되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서 댓글 삼천 개를 얻어내라는 주장에 재언과 백휘가 싸늘해졌다.
‘그 생각 안 해본 건 아닌데.’
나중에 상태창이 말도 안 되는 미션을 낼지 어떻게 알아. 일단 최후의 보루로 남겨놓아야지. 물론 자주 써도 임팩트 있을 얼굴이긴 하지만 사람 일 모르는 거다.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내 힘으로 만들고 싶은 거야. 이주 안에 댓글 삼천 개.”
“우리 자기 야망있다. 하지만 내 얼굴로 일단 천 개는 끌어와 줄 수 있는데?”
“확실히 수강신청 때 피카X 돈가스 덕분에 한 삼백 개는 달리겠다. 너 그때 비명 지른 거 생각하면 오백 개도 가능할 듯.”
“자기야. 남의 고통을 그렇게 웃음거리로 만들고 그러는 거 아니야….”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재언과 백휘의 머릿속에 슬쩍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인튜브 영상….’
‘…2주?’
과팅을 나가되, 깽판을 치는 방법.
‘준비 기한을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면….’
‘…아마 당연히 윤슬이는.’
바로 윤슬의 워커홀릭 기질을 이용해서.
* * *
재겸은 오늘도 약속이 있었다. 대학 생활이란 이래서 좋은 것이었다. 모두의 시간이 자유롭게 남아도는 스무 살. 강의가 끝나자마자 빠르게 주차장으로 향하던 재겸은 뒷덜미가 잡혔다.
“컥.”
숨을 잘못 들이켜 사레가 들린 재겸은 어깨 위로 올라오는 양 팔의 무게감에 기겁했다.
“이거 왜 이래? 붙지 마세요.”
“…따라와 봐.”
“조용히.”
끌려가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양옆에서 압도적인 악력으로 잡아끄는데 버틸 도리가 없었다. 재겸은 새로 산 한정판 운동화가 바닥에 긁히자 기겁하며 발을 들었다. 그랬더니 둘은 아예 재겸을 들어 이동하기 시작했다.
“대체 어디 가는데? 나도 인권이라는 게 있어. 야. 알려주지도 않고 끌고 가?”
인권 없는 재겸이 끌려간 곳은 예상외로 학교 근처. 그러니까 서윤슬의 옆집이자 최백휘의 앞집. 권재언의 집이었다.
“나 약속 있다니까?”
“없어. 그거 내가 취소했어.”
“누구랑 한 줄 알고!”
“하하. 니가 준비한 체대 과팅. 그거 이현우더라. 오늘도 모인다고 연락 왔길래 넌 못 간다고 했어.”
그새 주변을 털다시피 조사한 백휘의 서슬 퍼런 목소리에 재겸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아.”
노트북 두 개, 게이밍 컴퓨터 한 대. 사람은 하나인데 컴퓨터만 세 대가 있는 재언의 집이었다. 재언은 사양 좋은 노트북을 재겸의 손에 직접 쥐여주었다.
“지금부터 인튜브 검색 시작할 거야…. 그나마 니가 제일 잘하겠지.”
일단 최백휘는 인터넷상의 유행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었다. 재언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확실한 한 명이 필요했다.
“뭘 검색하라고?”
“스터디로 댓글 삼천 개 뽑을 수 있을 만한 영상 주제.”
“…이번 주 금요일 여덟 시 전에.”
친구 많고, 도파민 중독자에다 모든 트렌드에 빠삭한 한 명이.
“뭐야. 그 시간과 날짜 어쩐지 익숙하다?”
…윤슬의 과팅 날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