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217)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217화(217/405)
차재겸은 오늘따라 얌전하기 그지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강의 시간 내내 장난을 치고 싶어 안달이 났을 텐데.
‘지금은 꼭….’
병든 병아리가 따로 없었다. 많이 졸린가보지. 어제 뭘 했는지 몰라도 셋이서 밤을 샌 것 같았다. 재언이네 집에서 게임이라도 했나? 백휘는 게임 안 하는데.
내 옆자리에서 비실비실 책상에 엎드려 있는 재겸이 흑흑 울기 시작했다.
“자기야. 나 내일 아침에 벨 누르면 집 앞으로 나와줘….”
“아침에 왜? 너 일어날 수는 있어?”
“아니야. 당장 이따가 그냥 바로…. 고데기랑 로션 좀 빌려줘. 나 이대로는 안 되겠어. 로션 달라니까 뭐랬는지 알아? 대충 바디로션 바르래. 야, 걔네 집에 립밤도 없어!”
아무래도 힘이 없었던 건 피곤해서가 아니라 오늘의 몰골 때문인 것 같았다.
“자꾸 보다 보니까 그 체크 셔츠 잘 어울려. 너무 울지 마.”
“별로 위로가 안 돼. 자기야….”
로션과 고데기를 꼭 빌려주겠다는 약속을 한 뒤에야 차재겸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근데 자기도 어제 잠 잘 못 잤어?”
“어? 뭐…. 그래도 좀 잤어.”
“진짜네.”
차재겸은 잠시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
“삼 일 동안 못 잔 적도 있다며? 그러고 수능 어떻게 쳤어.”
“사람은 다 때가 되면 악으로 깡으로 버티게 되어 있는 거야.”
“그거 다 기억은 나?”
“어느 정도는. 삼 년 동안 하도 푼 문제가 많아서 대부분은 뇌에 저장이 돼 있다고 봐야겠지…. 야. 나 아직도 가끔 수능특강 푸는 꿈 꿔.”
“야~. 너네 왜 아직도 수능 얘기해! 슬아. 우리 옷 골라줘. 차재겸 니도 빨리 이리 와봐.”
아련하게 고3의 추억에 젖으려던 찰나 앞에 앉아있던 동기들이 등을 돌렸다. 쇼핑 앱이 틀어져 있는 핸드폰 화면에는 장바구니에 들어가 있는 제품들이 보였다.
“아무래도 핑크보단 화이트가 낫겠지? 처음이니까 좀 덜 부담스럽게.”
“근데 이거 원피스 총장이 좀 짧은 것도 같고? 아 나 맨날 추리닝만 입고 살다가 원피스 사려니까 도무지 모르겠다.”
한국대생답게 다들 고등학생 때는 추리닝을 박제하다시피 살았던 동기들이었다. 장바구니에 한가득 담겨 있는 옷은 총합해서 3,812,540원이었다.
‘아무거나 일단 마음에 드는 걸 다 담았군.’
알 만했다. 원래 상의 하나 고르면 이거에 어울리는 것 같은 하의 두 개, 그리고 그 하의에 어울리는 신발 한 짝에 가방 하나, 거기에 이제 또 겉옷에다가 괜히 쓰지도 않을 헤어밴드 같은 것들까지 담게 되는 법이다. 내가 나서 줘야지.
나는 수많은 옷을 협찬받았던 짬으로 장바구니에 담겨 있는 옷들을 삭제해주었다.
“모델 키 몇인데? 모델 키를 봐야지. 그리고 애매하게 티라노같이 자세 취한 건 허리선이 엉망이야. 그래 이거. 이거 딱 빼고…. 딱 보니까 이거 원산지. 어. 그래. 국내산 아니네. 이러면 실제로 받아봤을 때 원단 좀 바스락거리고 싸구려 티 나. 이거 삭제.”
순식간에 장바구니에 담겨 있던 옷들 중 절반이 날아갔다. 내 옆에서 차재겸은 한술 더 떴다.
“승아야. 너는 이런 쌩화이트 안 어울려. 좀 슬쩍 크림빛 도는 걸로 해야지. 너 볼에 바른 거랑 옷이 색이 잘 어울려야 될 거 아니야. 그래. 그 살구색. 어어 이뻐. 그리고 옷 별로 없으면 배송시키기 전에 일대일 문의 들어가 봐. 이게 재고가 있냐 없냐 묻고 주문해야 돼. 아니면 죄송하지만 저희는 당일 주문으로 바잉해서 발송까지 시간이 좀 걸릴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린다고 한다.”
…뭐지? 저쪽이 더 프로 같잖아.
“그리고, 야. 3월이어도 저녁엔 추운데 이렇게 종잇장같이 얇은 옷을. 안 되지. 이거 오프숄더? 빼라.”
“내 것도 좀 봐줘.”
“재겸아, 내 것도!”
순식간에 동기들이 나에게서 차재겸에게로 옮겨갔다.
이런 패배감…. 나 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후배들이 내 얘기만 듣고 그랬는데. 너네 어떻게 한 번에 이렇게 차재겸만 좋아할 수 있어.
“야~. 너 왜 어제 톡 안 읽었어! 어제 주문했으면 오늘 발송 시작했을 텐데.”
“맞아. 차재겸 오늘 아침에도 톡 안 읽고.”
신과 같은 손놀림으로 장바구니를 체크해 준 차재겸의 옆에서 동기들의 투정 어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제는 좀 바쁜 일이 있었어요. 너네 말고도 그냥 모든 연락을 못 읽었다고 보면 된다.”
“뭐가 그렇게 바빴는데?”
“자기는 알면 안 되는 그런 일이 있어.”
저거 저거. 이따가 고데기 빌려주지 말까.
* * *
고연티비. 인튜브를 비롯해 에이스북에서 1020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채널이었다. 한국의 최고 명문대학교 세 개. 한국대와 연희대, 그리고 고림대. 그중 연희대와 고림대생들이 만나 운영하는 콘텐츠 채널로 가장 인기 있는 영상들은 아래와 같다.
[Intube] [연희대생이 생각하는 고림대생 Vs 고림대생이 생각하는 연희대생] 30:21조회수 2,206,873회
[고림대생에게 연희대생 소개팅을 해주면? 옷만 보고 고르자! 룩개팅] 27:48조회수 1,980,910회
[고림대생과 연희대생이 모인다면? 대학 생활 다 물어봐~ 새내기 Q&A] 45:30조회수 1,709,801회
고림대와 연희대라는 콘텐츠로는 뽑아낼 수 있는 게 한정적이었다. 어디까지나 주제가 대학생과 대학 생활에서 그쳐지니. 하지만 이런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연티비의 화제성은 계속해서 상승세였다.
명문대생. 공부만 한 것 같다는 그 편견을 깨주는 출연자들 덕분이었다.
* * *
“광고가를 더 높여야 하는데.”
[Intube creative]▶평균 시청 시간: 10:18
▶구독자 증감 (일주일): 50,127
▶지난 28일 동안 채널의 조회수가 3,982,997회입니다
▶실시간 조회수 (48시간): 997,608
고연티비의 담당 PD는 인튜브 크리에이티브 앱을 확인하며 다음 콘텐츠에 대해 고민했다. 벌써 몇 년 된 채널이다 보니 새내기 큐앤에이는 매년 했고, 룩개팅 소재는 이제 좀 식상해졌고, 우결을 살짝 넣은 선후배끼리의 멘토멘티 브이로그는 작년에 남성 출연자가 유스타로 팬들 어장관리를 하다 걸렸다.
“PPL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한 대. 이거.”
담당 PD는 선배들의 압박을 그대로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말이 좋아 담당이지 채널을 처음 시작한 건 선배들이었으므로 어디까지나 월급쟁이였다. 그보다 좀 더 나은 게 있다면, 출연자들은 한 화당 출연료를 받지만 PD를 비롯해 스태프들은 순수익에서 인센티브를 받는다는 것 정도.
“진짜 때려칠 수도 없고, 이거.”
과 특성상 방송국으로 들어가면 밑바닥부터 빡세게 굴러야 하기 때문에 지금부터 스펙을 쌓아 두는 게 좋았다. 무엇보다 인맥이 중요하니까. 고연티비의 PD는 의미 없는 클릭을 몇 번 반복했다.
“이 새끼는 톡도 안 읽고, 뭔 일 있나.”
1이 사라지지 않은 카톡창을 응시하던 PD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고연티비 PD, 정우는 이 녀석이 연희대에 입학할 줄 알았다. 그냥 그런 믿음이 있었다. 어느 정도 운이 좋은 녀석이니까 성적보다 더 높은 데에 입학할 수 있겠거니 싶었는데 난데없이 한국대 신입생이 되었다고 말했다.
벌써부터 차재겸으로 온갖 소재를 뽑을 생각에 싱글벙글했던 고연티비 PD는 괴로웠다.
“이런 애 한 명만 있었어도 내가 이 개고생을 안 하는데….”
매년 대학매일 표지를 어떤 대학교 학생이 장식하는지 은근한 기 싸움이 일어나고는 했다. 일반 학생들이야 모르겠지만 학교 홍보팀 같은 경우는 이게 나름의 자존심 싸움이다. 올해 대학매일에서는 벌써 한국대 신입생만 커버걸이 되었다. 스타성 있는 애들이 전부 한국대에 가버리다니. 이런 부조리가 또 없었다.
“지난번에 했던 소재, 또 해야 하나…. 근데 이러면 성적 좋은 애들 위주로 출연진 뽑아야 하는데.”
통탄할 노릇이었다. 스타성이 있어서 조회수와 댓글을 뽑아먹을 수 있는 출연자는 상대적으로 성적이 낮았고, 성적이 높은 출연자는 스타성이 없어 조회수부터 낮았다.
고연티비 PD는 꽤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그 콘텐츠를 확인했다.
[Intube] [고림대생 Vs 연희대생이 수능 문제를 다시 풀어보았다! 과연 승리는?] 45:21조회수 1,805,991회
* * *
오늘도 변함없이 강의 끝나는 시간에 맞춰 끌려온 차재겸은 바닥에 드러누웠다.
“야. 진짜 좀만 쉬다가 하자.”
“…너한테는 강의 시간도 쉬는 시간이잖아.”
“좋게 좋게 일어나자.”
강의시간 내내 놀아재낀 재겸은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지만 몸을 일으킬 힘도 없었다. 그놈의 스터디 영상을 하도 보니까 고3 때로 회귀한 것만 같았다.
“잠깐!!! 나 급한 연락 좀 확인하고.”
“…저거 또 저러네.”
“일 분 줄게.”
끝의 끝까지 조금이라도 놀려는 재겸의 수작에 넘어가 주지 않는 둘이었다. 재겸은 가장 중요한 연락을 돌렸다.
[자기야고데기는판고데기여야돼봉고데기안된다] [그리고로션은히아루론산들어간걸로부탁해나권재언네집이야]제일 중요한 연락을 보내자 35초가 남았다. 대충 톡 목록을 훑던 재겸은 뭔가 좋아 보이는 걸 발견했다.
‘…고연티비?’
아는 형에게 온 연락이었다. 왠지 이 형을 이용해 지옥의 용역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봤던 스터디 영상들이 뒤죽박죽 재겸의 머릿속에서 섞였다. 빠르게 쪼개졌다 재조립되고 쌓아 올려진 콘텐츠의 산에서 떠오르는 하나의 아이디어. 재겸의 눈이 빛났다.
“야. 좋은 거 생각났다.”
“수작 그만 부리고….”
“핸드폰 내놔.”
“그러지 말고!!!”
잦은 탈출 시도와 오랜 징징거림으로 단련된 둘은 자연스럽게 재겸을 일으켰다. 차재겸은 들고 있던 핸드폰을 뺏기지 않으려 노력하며 외쳤다.
“고연티비!!! 고연티비랑 콜라보 같은 거 하게 만들면 될 거 같아!!!”
약육강식, 적자생존, 수많은 어그로와 줄 세우기 그리고 끊임없는 Vs 싸움이 일어나는 인튜브라는 전쟁터에서 가장 쓰기 좋은 패.
“한국대생 Vs 고연대생 붙이면 될 거 아니야! 뭐든 댓글 삼천 개는 나오겠다!!!”
그건 바로 비교였다. 세 명문대생을 한자리에 모아서 할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