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218)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218화(218/405)
딩동-
때마침 타이밍 좋게 현관의 벨이 울렸다. 누가 왔는지는 안 봐도 뻔했다. 양 옆에서 단단히 붙들고 있는 손을 뿌리친 재겸이 달려 나갔다.
“자기야!!!”
벌컥하고 문을 열자 추리닝 차림의 윤슬이 품에 뭔가를 바리바리 안고 있었다.
“야. 이거.”
재겸은 감격한 눈으로 그것들을 받았다. 로션과 고데기만 있는 게 아니었다. 마스크팩과 헤어 컬링 에센스까지 추가로 넘긴 윤슬은 재겸의 어깨 너머를 바라봤다.
“너네 뭐해? 나 빼고 재밌는 거 해? 오늘도 차재겸이 여기에서 자는 것 같은데.”
“재미? 자기야. 그런 말 하지마. 나 지금 그저 용역에 불과해. 누구보다도 집에 가고 싶은 사…. 읍.”
“하하. 이거 주겠다고 온 거야?”
“…얘, 그냥 바디로션 바르면 되는데.”
커다란 손에 입이 막혀 버린 재겸은 손등을 박박 긁으며 가까스로 떼어냈다.
“푸하-! 야. 코까지 막아버리면 어떡해. 자기야 자기야. 고연티비 알아?”
“어?”
난데없는 차재겸의 물음에 윤슬은 잠시 멈칫했다.
“고연티비? 내가 아는 그?”
“어, 그거. 맨날 고림대생이랑 연희대생만 나오는 그거. 나 거기 담당 PD형이랑 아는 사이거든. 근데 우리 자기가 스터디 주제로 댓글 삼천 개를 받고 싶다길래. 어떻게 한번?”
윤슬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지도 못한 소재에 재겸의 어깨를 빠르게 두드렸다.
“응!!! 야!!! 차재겸!!!”
“우리 자기…. 늘 느끼지만 주먹이 매워….”
흥분한 윤슬의 주먹에 쉴 새 없이 얻어맞은 재겸은 눈을 감았다. 체감상 일 초에 열대씩 맞고 있었다.
“너네 혹시 그거 때문에 어제부터 다 같이 있던 거야? 내가 그때 그 말 해서?”
백휘와 재언이 작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감격한 윤슬은 이번에는 두 사람의 어깨도 때렸다.
“야! 내 일인데 너네가 막…!!!”
그래도 그저 좋다고 웃는 둘이었다. 차재겸이 공로를 냉큼 가로채기 전에 알아채 준 윤슬이 고마웠다.
“근데 고연대생들 나오는 데에 내가 나가면 뭘 하지?”
* * *
나는 일단 재언이의 집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면 자꾸만 여기에서 모이는 것 같군.
오늘도 뽀송하게 빨래 향기가 나는 집이었다. 뻔뻔하게 샴푸랑 트리트먼트까지 추가로 빌려달라고 요구한 차재겸은 아직도 샤워하느라 욕실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오늘의 일등 공신이니 좀 봐주자.
―연희대생 자존심이 있지. 아~ 채널 이름부터 저는 마음에 안 들었어요.
―뭐라는 거야? 병아리 학교 말은 잘 안들리네요.
―응 다음 고양이.
나는 재언이의 노트북을 하나 받아 들고 고연티비 채널을 확인했다. 알고리즘에 몇 번 떠서 오며 가며 보긴 했지만 이렇게 진지하게 보는 건 처음이었다. 키워드는 단순했다. 명문대학교의 학생들, 그리고 대학 생활.
“오. 나름 우결도 했네?”
[Intube] [블라인드 소개팅! 학교를 속였을 때 더 호감 가는 상대는? 연희대생 Vs 고림대생] 47:20그중 댓글이 제일 많은 건 역시 이거였다. 비슷한 콘텐츠도 몇 개 더 만들어지기까지 할 정도로 인기가 제법이었다.
‘댓글 오천….’
심지어 댓글이 오천 개. 하지만 이걸로는 상태창의 미션을 완료할 수 없을 것이다. 주제가 다르잖아.
[Intube] [함께 공부해요! 밤샘하는 시험기간 vlog] 8:20:27 [통학생 Vs 자취생 하루는 어떨까? 전격비교 vlog] 37:48 [노베에서 전교 1등까지… 그때처럼 하루를 살아본다면? vlog] 42:53스터디 주제와 브이로그로 인기가 많은 리스트는 이렇다. 나는 잠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고연티비에 한국대생이 이런 주제로 참여해도 되나?’
어떻게든 고연대생이랑 같이 콜라보를 해야 할 텐데…. 그도 그럴 게 일단 타 대학생이 남의 채널에 왔다는 것 자체만으로 살짝.
-ㅋㅋㅋ한국대생이라 해서 구경왔는데 별거 없네
-엥 고연티비에 갑자기?ㅋㅋ; 살짝 선민의식 느껴진당ㅜㅜ
-한국대생 어쩌라고 고연티비 멤버나 보여줘요
…여기까지 하자. 대충 반응은 예상이 되는군.
그러니까 아래와 같은 조건으로 출연해야 하는데.
1. 기존의 고연티비 멤버들이 함께 나올 것
2. 내가 주인공이 되면 안 될 것
3. 댓글이 잘 나올 수 있도록 약간은 자극적일 것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게 뭐가 있지.
“또 우결? 자기야. 우결 중독 증세야. 이거.”
머리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나온 차재겸이 내 노트북 화면을 손으로 가렸다. 그새 마스크팩은 언제 붙였는지 족제비 같은 얼굴에 만족스러운 웃음기가 가득 들어찼다.
“…스터디라며.”
“하하. 그러게. 전혀 연관이 없는데.”
너네 다들 내 노트북에서 뭐 틀어지나 보고 있던 거니? 셋 다 스터디에 집중하라는 압박을 보냈다.
나는 조용히 여러 개 틀어둔 창 중에 우결 관련 영상은 모두 내렸다.
“댓글 삼천 개면 좀 자극적이어야 할 텐데. 뭐가 좋은지 감이 안 와.”
“이건 어때? 하루 순수 공부 시간 비교.”
“나쁘지는 않은데. 일단 보류.”
“…고연대생이 하루 동안 풀 수 있는 문제의 수. 이건?”
“그것도. 일단 킵.”
뭔가 확 하고 땡기는 게 없다. 뷰 수는 안정적이지만 너도나도 한 마디씩 얹고 싶어서 난리 날 소재는 아니니까.
“얘들아. 너넨 정말 안 되겠다. 생각을 해봐. 인튜브 세상에서 그런 게 먹힐 수나 있겠어? 나라면 이런 거 한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다 말리고 온 차재겸이 얼굴에 붙어 있던 팩을 떼어내며 끼어들었다.
“모의고사 문제를 푼 다음 점수순으로 원하는 이성과 데이트권 증정. 고연대 버전 소개팅.”
“오~. 야 역시 차재겸이다.”
차원이 다른 어그로에 나는 감탄했다. 모의고사 들어가니까 스터디 가능할 것도 같은데.
나는 잠시 내려두었던 우결창을 다시 클릭했다. 몇천 개가 되는 댓글을 살짝 훑어 내려갔다.
“근데 이미 여기 출연자들이 나름 다 캐릭터성이 정해져 있고, 비즈니스 썸이 생생한데요.”
“쿨럭….”
“뭐야? 너네 왜 갑자기 차재겸 옆에 가 있어?”
“하하. 팩을 아무 데나 버려서.”
“…맞아. 우리 집인데.”
분명 내 등 뒤에 있던 애들이 저기 차재겸 옆에 가 있었다. 빠르기도 하지. 이전부터 느꼈는데 쟤네 정말 청소를 잘하는구나.
“자기야. 그런데 뉴페이스 나가면 원래 더 주목받고 어그로도 끌리고 그런 법이에요. 메기 몰라, 메기?”
“…너 왜 그런 막말을.”
“뭐라는 거야 지금?”
연애 프로그램이라고는 일절 보지 않는 일반인 둘이 화를 냈다. 얘들아, 그 메기 아니야.
어찌 됐건 지금까지 나온 아이디어 중에는 차재겸 아이디어가 제일 나은데. 이것보다 더 나은 게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단 말이지.
“으으음.”
일단 금요일에 업로드할 영상편집을 마무리해야겠다. 며칠 동안 더 생각하다 보면 이거다 싶은 게 나올 테니까. 언제나 그랬듯.
* * *
고연티비의 담당 PD, 정우는 영상 업로드 예약 시간을 걸어두었다. 시간은 오늘 밤 10시. 금요일을 비롯해 주말은 인튜브 조회수를 안정적으로 뽑을 수 있는 때였으니 매주 놓치지 않아야 했다.
지금은 3월, 수능을 앞에 둔 고3 현역과 N수생들의 지갑을 털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였다. 인강 프리패스권 PPL을 비롯해 현역 시절에 썼던 편한 의자, 영양제, 비타민 등등 광고할 만한 게 너무나 많았다.
‘오랜만에 하는 PPL이니까. 뭐…. 나쁘진 않겠지.’
오늘의 PPL은 에너지드링크였다. 밤새서 순 공부 시간을 재는 영상이었는데, 얼마 만큼의 점수를 냈는지가 중요했다. 잠을 안 자는 것이 광고 포인트가 아니었고, 잠을 안 자고 버틸 수 있게 만들어 주지만 ‘머리가 멍해지지 않는’ 것이 포인트였기 때문이다.
영상 예약을 재차 확인한 고연티비 PD는 카톡창을 켰다.
입력: 얘들아 오늘 10시에 채팅 잊지 말고~ 자 오늘도 힘내자!
오늘도 구독자들이 채팅으로 참여할 수 있게 업로드될 것이었으니 명문대생을 동경하는 학생들의 마음을 잘 잡아야 했다. 채팅으로 가끔 닉네임을 불러준다든지, 저 때 정말 힘들었다고 말해준다든지 하는 채팅 몇 번만으로도 안정적인 댓글 수가 나왔다.
[차재겸: 형형~ㅋㅋ 저 지금 가는중] [차재겸: 보고싶어요♥] [차재겸: (한국대 입구역의 한 술집, 지도 앱 첨부) 빨리와잉 ☆٩(。•ω<。)و]오늘 만나기로 한 재겸에게도 연락이 와 있었다. 약속 시간을 목전에 둔 고연티비 PD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나가야 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얘, 아는 사람 고연대에 많을 테니까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 뭐 그런 걸로 출연시킬까. 명문대생의 친구가 명문대생. 끼리끼리 노는 그사세 느낌으로 써봄 직한데….’
고연티비 PD는 재킷을 걸치며 다음 콘텐츠를 구상했다.
‘그러고 보면 오늘 나온다는 애들도 다 괜찮지. 얘네 셋을 한 번에 출연시키면….’
오늘 만날 세 사람을 떠올리며 장소로 가는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웠다. 캐릭터성을 잘 구축할 수 있을 만한 출연자 하나만 있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 * *
“오케이. 예약 완료.”
윤슬은 영상 확인을 마치고 예약을 걸어두었다. 여전히 댓글 삼천 개까지는 될 수 없는 브이로그였지만, 그래도 고연티비라는 주제를 하나 생각하자 나쁘지 않았다.
남은 날은 열흘 남짓. 인튜브 특성상 첫날 달리는 댓글이 가장 많으니 그때 어그로를 잘 끌어 두고, 이틀 정도는 커뮤니티에서 작업을 치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과팅 안 늦겠다.”
시계를 확인한 윤슬은 과팅 장소를 다시 한번 체크했다. 마침 약속 장소가 집과 가까워 다행이었다. 한국대입구역에 있는 술집에서 오늘의 과팅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 * *
“가엾은 정우형. 얘들아. 난 진짜 좀 양심에 찔린다.”
“찔리든가.”
“…….”
셋은 미리 술집에 도착해 있는 상태였다. 고연티비 PD는 오늘의 약속이 새내기들의 과팅에 맞춰 잡힌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었다. 윤슬과 함께 고민하던 그날 밤. 예상외로 결론을 낸 건 최백휘였다.
“그러고 보니까. 그냥 만나서 적당히 털면 되지 않나?”
“뭐를?”
“콘텐츠 구상을 왜 우리가 해. 그쪽이 어련히 해 올 텐데. 그중에 선택하면 되잖아.”
“…천잰데?”
생각해 보니 그쪽이야말로 스터디로 할 수 있는 어그로란 어그로는 다 끌어오던 만렙 중의 만렙이었다. 단순 대학 키워드 가지고 동영상을 천 개 가까이 만들어왔으니. 그쪽에게 콘텐츠는 외주를 줘버리자는 백휘의 결론이 타당했다.
재겸이 친분을 이용해 만나고 온다고 하자 곧장 둘이 따라붙었다.
“진짜 너넨 그러는 거 아니야.”
“그래서 시간 차를 두잖아. 하하.”
“…….”
그렇게 윤슬의 과팅을 자연스레 끝내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작전이 시행될 예정이었다.
1. 고연티비 담당 PD를 만난다
2. 윤슬이 얼마나 괜찮은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지, 마음에 든다면 출연 연결시켜 줄 수 있다고 바람을 집어넣는다
3. 때마침 올라오는 윤슬의 영상과 구독자 수, 댓글 추이를 눈앞에 흔들어 준다
4. 마침 이 근처에 고림대 후배들이 윤슬이와 과팅을 하고 있음을 넌지시 흘린다
5. 후배들이 선배를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지 불을 붙인다.
6. 해피엔딩
속이 시꺼먼 놈들을 앞에 두고 과팅을 어디서 하는지 친절히 말해 준 윤슬의 업보였다.
시끄러운 술집에서 메뉴판을 넘기고 있던 셋 앞에 드디어 오늘의 먹잇감이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