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220)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220화(220/405)
“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나의 사랑하는 동기들 안녕안녕. 재겨미 왔어요~”
넉살 좋은 재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순식간에 입장 샷을 마시고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여기는 내 친구들! 과는 다른데 솔직히 명예 언론인들이죠. 지금 다니는 과는 거의 뭐 복전. 그리고 저 뒤에는~. 아 형! 빨리 와요. 뭘 또 부끄럼 타고 그래. 여러분 다 알지? 고연티비 PD님이자 고림대 선배님이십니다~. 모두 박수!!!”
짧게 재언과 백휘를 소개하고 제일 뒤에 있던 고연티비 PD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몰아주었다. 전문 MC처럼 구는 재겸은 익숙하게 자리를 잡았다. 마치 처음부터 과팅을 함께 한 멤버인 것만 같았다.
“안녕하세요. 후배님들. 늙은이 왔다고 속으로 욕하는 거 아니죠?”
“아닙니다!!!”
학기 초의 군기가 빠지지 않은 체대생들은 깍듯하게 선배를 대하며 두 손으로 잔을 건넸다.
“어어? 나 마시라고?”
“한잔하고 가세요. 형님!!!”
뒤에서 백휘와 재언은 티 나지 않게 미소를 지었다.
이럴 줄 알았다. 체대생들에게 연장자라는 존재는 참 좋은 미끼였다.
“과팅 재밌어요? 새내기들인데 과팅 몇 번째에요?”
“저희 이번이 처음이에요~”
“근데 진짜로 인튜브에서만 보다가 이렇게 보니까 진짜 진짜 신기해요. 전역했다고 영상 편지 남기신 것도 얼마 안 됐죠!”
PD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고연티비를 봐 온 윤슬의 동기들과도 도란도란 이야기했다. 곧 업로드될 고연티비 영상에 대해서도 살짝 스포한 PD는 윤슬과 눈을 마주쳤다.
“큼, 혹시…. 윤슬 친구도 고연티비 좋아해요?”
“네? 어, 그쵸. 저희 때는 고연티비 안 본 사람이 없어요.”
“그럼…. 출연 가능해요? 아, 진짜. 사실 이거 부탁하고 싶어서.”
윤슬 정도 되는 인플루언서를 섭외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PD는 너무나 잘 알았다. 사진 한 장에 몇십, 영상에서 언급하는 걸로 몇백. 생일을 비롯해 온갖 특별한 날만 되면 선물을 보내야 한번 모실 수 있을까 말까 하는 게 윤슬 급의 인플루언서였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지금보다 더 어릴 때부터 협찬과 광고를 받은 윤슬이 모르지 않을 터였다.
“와아아아!!! 한국대생 출연시켜요, 형?!”
“신기하다~. 그럼 이번엔 뭐예요?”
주변에서 더 신이 난 새내기들 틈에서 윤슬은 그저 순진무구한 눈동자로 PD를 보며 웃었다.
* * *
‘얘들아, 고맙다….’
저 PD 하는 거 보니까 자연스럽게 작업을 쳤구나. 초반부터 저쪽이 살짝 아쉬운 태도를 보이는 걸 보니까 바람잡이를 확실하게 했다.
나는 저 끝자리에 앉아 있는 셋에게 눈짓했다. 여기서 웃으면 안 되지.
“출연이요? 근데 제가 스케줄이 좀….”
“아이! 스케줄은 당연히 우리가 맞추지! 누가 오시는 건데.”
“오오오~ 서윤슬~~~”
첫 번째는 자연스럽게 바쁜 걸 어필하기.
좋아. 최대한 빨리빨리 찍고 빨리 업로드하자고. 고연티비도 금요일 업로드라니까 일요일까지 댓글 채우기가 편하겠군.
“근데 저 가면 주제 뭐예요?”
“주제? 아직 생각은 안 해봤지. 근데 알다시피 우리 주제가 대학생, 대학 생활. 뭐 이런 거라 새내기들의 일상 같은 거 보여주면 어떨까.”
“윤슬이 진짜 바쁘게 살아요. 아마 얘가 저희 동기 중에 제일 바쁠걸요?”
“맞아요. 강의 끝나고 또 사무실 가고 반복하는데.”
안 돼. 이러면 다른 고연대생들이 묻힌다고. 그리고 자연스럽게 스터디가 주제가 안 되잖아.
나는 살짝 머리를 굴렸다.
“에이. 근데 지금 고3이 제일 많이 볼 때 아니에요? 그쵸? 시청자 추이 보면 10대가 제일 높을 텐데.”
“오, 어떻게 알았어? 맞아요. 3월 모의고사 보고 나면 고3들 싱숭생숭해져서 댓글로 많이 울러 오지.”
“그럼 진짜 내신이나 모의고사 점수. 뭐 이런 거 얘기하면 어때요?”
소재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스터디로 몰아넣어야지. 근데 반응이 왜 저러지? 마치, 꼭….
“아. 그런 것도 좋지. 근데 좀…. 하하하.”
내가 턱걸이 수시로 한국대에 간 것처럼 굴어?
“에이. 그런 거 말고 잘하는 쪽으로 가야지! 스터디 주제. 음. 독서실룩 추천? 독서실 다닐 때 뭐 입고 갔었어요? 아무래도 옷차림에 신경 쓰게 되잖아. 응?”
…맞구나.
미묘하게 굳은 내 표정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고연티비 PD는 자기 딴에는 괜찮아 보이는 소재를 줄줄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 고3 때 가방 인마이백? 파우치 같은 거 보여주는 게 인기 많으니까. 고3 때 자주 쓰던 화장품 뭐, 이런 거 보여줘도 애들 좋아할 것 같은데.”
내가 공부를 못 했을 거라 생각하는 걸 보니까 기분이 좀.
“그런 건 스터디 주제가 아닌데요?”
그렇네?
“꼭 스터디를 주제로 해야 되나~. 우리가 잘 편집해 줄게요. 나 방금 윤슬 씨 인튜브 보다 왔는데, 편집 진짜 잘하더라! 어디서 배운 거예요? 친구들도 다 봤어요?”
속에서 슬슬 불이 타오르는 것 같다. 나 진짜 그간 수시 얘기 너무 많이 들어서 좀 지겨울 지경이었는데, 이참에 고연티비로 제대로 보여줘 볼까.
나는 불안하게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셋에게 잠시 시선을 주었다.
‘…하게?’
‘그만하면 많이 참았지.’
‘자기야, 나 거기 있는 화채 좀 줄래?’
중간에 뭔가 이상한 게 껴 있지만, 일단 질러보자.
“모의고사 점수 비교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다음 주면 3월 모의고사죠? 그거 같이 풀어봐요.”
“으에에에???”
내 말에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듯 PD가 술잔을 든 채로 굳어 버렸다.
“그거는. 근데 우리가 편집이 좀 힘들 것 같은데에…. 아무래도 지금 수능 끝난 지 좀 됐으니까 까먹지 않았어요? 이거는 고3 학생들이 보는 거다 보니까 좀 좋은 성적이 아니면. 왜 알잖아~. 자칫 잘못하면 개나 소나 고연대 간다. 뭐 이런 댓글 잔뜩 달릴 거! 사람들이 원래 명문대에 예민해요.”
당연히 내가 모의고사를 못 볼 거라고 장담하는 저 태도에 정말 열받는군. 그쪽이 먼저 시작했으니 나도 더 이상 봐줄 거 없지.
“하긴, 아무래도 고림대생은…. 하하하. 아 뭐 걱정하시는지 알겠다. 그쵸. 좀.”
나도 똑같이 얼버무려줬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확실히 전달이 된 것 같았다.
=쫄?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들어 입술을 축인 PD는 애써 사람 좋은 웃음을 짓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나도 환하게 웃어 주었다.
“근데 뭐 확실히…. 재미는 있을 것 같네. 들어보니까.”
이렇게 쉽게 넘어오다니.
“그쵸? 뭐 정정당당하게 하면 편집할 것도 별로 없겠다~”
나는 칼을 갈며 웃었다.
생각이 바뀌었다. 상태창이 언제 좋은 댓글로 삼천 개를 모아오라고 했나? 일단 그냥 댓글만 달리면 그만이다.
* * *
윤슬은 그날 밤 곧장 본가로 갔다. 화가 날수록 머리가 잘 돌아갔다. 지금은 금요일, 그러니까 주말이 끝나기 전에 영상을 하나 더 올릴 예정이었다. 고작 이틀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다.
“엄마! 내 방 안 치웠지?”
“아직 그대로 있지~. 슬이, 너 술 마셨어?”
“응, 한잔했어. 아무튼 나 잠깐 내 방 좀.”
급하게 방으로 들어간 윤슬은 버리지 않고 모아 둔 문제집과 기본서를 보며 미소 지었다.
‘진짜 이거 쓸 날이 빨리 오는구나.’
원래대로라면 수능 백일 전에 수험생들 응원용으로 만들어 볼 작정이었다. 겸사겸사 수능 성적도 공개하고. 하지만 지금이라면 얘기가 달라졌다.
윤슬은 책장 맨 위에 꽂혀 있는 노트를 하나 꺼냈다.
“일단 이것만 있으면….”
그건 바로 일기였다.
[윤슬이의 일기]5월 1일
고3 너무 빨리 지나간다. 나중에 브이로그에서 슬쩍 비추기 위해 일기를 써보기로 했다. 뭐 나름 힘들었던 나의 시간들…. 기록해봐야지. 좋은 소재감이다.
고3 때 힘들었던 기록을 열심히 해두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윤슬은 빠르게 한 장 한 장 넘겼다.
“오케이. 이거 눈물 자국…. 이 문장도 좋다. 심금을 울리네, 아주.”
난데없이 들이닥쳐서 고3 때 쓰던 일기와 문제집을 확인하고 있는 윤슬을 바라본 가족들은 서로 시선을 공유했다.
“왜 저러는 겨…? 어머니 아세요?”
“난들 알겠나. 자네 뭐 들은 거는 없고?”
“어머. 저도 몰라요.”
분노에 찬 윤슬은 200%의 의지력을 불태웠다. 빼곡히 필기가 되어 있는 것들은 한 곳으로 착착 쌓아 올렸다.
“두고 보자!!!”
* * *
고연티비 PD는 이번에야말로 채널 취지에 맞추겠다고 다짐했다. 오랜만에 부어라 마셔라 한 덕에 숙취로 지끈거리는 머리로도 어제의 도발이 선했다. 순하게 생긴 얼굴과 달리 ‘쫄?’을 시전하는 윤슬은 제법이었다.
‘지금까지 수능 성적 공개 안 한 거 보면 뻔하지…. 이것저것 수상 경력도 있겠다, 정부에서 밀어주는 사업도 벌였겠다. 한국대 입학 쉽게쉽게 한 거구만.’
정시로 입학한 고연티비 PD는 대충 윤슬의 수능성적을 가늠해보다가 피식 잇새로 웃음을 흘렸다.
“어, 나야. 이번에 새로 출연시키는 스무 살 애들 있지. 어어. 걔들 중에 성적 괜찮은 애만 따로 추려봐. 우리 학교만. 연희대생? 걔네는 뭐 적당히. 지난번에 했던 콘텐츠 이번에도 쓸려고. 이번에 수능 만점 받았던 걔도 같이 나와준대서. 응.”
고연티비 PD는 편집각을 날카롭게 세웠다.
‘수능 만점, 걔는 일단 편집 시간 오래 잡아야겠어. 최백휘도 그렇고, 걘 건너건너 듣자니 하나 틀렸다던데…. 아, 차재겸 이건 왜 안 나오겠다 해서.’
재미없는 건 안 한다며 발을 뺀 재겸 덕에 확보한 한국대생은 윤슬, 백휘, 재언 셋이었다. 한국대생 두 명은 괜찮은 성적을 받을 게 뻔했으니 고림대는 지지 않아야 했다.
‘연희대생 애들은 수시 위주로 데려와야겠다.’
윤슬과 척져서 좋을 건 없었다. 압도적인 한국대생 두 명, ‘역시 고림대’라는 말이 나올 만한 고림대생 세 명, 그리고 ‘저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명문대 갈 만하지!’라고 생각이 들 한국대생 한 명과 연희대생 세 명.
“오케이. 수요일이니까-. 대충 기한 넉넉하네.”
스튜디오 촬영 스토리를 체크하던 고연티비 PD는 만족스럽게 의자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꿀 같은 휴일이었다. 아무래도 이번 영상은 조회수가 터질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