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23)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23화(23/405)
권재언은 티가 나게 굳어진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렇게 인상을 쓰고 있어도 소용없지. 지금 설득 다 된 거 눈에 보이거든. 머리 위 마이크 로고의 숫자는 100을 가리키고 있었다.
“…놔 줘.”
“어?”
“이, 이것… 좀….”
‘손잡은 건 좀 오버였나.’
잡혀 있던 손을 서둘러 본인 쪽으로 가져가 교복 바지에 문지르는 재언을 보니 조금 머쓱해진다.
야… 누나 손 씻었다….
“알겠어.”
“진짜?”
“어려운 것도 아니고 …해줄게.”
역시 천재는 다르다. 어플 개발을 무슨 종이로 학 접는 것마냥 가볍게 말한다.
“색감 보정 라이브러리를 사용하면 테스트 반복하고…. 그 전에 프레임 워크 선택해서 네이티브 리액트 쓸 건지 플루터 쓸 건지 생각하면 되거든….”
나는 중얼거리는 재언이의 말을 일단 하나도 못 알아들었지만, 이해한 척을 열심히 했다. 끄덕끄덕 고개를 바쁘게 끄덕이며.
‘네 말이 다 맞아. 세상 제일 천재 권재언 님은 세 살 때 솔방울로 키보드를 만드셨고….’라는 감정을 두 눈에 열심히 담아서 쳐다봤다.
“큼, 근데.”
“응?”
“나… 혼자 만들어?”
어. 이건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물론 혼자 만드는 게 어렵기야 하겠지만, 내가 지금 당장 불러올 수 있는 다른 기술자는 없는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뭘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
“…….”
잠깐 당황해서 말문이 막히자 재언이는 조금,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안 돼, 안 하겠다고 하지 말아줘…! 다 잡은 물고기 도망가지 말아줘!!!
“큼… 나는 사진을 잘 안 찍어봐서. 보정이, 잘 된 건지 안 된 건지. 그런 색을 잘 모르니까.”
“아, 그치…. 아무래도 색감이 중요한데….”
“만나서, 네가 피드백을 주면, 내가 그에 맞게 다시 고치고… 그래야 될 것 같은데.”
“아~! 그런 말이었구나! 난, 또… 혼자서는 못 하니까 다른 사람들도 구해 달라는 줄 알았지~!”
“아니야, 혼자 만들 수 있어….”
“그치 그치. 재언이는 천재니까!”
마이크 아이템 너무 좋다. 나는 재언이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일정을 잡아버렸다.
우리 빨리 만들자 재언아. 같이 어플 시장을 독점해보자고.
통장에 찍힐 0의 개수를 상상하니 심장이 뛰었다.
* * *
“어…?”
나는 눈을 의심했다. 마치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나오는 여자주인공의 변신 장면처럼.
“백화점 명품관을 통째로 빌려서 하는 쇼핑에서 어떤 옷이 마음에 듭니까?”
“아앗, 그렇지만… 이런 건 너무 비싼걸요!”
“하, 지금 내가. 그 정도도 못 해주는 남자로 보입니까? 미치겠네. 갈아입고 나와요, 당장. 저기. 이 아가씨에게 여기에서 가장 예쁜 옷으로.”
“…이게… 나…?”
거울을 보면서 스스로 놀라는 바로 그 장면이 오퍼시티 70으로 내 얼굴 위에 겹쳐지고 있었다.
‘이게… 나의 점수…?’
처참한 성적이 적힌 시험지가 손에서 파직 구겨졌다. 옆자리 소희가 턱이 빠지도록 벌려진 내 입을 먼지 들어간다며 친절하게 닫아줬다.
생각해 보면 회귀 후, 제대로 된 공부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상태창의 미션을 완료하느라 바빴고, 그 뒤로 학교에서는 뭐….
‘수업만 제대로 들은 게 다였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몇 달 잠깐 놨다고 이렇게 성적이 떨어지다니 이제부턴, 정말 공부뿐이야. 나는 두 주먹을 쥐었다.
회귀하고 나면 다 수능을 잘 볼 것 같고 그렇겠지. 하지만 수능 답안지 같은 건 수능 성적표 나오는 날에 모두 싸악 깨끗하게 지워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로또 번호도 외워두고 수능 답안도 외워둘걸….’
지금 와서 후회해도 별 소용이 없는 걸 알지만 쪽지 시험지 제일 위에 처참하게 적힌 점수는 눈물을 삼키게 했다.
소희의 시험지를 슬쩍 보니 더더욱 큰일 난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지금 얼굴색이 차츰 회색으로 바뀌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
“윤슬아, 왜 그래….”
“소희 넌 좋겠다.”
짝이 된 다음부터 꾸준히 느낀 건데, 소희는 정말 성실하다. 필기도 깔끔하게 하고, 수업 시간에 딴짓을 하거나 조는 걸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괜찮아, 다음에 잘 보면 되지.”
언니같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소희의 시험지는 아기자기한 파일 속으로 쏙, 들어갔다. [시험 D-16] 이라고 쓰여 있는 포스트잇이 붙여진 그 파일에.
띠링-!
「▶System
【미션: 일반】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성적표가 울려퍼질 이 거리를
벚꽃의 꽃말은 XXXX죠!」
‘내 눈이 잘못된 거… 아니지…?’
이젠 상태창이 나에게 퀴즈도 낸다.
마음대로 나에게 마음을 연 건가? 우리가 이럴 사이는 아니잖아. 친구 할 거면 친구비 내라.
나는 넷홀릭스 정기 요금처럼 상태창에게도 한 달 친구 비용을 알뜰하게 뜯어내고 싶었다. 그리고 저 퀴즈의 답, 너무 쉽다.
‘중간고사.’
띠링-!
「▶[보상: 잠깐 빙의를 한 것처럼 기억력을 끌어 올려주는 소원석 획득!]
○♣‘눈을 뜨니 낯선 천장이었다’ 소원석 (등급 하)
공부했던 시간의 온도, 습도, 조명… 그리고 그때의 페이지의 글자까지 기억이 납니다. 로판 세계에 빙의해버린 귀족 영애 같은 순발력을 얻을 수 있어요!
축하합니다!
[지금 사용하기] [인벤토리에 넣기]」엥, 진짜 상태창이 친구비를 냈다. 그리고 살다 살다 이상한 소원석 다 보겠네….
하지만 이상한 이름을 붙여진 소원석 치고는 성능이 상당했다.
나는 고민 없이 [인벤토리에 넣기]를 클릭했다.
「□현재 인벤토리 아이템
[♣‘그냥저냥 넘어가기’ 소원석 (등급 하)] [♣‘눈을 뜨니 낯선 천장이었다’ 소원석 (등급 하)]」소원석이 채워진 인벤토리를 흐뭇하게 바라보는데, 또 연달아 상태창이 뜨기 시작했다.
띠링-
「▶System
【미션: 일반】
당신을 자랑해주세요. 이번 중간고사에서 ( ??? )점 이상을 올려 SNS에 업로드해 봅시다.
( 33 )명 이상의 사람에게 ( 잘했다 )라는 댓글이 달려야 합니다.
※ 범위는 같은 학급 내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보상
○화술 스탯 랜덤 상승
○랜덤 협찬 뽑기 획득
수락하시겠습니까?
[ Yes ] [ No ]」그나저나 스탯 말고, 스킬 등급은 언제 오르려나. 나는 방송부 부장의 s+ 스킬을 떠올렸다.
‘직장인의 마음가짐 (A) 이게 뭔지나 좀 알고 싶다.’
상태창의 수락 버튼을 눌렀을 때.
지잉-
[뭐해?]화면에 톡이 떴다.
* * *
[Acebook]▶경하고 대신 전해드립니다
1학년 최백휘 여친 있나요..ㅠㅠ.. 맨날 등교할 때 말 걸어보고 싶은데 용기가 안 나서 못 했어요 익명이요!
-이선우: 야 최백휘 클라스ㅋㅋㅋ 이건 경하고 대신 전해드립니다 아니고 최백휘 대신 전해드립니다죠~.
-도민호: 우리 경하고.. 남녀공학 된 기분 들고 좋네요
˪김진찬: ㅋㅋㅋㅋ진짜 이 학교 3년 다니면서 이렇게 여자들이 많이 방문한 건 처음 본다 이 페이지;; 고추밭 아니었냐
-하재현: @최백휘 여친 없지 않음?
˪차재겸: 태그 해 봤자임 최백휘 폰 안보니까 ㅋㅋㅋ 글 내려줘요 얘 맨날 올라오는 거 스트레스 받아함
“연예인~ 에이스북에 또 네 얘기 올라왔다. 봤냐?”
“아니.”
“그치~ 우리 최백휘 씨 핸드폰 확인 참 안 하시지.”
“네.”
[근데 요즘은 왜 이렇게 핸드폰을 계속 보세요.]문득 재겸은 자신의 핸드폰 자판을 눌러 백휘에게 카톡을 보냈다.
“…야.”
핸드폰 화면에 새로 뜨는 메시지가 없다. 재겸은 조용히 문제집을 푸는 백휘의 뒷덜미를 잡았다.
“죽고 싶으면 계속해.”
“…배키야, 나 차단했니?”
“글쎄… 잘 모르겠네….”
“야.”
지잉-
재겸이 톡을 보냈을 때와 달리 환하게 핸드폰 화면이 밝아졌다. 아직까지 뒷덜미를 잡고 있는 재겸의 손을 어마어마한 손아귀 힘으로 잡아 치운 백휘는 빠르게 핸드폰 화면을 확인했다.
백휘의 얼굴에 미미한 웃음이 퍼져나갔다가 다시 싸늘해졌다.
“재겸아.”
“…뭐.”
“유겸이 누나 덕현여고 다니지.”
“…근데 왜?”
“나 5년 치 시험지 좀 구해 줄 수 있을까? 부탁할게.”
“꺼져줬으면 좋겠다.”
“그래? 오랜만에 재겸이네 아버지께 연락드리고 싶어지네. 하하. 잘 계시지?”
“야!!!”
책상을 박차고 일어난 재겸은 백휘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뺏으려 애썼다.
방금 잡혔던 손이 빨개져 저릿하게 아파 왔지만 필사적으로 팔을 휘둘렀다. 백휘의 핸드폰 화면에는 호랑이 같은 재겸의 아버지 번호가 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달에 네가 나랑 같이 있다고 거짓말한 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서. 친구 된 도리로 올바르게 살아야겠지.”
“아 줄게!!! 준다고! 안 준다고 했냐, 내가?”
“고마워. 내일까지.”
“아, 미친….”
* * *
언젠가부터 서기고의 점심 축구는 조금 시시해졌다.
“진짜 안 해?”
“…안 해. 저리 가. 너희 땀 냄새 나.”
커다란 손으로 저리 가라 훠이훠이 손짓하는 재언이 없었으니까.
혼자 올 라운더로 공격과 수비, 골키퍼가 없을 땐 키퍼까지 도맡아 하는 재언이 사라진 축구 경기는 너무 느슨해졌다.
“왜 안 하는데!”
“쉿… 형 집중하고 있잖아.”
텅 빈 화면을 보면서 뭘 집중한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졸라 봐도 재언은 요지부동이었다.
“야, 그냥 이리 와.”
민준은 재언을 조르는 반 친구들의 목에 팔을 걸고 잡아당겨 교실 밖으로 나갔다.
비로소 찾아온 평화에 다시 재언은 핸드폰 화면을 바라봤다.
‘어플 초반 틀은 잡아놨으니까. 만나서 물어봐야겠다. 그래야 빨리 완성을 하지. 혹시 뭐 다른 기업에서 출시해 버릴지도 모르는 거잖아? 그러면… 정말 큰일이니까.’
재언은 며칠 내내 컴퓨터를 잡고 매달렸다. 밥 먹다시피 나갔던 체육관에서는 관장님이 삼 일 내내 안 나오는 재언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전화까지 했었다.
-재언아!!!!!
“…형 왜요.”
-어디 아프냐!!!!
“? 아니요.”
-…? 근데 왜 안 나와.
“저 중요한 일 있어서요. 그럼-”
무신경하게 툭. 핸드폰을 끈 재언은 다시 컴퓨터 화면에 집중했다. 잠깐 늘어지려 할 때면 윤슬의 얼굴이 화면에 둥둥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래… 재언이 너 같은 천재들이, 어플을 만들어주면 어떨까!”
그렇게 놀라운 속도로 프로그램 틀 잡기를 완료했다.
‘이제 만나서 색감 확인을 꼭! 해야 되니까.’
[어쩌지 재언아ㅠㅠ] [나 이번에 쪽지시험 진짜…망해서] [이번 주부터 시험공부 해야 될 것 같아] [미안..]푸쉬쉬-
재언의 잔뜩 부풀어 오른 풍선 같은 마음에 누군가 바늘을 찔러 넣은 것처럼 들뜬 기분에 바람이 빠졌다.
‘어쩔 수 없지….’
알겠어, 그럼이라고 치던 핸드폰 화면에 한 번 더 짧게 진동이 왔다.
[영어랑 수학 성적 진짜 처참하다… ㅠㅠㅠㅠㅠ]‘…수학?’
느슨하던 재언의 눈에 안광이 빛났다. 수학이라면 가장 자신 있는 분야였다. 전국구 한 자리 수의 등수를 찍는 올림피아드의 고인물 재언에게 수학 성적이 처참해진 윤슬이라는 건, 얕은 도랑에 빠져버린 아기 강아지를 구해 주는 것만큼이나 쉬웠다.
* * *
[마침 덕현여고 시험문제를 잘 아는 과외선생님을 아는데] [윤슬이 너만 괜찮다면] [주말에 같이 공부할까. 우리.] [나랑 같이 공부하면 어때.] [수학 알려줄 수 있는데] [(이모티콘)] [이해할 때까지 계속 가르쳐줄게]‘이게 웬 떡이냐.’
이번 미션 창이 켜지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계속 한숨만 쉬고 있었는데. 백휘와 재언이에게서 각각 톡이 왔다. 갑자기 동아줄이 내려온 기분이다.
‘주말 하루씩 만나면 되려나?’
흠, 하루에 한 과목씩 하면 어떨까 고민하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답장했다.
난 이틀 내내 열심히 하는 타입은 못 되니까. 하루에 몰아서 해야 된단 말이야.
입력: 혹시 괜찮으면 다른 친구 하나 같이 해도 돼?
* * *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며, 한국의 미를 그대로 담아낸 인테리어라고 찬사받는 경복궁 근처의 정독 도서관.
주말을 맞이해 사람이 조금 더 많은 그곳에, 겉으로는 화기애애해 보이지만 유난히 어색한 테이블이 있었다.
“인사해, 여기는 내 중학교 동창 권재언.”
“…안녕.”
“그리고 여기는 내 중학교… 어? 우리 셋이 같은 중학교네? 신기하다~”
“안녕, 최백휘야.”
재언과 백휘는 둘 다 머릿속으로 같은 생각을 했다.
‘이게 지금… 뭐지?’
둘만 모르지 은근히 잘 통하는 재언과 백휘는 묵묵히 가방 안에서 가져온 문제집을 꺼냈다.
“근데 백휘야. 선생님은 언제 오셔?”
“음?”
“덕현여고 시험 출제 잘 아신다니까 너무 기대된다.”
반짝거리며 눈을 빛내는 윤슬에게 백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잘 뻗은 검지로 본인을 가리키며.
“여기 있잖아.”
“…너?”
“응, 나.”
백휘는 잘 정리되어 있는 종이들을 펼쳤다. 깔끔한 필체로 한 장 한 장 필기가 되어 있는 시험지들이었다.
“친구 누나가 덕현여고 3학년인데, 삼 년 내내 일등을 놓치신 적이 없거든. 여기 그분이 풀었던 예상 문제지랑 실제 시험지.”
“우와…! 실제 시험지도 있어?”
백휘가 윤슬의 관심을 전부 끌어가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 때, 옆에서 커다란 손으로 샤프를 돌리던 재언은 조금 시무룩해졌다.
‘윤슬아… 영어보다 수학이 더 많이 떨어졌다고 했잖아.’
대치동 1타 강사들의 자존심 싸움이 둘 사이에서 일어난 것 같았다. 학생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치열함이 말없이 책상 위를 감돌았다.
백휘가 가져온 영어 문제지들을 보고 감탄하는 윤슬의 앞으로 재언은 자신이 준비해 온 수학 문제지들을 꺼냈다. 그리고서 마지막으로 두꺼운 『정석의 수학』 책을 당당히 올려 둔 재언은 그 책을 본 윤슬이 조용히 시선을 피하는 것을 보고 황급히 다시 가방 안에 처박았다.
“그… 재언아. 나 영어부터 할게.”
재언은 마음속으로 정석의 수학 저자인 홍석대 씨를 원망했다. 백휘는 깔끔하게 웃으면서 윤슬의 앞으로 영어 문제지를 가져다 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