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245)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245화(245/405)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다이아수저를 기다렸다. 약속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온 보람이 있다. 오늘도 서울 야경은 눈이 부시도록 반짝거렸다.
‘…비싼 값 하는군.’
그래, 사실 조금 후회했다. 재벌한테 밥 산다고 객기 부리는 게 아니었는데. 내 성공을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이 커서 그만 여기를 예약해버렸지 뭐야.
나는 메뉴판에 있는 수많은 0을 보며 손을 떨었다. 비싼 값 하는 야경이 수놓아진 이곳은 서울에서 가장 고층을 자랑하는 S그니엘 호텔의 다이닝이다. 나는 우아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시계를 확인했다.
‘약속 시간 십 분 전.’
이제 다이아수저가 곧 도착할 시간이었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준비한 말들을 다시 떠올렸다.
또각- 또각- 또각-
오늘도 일정한 다이아수저의 구둣발 소리를 들으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한 패를 깔 때가 됐다.
* * *
“나 진짜 처음엔 스팸인 줄 알았잖아. 핸드폰 고장 났으니까 문화상품권 100만 원 빨리 보내달라고 할 줄 알았어.”
자리에 앉은 다이아수저는 아직도 내가 밥을 산다고 말한 게 믿기지가 않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 양갈비랑 간단하게 전복구이, 그리고 조금 이따 샴페인 한 병 따면서 치즈 플래터 같이 하자. 괜찮지?”
“네….”
내 카드는 안 괜찮을 것 같군. 이거 한 번이면 떡볶이가 몇 인분이냐.
나는 자연스레 머릿속 서민계산기를 두드렸다. 곧이어 빠르게 준비된 식사는 눈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만큼 화려했다.
“나 이제 좀 기대해 봐도 되나? 드디어 우리 라모레 광고를 맡아 줄 마음이 생긴 거예요?”
다이아수저는 양갈비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입에 쏙 밀어 넣으며 나를 향해 눈짓했다.
“그렇다고 보시면 돼요.”
“아니, 그러면 그런 거지 그렇다고 보는 건 또 뭐야? 나 불확실한 거 굉장히 싫어해~. 이럴 때마다 너무너무너~무 불안하거든.”
다이아수저는 접시 위를 포크로 톡톡 두드리며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할 거야? 이번엔 얼마?”
나는 입 안에서 살살 녹는 양갈비를 우물거리며 창 너머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면 회귀 전에는 생각도 못 할 장소에서, 떠올릴 수도 없던 사람과 밥을 먹고 있는 게 신기하네.
“사실요. 이제 제가 그렇게 크게 돈에 연연하지는 않거든요. 이제 고등학생 때 서윤슬 생각하시면 안 돼요. 알죠, 저 인생필름 이번에 하루네컷 자리 다 먹은 거.”
“아아. 그거 알지. 알짜 자리만 쏙쏙 골라 빼갔던데? 꼭 미리 준비한 것처럼.”
“…뭐. 타이밍이 좋았어요.”
“진짜? 단순히 운이야?”
이상한 데서 예리하네. 아무튼 나는 고개를 대충 끄덕여 주었다.
“이젠 집안 빚도 다 갚았고, 여유롭게 들어오는 현금도 있고…. 근데 전 아직도 마음이 좀 그래요. 이런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닌 것 같거든요. 어느 날 눈 뜨면 다 없어지고 꿈일 거 같고.”
나는 주변을 휘둘러보며 담담히 말했다. 지나치게 고급스러운 다이닝의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 녹아들 듯 잘 어울리는 다이아수저에 비해 나는 어딘가 어색하기만 한 것 같았다.
“어린 나이에 너무 큰 성공을 하게 되면 그래요. 그런 불안감 나도 잘 알지.”
“아니. 아마 모르실걸요.”
그쪽은 태어났을 때부터 갖고 태어난 거니까. 시작점부터 저 체스판의 가장 끝자리, 퀸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폰의 자리를 모른다.
“그래서 그런가. 가끔…. 원래부터 다 갖고 태어난 사람들을 보면 막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아요. 내가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뭘 얼마나 노력해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을 것 같거든요.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실패 한 번 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것 같아요. 걔네는 집안도 있고 부모도 있고 여러 가지 안전장치가 있지만 저는 뒤가 없잖아요.”
내 열등감의 근원지를 말하려니 얼굴이 홧홧해졌다. 그래도 말을 할수록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흠…. 그래. 개천용의 전형적인 딜레마죠. 성공을 하면 할수록 시야가 넓어지니까. 뭐 그리고 아득바득 밑에서 노력할 때는 안 보이겠지만, 막상 금수저들 소셜에 녹아들면 그때부터 얘기가 달라지지. 우습게 봤다가 가까이서 보면 놀라거든요. 우리 다 막 생각 없이 살 것 같고 그런데 막상 들여다보잖아? 어릴 때부터 치열하게 산 사람들이 대부분이지. 그러니까 또 미치는 거야. 자기가 이 조건이었으면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어릴 때부터 나도 질 좋은 교육도 받고 부모의 서포트도 있었으면 더 잘될 수 있었을 텐데. 내 고생과 노력은 대체 뭐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는 거구나. 뭐 이렇게?”
다이아수저는 내 마음을 알겠다는 듯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속마음을 그대로 읽힌 것 같아 어쩐지 부끄럽군.
“윤슬 씨는 이런 마음 없을 줄 알았는데 솔직하게 들으니까 또 신선하네. 하지만 나쁘지 않아. 우리 사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겠지. 그래서 결론이 뭐예요?”
“…한계가 어디인지 알고 싶어요.”
나는 드디어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그간 하제인을 보면서 속이 뒤틀리고 새까만 열등감으로 머릿속이 뒤덮일 때마다 스스로 이만하면 잘한 거라고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다독여야 했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위로를 건넬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사라지지 않는 의문이 계속해서 머리를 들었다.
정말로 여기서 만족해?
“끝까지 한번 가보고 싶어요.”
그래. 사실 나는 지금 여기서 만족하고 멈추고 싶지 않았다.
하제인이 있는 그 자리까지. 눈앞에 막히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 한강이 보이는 자리까지.
“라모레의 모델이 될게요.”
언젠가는 도달할 거라 생각하기 싫었다. 내가 원하는 건 최대한 빨리, 가능하면 지금 당장.
“단순히 PPL이니 브랜디드니 하는 일회성으로 끝낼 마음 없어요. 정식으로 라모레의 모델이 되겠다는 뜻이에요.”
체스에서 폰은 가장 하찮은 역할이다. 앞으로밖에 나갈 수 없고, 그것마저 딱 한 칸씩.
“1년간은 그 어떠한 메이크업 제품도 광고하지 않을 거예요. SNS에 사진 한 장 올리지 않을 거고, 팝업 스토어 방문도 없을 거예요. 정말 오롯이 라모레에서만 서윤슬 이름을 쓸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잡히지 않고 끝까지 가게 된다면.
“사실 이미 시카 관련한 자료조사는 전부 마쳤어요. 라모레 요즘 주식 떨어진 것도 그때 같이 체크해 봤고요. 엔지생건은 쭉 상승세인 거에 비해…. 침체기가 시작됐더라구요.”
폰은 퀸이 된다.
“제가 해결해 드릴 수 있어요. 라모레의 대표 라인으로 진정 수분 시카 라인을 자리매김하게 만들 수 있어요.”
나는 드디어 다이아수저에게 준비한 조건을 말했다.
“대신…. 제 뒷배가 되어주세요.”
“뭐?”
“언제까지나 혼자서 앞만 보고 달릴 수는 없어요. 제 뒤에 있어 줄 누군가가 필요해요. 저는 그게 라모레였으면 좋겠어요.”
자본주의 세상에서 MCN에 소속되지 않는 힘없는 인플루언서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 줄 이름. 그건 바로 대기업이다.
* * *
다이아수저는 믿기지 않았다.
“…난 그냥…. 단순히 브랜디드 영상 정도만 생각했는데….”
인생이 꼬여도 너무 꼬였다. 아주 제대로, 단단히 꼬였다.
“지금 이걸, 어떻게 하지?!”
다이아수저는 오늘도 집으로 돌아와 자연스럽게 야근 준비에 들어갔다. 노트북을 켜고, 태블릿을 열고, 데스크톱까지 준비했다. 하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까 전 윤슬이 내 건 어마어마한 딜 때문이었다.
“선택하세요. 젬스톤을 등질 건지, 저를 척질 건지.”
윤슬의 뒷배가 되어달라는 요구는 단순히 금전 관계가 얽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예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소속된 인플루언서만 백 명이 넘는 젬스톤에게 등을 돌리라는 말은 그들을 전부 적으로 돌리라는 뜻과 같았다.
“젬스톤에 라모레 이름으로 들어가는 광고 전부 끊어주세요.”
“아, 아니아니아니 잠깐. 잠깐만. 해당 인튜버들이 합심해서 라모레 공격이라도 하면? 그건 어떻게 해요? 아니. 왜 갑자기 젬스톤이야? 왜?”
말도 안 되는 윤슬의 조건에 다이아수저는 기겁했다. 지금은 모든 광고 중 인튜브 광고를 가장 주력으로 미는 시기였다. 그런데 인튜버들에게 광고를 끊으라니?
귀를 의심한 다이아수저에게 윤슬은 자료를 내밀었다.
“지금 젬스톤에서 절 묻으려고 준비 중이거든요. 걔네한테 계속 광고 주실 거면 저랑은 이제 남남 될 준비 하셔야 해요. 남도 아니지, 정확히 말하면요. 저는 젬스톤이랑 같이 라모레도 끝낼 거예요.”
윤슬이 준비한 자료는 노골적이고, 치졸하고, 비열했다. 인튜버별로 잘 정리되어 있는 자료를 넘겨보던 다이아수저는 손을 덜덜 떨었다.
“이대로 하나하나 족치게…? 자료조사는 언제 했대….”
“저 밤새는 거 잘해요. 아무튼 인튜버 개개인을 다 시장에서 치워버리면 젬스톤도 오래 못 버티겠죠.”
태블릿 안에는 인튜버별로 아직 터지지 않은 논란이 적혀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들을 알고 있던 것 같은 윤슬의 준비는 철저했다.
“무너뜨리기 전에 돈줄부터 확실히 끊어놓고 싶어요. 현금 흐름을 말려둬야 사람 마음이 급해서 한 번 실수할 거 두 번 세 번 할 테니까.”
시간을 달라는 다이아수저의 말에 윤슬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이아수저가 마음을 놓으려던 찰나, 윤슬이 환하게 웃으며 뱉은 마지막 말이 다이아수저에게 협박으로 들려왔다.
“생각이야 자유인데…. 기한은 정확히 언제까지인지 저도 몰라요. 수틀리면 저 그냥 이거 들고 엔지생건 쪽으로 붙을 거예요.”
“뭐?! 그런 게 어디 있어!”
“제 마음이죠. 아, 그리고 제가 어디에 붙어도 라모레한테는 꼭 꾸준히 원한을 갖고 살 거예요. 호시탐탐 틈만 노리다가 여차하면 찌를 거예요. 제 끈기 아시죠?”
정정하자. 협박으로 들린 게 아니라 누가 들어도 협박이었다. 내가 내민 손을 지금 잡지 않으면 널 절벽에서 밀어뜨리겠다는 윤슬의 말에 다이아수저는 덜덜 떨었다.
“뭘 골라도 적을 만드는 거잖아-!!!”
다이아수저는 머리를 쥐어뜯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