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249)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249화(249/405)
현수정은 부스스 일어나 뻑뻑한 눈을 비볐다. 오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 현수정은 오늘도 깨질 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시간을 확인했다.
“한 시간 잤나….”
오랜 슬럼프가 점점 더 깊어질수록 현수정이 잠드는 시간도 짧아지고 있었다. 이전이었으면 잠도 안 오는데 일이나 하자며 신나게 일에 몰두했을 텐데, 지금의 현수정은 슬프게도 휴식기였다.
“후….”
할 게 없었다는 말이다. 현수정은 습관처럼 커피를 마시려다 멈칫했다. 속이 쓰려 더 이상 커피가 몸에 받지 않았다. 요즘 현수정은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 인플루언서 쪽은 아무래도 광고주 쪽에서 밀고 싶은 애가 따로 있는 것 같은데…. 내가 현 PD 안목 알지. 아는데. 아이 거 참…. 알잖아? 이 바닥 돌아가는 거.”
특히 어제 걸려 온 전화를 떠올린 현수정은 미간을 사정없이 찌푸렸다.
“그놈의 빽, 빽, 빽.”
바닥에서부터 기어 올라온 현수정이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될 줄 알았다.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아~. 그 사람?’하고 알아주는 PD가 된다면 무엇이든지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돈과 빽으로 돌아가는 곳이었다.
“X발 진짜 X 같아서…. 방송이 그냥 만들어지는 줄 아나.”
하지만 스타 PD가 되어도 현수정은 제작비 지원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캐스팅 파워가 조금 강력해졌을 뿐이지 아직도 윗분들이 꽂아 넣고 싶어 하는 몇은 반드시 넣어야 하는 몸이었다.
“보나 마나 가족, 친척, 뭐 그딴 거겠지….”
현수정은 마침 잠이 깬 김에 핸드폰을 확인했다. 밀린 알림들 사이에는 어제 조연출에게 알아보라 지시한 그 인플루언서의 자료가 담겨 있었다.
[서윤슬]Intube 서윤슬
Youstagram @seo_yoonseul
직업: 학생 (한국대 재학 중) , 인생필름 창업주
최근 콜라보: 성.사.비/ 모알/ 대학매일 (with 물결)
“아, 얘…. 걔네?”
현수정의 눈과 귀는 항상 뚫려 있었다. 어느 정도 유명세를 가지고 있다 하면 현수정에게 어떻게든 들려 왔으니까. 조금이라도 올드해지면 살아남기가 힘든 방송계,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인플루언서 시장은 현수정을 비롯해 다른 스타 PD들도 눈독을 들이고 있는 블루오션이었다.
“얘 정도면 나쁘지는 않지만. 허….”
윤슬의 한국대 합격 영상은 현수정도 실시간 인기 동영상에서 본 적이 있었다. 대중에게 손쉽게 호감을 사기 쉬운 비주얼, 응원하고 싶어지는 서사, 어딘가 풋풋한 편집 같은 것들이 긍정적으로 눈에 들어왔었다. 현수정도 그 영상에 좋아요 버튼을 누르기도 했고.
“허 참나. 빽이 있었네?”
현수정은 자신이 아직도 방송물을 덜 먹었다고 자조하며 웃었다. 제작비를 지원하는 기업에서 밀어줄 정도였다면 업로드되는 모든 영상은 연출된 것이었을 테니까. OTT 서비스에 현수정이 백지 계약을 마쳤다는 소문이 돌자마자 여기저기서 자신들이 밀고 싶은 인플루언서를 들이밀고 있었다. 한국 최고의 MCN 회사라는 젬스톤도 현수정에게 끊임없이 연락을 해왔다.
“아, 머리 아파….”
현수정은 일단 윤슬에 대해 확인해 보기로 했다. 인튜브에 윤슬의 계정을 검색하자 마침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현수정은 망설임 없이 라이브 방송을 클릭했다.
* * *
-ㅋㅋㅋㅋ해뜬다 해뜬다
-커피타임 시작하자고
-진짜 감성…이라는걸 좀 곁들여보세요 대장… 언제까지 파독광부처럼 커피마실건데ㅠ
벌써 윤슬의 시험 기간 라이브 방송은 삼 일째였다. 첫날 커피를 마셨던 윤슬은 둘째 날도 똑같은 시간에 커피를 마셨고, 구독자들은 해가 뜨면 커피로 시작하는 윤슬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드르륵-
오늘도 오전 여섯 시쯤이 되자 윤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도 라이브 방송을 촬영하고 있는 핸드폰은 그 자리에 두고 윤슬은 사라졌다. 저 멀리에서 들리는 캡슐 커피를 내리는 소리와 얼음을 담는 소리가 잔잔히 들렸다.
-왔다왔다
-메뉴라도 말해줘ㅠㅠㅋㅋㅋㅋ 대장 바닐라라떼야? 그냥라떼야? 캬라멜라떼야 뭐야
-광고지만 절대 메뉴를 말해주지 않는 저 뚝심… 광고주 쫓아오겠다
곧이어 돌아온 윤슬의 손에는 오늘도 똑같은 유리컵이 들려 있었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컵에 새겨져 있는 로고였다.
-백록화??? 저건뭐임
-ㅋㅋㅋㅋㅋ아 자꾸 복선처럼 깔지말라곸ㅋㅋㅋㅋㅋ
-아하 한국우유에서 낸 브랜드 백록화 1327의 커피를 마시면서 우리대장이 지금 하루를 시작한다는거지? 알겠어알겠어~~
윤슬은 일부러 보란 듯이 로고가 잘 보이도록 컵을 잡고 한 모금 마셨다. 오늘도 커피를 마시는 순간에는 가만히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있는 윤슬은 완벽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커튼 사이로 화사한 아침의 햇살이 들어오는 장면은 자연스러운 커피 CF의 한 장면 같았다.
“…얘 봐라?”
현수정 PD는 그런 윤슬을 보며 빽이 있을 만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저 정도로 자연스러운 PPL은 방송계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시청자들에게 부담감을 갖게 만드는 제품 소개 따위는 쿨하게 넘겨 버리고, 그 커피의 향과 맛을 궁금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커피가 주는 힘. 휴식까지 내포하는 모습을 보여주다니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잘하네?”
윤슬은 커피를 절반쯤 마시면서 가만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리고서는 처음으로 핸드폰을 바라봤다.
-꺅
-나랑 눈마주쳤어!
-비켜 나야~~!!! 내댓글 한번만 읽어조라
윤슬이 시선을 한 번 던지자 잠시 느슨했던 댓글창이 빠르게 올라갔다. 현수정은 흥미롭게 상황을 지켜봤다.
“안녕…. 다들 공부 잘 했어요? 저 오늘은 아침 수업이라 조금만 더 하다 나가려구요.”
-우린 너만봤어 오로지 너하나만
-ㅋㅋㅋㅋ여기 공부한 사람 너 혼자야
-아닌데 나는 공부했는데? 다 공부 안했다고 하지마라ㅠㅠㅠㅠ두번다시 스터디캠 안키면 너네가 책임짐?
윤슬이 한마디 하자 댓글창의 속도가 믿을 수 없이 빨라졌다. 현재 시청자는 3만 명 남짓한 숫자였다. 그 시청자들 모두가 윤슬의 콘크리트층으로 보였다.
“아침 안 먹어도 돼? 어, 한 아홉 시쯤에 간단하게 먹으려구요. 여러분은 먹고 보는 거야?”
현수정은 자연스러운 윤슬의 대화를 보며 직감했다.
‘이거, 반감 살까 봐 자연스럽게 오늘만 입 연 거구나!’
댓글의 분위기를 보니 요 며칠간 말 한마디 없이 공부만 한 윤슬이었다. 일부러 새로운 로고가 새겨진 컵을 든 이 순간.
“속 안 쓰려? 아침부터 왜 커피 마셔. 이거 근데 우유 들어간 거라 부드러워서…. 속 안 쓰려요. 괜찮아요. 알잖아. 커피 없이 시험 기간 어떻게 견뎌~. 무슨 커피냐고? 알려줄까 말까.”
타이밍 좋게 구독자들과 대화를 한다는 건.
“맞아요. 한국우유. 백록화 1327입니다. 편의점에서 파냐고? 아니아니. 이거 캡슐 커피라…. 근데 종로 쪽에 카페가 있어요.”
이건 큰 그림이었다.
‘아침부터 커피를 마시게 되면 다들 하는 공통적인 질문이 있지…. 속 안 쓰리냐, 배탈 안 나냐. 근데 설마 이것까지 노렸다고?’
현수정은 라떼 따위 마시지 않는 인간이었다. 샷을 추가한 아메리카노만 고집하는 타입이었지만 자연스럽게 윤슬의 의도대로 머릿속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빈속이어도 괜찮다. 한국우유니까! 자신도 모르게 달달한 시럽이 들어간 라떼의 부드러운 맛이 혀끝에서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벌써 30분이나 쉬었네. 저 그럼 이제 다시 공부할게요~. 다들 힘냅시다. 출근 잘 하고 학교도 잘 가고. 백수라고? 아이 그럼 이제 잘 자고. 하하.”
현수정은 윤슬의 라이브 방송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윤슬의 모든 SNS 계정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거 빽이라고 우습게 봐서는 안 될 것 같았다.
* * *
20대 쇼핑 검색
[백록화 1327] [한국우유 커피] [백록화 캡슐]윤슬이 라이브 방송에서 백록화 1327을 언급한 지 몇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쇼핑 플랫폼에 이름이 뜨기 시작했다. 뿐만이 아니라 급상승 키워드까지 달고 순위가 점점 올라갔다.
“와!!! 대박 미쳤다!!!”
“급상승 키워드, 이거 진짜 얼마짜리인데…!”
인터넷 쇼핑에서 인기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건 대부분이 저가 브랜드였다. 특히 커피의 경우는 손쉽게 집이나 회사에서 마실 수 있는 캔이나 페트병에 들어가 있는 제품들. 그리고 간편하게 타 마시는 믹스커피가 우세였다.
“말도 안 돼. 이거 캡슐인데….”
그 와중에 비싼 데다 손이 가는 캡슐 커피는 상위권을 차지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이미 선발대가 자리를 차지한 다음 비켜주지 않았으니 더욱 그랬다. 고급화 이미지를 탄탄히 구성한 해외 브랜드도 아니고, 가장 먼저 국내로 들어와 캡슐 커피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브랜드도 아닌 백록화 1327이 캡슐 커피 최상단에 자리 잡았다.
[유머게시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알 것 같은 그 느낌…jpg](윤슬이 해탈한 표정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장면 캡처.jpg)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나 지금도 저 표정으로 커피마시는 중이었음
-안 마시면 뒤진다고 진짜… 이건 생명수라고ㅅㅂ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참 많은 일이 있었던 서사가 담긴 표정
커뮤니티에서도 백록화 1327 로고가 새겨진 컵 사진이 밈으로 돌기 시작했다. SNS에서도 그새 천 단위의 공유가 진행되고 있었다.
[Intube] [시험기간을 맞은 대학생들 사찰]조회수 172,001회
그새 인튜브에는 10초짜리 영상으로 클립이 돌아다녔다. 마치 타이밍을 짜 맞추기라도 한 것같이 완벽했다. 한국우유 컵을 들고 있던 장면이 아닌 백록화 1327 컵을 들고 있던 장면이 올라왔다.
“팀장님, 팀장님!”
모니터링을 하고 있던 백록화 1327의 마케팅 팀은 물이 제대로 들어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저희 더치 원액이요. 팝업 스토어 진행하자는데요?”
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건 백록화 1327 마케팅 팀뿐만이 아니었다. 한국우유 본사에서도 이토록 빠르게 반응이 오고 있는 상황을 놓치면 안 된다는 판단을 내렸다.
저 구석에 처박혀 있던 요구르트를 가장 앞에 둘 수 있는 한 사람.
서윤슬 효과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