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266)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266화(266/405)
그 말에 나는 또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알바비 나오는 거 봐서.”
동기들은 별말 아니었다는 듯 금세 화제를 돌렸다.
“아, 국장받은 애들은 좋겠다…. 그걸로 옷 사면 되니까.”
“내 장바구니 삼백만 원 넘었음.”
나는 시선은 핸드폰에 둔 채 씁쓸한 표정으로 침묵했다. 유신사 사이트를 구경하는 친구들의 핸드폰과는 달리 몇 년 전에 나온 기종이었다.
그 뒤로도 촬영은 한 번의 NG 없이 진행되었다. 그야 정말 내 얘기였으니까.
* * *
“와….”
“진짜….”
“잘 먹는다….”
점심시간. 윤슬은 편의점 샌드위치를 세 개째 먹고 있었다.
‘틈틈이 열량 비축해 놓고 개강과 동시에 불태울 준비를 해야 하거든.’
윤슬의 주위 출연자들은 모두 알파카 먹이 주기 체험을 하는 것처럼 손에 들린 과자들을 내밀었다.
“이것도 먹어봐.”
“이것도.”
빨리 먹고 자연스레 쓰레기를 분리수거 하던 재언과 백휘는 한 발치 뒤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주는 대로 받아먹고 있는 윤슬의 초점이 미묘하게 먼 곳을 향해 있었다. 생각에 잠겼을 때 나오는 그 표정이었다.
“…….”
“…….”
불길했다.
“야~. 그건 딱 내가 촬영까지만. 어? 촬영까지만 하면 손 떼는 그런 거야. 편집이고 뭐고 다 언니들이 한다니까?”
…이번에도 진한 사기의 향기가 났다.
「[미션 완료까지 D-day 19!]」
* * *
전국의 대학생들이 개강을 코앞에 둔 어느 금요일, 윤슬의 스토리에는 한 사진이 올라왔다.
[Youstastory]즐거웠던 촬영 (﹡ˆ﹀ˆ﹡)♡ 오랜만에 만난 선배님 채널에 출연했어요!
링크: www.intube.com/…
윤슬의 스토리 알림을 해 둔 사람들이 곧장 클릭했다. 링크를 타고 들어가니 새로운 계정이 보였다.
“어? 이건 서윤슬 계정 아닌데.”
대학일기라는 이름의 채널명에 새롭게 업로드된 영상이 있었다. 어쩐지 평소의 윤슬과는 달리 어두워 보이는 모습의 썸네일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Intube] [나한테는 별것인 것들. 흙수저의 대학일기] 17:00영상을 클릭하자 곧이어 식당에서 쌓인 그릇들을 설거지하는 윤슬이 나왔다.
―…….
아무 말 없이 고무장갑을 낀 손을 빠르게 움직이는 영상 속 윤슬은 한두 번 한 솜씨가 아닌 것 같았다.
―아가씨! 여기 김치 좀 더 줘!
―네!!! 잠시만요!!!
설거지하던 윤슬은 빠르게 고무장갑을 벗고 앵글 밖으로 사라졌다. 어느새 피크 타임을 지나 한산해진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던 윤슬의 곁에서 사장이 말했다.
―참 손님도 없고, 이렇게 쉬면서 돈 받아가는 알바 별로 없다, 그치?
―하하하….
―에이, 이럴 게 아니다. 오늘 일찍 퇴근하자. 그것까지만 정리하고 들어가 봐.
―…….
―표정이 왜 그래. 일찍 퇴근시켜주면 좋지 뭘! 이런 거 가지고. 오늘도 수고했어~? 응~?
이윽고 사장은 핸드폰을 가로로 돌려 시끄러운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미적거리는 손길로 테이블을 정리하던 윤슬은 가만히 바닥을 내려다봤다.
화면에는 낡은 컨버스화가 잡혔다.
내레이션: 두 시간 일찍 하는 퇴근, 남들은 기뻐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깎였을 두 시간짜리 시급이 아깝다.
앞치마를 벗고 퇴근 준비를 하는 윤슬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룹 채팅] (참여자 31명) [야 내일 김교수님 수업 듣는사람?ㅋㅋㅋ ㅠㅠ 나 혼자앉을까봐 떠는중] [화장실에서 밥먹을 때 됐다] [죽을래ㅜ 미친아]동기들의 연락을 쓱 눈으로만 읽고 내린 윤슬은 터덜터덜 식당을 나섰다. 회색빛 거리를 걷는 윤슬의 옆에는 끝없는 단톡창이 CG로 떠올랐다.
[나 일본여행 갔다가 과자 사온거 아직 남았는데ㅋㅋㅋㅋ] [내일 나 보면 달라고 해 그럼 선착순으로 드림] [ㅁㅊㄷ 개맛있는걸로 골라왔네] [학기중에도 여행 죽어라 다니더니 방학때는 더 미쳤구나]윤슬의 시야에 마침 버스 정류장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유신사 화보였다. 푸른 하늘을 배경 삼아 힘껏 뛰쳐나가고 있는 모델의 아래에는 유신사 로고와 글자가 써져 있었다.
[별거 아니잖아.]윤슬은 도착까지 10여 분이 남은 버스 시간을 바라보다 다시 유신사 화보로 눈을 돌렸다. 때맞춰 윤슬의 옆에 떠 있는 동기들의 단톡방은 더욱 활발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당연하지ㅋㅋㅋ 지금 아니면 언제 여행가냐] [ㅁㅈ 우리엄마도 방학때 유럽여행 다녀오라고 뭐라 하든데ㅋㅋㅋ] [돈 엄마가 내주겠다고]내레이션: 별거 아니잖아? …글쎄….
끼익-
정차 소리와 함께 윤슬이 탈 버스가 왔다. 윤슬은 천천히 버스 계단으로 향했다. 카메라는 윤슬이 신고 있는 낡은 운동화를 잡았다.
하나하나 자연스러운 대사와 행동들에 시청자들은 점점 빠져들기 시작했다. 마치 진짜로 하나의 짧은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시청자 수: 3,142명
“야! 너 그동안 뭐하고 지냈어~. 연락도 없고 유스타도 안 하고.”
“나? 나야 뭐 그냥. 알바하고 지냈지.”
“알바를 종일 해? 아무튼 이따 너도 갈 거지? 애들 술 마시기로 했는데.”
“그… 시간 되면.”
이어진 영상 속, 강의실에서 알바 구인 사이트를 확인하고 있던 윤슬은 신이 난 동기들 사이에서 겉도는 듯했다. 방학 때 뭐하고 지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동기들 사이에서 윤슬은 가만히 연락이 오지 않는 핸드폰만 바라봤다.
* * *
“…….”
그 시각 현수정은 윤슬이 나온 인튜브 영상을 보고 있었다. 삼천 명의 시청자들은 채팅이 활발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반응은 좋았다.
-와.. 저거 진짜 공감되지…
-겉도는 느낌 어떻게 저렇게 잘살렸냐ㅠㅠㅋㅋㅋㅋ
윤슬의 연기력에 대한 칭찬 절반, 그리고 공감에 대한 의견이 절반이었다. 현수정은 지난 프랑스 귀족 브이로그부터 윤슬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짙어졌다. 이렇다 할 캐릭터로 만들기가 애매했던 윤슬이었다. 하지만 윤슬은 현수정의 편견을 보란 듯이 깨부수고 있었다.
‘금수저 귀족 캐릭터 잡아 둔 지 얼마 안 됐는데, 이건 또 언제 준비한 거지?’
콕콕콕콕콕.
오늘도 현수정의 머리 위에 앉은 제비는 열심히 부리로 쪼아댔다. 현수정은 뭔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아이디어에 괴로워했다. 본디 캐릭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상대를 잘 파악해야 하는 법. 하지만 현수정에게 있어 윤슬은 여전히 미지의 인물이었다.
장면은 자연스레 또다시 넘어갔다.
―오늘도 일찍 오셨네요.
―네, 뭐. 그렇죠.
다음번 윤슬의 알바 장소는 편의점이었다. 시재를 점검한 윤슬은 곧 폐기될 김밥 목록을 확인했다.
[GU고기냠냠 도시락♥ 서비스로 볶음김치+1개!] [신제품! 치킨마요소스 도시락 구매 시 이온음료 1캔 제공]알록달록 화사한 폰트가 적혀 있는 신제품들을 물끄러미 보던 윤슬은 다시 삼각김밥으로 눈을 돌렸다.
꼬르륵-
윤슬의 뱃속에서 소리가 울렸다. 김밥 폐기 시간까지는 30분이 남아 있었다. 그때였다.
딸랑-!
한 무리의 손님들이 들어왔다.
―아, 개배고프다!!!
시끄럽게 몰려온 손님들은 이윽고 곧 폐기될 김밥을 모조리 구매해 가버렸다. 어느새 텅 비어버린 매대를 바라보던 윤슬은 한숨을 쉬고 가장 싼 작은 컵라면에 물을 부었다.
조용한 라면이 익길 기다리던 윤슬은 3분이 지나자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아가씨 든힐 하나!!!
―네. 뭐로 드릴까요?
―그 있잖아 그! 그그! 저거저거! 에헤이 그거 말고! 답답하네, 참.
막무가내인 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엥? 저 진짜 성인인데요? 저 지난번엔 그냥 주셨는데.
―…가세요. 그냥….
―여기 사진으로 있잖아요. 이 민증 저라니까요?
그렇게 몇 손님을 상대하고 나자 어느새 윤슬의 컵라면은 퉁퉁 불어 있었다.
―하아.
한숨을 쉬던 윤슬은 나무젓가락을 둘로 쪼개 후루룩 식어버린 컵라면을 아무렇게나 먹었다. 윤슬이 편의점을 나오자 어느새 어슴푸레 아침 해가 떠올랐다.
현수정은 차츰 오르고 있는 시청자 수를 확인했다.
▶시청자 수: 12,547명
어느새 시청자 수가 또 늘어나 있었다. 7만 명짜리 채널에서 10%가 넘게 실시간 영상을 봐 준다는 건, 대부분 윤슬이 끌어온 시청자라는 말이었다.
현수정은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어? 이거 옷 어디 거야?
윤슬의 옷을 만지며 묻는 동기에게 윤슬은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이거? 어 뭐…. 그냥 보세.
―쇼핑몰 어디 건데? 나 이런 거 비슷한 거 본 거 같은데. 어디더라.
―어어! 이거 유신사 인기 순위에서 봤던 거 아님? 이거 봐. 똑같지.
동기는 핸드폰 화면을 윤슬에게 보여 주었다. 새 옷에 들뜬 동기들과는 달리 윤슬은 썩 내키는 듯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야 넌 왜 맨날 보세에서만 사~. 유신사 지금 세일하는데.
―이거 너랑 잘 어울릴 거 같다. 이거 어때? 대박이지.
―진짜 미쳤다. 쿠폰 먹일 수 있나?
―안 될걸? 할인율 세잖아.
―아니! 쿠폰 먹일 수 있어! 유신사 지금 미니 블랙프라이데이잖아. 그냥 블랙프라이데이는 10월인데, 이거 개강맞이 할인에다가 여름 제품 할인, 가을 신제품 할인이랑 작년 시즌 제품 할인까지 있어! 쿠폰은 등급에 따라 지급된대.
“참나. PPL 좀 치네.”
아까 전 유신사의 버스 광고도 일부러 잡았다는 느낌이 왔다. 현수정은 아마추어치고는 꽤나 거슬리지 않는 채널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다시 동기들은 모두 윤슬을 향해 물었다.
―이렇게 싼 데 진짜 안 사?
윤슬은 대답했다.
―그, 나는 좀 더 보다가.
―에이~. 별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한참 골라. 시즌 다 지나가겠다.
―맞아! 9월 30일까지란 말이야.
자기들끼리 장바구니 안에 있는 옷을 서로 골라주는 동기들 사이로 윤슬의 핸드폰이 잡혔다. 전부 최신형인 동기들의 것과는 달리 모서리가 닳고 깨진 핸드폰이었다.
지잉-
윤슬의 핸드폰에 마침 알림이 왔다. 윤슬의 옆으로 화면이 띄워졌다.
[알바 면접 언제 가능해요?]그러자 윤슬의 얼굴이 미묘하게 밝아졌다.
* * *
성공적으로 알바 면접을 본 윤슬이었다.
―그래서. 알바 시작은 언제부터 할 수 있어요?
―내일부터도 가능합니다.
시세보다 높은 시급, 상냥해 보이는 고용주. 시청자들이 보아도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좋은 알바였다.
―흠, 근데 시간을 좀 더 앞당길 수도 있어요? 우리가 사람이 좀 급한데.
―네? 시간을 앞당기면…. 얼만큼요….?
―좀 많이. 앞 타임 알바가 아예 잠수를 타 버려서. 네 시간 괜찮아요? 대신 그만큼 쉬는 시간 지급도 하고 식사 제공도 할게.
윤슬은 잠시 고민해보겠다고 말한 뒤 알바 면접장을 나갔다. 오늘도 가득 쌓인 설거지를 하던 윤슬은 방금 전의 말을 떠올렸다.
내레이션: 최대한 빨리 말해주면 좋겠어요. 이 뒤로도 면접 잡혀 있긴 한데, 나는 학생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 윤슬의 옆으로 온 식당 사장은 또다시 조기 퇴근을 시켰다.
―오늘 피곤해 보이는데 일찍 들어가자, 응?
자신의 할 말이 끝나자마자 등을 돌려 홀로 가려는 사장에게 윤슬은 입술을 달싹이다 말했다.
―매번 이러시는 거…. 아닌 거 같아요.
―엉? 뭐가?
―저는 알바 시간 다 비워둔 건데…. 계속 손님 없으면 조기 퇴근시키시고, 알바비 그만큼…. 덜 주시는 거요.
우물쭈물 말하는 것 같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사장은 별 어이없는 말 다 보겠다는 듯 제 허리에 손을 올렸다.
―허 참! 그럼 놀면서 돈 받아가려고 했냐?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일 있을 땐 하고 없을 땐 가는 게 맞는 거지!!!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아주 돈독이 올라서. 참. 별게 다 문제다 그치? 아 그럼, 그만두던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사장을 앞에 두고 윤슬은 앞치마를 벗었다. 어느새 현수정 역시 흥미진진하게 화면을 보고 있었다. 알바 한 번 해보지 않은 스무 살 여자애치고는 지나치게 탁월한 연기력이었다. 마치 저랬던 적이 있는 것처럼.
―그럼 저 그만둘게요.
예상외의 답변이라는 듯이 식당 사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