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27)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27화(27/405)
조은주는 버리지 않고 있었던 택배 송장 종이를 꺼내 윤슬의 집을 로드맵에 검색해봤다.
“안 버리길 잘했다.”
생각해 보면 반 애들이 윤슬의 집에 놀러 가 봤다는 얘기는 한 번도 못 들어봤다.
‘윤슬의 SNS에서 방이 나오긴 해도 그게 집은 아니잖아? 어쩌면 방만 그럴싸하게 꾸며 둔 걸지도.’
전체적인 집 사진을 한 번도 올리지 않은 걸 보면 망한 게 확실할지도 모른다.
은주의 머릿속에서 윤슬은 부러운 애였다가, 또 그 정도 급은 아니었다가, 그렇게 마음대로 붙여진 등급표가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런 은주의 핸드폰 화면에는 윤슬의 집안이 망했다는 추측이 빗나간, 커다란 한옥 저택이 있었다.
‘뭐야, 여전히 잘 사네…?’
로드맵으로 훑어봤을 때도 고급스러운 저택이었다. 은주는 윤슬이 왜 굳이 압구정에서 여기로 전학을 왔는지 끝없이 추측했다.
혹시 학교폭력 관련인 건 아닐까? 반에서 친구들과 싸웠었나? 보니까 좀 남자가 많은 타입인 것 같은데, 그거 때문에 사이가 안 좋아졌을지도 모른다.
머릿속으로 가장 유력한 전학 이유를 떠올려 보며 다시 유스타에 들어갔을 때.
“아! 씨….”
나연의 SNS가 비공개 처리되어 있었다.
* * *
“슬~. 나 너무 무서워. 팔에 소름 돋았어.”
전화로 얘기하자 나연이는 고맙게도 바로 SNS를 비공개 처리해 줬다. 친한 친구들끼리 댓글 다는 계정이라 비공개 처리해도 아무 상관없다며.
‘요즘 나연이랑 자주 만났으니까 백 프로 계정 확인 다 해봤을 것 같은데….’
나연이는 키키 게스트에서 에디터를 하는 걸 알게 된 뒤로 뭐 도와줄 게 없냐는 말을 인사처럼 했다. 내가 전학을 가고 나서부터 물가에 내놓은 어린 애처럼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DDP에서 초대받아 갔을 때 내 사진을 찍으면서 재밌어하던 게 생각이 나서 그럼 사진 찍는 걸 몇 번 도와달라고 했었다.
이번 달엔 마침 분위기를 타야 했거든.
[E-mail] [4월 PPL 리스트 공유의 건] 안녕하세요 윤슬님! 이번 달 브랜드…3월에 개강 추천템, 새 학기 추천템으로 화장품 브랜드 PPL을 몇 번 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한 달 내내 인기 글 1위부터 5위까지 모두 내가 작성한 글이었으니까.
그 덕분인지 이번 달 PPL은 제시한 금액의 앞자리 수가 달라져 있었다.
“와, 거의 두 배….”
역시 광고계는 돈이 빠르고 크게 도는 법이다. 포털 사이트에 작게 배너를 거는 것만으로도 일반인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금액이 오가니까.
회귀 전 좋좋소에서 벌던 몇 달 월급이 한 달 만에 들어왔다.
‘이왕 하는 일 좀 더 제대로 해 볼까.’
그 생각으로 회귀 전 반응이 제일 좋았던 금수저 브랜딩을 좀 했다.
인터넷에서 하는 브랜딩이라는 건 생각보다 쉽다. 돈 되는 거라면 일단 닥치고 다 물어오는 개 같은 사장 덕분에 나는 모든 커뮤니티와 바이럴 판에 통달했다.
일단 아이디는 많을수록 좋다. 그리고 쇼핑이 취미인 나연이 수없이 많이 가지고 있는 명품 브랜드를 활용한다. 지난번 소소한 유행으로 만들어 둔 인마이백이라는 주제를 사용한다.
[일상 게시판] 휴강이라 심심해서 올려보는 인마이백 (댓글 103)(사진)
볼 거 없는 내 가방!ㅋㅋ 태블릿은 토익 공부 한다고 샀는데 이걸로 인튜브만 보고 있다ㅠㅠㅋㅋㅋ
사탕 틴 케이스 안에는 면봉이랑 머리끈. 이거 없으면 안 됨 진심 지성이라 밤 되면 아이라인 번져서 눈 밑 수정 필수 그리고 머리끈은 두 세 개만 챙기면 나중에 필요할 때는 꼭 없음 걍 삼천 개 있어야 마음이 편함 그리고 이거 사탕 맛있음
(사진)
쿠션은 이번에 새로 산 건데 앞으로 무덤까지 같이 갈 예정임
1교시 있는 날 대충 머리만 감고 급하게 학교 갔는데 내가 쿠션을 두고 갔거든 근데 그날 전 남친 같이 듣는 강의가 있었단 말임… 참고로 내가 차인 거ㅋㅋㅋㅋㅋㅅㅂ 너넨 CC절대 하지마라 사람 할 게 못 된다
그래서 동기한테 급하게 파우치 빌렸는데 피부표현 걍 미쳤더라 무너짐도 개 쩔어서 그날 바로 삼 나 때문에 우리 과 지성 다 샀어 아르미니 저렴이 버전임 내가 아르미니만 썼었는데 그건 지속력이 개망이었음 그래서 바로 갈아탐ㅋㅋㅋ 근데 퍼프는 쓰레기임 다른 걸로 발라라ㅠ
이런 식으로 글을 올린다. 개인사를 넣어야 한다. 그래야 조금 더 리얼해 보이니까.
감 없는 바이럴 회사들은 꼭 성분은 뭔지 주절주절 말하고 전문가 추천이니 뭐니 말을 장황하게 한다. 그리고 어색하게 단점 하나 없다고 강조해서 걸리는 거다.
‘그런 바이럴은 안 하느니만 못하지….’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1교시 지각, 과 CC 전 남친 두 가지 키워드를 넣고 지성피부임을 강조. 마지막으로 자연스럽게 상위 브랜드를 언급한다.
로드 숍과 로드 숍의 비교보다는 로드 숍과 명품 화장품의 비교가 더 자극적이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상위의 것을 궁금해하지만 모두가 상위의 것을 구매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못지않게 좋다는 걸 말해 주는 게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방법이다.
‘단점은 하나 꼭 넣어줘야지.’
색감이나 지속력, 커버력 같은 걸 단점으로 언급하는 것보다는 만만한 퍼프가 최고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유스타에 당장 올려도 될 정도로 안정적인 구도의 예쁜 사진과 구석에 존재감이 그리 크지 않은 명품 백이 가장 중요하다. 이게 조회수를 올리는 일등 공신이거든.
나연의 명품 백과 명품 지갑은 좋은 소재가 되어주었다. 도와달라고 하니 신이 나서 첫날은 아예 캐리어를 끌고 왔었다.
“슬아! 내가 아끼는 거 다 가져와 봤어!”
“…몇 개?”
“웅? 안 세어 봐서 모르겠는데?”
…그날 나연이 가져온 가방은 13개였다.
다음부터는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해주자 이번엔 가방 대신 화장품을 많이도 가져왔다. 덕분에 ‘금수저가 추천하는 로드 숍 쿠션’ 또는 ‘코덕이 추천하는 로드 숍 틴트’ 같은 컨셉의 일상 글들을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어그로 조금 추가.’
입력: 와 동기 진짜 착하다ㅋㅋ 나였으면 파우치 빌려달라는 거 찜찜하고 기분 나빠서 전 남친 있건 말건 거절했을 듯ㅠㅠ
이런 논점을 벗어난 ‘나였으면’ 댓글을 하나 달아두면 효자 같은 작용을 한다. 댓글을 불러 모으는 치트키다.
˪222 나도 다른 건 모르겠는데 쿠션은 더럽지 않나?
˪??글쓴이랑 동기랑 친한가보지 난 친구끼리 빌려주는 거 상관없는데 이건 좀ㅋㅋ
‘댓글이 많으면 궁금해서라도 클릭하니까.’
그렇게 나는 특정 브랜드의 특정 제품 PPL을 시간을 두고 업로드했다. 가장 높은 금액을 주는 브랜드였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하니까.
그리고 나 스스로도 궁금했다. 키키 게스트 말고도 어디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베스트 랭킹] 1) 라몽드 새틴 커버 쿠션‘내가 추천했던 거네….’
내가 PPL한 제품이 온라인 몰 베스트 랭킹으로 올라갔을 때, 내가 추천한 컬러만이 품절되었을 때 나는 묘한 희열과 허탈함을 동시에 느꼈다.
분명 회귀 전과 같은 방법을 썼는데, 명품 로고가 박힌 물건이 있고 없고의 결과값에 입 안이 썼다.
그래도 이전처럼 나연이 앞에서 초라한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같이 명품관을 갔을 때보다 마음이 훨씬 더 가벼워졌다고 하나.
“슬아! 이거 여기에 둘까?”
“어후 내 새끼~. 입가에 크림 다 묻히고 웃어요~. 일루와 닦게.”
“핥으면 티도 안 나. 히히”
휘핑크림이 묻은 채로 토끼 앞니가 보일 정도로 웃으면서 나연이는 이리저리 물건 배치를 열심히도 했다.
나름대로 키키 게스트의 미래를 책임지는 인기 에디터(나연이가 계속 크게 말해서 나중엔 작게 말하라고 빌어야만 했다)의 가장 친한 친구로서의 사명감이 무거운 듯했다.
우리는 예전만큼 비싼 카페는 아닌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같이 반 이야기를 하거나 동아리 이야기를 하거나, 같이 셀카를 찍기도 하면서 이전처럼 놀았다.
‘그래서 요즘 나연이 유스타에 내가 자주 태그됐지….’
음습하게 바라보던 눈동자는 나 하나면 됐다. 내 친구들에게까지 향할 시선을 생각하면 괜히 속에서 뭔가가 울컥 올라오는 것 같았다.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 건 아까 예원이 보내준 카톡 대화 사진이 크게 한몫했다.
지잉-
[윤슬아 진짜 조심해ㅠㅠㅠㅠ] [(사진)] [(사진)] [앞으로 조은주가 너한테 계속 말 걸면] [같이 화장실 가자…]덕현여중 예쁘니들 단톡
[엥? 갑자기 조은주 얘기는 왜?ㅠㅠ 걔 진짜 이상한 애임ㅋㅋ] [그 사진들 가지고 뭐 한 건 아닌데..] [보통 친구의 친구가 궁금해도 SNS 들어가서 보기만 하지, 캡쳐는 안 하지 않아?] [그리고 나중에 그 친구의 친구 얘기 나오면, 은근히 신나서 막 아는 척하고 그러는데.. 몰라 그런 식으로 굴다가 나중에 개인적으로 메시지 보내고 좀 부담?스럽게 굴고 그랬어.] [걔 누구 좋아하면 물건 따라하는 것부터 시작하니까 그때부터 도망가라 해;;]‘나한테 이렇게까지 할 일이 있나?’
이 나이 때 여자애들이 물건을 따라 사거나, 친구의 친구를 궁금해한다거나 하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소외당하는 것이 너무너무 서럽고, 친구와 절교하는 게 세상이 무너지는 일 같았으니까.
하지만 말 한마디 제대로 안 해 본 여자애가 뒷자리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음침한 뱀처럼 훑어보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아… 미치겠네.’
나는 몰랐다. 이미 나연의 SNS에 태그되어 올라갔던 내 사진은 조은주가 모두 캡쳐한 후였다는 걸.
* * *
며칠은 그렇게 무난하게 지나가는 듯했다. 조은주가 친한 척 말을 걸러 오고 싶어 할 때면, 주위의 친구들이 매점에 가자, 화장실에 가자며 티 나지 않게 피하게 도와줬다.
“조은주가 톡으로는 무슨 말 했어?”
“그냥 별말 없었어. 시험 범위 묻던데?”
번호를 가져간 걸 봤던 서은이 찜찜해했다. 사실 시험 범위만 묻지는 않았지만, 윤슬은 다른 애들에게 은주를 부풀려 욕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은 어린 애니까.
‘계속 보니까 그냥 친해지고 싶어 하는 것 같던데….’
선을 넘어 친하게 지낼 마음은 없지만, 너무 애들 사이에서 배척받게 둬도 안 되는 거니까. 그리고 은주의 스킬을 읽은 후부터 마음이 찜찜해졌다.
[윤슬아 안녕! 나 은주 ㅎㅎ] [번호 저장해주랑~]미리보기로 읽고 난 다음, 자기 전 새벽에 ‘미안 이제 봤어 ㅠㅠ’라고 보내려다가
[근데 혹시 영어 시험범위 알아?ㅠ 급한데..]라는 톡에 ‘그래… 시험 범위는 인간적으로 가르쳐줘야지’하고 흔쾌히 대답했다.
‘시험 범위가 미끼였을 줄이야.’
[고마워! 180P 까지 맞지?] [근데 나 정독도서관 근처 사는데] [나도 같이 공부하면 안 돼?ㅠㅠ]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약속 잡기에 윤슬은 어떻게 거절할까 고민했다.
그어둔 선을 맘대로 발로 짓밟고 쳐들어오는 듯한 모습에 더욱 거부감이 들었다.
‘아, 어떻게 거절을 해야 애가 상처를 안 받지….’
입력: 미안 나 이번 주는 공부 안 하러 갈 거 같아^^;; 집에서 하려구 은주 너도 시험공부 잘 해~. 화이팅!ㅎㅎ
댈 수 있는 핑계 중 가장 자연스러운 핑계를 대고 대화를 끊어버리려 했으나 상대가 만만치 않았다. 윤슬의 미간이 점점 찌푸려졌다.
[웅 알겠어.. 근데 그럼 그다음 주는??] [나 혼자하면 도저히 집중이 안 돼서 ㅠㅠ] [한 번만 같이 하는 것도 안 돼?]다시 오는 톡에 끝까지 핑계를 대야 했다.
‘하… 은주야, 언니 미션 성공해야 한다…. 성적 올리기도 힘든데 너까지 이러지 마….’
간신히 물러난 듯한 은주는 그 뒤로도 윤슬에게 계속 카톡을 보냈다.
[윤슬아 너 오늘 발랐던 립 뭐야?] [예뻐서 나도 하나 사려구ㅎㅎ]자기 전 새벽에 품명 하나 말해 주고.
신경 안 쓴다고 대충 말해주고.
[윤슬아 오늘 학교 끝나고 시간 돼?] [나랑 커피빙수 먹으러 갈래ㅎㅎ??] [너무 먹고 싶은데 애들이 다 안 된다네..]윤슬은 미안하지만 안 된다고 또다시 거절했다.
끝없이 은주는 불쑥 다가왔고 윤슬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기를 반복하는 며칠이었다.
학교에서는 주변 친구들이 윤슬을 둘러싸고 있어 말을 걸지 못한 은주는 톡을 보내고, 보내고 또 보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뭐지 얘, 싶었는데 이제 점점… 부담스럽다 못해 짜증 난다.’
이제 윤슬은 카톡 진동이 오는 것조차 거슬렸다. 시험 기간을 핑계로 아예 폰을 뒤집어 놓고 살기 시작했다.
* * *
제인은 싸늘한 눈으로 핸드폰을 매만졌다. 스와로브스퀸의 파츠를 붙인 손톱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이깟 게 뭐라고….’
물론 자신만큼은 아니지만 빠르게 윤슬의 SNS 팔로워가 늘어나는 게 보기 싫었다. 꼴에 협찬이랍시고 받는 걸 보면 웃음이 났다.
“집은 다 망한 게… 그 와중에 사진은 찍고 싶나 보지?”
윤슬이 화장품 사진을 올리면 제인은 비슷하거나 훨씬 좋은 브랜드로 올렸다. 윤슬의 숫자보다 높은 좋아요를 보고 있으면 세상이 인정해 주는 것 같았다. 서윤슬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유롭게 습관처럼 피드를 훑던 제인은 어느 사진에서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Youstagram]오랜만에 공부하려니까 진짜 머리 안 돌아간다.. 마음속으로 오열중..
이번 중간고사 바닥 내가 따뜻하게 깔아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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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서윤슬이 자신을 보며 열등감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SNS였는데, 짧은 순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저거 최백휘 글씨잖아.’
단정한 필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을 들여서 썼을 법한 문제 풀이들이 송곳이 되어 제인의 눈을 찔렀다.
최백휘는 모두에게 다정하고 모두에게 냉정했다. 겉으로는 잘 대해주는 것 같아도 가까이 다가가려 하면 칼같이 선을 긋고는 했다.
유일하게 그 선을 조금이나마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우리는 똑같잖아. 동류잖아, 너랑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