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33)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33화(33/405)
‘이 미친놈. 일반인은 이래서 안 된다….’
네가 쓰는 어플 하나, 로그인해서 메뉴 한 번 클릭하는데 드는 페이지 리소스는 몇 개고 움직이는 디자인은 몇 개인 줄 알기나 해?
재언은 하고 싶은 말이 한가득이었지만 답답함에 커다란 손으로 숱 많은 새까만 머리를 아무렇게나 쓸어 넘길 뿐이었다.
“재언아, 어플은 언제쯤… 아 재촉하는 거 절대 아냐. 언제 조금 써볼 수 있을까?”
“언제쯤 잡혔으면 좋겠는데?”
“글쎄 사람들 여행 많이 가는 게 여름이니까 여름 전에?”
“…어?”
“너만 하고 내가 하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미안해서… 너한테만 맡겨두고. 그… 나도 뭐라도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아서. 틀만 만들어 주면 나도 이것저것 해볼게. 보정 값 확인 정도는 잘할걸? 그리고 나눠서 일하면 조금 덜 고생하잖아. 같이 해야지. 우린 팀인데.”
우린 팀인데, 우린 팀인데. 우린 팀인데….
며칠 전 윤슬의 말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감동적이긴 했다. 마음 한구석이 찌르르 울렸다. 하지만… 초반 디자인을 구축해야 보정 사진도 넣어 보고 보정 값도 조절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윤슬의 말은 이랬다.
“재언아. 내가 벽지 도배하는 걸 할게! 그리고 가구 배치도 내가 할게. 걱정 마.”
…그러기 위해 재언은 허허벌판에 건물의 뼈대를 잡고 시멘트를 올려야 했다.
‘응. 근데 시험 기간이니까 일단은 윤슬이 너는 아무 생각 하지 마.’
아련한 눈을 한 재언은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었다. 윤슬이가 시험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게 자신이 다 만들어 놓겠다고.
검색: [세련된 디자인의 정석]
검색: [개발자들의 편의만 생각하는 디자인, 실패 100선]
검색: [누구나 클릭하고 싶은 어플]
미적 감각이 없는 재언은 피나는 특훈을 했다. 그동안 소스 코드를 만들긴 했지만 시중에 출시할 세련된 어플 까지는 만들어 보지 못했으므로.
하지만 윤슬 앞에서 당연히 할 수 있다고 말해놓은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했다.
실용성에만 맞춘 어플을 윤슬에게 선보였다 그 뽀얀 얼굴이 수학을 만났을 때처럼 보령 머드축제에 참가한 시민이 될지도 모른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원래부터 그런 사람인 것처럼. 그 여우 놈처럼.
재언은 중간고사가 끝나고 난 후, 여유로울 시기에 맞춰 윤슬에게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에 철야를 하는 중이었다.
‘아, 티스푼만 가지고 오는 새끼가 말이 많네….’
재언은 허허벌판을 다지고 있었다. 티스푼이 아닌 포크레인으로. 윤슬의 친구라기에 순순히 이번 프로젝트에 끼워 주겠다고 한 것을 후회했다. 재언이 봤을 때 백휘는 별 쓸모가 없는 녀석이었다.
* * *
‘제대로 안 하네?’
재언은 백휘를 티스푼만 올려놓는 놈인 줄로 알았지만 재언이 여름에 맞춰 어플 출시를 하려 노력하는 만큼, 백휘는 출시 후의 미래를 위해 노력했다.
백휘가 보기엔 재언이야말로 쓸모가 없는 놈이었다.
백날 어플 잘 만들어 봤자 뭐하나,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개발자는 널리고 깔렸고 원래 좋은 아이템은 대기업에서 다 훔쳐가는 거다. 어떻게?
▶스타트업에서 열심히 만든 좋은 어플◀
다운로드 수: 2,000
평가: 19
-좋은 것 같아요
-버그 가끔 나요 고쳐주세요
별점: ★★★☆☆
이걸 그대로 조립하고 기술자 붙이고 디자이너 붙여서, 정치인처럼 예쁘게 잘 차리는 거다. 그러면 이렇게.
[일성, 놀라운 기술의 진화 선보여… 새로운 시대 도약의 선포]“일성에서 새로운 어플을 출시하였습니다. 기존 소비자의 불편함에 귀 기울이겠다는 취지로 사진 보정 어플을 만든 일성은….”
▶(스타트업에서 열심히 만든 좋은 어플)… 을 따라한 대기업 어플◀
다운로드 수: 3000만
평가: 1만 8500개
-한국인이라면 스잉플 깝니다. 이거 깔고 나서 셀카 맨날 찍고 있음 어플 재질 걍 미쳤음
-다 좋은데 얼굴이 조금 더 하얘 보이는 기능이 추가됐으면 좋겠어요ㅠㅠ별점은 다섯 개입니다
-다음 버전은 언제 나와요?
-인물의 얼굴이 너무 백인처럼 보정된다 🙁 화이트 워싱을 멈춰야 해! love your self :)동양인 그대로 아름다운.
별점: ★★★★★
전공자들도 아이디어 도둑맞는 세상에서, 힘없는 고등학생들이 만든 아이디어라면 얼마나 훔쳐 가기 쉽겠는가. 특히 돈이 될 만한 윤슬의 아이디어는 어중간하게 출시하고 나면 대기업에게 강도당하기 딱 좋았다.
힘없는 고등학생, 아마추어, 그리고 어설프다 못해 몇몇에게만 소문날 홍보.
하지만 한번 트렌드가 되면 너도나도 다 따라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특허를 걸어놓고 언론플레이를 해도 막을 수 없는 흐름에서 최백휘가 노리는 것은 하나였다.
<안전한 수시>
아무리 생각해도 수학 문제를 풀면서 힘들어 하는 윤슬이는 대학을 수시로 가야 했다. 그리고 안전한 최저 등급을 맞추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 화려한 자소서가 필요했다.
그 빛나는 이력을 만드는 데 있어 가장 베테랑은….
‘역시 정치인이지.’
이럴 때는 정말 믿을 만한 게 정치인이었다. 자기 자식부터 손자까지 좋은 대학 보내기에 혈안이 된 정치인들 사이에서 자란 백휘는 이 점을 열심히 이용해 먹을 계획이었다. 국가에서 진행하는 무슨 대회.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다.
-새로운 문화를 위해 국가가 한 발자국 앞서 나갑니다…
-글로벌 인재를 품은 대한민국을 향한 도약…
-제1회 학생 어플 대회…
머릿속으로 완벽한 시나리오를 짠 백휘는 올해 말까지 적당한 성과를 바랄 뿐이었다. 대회 직전에 제작한 어플이라면 의심을 살지 모르지만, 대회가 만들어지기 전에 제작한 어플이라면 드라마틱한 자소서 스토리가 완성된다.
‘나를 위해 대회를 만들면 입시 비리지만…. 난 정시로 가면 되지.’
잠도 똑바로 못 자고 이를 악물어가며 공부하는 윤슬의 모습을 보던 백휘는 진정한 정시 파이터로 거듭났다.
수상자로 내정해달라는 요구 따위는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최백휘는 자신이 있었다. 일단 대회라는 카펫을 깔아놓기만 하면 그 위에서 윤슬이는 누구보다 제대로 빛날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대가로 백휘는 고생 좀 하고….
‘아, 노인정 파티 지긋지긋한데….’
노인들이 사이좋게 모여 차려입고 하하호호. 서로의 얼굴을 보며 마음에도 없는 말하기. 어릴 때부터 끔찍하도록 끌려갔다가 이제 좀 잠잠하나 싶었는데. 생각만 해도 숨통이 막히는 것 같았다.
* * *
“백휘야, 하 관장 집에 다녀오거라.”
“…오늘은 서휘 보내세요.”
“그러면 쓰나. 아직 어린 애인데. 장손이 가야지.”
과거 어느 날, 특유의 능글거리는 말투로 보던 신문에서 눈조차 떼지 않고 백휘의 할아버지는 말했다.
‘걔랑 저랑 두 살 차이인데, 저는 그 나이에도 어린 애 취급 안 하시지 않으셨어요?’
백휘는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간신히 삼켰다. 할 말 있으면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하면 될 것을 꼭 자신을 보냈다.
“가서 받아올 것도 있고, 오랜만에 하 관장 집 첫째 딸이랑 말동무도 좀 해주고 오면 돼. 친하지 않으냐, 같이 미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고. 시차적응도 잘 못 했을 텐데 가서 좀 달래 줘.”
‘걔만 시차 적응 안 되나.’
손자는 움직이는 전화기 역할을 시키면서 남의 집 손녀는 잘만 걱정하고 있다. 미국에서 강제로 끌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심기가 여전히 좋지 않은 백휘는 표정이 어두웠다.
“…네 엄마 호텔 주식, 심부름 값으로 좀 주마. 그러니 당분간 말 잘 들어라.”
안경 너머로 번뜩이는 눈을 한 노인이 이제야 백휘의 눈을 맞췄다.
“할아버지는 보는 눈이 많아요~”
“어련하시겠어요….”
“요즘 뒤에 까만 소나타 붙었다. 하하. 니 할애비 아직 안 죽었다.”
‘비리를 존나게 열심히 저지르시니까 붙은 거겠죠.’
까만 소나타. 정치인의 뒤를 캐는 기자를 부르는 은어였다.
당분간은 몸을 사리며 손자를 메신저로 쓸 계산을 마친 최강묵은 자신의 손자를 웃으며 바라봤다.
“당분간 하 관장네도 그렇고, 응, 저 누구지?”
“압구정 블랑 갤러리요?”
“으응. 그래, 그 집도 좀 다녀라. 너 오랜만에 입국했으니까 인사차. 그렇게 가는 거지. 가서 할아버지 선물 전해주고 네 얼굴도 좀 비춰라.”
‘이번엔 또 무슨 돈세탁을 대단하게 하시려고.’
백휘는 속으로 비웃었다. 이름만 거창한 갤러리지. 미술품은 정치인들의 검은돈을 세탁하기에 아주 그만이었다. 별 같잖은 그림도 작품이라고 다들 떠들어 댄 다음에 박수를 치며 그림을 입이 벌어지는 거금에 사는 것이다. 아주 예술적인 조작이었다.
사업하는 인간은 본인에게 도움 되는 법안을 만드는 정치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정치인은 물밑 작업을 할 때 드는 돈을 벌기 위해,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이용해가면서.
최백휘는 이런 촌스러운 연극을 평생 보며 자랐다.
“이번에 내가 우리 박전무를 다시 봤어, 응? 하하. 돈만 좇는 사람이 아니야! 마음이 맑아요, 마음이.”
정치인 1은 하얀 도자기 주전자에 담긴 술을 따라주고.
“아유, 우리 의원님만 하겠습니까~. 가난해서 꿈을 펼치지 못하는 예술가를 돕는 것이 나의 일이다. 하고 말씀하신 게 제 마음에 콱. 박혀서….”
사업가 1은 그 술을 받아 잔을 들고.
“건배할까요? 예술을 위하여!”
갤러리 관장1은 축배사를 외쳤었다.
갤러리 관장1의 첫째 딸은 하제인이었다.
손에 든 선물을 던져 버리고 싶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꾹 참으며 간신히 웃는 얼굴을 한 백휘였다. 아무렇지 않은 척 제인의 집 벨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너무 늦었죠. 입국하자마자 찾아뵈었어야 하는 건데.”
“어머 백휘야~”
“백휘 형!”
하제인의 집 막내아들이 우다다 달려와서 백휘에게 안겼다. 신나서 큰 소리로 떠드는 어린아이를 익숙하게 안아 든 백휘는 잠깐 내려놓은 선물을 다시 들어 제인의 어머니에게 건넸다.
“이건 제가 드리는 어머니 선물. 그리고 이건….”
우리 집 정치인 1씨가 드리는 까만 그림입니다, 하고 싶었지만 백휘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할아버지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으응~. 이번에 후원할 만한 젊은 예술가 몇 명 뽑아놓은 리스트 있거든. 그거 집에 가면서 전해드려 백휘야.”
“하하. 네, 그럴게요.”
“그리고 다다음 주쯤에 갤러리에서 미공개 전시 있거든. 이건 그때 걸면 참 좋을 것 같아. 할아버지 요즘 많이 바쁘시니?”
“음… 그건 잘 모르겠어요. 할아버지 참석하실 수 있는지 여쭤보고 제인이한테 전달할게요.”
“그래, 저녁 먹고 가. 하제찬, 이제 백휘 형한테 내려와야지~!”
저녁을 먹고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눈을 감은 백휘의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지겨운 한국.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는 지루한 나.
‘최대한 빨리 집안을 벗어나자. 그 전에 가지고 도망갈 수 있는 건 다 가지고.’
아름다운 돈 세탁회, 그러니까 제인의 집 갤러리에서 하는 미공개 전시회에 오는 손님들을 위한 답례품을 쇼핑하러 명품관에 갔던 날.
“우리 같은 중학교 나왔나 봐.”
“응. 그런가 보네.”
그날은 백휘와 윤슬이 처음으로 만난 날이었다.
그 뒤로 백휘에게 시간은 놀랍도록 빨리 지나갔다. 생각지도 않았던 어플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고, 남의 학교 시험지를 구하고, 그 아래에 풀이를 적어 내려가다 보면 다음 날이, 또 다음날이 와 있었다.
* * *
“저 하고 싶은 게 생겨서요. 요즘 어플을 만들고 있어요.”
“지난번에 하셨던 말씀대로 앞으로의 대한민국은 기술이 중요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 인터뷰를 보면서 저도 얼마나 공감했는지….”
“하…. 저 같은 학생들이 보이지는 않지만 꽤 많을 텐데, 대회라도 있으면 이렇게 답답하지 않을 것 같아요. 만나서 서로 의견도 주고받고.”
노인정 파티에서 얼마만큼 노골적으로 말해야 대회의 크기를 키울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게 백휘의 일상이 되었다. 분명 몇 명은 자신의 손자 손녀의 입시를 위해 미끼를 물 거라 장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물 흐르듯 아름다운 ‘대회 만들어줘’ 대본을 열심히도 짰다.
늘 하는 -놀러와요 비리의 숲- 능구렁이 정치인 씨의 손자1 역할이었지만, 이번만큼은 특별할 테니까.
아주 오랜만에 뭔가 하고 싶다는 마음이 백휘의 안에서 작게 빛나며 일렁였었다.
뼛속 깊은 곳에 새겨진 기브 앤 테이크. 정치인 씨는 어떻게 해서든 여름철 또 한 번 액세서리로 자신을 데리고 다닐 것이다. 그렇게 놀러와요 비리의 숲에서 능구렁이의 손자1 역할만 잘하면 일은 곧 일사천리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러면 방학에 윤슬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줄고, 까만 머리가 그 틈을 노려 윤슬에게 수학을 가르쳐주겠다며 접근하고….
‘아, 씨….’
백휘는 그래서 재언이 더 탐탁지가 않았다.
‘애 수학시킬 시간에 자소서 꾸미기나 할 생각을 해야지…. 지금도 반 죽어 가는데.’
자신이 정리해 주는 영어와 국어 문제만 풀어도 최저는 당연히 맞출 수 있을 것이었다. 재언이 들고 있는 수학 문제지를 째려봤다.
아, 그냥 다른 프로 개발자 소개받고 아이디어 제공은 우리 대장 강아지 윤슬이가 냈다고 해?
그것도 그림이 나쁠 것 같지 않았다.
“놀지 말고 일 해.”
최백휘는 본디 다정한 성품이 아니었다. 나긋해 보이는 말투로 가리고 있었을 뿐. 몇 겹이나 가린 본심이 제대로 드러났다.
“밑도 끝도 없이 시비네….”
“되지도 않게 윤슬이 도와준다고 말만 한 거면… 진짜 눈치껏 빠져. 지금 넌 여기 올 시간도 아껴서 어플 만들어야 돼.”
웃기는 새끼. 네가 뭔데….
화를 눌러 참은 재언이 꾹 다문 잇새로 말했다.
“머리는 그나마 좋은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
낮게 그르렁대는 백휘는 삐뚜름하게 웃었다.
“야. 넌 어플을 만들기만 하면 다인 줄 알지?”
“…버그 수정해야지.”
“그럼 버그 열심히 수정해서 만든 어플, 그거 누가 쓰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