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332)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332화(332/405)
재언은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오늘 한 일이 별로 없어서인 것 같았다. 식사 준비라고 해 봤자 별거 아니었다. 옆에 누워 있는 극한의 계획주의자 덕에 내일 아침까지 미리 준비했는데도 그랬다.
“…….”
새벽같이 일어나는 최백휘와는 다르게 재언은 새벽에 잠을 자는 게 루틴이었다. 결국 뜬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다가 소리를 죽이고 밖으로 나섰다.
“…어.”
서울과는 비교할 수 없이 차갑고 청량한 공기 사이로 동글동글한 뒷모습이 보였다. 제 몸집만한 롱패딩을 입고 모자까지 눌러쓴 자그마한 건 분명 윤슬이었다.
“…뭐해. 추운데.”
“너도 잠 안와?”
“…응.”
윤슬은 잘 됐다는 듯 웃었다. 나온 지 꽤나 오래되었는지 코끝이 빨갰다.
“여기는 별이 되게 많다. 그치.”
윤슬은 반짝거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을 빛냈다.
“…응. 그러게.”
재언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대신 윤슬을 내려다 봤다.
“내일부터 진짜 바쁘겠네.”
“맞아….”
“근데 그래도 우린 잘 할거야.”
“…….”
재언은 늘 그렇듯 묵묵히 들어주었다. 윤슬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잘될 거 생각하니까 벌써부터 떨린다. 그치.”
“그럼 제때 자야지.”
“뭐야. 너도 안 자?”
인기척을 듣고 나온 백휘였다. 깜박거리는 노란 가로등 아래에서 셋은 어느새 이런저런 얘기에 빠졌다.
“시그니처 메뉴 얼른 정해야 하잖아. 손님 주 연령층을 모르니까 그게 답답하지.”
“진짜 무난하게 아몬드…. 이 근처에 아몬드 크림 커피 유명하대.”
“음, 고구마는? 소비자가 강원도에 기대하는 어떤 느낌이 있으니까.”
그런 셋을 바라보는 제작진은 흐뭇하기만 했다.
“역시 스무 살은 스무 살이야.”
“풋풋한 것이…. 이거 따서 넣으면 딱이겠다.”
그들 역시 이 프로그램이 잘 될 것이라는 데에는 일말의 의심을 두지 않았다. 그 현수정 PD였다. 거기에 출연자 개개인마다 캐릭터성이 잘 잡혀 있었고, 촬영 내내 순조로웠다.
다만.
[넷홀릭스 k-예능, 새로이 신기록 쓰나… ‘카페in’ 안봤으면 말을 마] [6주 연속 1위 카페in, 새로운 ‘MZ 아이돌’이 나타났다] [신규 가입자 폭증… 공중파 기강 잡는 OTT 전성시대 열리나]이 정도로 잘 될 줄은 몰랐다.
정확히 세 달 뒤, <카페 IN>은 예능 역사에 길이 남을 신기록을 세워 버렸다.
* * *
“촬영 잘하고 왔더라? 후기 봤어요.”
다이아수저는 그간 잠을 제대로 못 자 푸석해진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그 와중에 윤슬에게 양배추오렌지케일주스를 건넸다.
“아아 달라니까요.”
“주는 대로 먹어….”
윤슬은 그냥 컵을 테이블 저 멀리에 밀어 놨다. 다이아수저는 태블릿을 들고 화면을 띄웠다.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하제인 브랜드는 이제 핸드크림, 거기에 바디 라인만 생기는 게 아니야.”
“그럼요?”
“색조에 손 대기 시작했어.”
하제인의 브랜드는 환승 시그널 방영 이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세련된 유럽의 감성을 그대로 담은 데다가 금수저 브랜딩도 한몫 했다.
사랑과 목표 중 목표를 선택한 환승 시그널의 엔딩도 하제인의 인생을 좀 더 완벽하게 만들어줄 서사에 불과했다.
[HOT/ 외국인들 한국 관광 코스로 자리잡은 압로 세잔뮤.jpg]요즘 한국 놀러오는 외국인들 압로가면 다 있는거 알거임ㅇㅇ 특히 일녀들 진짜 많이보이는데 다들 세잔뮤 쇼핑백 들고 있음ㅋㅋㅋ
-내 트친중에서도 일본인 몇 있는데 다 세잔뮤 얘기함
-국뽕 차오른다… 그래 돈 많이 쓰고가^^
˪222그래 너네가 봐도 예쁘지?ㅋㅋㅋ이게 한국이야
-생일선물로 세잔뮤 받으면 괜히 기분좋음ㅜㅜ 쓸모없는 무드등 말고 걍 세잔뮤나 주라고~!!!
하제인은 외국 구독자들이 많은 만큼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을 몰고 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손인 중국인 여성들은 물론이고 일본인까지. 타 브랜드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솔직히, 우리 브랜드도 그렇고 다른 곳에서도 그렇고 핸드크림이나 바디 워시 같은 경우에는 매출에서 크게 영향을 차지하지가 않았지….”
다이아수저는 한숨을 쉬었다.
“근데 이게 색조까지 손을 뻗으면 곤란해지거든?”
“품목이 뭔데요?”
“립밤, 그리고 톤업크림.”
메이크업은 패션만큼 트렌드에 예민한 카테고리다. 지금의 유행은 바로 투명한 피부. 파데 프리가 유행하면서 소비자들은 파운데이션이 아닌 가벼운 쿠션과 톤업크림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다른 건?”
“아직 없어요. 보아하니 이걸로 덩치 좀 키우고 나서는 다른 카테고리도 얼른 세분화하겠지. 성장 속도 장난 아니야.”
마침 하제인이 출연한 <노모럴 호텔>은 극한의 상황에서 생존을 하다 보니 대부분이 점점 꼬질꼬질해졌다. 화려한 메이크업으로 카메라에 담긴 1화와는 다르게 점점 비주얼적으로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단 한 명, 하제인은 달랐다.
“내추럴한데 일상에서도 예쁘다? 이만한 PPL이 어디 있어! 심지어 전 세계 대상 방영인데!”
모델이 압도적이라면 제품의 질은 그다음이 된다. 나도 하나 사볼까? 하는 그 마음이 소비자들에게 들기 시작하는 그 순간, 매출 그래프는 천장을 뚫는다.
“아무튼 상황이 이런데. 대체 왜 윤슬 씨가 방영 미루자고 한 거예요? 노모럴 호텔이 이러다가 먼저 방영해!”
“…그런 게 있어요. 우린 좀만 기다리다가.”
“현수정을 뭐 어떻게 구워삶은 거야? 소비자들이 그리로 쏠리고 나면 백록화나 다른 브랜드들은 몰라도 라모레는 타격이 크다니까!!!”
<카페 IN>과 <노모럴 호텔>, 둘은 촬영이 비슷한 시기에 끝났다. 이제부터는 바이럴과 언플, 편집 싸움이었다. 누가 더 소비자의 입맛에 맞춰 편집을 하는지, 누가 더 먼저 모습을 드러내는지에 따라 승패가 갈렸다.
“무조건 먼저! 무조건 먼저라고!!!”
그리고 힐링 예능 특성상 도파민 예능 다음에 나오면 상대적으로 시시하기 마련이다. 화제도 되기 어려운 데다가 시청자로 하여금 지루하다는 인상을 줘 버린다.
“그러지 말고, 립밤은 몰라도 톤업크림 안 팔릴 거에요. 재고 쌓일걸.”
“그걸 윤슬 씨가 어떻게 알아?”
“그냥. 아무튼 저희 패드 다음 버전은 준비 끝났어요?”
“그래! 거의 끝났어. 그러니까 딱 맞춰서. 어?”
“그럼 됐어요. 샘플 나온 거 오늘 가져갈게요.”
윤슬은 <카페 IN>이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다이아수저를 족쳤다. 후발주자들이 악착같이 따라붙었지만 여전히 베스트셀러인 시카 패드와 세라 패드의 뒤를 이을 제품을 만들어야 했다.
“맞다. 곧 봄이라 공기도 안 좋고…. 다들 피부도 예민할 텐데 전 직원을 위해 복지 좀 신경 쓰고 그러세요.”
“우리 회사 만큼 피부 복지 좋은 데 찾기도 힘들어!”
“예를 들면 뭐…. 마스크라거나.”
윤슬은 제 할 말만 하고 샘플을 들고 나가버렸다.
“으아아!!! 진짜 저 고집을 누가 꺾어!!!”
다이아수저는 곧 라모레를 위협할 브랜드로 성장할 세잔뮤가 너무나도 거슬렸다. 하지만 이미 일정은 어느 정도 픽스가 된 상황이었다. 누구나 모셔가고 싶어 하는 그 현수정이 방영일을 늦추고 싶다는데 반대하는 브랜드는 라모레 하나였다.
[지루한 겨울 집콕에 기강잡은 <노모럴 호텔> 폭발적인 인기의 비결은…] [폰칼럼: 시청자가 주목하는 스타 Pd, 구정모의 신선한 포맷에 감탄] [인터뷰 IN 출연자를 만나보았다… ‘극한 상황’에서의 당신은?]그렇게 설날 특수를 맞아 <노모럴 호텔>은 발 빠르게 모습을 드러냈다. 주 시청 타깃이 2030이라는 것을 감안한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극장가에도 올해의 기대작들이 하나둘 걸렸다. 하지만 분명히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모럴 호텔>의 하제인에게 버즈량으로 밀려 버렸다.
* * *
[♨노모럴호텔♨]-ENFP 내가 다 공감성수치… 저 상황에서 굳이굳이 나대야되나ㅠ
˪엥뿌삐인지 엣프피인지 아직 아무도 모르는데 굳이굳이 저격하면서 나대야되나ㅠ
˪ㅇ 일단 니가 엔프피인건 잘 알겠음ㅋㅋㅋ 엥뿌삐랜다 으휴
-첫화부터 도파민 싹돈다ㅋㅋㅋㅋㅋ 표정관리 다들 빡세게하네
배우들의 무대인사도, 예능 행차도, 팬들의 홍보도 먹히지 않았다. 초반 8화를 공개하자마자 대중들의 이목은 모두 <노모럴 호텔>에 쏠려버렸다.
[익명게시판/ 너네 최종우승자 누구같음?ㅋㅋㅋ] [HOT/ 어제자 하제인 쌩얼…gif] [잡담게시판/ 그래서 하제인민정우 지금은 무슨사이래?ㅠㅠㅠㅠㅠ] [유머게시판/ 내가 노모럴호텔 나가면 제일 안맞을 것 같은 참가자 고르기.jpg]매일같이 <노모럴 호텔>에 대한 글이 쏟아졌다. 1화마다 빌런이 바뀌는 것도 아니었다. 한 화에도 몇 명씩 보내버리는 편집의 악랄함에 대중들은 새로이 물고 뜯을 것이 생겨 도파민을 충전했다.
-자진하차좀 해라ㅠㅠㅠㅠ제발 부탁할게
-괜히 뚝딱대는척 은근히 플러팅하는겈ㅋㅋㅋ급 안맞는데 왜저럼 진짜
구정모와 <노모럴 호텔> 제작진들은 모두 예상한 반응들에 축배를 들었다.
“자!!! 모두 짠합시다!!!”
전 출연자마다 팔로워가 미친 듯이 붙었다. 광고주들은 그들을 잡지 못해 안달이었다. 구정모 PD는 명실상부 지금 시대 최고의 PD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하제인은 그중에서도 탑이었다.
“이게 다. 어? 우리의 피! 땀! 눈물!”
“전 진짜 PD님만 믿고 했다니까요! 근데 진짜. 일주일 가까이 밤샜을 때는 돌아가신 할머니가 손짓을 하시는데….”
“우리가 이렇게 악착같이 편집했으니까 승기를 거머쥔 거지.”
“아니죠! 솔직히 카페인 먼저 나왔어도 우리가 이겼다. 제인 씨가 지금 서윤슬? 그 사람 팔로워 다시 땄어요.”
모두가 <노모럴 호텔>의 다음 회차 방영을 기다렸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저 빌런은 언제 모두가 싫어하게 될 건지, 대체 저 사람들의 MBTI는 무엇인지, 우승자는 누구인지 떠들어댔다.
“카페가 이렇게 널리고 깔렸는데! 대체 누가 카페 알바 브이로그 같은 걸 굳이 보고 싶냐 이거야~!”
그러나 그들은 곧 닥쳐올 미래를 모르고 있었다.
―해외에서 최근 유행하고 있는 바이러스가….
전 세계인의 일상을 마비시켜 버린.
―국내 첫 확진자의 동선을 알려드립니다. 확인 후….
그래서 커피 한 잔의 휴식이 절실했던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갑작스레 체온이 비정상적으로 오르거나, 인후통을 느끼고 계신 분이라면 가까운 보건소로 가 검사 키트를….
<노모럴 호텔>의 마지막 화 방영 바로 다음 날, <카페 IN>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