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Regressed Dirty Spoon Becomes a Golden Spoon RAW novel - Chapter (34)
흙수저가 회귀하면 금수저가 된다-34화(34/405)
뭐? 윤슬이 아이디어를 무시한 거야?
재언은 이제 곧 일어나서 백휘의 멱살을 잡을까, 조금 고민했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되니까 그냥 적당히 빨리 만들어. 누적 이용자 수 쌓이기만 하면 될 테니까.”
일단 시장에 내놓은 다음 “학생들이라, 열정은 있었지만 부족했네요. 이런 이런….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꿈을 향해 노오력하겠습니다! 청.춘.이니까요.”로 얼버무리면 이 또한 스토리텔링이 될 것이었다. 미래의 나는 어떻게든 노인정 파티에서 노동의 강도를 올려 이름만 비슷한 다른 대회를 몇 개나 만들 테고, 아무리 부족해도 이중 하나는 걸릴 테니까.
윤슬이는 그동안 이 게으른 새끼랑 같이 놀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자신까지 윤슬과 노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있을 수 없다.
좋은 아이디어인 만큼 자본과 유명세에 뺏길 가능성이 컸다. 이쪽에서 먼저 선빵 때리며 나가야 한다. 그래야 윤슬이 고생한 것이 헛수고가 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재언의 귀에는 ‘그냥 대충 아무렇게나 해’로만 해석이 되었다. 백휘가 한 말을 곱씹을수록 재언은 울컥 화가 났다.
“아무렇게나 해라…. 윤슬이가 좋아하건 말건.”
“대충해~ 윤슬이는 어차피 몰라~”
“빨리하면 뭐 ㅇㅋ.”
까지 생각하자 느슨하게 뜬 눈동자에 불이 붙은 재언은 맞은편에 앉아있는 백휘를 노려봤다.
“야…. 윤슬이가 하라고 한 건데, 어떻게 말을 그따위로….”
“응. 너는 행동을 그따위로.”
“아니, 너…. 대체 왜 꼈냐? 나 진짜 이해가 안 돼서 묻는 거야. 대충 할 거면 굳이 왜 들어왔냐고.”
“어 나도 진짜 이해가 안 돼. 장인정신은 딴 데 가서 발휘하자.”
“대충의 반대가 언제부터 장인이 된 건지 모르겠는데.”
“적당히 하랬지 대충이랬어?”
“그거나 그거나.”
둘은 이제 윤슬이 들어오면 누가 봐도 싸우는 사람인 걸 눈치챌 수 있을 만큼 서로에게 으르렁대며 날을 세웠다.
“우리 윤슬이한테 고생을 조금이라도 덜 시켜야 될 거 아니야!”
흥분해서 냉정을 잃은 백휘에게 우리 윤슬을 필터링할 능력은 상실됐다. 이미 전부터 마음속에서는 윤슬 앞에 ‘우리’가 붙어 있었다.
“우리 윤슬이???”
그 단어로 재언이 더 흥분해 냉정을 잃었다.
휘잉-
둘의 사이로 벚꽃 비가 우수수 내렸다. 봄이었다.
벚꽃비 사이에서 백휘는 인내심을 발휘해 차근차근 설명했다. 몇 번 울컥하는 감정을 갈무리하느라 잇새에서 으득 소리가 났다.
1. 적당히 만들어서 어플 출시일을 앞당기면
2. 윤슬이의 자소서가 멋져진다.
3. 초반 에러가 잦아도 누적 이용자 수가 많다면 자소서 꾸미기 완성!
4. 윤슬이가 멋져진다.
철저하게 모아두고 있던 입시요강까지 정리해 재언의 눈앞에 펼쳐두자 그동안 입시 따위 생각도 하지 않고 공부를 심심풀이로 하던 재언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어느새 으르렁대지 않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던 재언의 눈에 따스한 온기가 감돌았다.
“그러면 내가 만들 동안… 넌 뭐하는데?”
결론은 은은한 시비였지만. 그 말에 싸늘하게 웃은 백휘가 답이 없자 재언은 혼자 머릿속으로 스케줄을 정리했다.
-늦어도 5월 말까지
-버그 수정하고 다시 만지려면 나는 4월 중순까지 1차 완성
-보정 값 설정- 재설정- 확인- 반복하면….
‘얼추 시간 맞겠네.’
그리고 하나 더 추가.
-잠은 죽어서 자기.
가뜩이나 잠을 아껴 철야를 반복하고 있던 재언의 눈 밑이 더 짙어졌다. 부족한 잠은 학교 가서 자면 되지!
다시 한번 강대엽 선생님이 목덜미를 잡을 만한 생각이었다.
재언이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고개를 작게 끄덕일 때, 여전히 싸늘한 낯빛으로 웃음 짓던 백휘가 대답했다.
“내가 뭐 하냐고?”
“그래, 뭐 하는데.”
“노인정 봉사.”
이게 무슨 나이팅게일 같은 소리야? 재언이 다시 찡그렸다.
“보정 값 만지고, 그게 끝인 줄 아냐? 최강묵 씨한테 저 좀 도와주세요 빌고. 대회 만들어달라고 또 빌고, 부르면 가고 웃으라면 웃고, <꿈을 향한 학생들> 이따위 헤드라인 잡고 보기 좋게 기사 몇 개 내보내고…. 그러다 어플 안 되면 너랑 나 둘 중에 누가 또 개고생할 것 같은데?”
“…….”
“혼자 얌전히 개발하는 너? 아니면 서커스단 곰처럼 재주부리는 나?”
“…….”
재언은 할 말이 없었다.
‘최강묵 씨는 대체 누구야… 이 새끼 열일곱 맞아? 대회가… 빌면 만들어지는 거야?’
도저히 같은 나이대의 머릿속에서 나왔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 스케줄 정리였다.
“그거 다 내가 노인정 가서 봉사하는 노동력으로 채우는 거야…. 맘 같아서는 프로 개발자로 갈아버리고 싶은데 우리 윤슬이가 그러면 마음 불편해할까 아직 너 잡고 있는 거고.”
“대체 어떤 노인정 이길래….”
“있어, 그런 데가.”
‘아, 재수 없는 새끼….’
화는 났지만 틀린 말은 없었다. 그리고 그게 다 윤슬에게 도움이 되는 말이라 재언은 이제 참을 수밖에는 없었다.
이제 재언은 백휘보다 더 많은 일을 담당하고 싶은 욕망에 휩싸였다. 그리고 둘은 누가누가 더 일을 많이 할 것인가 싸우는 사람들이 됐다.
재언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질 수 없었다. 저쪽이 자소서를 위해 <꿈을 위한 학생들>로 포장해서 윤슬이를 광고한다면 재언은 어플을 광고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백휘가 주장하는 멋진 자소서에는 많은 이용자 수가 필요했으니까.
어플을 완성하고 나면 인튜브와 SNS에 뜨는 팝업으로 사람들을 모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물론 윤슬이 모르게 사비로.
재언의 계좌에는 이전부터 기업을 상대로 판매한 소스 코드가 벌어다 준 금액이 쌓여 있었다. 돈 쓰는 데 취미가 없던 재언은 이때를 위해 모아둔 것이라 다짐했다.
[개발자 놀이터] [정보글] 이번에 새로 짠 소스 코드입니다 (댓글 342)혼자 심심해서 만들어 본 건데
도움 되실까 올려봅니다.
-이거 무료로 배포해도 되는 건가요?
˪ㄷㄷ;; 잘못 업로드 하신 거 아닌가요?
-코드 정말 깔끔하네요…ㅜ 부럽습니다
-와 고수ㄷㄷㄷㄷ 혼자 만드셨다고요??
-이 실력을 보건대 일반인은 아니신 것 같고, 현직에 몸 담그신분이 이정도 퀄리티 무료로 푸시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생태계 흐리지 맙시다.
˪22 이분 의견에 동의합니다. 이건 뭐.. 만수르가 길거리에 돈 뿌리는 것도 아니고
˪33 같은 업계사람끼리 이러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반대합니다. 요즘 개발자 놀이터에 이런 양질의 정보글이 올라온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납니다. 이런 분 같은 회원님들이 계셔야 사이트 굴러가는 거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흠 너무 다들 과열되셨네요;; 진정하시죠.
˪(작성자) 업계사람 아니고 그냥 학생입니다..
-XX기업 개발팀 DD담당자입니다. 쪽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급합니다.
윤슬이 낸 아이디어, 윤슬이 만들 성과, 둘은 윤슬을 높은 곳으로 올려 주고 싶었다. 지금만큼은 확실하게 마음이 통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후… 일정 빠듯한데 괜히 사심으로 어플 만들어 준다고 말만 해본 거면 빠져. 혹시 너 적당히 만드는 것도 못해서 시간 끄는 거… 아니지?”
재언은 조금 많이 뜨끔했다, 그래. 사실 어플 핑계로 얼굴을 몇 번 보고 싶었던 마음은 분명히 있었지만… 여기에서 티 내면 먹잇감을 노리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백휘에게 바로 내쳐질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윤슬의 어플 팀에서 나갈 순 없다.
‘그리고 처음에 끼어든 건 너잖아….’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었지만 생각보다 일을 잘 하는 녀석이라 어쩔 수도 없었다. 재언은 진지하게 표정 관리를 하기 위해 인상을 찡그렸다.
“표정 뭐야. 진짜야? 지금이라도 못하겠으면 빠져.”
“절대 안 빠져.”
“후… 똑바로 해. 하반기에 몰려 있는 대회들마다 윤슬이 가야 돼.”
백휘는 뭔가 계산하듯 허공을 보며 테이블을 검지를 톡, 톡, 쳤다. 한껏 세웠던 날이 조금 유순해진 듯했다.
듣다 보니 다 윤슬을 위하는 말이라 재언도 말없이 수긍했다.
‘싸가지가 없기는 한데….’
그 재수 없는 성격이 윤슬에게 이득이라면 재언은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무섭게 생긴 얼굴과 다르게 재언은 태생적으로 순했다.
보통 조는 걸 보고 대회 만들 생각까지는 안 한다고 받아치려던 재언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 걸 인정하는 것 같아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재언은 윤슬의 품위 유지를 위해 윤슬이 중학교 시절에도 자주 졸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요즘 윤슬은 조금 많이 피곤해 보이긴 했다.
어느새 다시 차분해진 백휘는 조용히 윤슬이 풀고 있던 수학 문제지를 바라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여전히 노트북 화면에 떠 있는 입시요강 중 ‘수학 제외’ 대학에 밑줄을 그었다.
최백휘는 지금 큰 그림을 그리다 못해 거대한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었다.
<윤슬이 수시로 대학 보내기 세계관>
이른바 어벤자소 유니버스에. 자소서를 자소설로 써 내려가는 능력은 그 누구도 백휘를 이길 수 없었다.
“그, 수시… 그럼 일단 이번 어플 끝내고, 2학기에는 대외적으로 대회만 다니면… 되는 거야?”
“지금 너 뭐 더 할 거 없냐고 묻는 거?”
“…응.”
순해진 재언과 다시 차분해진 백휘는 순식간에 뜻이 맞아 서로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자.’
‘일단 오케이.’
“글쎄, 일단 어플 출시 반응 보고 결정해야지.”
“반응… 큼, 좋으면?”
“좋으면 당연히 이어서 하나 더 만드는 거고.”
재언의 머릿속 리스트가 정해졌다.
-늦어도 5월 말까지
-버그 수정하고 다시 만지려면 나는 4월 중순까지
-잠은 죽어서 자기
“성적이 일학년 때 잘 안 나와도 이런 거 몇 줄 있으면 어떻게든 돼.”
“…수능 공부보다는 확실히 좀 덜 피곤해하겠지.”
“그래, 세상 사람들이 다 너 같은 게 아니야. 아무리 오래 준비해도 고3 때 다 무너지는 게 한둘인 줄 알아?”
“그치… 수능 미끄러지기 쉽지.”
“100일 주라고 술 마시거나, 연애질하거나, 그냥 놀러 다니거나. 미끄러지는 거 한순간이야.”
진지하게 말하는 백휘의 말에 재언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윤슬이 미끄러지면 안 돼.
둘은 은근히 잘 통했다. 본인들만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연애질….’
되새긴 갑자기 재언은 목 뒤에 땀이 고이는 것 같았다. 그런 대단하고…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단어에 윤슬과 자신을 넣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재언은 윤슬이 배고프면 맛있는 걸 먹이고 날이 좋으면 걷고, 그리고 가끔 크게 웃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게 다였다.
“야, 나 여자 친구 생겼다!”
“그러냐.”
“뭔 반응이 이래, 궁금한 거 없냐?”
같은 반 친구들이 여자친구가 생겼다며 자랑할 때도 재언은 궁금한 게 없었다.
연애라는 거? 생각도 안 해봤다. 그냥 그때도 재언은 문득 윤슬이 생각나고는 했다.
‘걔 아직도 수학 시간에 졸려나. 노랑 우산은 안 잃어버리고 가지고 다니나.’
“음… 여자친구 생겼으면.”
“엉, 생겼으면.”
“이번 주 토요일에 축구 안 와? 그러면 인원 안 맞는데, 내가 빠져줄까. 제일 잘하니까….”
그랬던 재언에게 연애라는 단어는 생각만 해도 과분하고 황송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커다란 손으로 목 뒤를 아무렇게나 쓱쓱 문질렀다.
“이 새끼 왜 얼굴이 빨개지실까.”
“연애질이라니…. 너 되게 까졌다.”
“지나가는 사람 잡고 물어봐. 누가 봐도 네가 그래 보여.”
재언이 윤슬과의 연애를 생각해 본 적 없듯 백휘 역시 같았다.
윤슬이 그냥 아주 조금만이라도 쓸 만하네, 싶게 자신을 생각해줬으면 싶었다. 곤란한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연락하는 상대가 되었으면 싶었다.
얼굴이 빨개지는 재언을 보면서 백휘는 티가 나지 않게 귀와 목덜미가 은은하게 빨개졌다.
“야, 나 여자친구 생겼다!”
“후….”
“뭔 반응이 이래, 궁금한 거 없냐?”
얼굴만 아는 놈들(상대방은 백휘를 친구라고 생각했다…) 이 여자친구가 생겼다며 자랑할 때도 백휘는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연애라는 거? 상대방한테 다 내던질 수 있을 때나 하는 거지. 뭘 믿고… 얘랑 사귀어 주는 거지?’
가끔 얼굴만 아는 놈들이 한심할 때 하는 말은 한결같았다.
“없다. 그냥 여자친구한테 잘 해라.”
“잘 할 거야, 임마.”
“할 거야 아니고 이미 잘 하고 있어야지.”
백휘의 ─행복해요 윤슬의 숲─ 프리미엄 게임 시즌은 3년짜리 프로젝트였다.
1학년, 2학년, 3학년 내내 꽉꽉 눌러 담은 윤슬의 학생부와 자소서 스토리로 채워져 있는, 덜 힘들고 덜 피곤하지만 윤슬이 원하던 걸 해줄 수 있는 지름길.
재언도 같은 마음이었다. 윤슬이 원하는 건 다 해주고 싶었으니까.
순식간에 말없이 이상한 동맹이 생겼다.
‘윤슬이 꽃가마에 태워 원하는 대학 편하게 보내기’ 동맹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